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eloved-30화 (30/66)

30.

“모두 수고했어. 오늘은 빨리 돌아가서 푹 쉬라고.”

“수고하셨습니다.”

“먼저 들어가세요. 내일 뵙겠습니다.”

한바탕 떠들썩하게 인사가 오고 간 뒤 준석도 슬슬 퇴근준비를 하기 위해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한동안 야근이 일상이 되어 있었던 탓에 다른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여섯 시 퇴근 시간을 퇴근 시간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그는 모처럼 과장님의 배려로 30분 이른 시간에 퇴근을 할 수 있게 된 지금의 상황이 오히려 너무도 어색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오랜만에 여자 친구와 만나 회포를 풀어야겠다며 싱글거리는 동료들을 차례로 먼저 보내고 난 뒤 대다수의 직원들이 사라질 때쯤이 되어서야 책상 정리를 모두 마친 준석은 마지막으로 모니터 전원을 끄고서 옷걸이에 걸어두었던 재킷과 함께 서류가방을 들었다.

“먼저 갈게.”

“아, 응. 내일 봐.”

마지막까지 서류 검토에 열중하고 있는 동료에게 짧은 인사를 남기고 사무실을 빠져나온 준석은 엘리베이터로 향하던 도중 갑자기 뒤에서 들려오기 시작한 하이힐 굽 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서둘러 그의 곁으로 달려오고 있는 건 아까 전 일찌감치 다른 동료들과 함께 사무실을 나섰던 지연이었다.

“아직 안 갔...”

“꺄아-!”

질문을 던지던 준석이 자신의 바로 앞에서 발을 멈추려다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고 휘청거리는 지연의 앞으로 재빨리 손을 뻗어 그녀의 팔을 붙잡아주었다. 족히 10센티 높이는 되어 보이는 힐을 신고 있는 탓에 접지른 발목에 큰 충격이 갔는지 준석의 팔에 기댄 지연이 제대로 서지 못한 채로 체중을 실어왔다. 잘 닦여 반들거리는 바닥을 위태로운 하이힐을 신고서 달려왔으니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맞이한 것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괜찮아?”

“아...”

잔뜩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괜찮지 않은 모양이라고 판단한 준석이 지연의 가느다란 팔을 붙잡아 부축한 채로 물었다.

“걸을 수 있겠어?”

“아... 네. 괜찮...아요.”

한동안 굳은 자세로 통증을 삭이던 지연이 애써 미소를 머금고서 대답했다. 다행히 준석이 빠르게 손을 내밀어서 지탱해준 덕분에 높은 굽에서 낙하하는 사고를 모면할 수 있었던 그녀는 살짝 허리를 숙여 삐끗한 발목을 손으로 감싸 정성껏 주무른 뒤 다시 천천히 몸을 펴고 섰다. 아직 약간의 통증이 남아 있긴 했지만 다행히 걷는데 지장을 줄 정도로 꺾이지는 않은 듯 했다.

조심스레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지연의 모습을 잠시 관찰하듯 지켜보던 준석은 혼자서 걸을 수 있다는 말을 들은 뒤에야 줄곧 그녀의 팔을 붙잡고 있던 손을 떼어냈다. 곧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선 두 사람은 어색한 침묵 속에서 1층에 도착한 뒤 나란히 건물 입구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여차하면 손을 뻗어 부축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품은 채 지연의 곁에서 천천히 걸음을 옮기던 준석이 문득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저기... 이대리님. 괜찮으시면 오늘 저랑 같이 저녁 식사 하지 않으시겠어요?”

갑작스런 제안에도 별다른 표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은 준석이 다시 앞으로 시선을 향하고 입을 열었다.

“모처럼 만에 일찍 퇴근을 하게 됐는데 굳이 직장동료랑 같이 밥을 먹고 싶어?”

“저는 전혀 상관없는데요. 대리님은 혹시 약속 있으세요?”

