45화
10. 스카우트
오늘은 무척이나 중요한 날이었다.
그랬기에 부팀장과 말을 맞춰 30분가량 일찍 출근했건만, 한 주무관을 제외한 모두가 이미 출근해 있었다. 나는 먼저 인사를 건넸다.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 아침이야.”
“주말 잘 지냈어?”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이들이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간만에 편히 쉬었어요.”
“내가 보낸 건 숙지했고?”
“네.”
일요일 오후 팀장이 보낸 지침이라면 출근길에도 검사를 받은 참이었다. 부팀장의 질문에 답하며 한 번 더 제대로 숙지했고 말이다.
“공문이 늦은 바람에 지침 전달이 늦어졌어. 혹여 모르는 부분이 있거나 하면 사인 보내고.”
“네, 팀장님.”
아무래도 귀빈인 터라 혹시 모를 실수를 대비하는 듯했다. 한 번 더 주의사항을 읽고 머리에 새기자 다짐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나저나 오늘 아침 뉴스를 보니 에드워드 왕자 관련 오보는 제대로 잡힌 듯하더군요.”
그 뉴스라면 나도 출근 준비를 하면서 봤다.
“그나마 다행이지.”
“아직 에드워드 왕자가 견학 온다는 말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듯하군요.”
“예. 미리 알았다면 지금쯤 외부에 지난주보다 더 많은 기자가 득실거렸을 겁니다.”
김 주무관의 말마따나 소문이 났다면 이리 편히 출근하진 못했을 거다. 지난 금요일과 비교될 만큼 텅 비어 있던 출입구를 떠올리며 끄덕일 때였다. 박 주무관이 한숨을 뱉자 그쪽을 바라보았다.
“오늘 정정보도가 나지 않았으면 제아무리 헌터부라고 해도 안 좋은 여론이 제법 나올 뻔했죠?”
“이번엔 여론이 썩 좋지 않았으니까.”
팀원들의 말마따나 주말 내내 헌터부를 향한 안 좋은 기사들이 쏟아졌었다. 누리꾼 사이에서 슬슬 동조하는 이들이 생기던 참에 정정보도가 나간 터라 한시름 덜었다.
“그나저나 한 주무관님은 언제 오신답니까?”
“정시 출근하라고 했어.”
“에드워드 왕자 측은 언제 온다는 말 없었죠?”
“알아서 오겠지.”
“…옆 건물의 누구들처럼 조회 시간에 들이닥치진 않았으면 좋겠네요.”
“그렇게 일찍 오진 않을 거야.”
그래, 견학이라고 했으니 이른 시간에 이곳을 찾을 리 없었다. 김 주무관의 말에 동조하며 고개를 끄덕이곤 짐을 마저 정리한 후 자리서 일어났다. 나는 곧바로 사무실 곳곳을 돌아다니며 청소를 시작했다.
“금요일에 청소했으면 됐지.”
“왕위 계승권이 있는 사람이 오는데, 좀 신경 쓰여서요.”
항상 널찍한 곳에서 생활하다 이런 조그마한 사무실에 있게 된다면 답답할 것이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주변을 둘러보게 될 테고, 그때 먼지라도 보게 된다면 서로가 불편해질 수 있었다.
“그럼 나도 한 손 거들까?”
팀장이 자리서 일어나며 소맷자락을 걷는다. 나는 그런 팀장을 반겼다.
“네.”
“…우리 막내는 말을 돌리지 않아서 좋다, 이 말이지?”
“맞습니다. 우리 막내가 최고죠!”
“그러니 잉여가 떡하니 지키고 있는 거잖아요.”
“푸핫! 그건 그렇지.”
웃음을 터뜨린 팀원들이 다들 일어나 사무실 정리를 시작한다. 김세현을 거론하자 왜 이리 민망한지 모르겠다. 그리고, 어제 그가 왔었단 사실이 떠오르기도 했고 말이다. 고심하다 입을 열었다.
“팀장님.”
“음?”
팀장 자리 뒤편에 자리한 작은 책장을 정리하던 그가 이쪽을 바라본다. 침을 삼키곤 말을 이었다.
“실은, 어제 세현 씨가 집에 찾아왔어요.”
“뭐?”