“그렇지는 않은데...”

“그럼 같이 가요! 얼마 전에도 또 신세를 져서 이번 프로젝트가 끝나면 꼭 식사 대접을 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아까 전 위층에서 자신을 보자마자 그렇게 열심히 달려온 건가하고 뒤늦게 납득을 한 준석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오래 전부터 ‘그간 신세를 졌으니 식사를 대접하게 해달라’는 지연의 말을 무심히 넘겨 왔던 터라 모처럼 이렇게 시간이 난 김에 그녀에게 마음의 짐을 덜어주는 기회를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꾸준히 자신에게 도움을 받아온 지연의 입장에서 아마도 적지 않은 마음의 부담을 안고 있었을 거라고 준석은 잠시나마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았다.

“그럼 한 번 얻어먹을까...”

말을 해놓고서도 혹시나 거절을 당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지연이 마침내 원하는 대답을 듣고서 활짝 미소를 머금었다. 계속해서 발목에 남아 있던 통증이 일시에 사라지는 기적을 느끼고 있는 그녀는 명백하게 들뜬 목소리로 평소 자신이 자주 가는 파스타 전문 레스토랑으로 안내하겠다고 말했다.

“식사 대접하고 싶다면서 메뉴는 본인이 정하는 거야?”

엷은 미소를 머금은 채 준석이 묻자 그제야 상대의 의견을 묻지 않았다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은 지연이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까 위층에서 준석의 부축을 받은 뒤부터 급격히??긴장모드로 들어선 스스로의 모습을 자각하고 있는 그녀는 ‘농담이야.’라는 준석의 말을 들은 뒤에야 가볍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파스타 좋아하세요?”

“난 평범한 한국 남자라 파스타보다는 순대국밥이나 설렁탕이 좋아. 그래도 가끔 먹으면 괜찮다 싶긴 해.”

“혹시 달리 드시고 싶은 게 있으시면 편하게 말씀하세요.”

“아니, 그냥 파스타 먹으러 가자. 지금은 그게 먹고 싶어.”

진심처럼 들리는 준석의 대답에 희미하게 미소를 머금은 지연이 줄곧 들고 있던 핸드백을 어깨에 걸쳐 맸다. 평소 회사생활을 하며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준석과 같이 한 적은 많지만 그 때마다 두 사람 사이엔 다른 동료들이 끼어 있었던 만큼 이렇게 퇴근 후 그와 단 둘이 식사를 하는 건 그녀에게 있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오늘 일이 마무리된다는 사실을 알고서 일부러 평소보다 옷과 화장에 신경 써서 출근을 한 지연은 준석을 따라 그의 차가 서있는 곳으로 향하는 중간 중간 옆의 유리벽에 스스로의 모습을 비춰가며 신중히 상태를 체크했다.

얼마 전 미용실에서 트리트먼트 관리를 받은 머리는 아직까지 찰랑거리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고, 사놓은 뒤 아껴두다 처음으로 꺼내 입은 살구색의 스커트도 만족스러운 핏을 내고 있었다. 아침에 출근을 한 뒤로 데이트가 있느냐는 동료들의 질문을 몇 차례나 받았을 만큼 오늘의 지연은 평소보다 눈에 띠게 정성들여 치장을 한 상태였다.

조수석에 앉은 지연의 구체적인 안내에 따라 목적지인 레스토랑에 무사히 도착한 두 사람은 마침 비어 있는 좋은 자리를 발견하고 그쪽으로 이동했다. 평일인 데다 이제야 막 퇴근 시간을 지나고 있는 시간대인 덕분에 넓은 레스토랑 안에는 군데군데 비어 있는 자리가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주문한지 한참 만에 나온 음식들을 조금씩 맛 본 준석은 음식에 대한 감상을 듣고 싶어 하는 눈치의 지연을 쳐다보고서 맛있다는 의미로 살짝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만약 맛이 없었다고 해도 맛있다고 선의의 거짓말을 했을 테지만, 굳이 일부러 그런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을 만큼 지금 테이블에 놓여 있는 음식들은 무엇 하나 빠짐없이 좋은 맛을 선사하고 있었다.

“유명한 곳인가 봐. 다 맛있네.”

“그쵸? 그래서 전 친구들이랑 만나면 여기에 자주 와요.”

그렇게 말한 뒤 포크에 둘둘 감긴 면을 기술 좋게 한입에 쏙 넣고서 잠시 입을 우물거리던 지연이 만족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나도 행복한 얼굴로 식사를 이어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지금 자신이 식사 대접을 받고 있다기보다 그녀의 식사에 초대받은 기분을 느끼고 있는 준석은 어쨌든 모처럼 만에 맛보는 파스타를 빠른 페이스로 뚝딱 해치워버렸다. 이것으로 하나의 접시가 비워졌지만 아직 다른 접시에는 많은 음식들이 남아 있는 만큼 계속해서 멈추지 않고 포크를 움직인 그는 지연이 적극적으로 들려주는 여러 화제의 이야기들을 들으며 조용히 식사를 이어갔다. 말을 하기보다 듣는 것을 더 좋아하는 성향의 그는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면 지금처럼 얌전히 이야기를 듣는 태도를 취하는 일이 많았다.

대부분의 접시가 바닥을 드러낼 때까지 활기차게 이야기를 늘어놓던 지연은 화제가 친구의 연애 이야기로 옮겨질 즈음 문득 진지하게 표정을 바꾸었다.

“그래서 이번에 제 친구가 결혼을 하게 됐거든요. 우리들 중에선 제일 빨리 시집을 가는 건데 옆에서 보고 있으니 조금 부럽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 추세로 보면 아직 결혼하기엔 이른 나이지 않아?”

지연은 올해로 스물여섯 살이었으니 당연히 그녀의 친구들도 그 또래일 터였다.

“이르긴 하죠.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산다면 행복할 거 같아요.”

진지한 지연의 말을 들으며 파인애플 향의 주스 몇 모금을 목으로 넘긴 준석이 들고 있던 컵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처음이야 좋겠지. 그러다가 서로에게 익숙해지면 서서히 아무 감흥도 없어질 거야. 뭐, 친구 녀석들 말로는 그렇다고 하더라고.”

묘하게 부정적인 준석의 말에 살짝 미간을 좁힌 지연이 녹차가 든 컵을 만지작거리며 조심스레 물었다.

“이대리님은 결혼에 회의적인 입장이세요?”

“글쎄... 별로 회의적이지는 않은데 특별히 나한테 대입해서 생각해 본 적은 없어.”

“...여자 친구 없다고 하셨는데 그새 혼자인 거에 익숙해지신 거 아니에요?”

“그런가... 그럴 지도. 뭐, 이러다가 나이가 들면 쉰 내가 풀풀 나겠지.”

농담 섞인 대답을 하고서 스치듯 미소를 지어 보인 준석이 다시 컵으로 손을 가져가려다 문득 들려온 진지한 질문에 그대로 움직임을 멈췄다.

‘저는 어떠세요?’라는 지연의 질문에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은 그는 잠시 그대로 침묵을 지키다가 컵을 손에 들었다.

“무슨 뜻이야?”

질문의 요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혹시 중간에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다시 한 번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질문을 던진 준석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간 같이 일을 해오며 지연이 은연중에 자신에게 마음을 표현해온 것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주말을 빼면 매일 얼굴을 봐야 하는 직장 동료라는 관계 상 설마 이렇듯 그녀로부터 직접적인 말을 듣게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그였다. 솔직히 말해 지금의 이 상황은 곤란했다.

“제가 이대리님을 좋아하는 건 알고 계셨죠?”

“.......”