“뭐라고?”
“집에 들인 건 아니지?”
“걔가 왜 거기까지 가?”
“…어.”
팀원들 모두가 말을 얹을 거라 예상하긴 했지만, 이렇게 격한 반응이 돌아올 줄은 몰랐다.
“잉여가 왜 거기 갔는데?”
“커피 한 잔 마시고 싶다고요.”
“커피 마시러?”
“다른 말은 없었어, 막내야?”
“그게….”
내가 보고 싶어 왔다는 말도 있었지만, 그 말을 입에 담기엔 민망했다.
“뭔데 그렇게 뜸 들여?”
“그게, 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말을 하지 말까 싶었지만 팀원들에겐 감출 이유가 없었다. 떠듬떠듬 말하니, 사무실 안이 침묵으로 가득 찬다. 민망함에 몸에 열이 올랐다.
“연하늘.”
“네, 팀장님.”
“그래서, 집에 들였어?”
“집에 들인 건 아니고, 대문 안까지 잠깐 들어왔다가 갔어요.”
“…그래?”
“들어가겠다고 막 우기지 않았나 싶은데.”
마치 김세현을 곁에서 본 것처럼 말하는 이들이다. 나는 박 주무관의 말에 답했다.
“안 된다고 했어요.”
“그거참 다행이네.”
“순순히 물러서든?”
“몇 번 더 묻긴 했는데, 계속 안 된다고 하니 포기했어요. 커피 한 잔 마시고 돌아갔고요.”
“하아.”
“후우.”
집에 들이지 않았다는 말에 여기저기서 땅이 꺼질 듯한 한숨 소리가 들려온다.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가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 상황이 잘 해결된 듯하니까.”
“예. 혹 문제 생기면 언제든 연락해요. 가장 가까이 사는 게 나니까.”
“그럴게요, 부팀장님.”
“꼭입니다.”
“네.”
한 번 더 확인한 부팀장이 그제야 표정을 푼다. 덩달아 다른 이들 또한 편해진 얼굴을 보던 중 출입문이 벌컥 열린다. 나는 그쪽으로 시선을 주었다가 익숙한 이를 발견했다.
“한 주무관님!”
“저 왔습니다.”
“신수가 훤해졌네!”
“편히 쉬었더니 사는 게 행복하더라고요, 하하.”
항상 피곤에 절어 있던 한 주무관인터라 이렇게까지 밝은 낯빛을 한 건 처음 봤다. 광채까지 나는 듯한 그의 피부를 보며 마냥 웃다가 그가 손을 들어 흔들자 고개를 꾸벅 숙였다.
“우리 막내는 일 저지르지 않고 잘 지냈지?”
한 주무관이 자리를 비우고 별다른 일이 없었다. 잠시 기억을 되짚는 척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네.”
“…와, 뻔뻔도 하지.”
“일 저지르지 않았다고?”
“뭔데 이런 반응입니까?”
“한 주무관님 자리 비운 사이에 우리 막내 칭찬상 수령했잖아요.”
“아.”
그걸 깜박했다. 열변을 토하며 칭찬상을 받았던 날을 설명하는 박 주무관과 그걸 듣는 한 주무관을 지켜보며 볼을 긁적였다.
“…진짜, 그랬다고?”
“예! 그렇다니까요? 게다가 지난주 금요일엔 에드워드 왕자랑 이영진 의원이 같이 왔는데, 우리 막내가 아주 그냥 이영진 의원을 모른 체하더라고요!”
“푸핫! 그걸 직접 봤어야 했는데!”
“그러니까 앞으로 다쳐서 자리 비우지 마시라고요! 그래야 이런 것도 실시간으로 보지 않겠어요?”
“박 주무관 말이 맞습니다! 한 주무관님, 정말 큰 거 놓치셨어요!”
“…….”
내가 이영진 의원을 무시한 내용이 이렇게나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할 줄은 몰랐다. 그 어느 때보다 호탕하게 웃는 한 주무관을 보며 슬그머니 미소 짓고는 마저 정리하는 데 집중했다.
“팀장님께 전해 듣긴 했는데, 정말 에드워드 왕자가 오는 거 맞습니까?”
“아아. 견학을 하고 싶다 하는데, 속내는 아직 모르겠어.”