“제 나름대로 숨긴다고 했지만 아마도 어설퍼서 남들이 보기에 다 티가 났을 거예요.”

“.......”

“저는... 대리님과 직장 상사와 부하 직원이 아니라... 발전된 관계로 교제하고 싶어요.”

잠시간의 망설임 끝에 다시 한 번 용기를 낸 지연이 준석과 시선을 똑바로 마주한 채 말했다. 조금 전까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그녀의 손은 어느 샌가 무릎 위에 공손히 모아져 있었다.

입사 이후 일이 서툴러 실수를 할 때마다 따끔한 소리를 하면서도 결국엔 성심껏 옆에서 도와주던 준석의 모습을 보며 그에 대한 연심을 조용히 키워왔던 지연은 지금 이 순간 이제껏 말로만 들어왔던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기분을 생생히 경험하고 있었다. 오늘 제대로 된 고백을 하겠다고 어젯밤 결심을 한 뒤 최소한의 수면 시간도 채우지 못한 채로 출근해야 했던 그녀는 꼬박 몇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꾸준히 유지되고 있는 긴장감으로 인해 숨조차 편히 쉬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태어나 자신이 먼저 상대에게 사귀자는 말을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 지연은 지금 현재에도 약간의 다급함을 느끼고 있었다. 원래대로면 그냥 쥐죽은 듯 홀로 마음만 품고 있었을 지연을 이렇게 적극적으로 움직이게 만든 것은 며칠 전 그녀가 회사 화장실에서 우연히 들었던 다른 사무실 여직원의 말이었다. 화장을 고치며 한창 수다를 늘어놓던 세 명의 여직원 중 제일 예쁜 얼굴을 한 쪽이 기회를 봐서 준석에게 접근하겠다는 선포를 한 것이 결과적으로 지금의 이 상황을 만들어낸 발단이 된 것이었다. 준석 자신은 잘 모르는 듯 했지만 겉으로는 무뚝뚝해 보여도 천성적으로 자상하고 어른스러운 면이 있는 그는 회사 내 많은 여직원들로부터 결혼하고 싶은 상대로 높은 주가를 올리고 있었다.

분명하게 속마음을 전한 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로 대답을 기다리고 있던 지연은 잠시 후 나직하게 들려온 ‘미안해.’라는 말에 줄곧 숙이고 있었던 고개를 들었다.

지연이 마주한 준석은 쓴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미안한 듯, 그리고 또 곤란한 듯.

“...제가 별로 마음에 안 드세요?”

거절을 당한 지연이 더없이 무거운 목소리로 조심스레 질문을 던지자 그녀와 시선을 마주하고 있는 준석이 살며시 고개를 젓고서 대답했다.

“지연씨가 부족해서 그런 거 아니야.”

“그럼... 달리 마음에 두고 있는 분이 있으세요?”

이어진 질문에 준석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질문을 받은 그의 얼굴이 상처받은 것처럼 보이는 것은 단순한 기분 탓일까 라고 생각한 지연은 그와 동시에 아마도 자신이 지금 던진 질문이 정답일 거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그것은 여자의 직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만 나도 같은 직장 사람과 사귀는 건 좀 불편해서... 아깝게 생각해.”

한참 만에 들려온 대답에 지연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물론 지금의 이 대답이 준석 나름의 배려라는 것을 그녀는 이해하고 있었다. 거절당한 자신의 입장이 조금이라도 덜 초라할 수 있도록 그 나름대로 가장 무난한 이유를 붙였다는 것을.

“...그래요. 아깝네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미소를 지어 보인 지연은 땀으로 흥건히 젖어있는 손바닥을 물수건으로 닦아낸 뒤 녹차가 든 컵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잘 되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을 강하게 품고 있었기 때문일까, 거절을 당한 것이 오히려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이 조금은 신기하고 또 한편으로는 다행스럽게 생각되고 있었다. 어쨌거나 결과는 차치하고서 줄곧 마음에 품고 있던 감정을 드러내고 나니 속 하나 만큼은 뻥 뚫린 것처럼 후련했다.

“집이 여기서 멀지 않으니 전 근처에서 지하철 타고 갈게요.”

절반은 자신이 내겠다는 준석의 고집을 꺾고서 끝내 계산서에 나온 금액 전부를 지불하고 레스토랑을 나선 지연은 그와 같은 의견에 반론을 제시하지 않고 순순히 알겠다고 대답한 준석을 향해 살짝 목례를 했다.

조금 전 차인 입장에 있는 지연이 자신과 단 둘이 좁은 공간에 있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리라 눈치껏 파악하고 있는 준석은 애써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남기고서 등을 돌려 걷기 시작한 지연의 뒷모습을 잠시 그대로 서서 지켜보았다.

아까 전 레스토랑에서 지연의 고백을 듣고서 준석은 잠시나마 생각했었다. 다소 어리숙한 면이 있기는 해도 심성이 고운 그녀와 얼마 동안 연애를 하다가 적당한 시기에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는 평범한 삶을. 그녀라면 좋은 배우자가 되어줄 것 같았다.

세희와 헤어진 뒤 2년이 지나도록 누구와도 교제하지 않고 혼자서 지내는 동안 준석은 조금은 쓸쓸하고 또 조금은 지쳐가는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현실적으로 해피엔딩을 기대할 수 없는 이 막연한 감정을 언제까지 가슴에 안고 살아야 할지, 그 보이지 않는 끝이 하루하루 갈수록 그를 지치게 만들고 있었다.

아까 전 자신에게 용기를 내어 고백을 한 지연을 보며 준석은 아이러니하게도 곤혹스러움과 동시에 부러운 감정을 느꼈었다. 물론 지연도 고백 뒤 거절을 당할 경우에 따라올 아픔이나 수치심을 충분히 고려했겠지만 냉정히 말해 그녀가 짊어질 리스크는 어디까지나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것이었으리라 준석은 생각하고 있었다. 허나 자신은 달랐다. 행여라도 가슴에 품고 있는 진심을 말해 거절을 당하게 된다면 그와 자신 사이엔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될 터였다. 사랑은커녕 긴 시간을 쌓아온 우정조차도.

자신이 소중한 존재를 잃는 상황도 원치 않았지만 동시에 준석은 그렇지 않아도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 그가 가장 친한 친구라는 이름의 쉼터를 잃게 되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이미 수없이 반복해 떠올렸던 생각들을 그쯤에서 잠재우고 주차해둔 차에 시동을 걸어 운전석에 오른 준석은 문득 품에서 들려온 벨소리를 따라 재킷 안쪽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발신자는 윤재였다.

평소라면 단숨에 받았겠지만 아무래도 지금은 그럴 기분이 아니어서 벨소리가 끊어질 때까지 그대로 잠시 눈을 감은 채로 상황을 방치한 준석은 곧 짧은 한숨을 내쉰 뒤 차를 출발시키기 위해 운전대를 잡았다. 그 순간, 이번에는 벨소리 대신 문자수신음이 들려왔다.

다시 한 번 가볍게 한숨을 내쉰 준석이 조수석으로 손을 뻗어 조금 전 던지듯 놓아둔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회사 앞인데 혹시 퇴근했어?>

생각지 못한 메시지를 확인하고 살짝 눈을 크게 뜬 준석이 곧바로 윤재에게 전화를 걸었다. 두 번의 통화연결음 뒤 곧바로 윤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지금 회사 앞이라고? 우리 회사?”

[아... 응.]

“너 지금 시간이면 가게 열 때잖아.”

[오늘은 심야영업만 할 거야. 성호가 오늘 하루 쉬게 돼서.]

“쉰다고? 왜?”

[지방에 계신 어머니한테 사고가 생긴 것 같아. 큰 사고는 아니라고 했지만...]