“하기사, 그 위인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만 봐도 의심스럽긴 하지만 말이죠.”
“혹시 김세현이 헌터부에 죽치고 있다는 말이 들어간 게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에드워드 왕자가 한국에 들어온 걸 보면 누가 봐도 S급 헌터를 스카우트하고자 온 것일 테니까요.”
확실히 에드워드 왕자의 속내는 알 수가 없었다.
직접 물어볼 수도 없으니, 오늘 왕자가 견학을 오면 그때 어떤 행동을 하는지 유심히 지켜볼 필요는 있어 보였다.
“일단은 견학한다고 하니 헌터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려 주는 쪽에 집중하도록 하자고.”
“예!”
“오늘 조회는 이걸로 대체하고 정리 후에 각자 할 일들 시작해.”
“알겠습니다.”
역시 팀장이다. 굳이 자리에 앉지 않아도 편하게 조회를 마친 그가 정리에 집중한다. 그 모습을 보며 마저 주변 정리에 힘썼다.
“…언제 올까요?”
“그러게 말입니다.”
벌써 11시가 지났건만, 에드워드 왕자는 코빼기도 비칠 생각이 없는 듯했다.
꼿꼿이 세운 허리를 슬쩍 무너뜨리곤 여기저기서 곡소리를 내며 널브러지는 팀원들을 바라보았다.
“거긴 시간 약속도 안 한답니까?”
“이렇게 늦게 올 줄은 몰랐지.”
팀장 역시 피곤했는지 목소리에 힘이 없다. 나는 자리서 일어나 차를 준비해 그들에게 건넸다.
“우리 막내 눈치가 세계 제일이지.”
“아무렴. 우리 병아리가 세계 최고지.”
“…….”
고마운 마음을 추켜세우는 방법으로 표현하는 건 좋지만, 너무 띄워 줘도 민망했다.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자리로 돌아와 커피를 마시며 작성하던 서류를 훑어보았다.
“팀장님, 지도 완성했습니다.”
“그래? 막내야, 협조금 문서 가지고 와.”
“네.”
지도가 완성되길 기다렸는데, 이제 완성된 모양이다. 박 주무관이 지도를 인쇄 후 그것을 추슬러 팀장에게 가지고 간다. 나는 그 뒤를 이어 파일을 인쇄 후 정리해 가지고 갔다.
“파일은 이메일로 보냈지?”
“예, 방금 팀장님 메일로 보냈습니다.”
“좋아. 막내는 검토 다 했지?”
“네.”
몇 번이고 거듭해 검토한 상황이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뒤따라 팀장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지도와 함께 내가 가지고 간 서류를 확인한다.
“좋아. 이대로 진행하지. 다들 자리로 복귀해.”
“네.”
혹여 확인했음에도 틀리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이다. 박 주무관과 함께 자리로 돌아와 팀장이 윗옷을 챙기는 모습을 보았다.
“참, 내가 자리에 없을 때 에드워드 왕자가 올 수도 있으니 부팀장이 맡도록 해.”
“알겠습니다.”
“좋아. 그럼 얼른 다녀오지.”
다른 날 같았다면 느릿느릿 움직였겠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사무실을 빠져나가는 팀장의 뒷모습을 보던 때였다.
“…우리 팩스랑 메일이 있는데, 꼭 이래야 할까요?”
“그러게 말입니다.”
나는 한 주무관의 말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래, 팩스 사용만 가능했다면 지금쯤 청사로 출퇴근하고 있을 것이었다.
“빠른 것도 좋지만, 아날로그적인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간혹, 문제가 발생하면 더더욱 그렇고요.”
“하긴, 윗선의 친필에다 도장까지 떡하니 날인되면 그보다 더 편할 순 없죠.”
“뭐든 일장일단이 있기 마련입니다.”
부팀장의 말을 듣고 보니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는 듯하다. 고개를 주억이며 잠시 휴식을 취하다 열어 놓은 창밖으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오자 그쪽을 바라보았다.
“왔나?”
“온 거 아닐까요?”
모두가 나와 같은 생각인 듯하다. 곧바로 자리서 일어난 박 주무관이 창으로 향한다. 나는 숨죽이며 그를 지켜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