걱정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애매하게 말끝을 흐린 윤재가 곧 분위기를 바꾸어 말을 이어왔다.

[혹시 이미 퇴근한 거면 난 그냥 갈게. 너 최근에 계속 야근한다고 해서 오늘도 그런 줄 알고 와본 거야. 야식 필요할 거 같아서 튀김 몇 가지 만들었는데 이건 그냥 가져가서 내가 먹어야겠다. 다음에 더 많은 재료를 써서 더 맛있게 만들어줄게.]

수화기 너머로 빵빵거리는 차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안 그래도 코가 얼 정도로 추운 날씨에 혼자서 밖에 서있을 윤재의 모습을 생각하니 절로 미간이 찌푸려진 준석은 결국 조용히 귀가를 한 뒤 휴식을 취하겠다는 처음의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추우니까 로비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어. 곧 갈게.”

[어? 잠깐, 너 벌써 퇴근한 거 아냐? 그럼 일부러 올 필요 없어. 미안, 괜히 놀래켜 준다고 미리 연락도 안 하고 와서. 여기서 버스 타면 금방이니까 나 그냥 갈게. 오지 말고 푹 쉬어.]

“지금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까 금방 도착할 거야. 꼭 안에 들어가 있어. 너는 몰라도 내 튀김은 식으면 안 되니까.”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흐릿한 웃음소리에 그제야 준석도 희미하게 미소를 머금었다. 바로 조금 전까지도 머릿속 가득 품고 있었던 무거운 생각들은 윤재의 희미한 웃음소리 하나에 눈 녹듯이 사라져버렸다.

짧은 통화를 마치자마자 곧바로 차를 출발시킨 준석은 슬슬 막히기 시작한 길을 확인하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동안 야근으로 바빠 <민들레>를 찾지 못했던 탓에 그렇지 않아도 윤재의 얼굴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그는 뜻밖의 장소에서 윤재와 만나게 된 지금의 상황에 약간의 생소함과 더불어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평소 집과 가게만을 오가던 녀석이 무슨 바람이 불어 야식까지 만들어서 회사 앞에 온 건가 하는 의문이 들긴 했지만, 윤재가 때때로 엉뚱한 행동을 하는 건 그와 함께 어울리며 이미 몇 번이나 본 적이 있는 준석이었다. 물론 엉뚱한 행동이라고 해봐야 그리 대단할 것도 없는 정도의 수준이었지만.

차가 밀리는 탓에 평소보다 조금 시간이 지체된 뒤에야 간신히 눈에 익은 회사 앞에 도착한 준석은 일단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우고 윤재에게 전화를 걸어 밖으로 나오라고 말했다.

잠시 후 입구의 커다란 유리문을 열고서 모습을 드러낸 윤재는 곧바로 준석의 차를 발견하고 서둘러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두툼한 패딩 점퍼를 입고 있는 그의 한 손에는 아마도 튀김이 담겨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제법 큰 종이가방이 들려져 있었다.

“냄새 죽인다.”

조수석에 오르는 윤재에게서 종이가방을 건네받은 준석이 그 안을 살펴봤다. 조수석 문이 열린 순간부터 풍겨오고 있는 맛있는 냄새의 근원은 은박지에 꽁꽁 쌓여 있었다.

“아직 미지근하네.”

은박지를 풀며 준석이 말하자 윤재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가는 동안 금방 식을 것 같아서 은박지로 두 번 둘렀어. 그래서 좀 눅눅할 거야.”

“양이 엄청 많은데?”

“야근하는 동료들이랑 같이 먹으라고 좀 많이 만들었어. 오늘 일찍 퇴근하는 줄 알았으면 저녁이나 같이 먹자고 할 걸. 벌써 먹었지?”

여덟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니 안 먹었을 리가 없다고 확신하고 있는 윤재가 쓴웃음을 머금은 채 물었다.

“넌 아직 안 먹었어?”

“난 이거 만들면서 조금씩 집어 먹어서 배 안 고파.”

“그게 저녁이야? 야, 근처 식당으로 가자. 한국 사람이 밥을 먹어야지.”

“아냐, 그냥 이거 먹지 뭐. 남아서 버리면 아깝잖아.”

들려온 윤재의 말에 당장 자주 가는 근처 식당들 중 한 곳을 행선지를 정하려던 준석이 그쯤에서 생각을 멈추고 윤재를 쳐다보았다.

빵빵한 히터의 열로 덥혀진 차 안에서 주섬주섬 걸치고 있던 패딩점퍼를 벗어 뒷자리에 놓은 윤재가 문득 머리카락 사이로 들어온 준석의 손가락을 알아채고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야-”

살살 좌우로 움직이는 준석의 손가락 중간에 걸린 머리카락의 일부가 세게 당겨진 것과 동시에 윤재가 미간을 찌푸렸다.

“머리카락이 엉망으로 엉켜있어. 대체 바람을 얼마나 맞고 서있었던 거야?”

자신의 질문에 대답 대신 엷은 미소를 머금는 윤재를 쳐다본 준석이 살짝 심술궂은 목소리로 말했다.

“뭐가 웃겨? 머리는 아주 산발을 해갖고서.”

“아니... 너 꼭 잔소리 많은 엄마 같아서.”

웃음기 섞인 윤재의 말에 준석이 미간을 좁히고서 ‘엄마는 무슨...’이라고 낮게 중얼거렸다. 그 와중에도 그의 손가락은 윤재의 머리카락을 정성스레 정돈해주고 있었다.

조금만 꾸미면 귀한 집 도련님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녀석이 너무 관리를 안 하고 대충 산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안타까운 기분이 들기도 한 준석은 그러나 지금 윤재의 빡빡한 삶을 생각하면 오히려 이것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고 진지하게 생각했다. 자신과 같은 사무실에 있는 직장 동료들이야 깨끗한 수트 차림에 코롱이니 향수니 하는 것들로 나름 멋을 부리는 생활을 하고 있지만, 종일 주방에서 직접 음식을 만들며 서빙에 설거지까지 해야 하는 윤재에게는 사실 상 그럴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지금은 상황이 이렇다 보니 스스로를 돌볼 여유도 없이 살고 있는 윤재지만 <민들레>를 운영하기 전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아갈 당시의 그는 늘 단정한 수트 차림을 한 예쁘장한 청년의 모습을 유지 했었다. 그리 크지는 않아도 제법 튼실한 회사를 다니며 살았던 그때만 해도 윤재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을 터였다. 그로부터 불과 얼마 뒤 발생한 교통사고를 시작으로 자신의 인생이 급격히 다른 방향으로 틀어지게 될 거라고는.

“아, 이거 볼래?”

대답을 듣지도 않고서 종이가방 안에서 종이뭉치를 꺼낸 윤재가 그 중 한 장을 준석에게 건넸다. 준석이 받아든 것은 흔한 홍보용 전단지로, 거기엔 <민들레>의 이름과 약도, 메뉴 및 가격이 인쇄되어 있었다.

“광고 전단지?”

“아무래도 가게 위치가 좋지 않으니까 조금이라도 적극적으로 홍보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만들어 봤어. 어때?”

윤재의 진지한 질문을 받은 준석이 다시 한 번 전단지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제3자의 눈으로 냉정히 평가하자면 어디에서나 흔히 볼 법한 디자인과 내용이라 그다지 각인 효과는 없어 보였지만 그래도 아예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쁘진 않은 것 같아. 그럼 일단 이거 돌릴 알바도 따로 써야겠네?”

“아니, 웬만하면 나랑 성호 둘이서 돌리려고. 성호 얘기 들어보니까 전단지 알바생들 중에는 그냥 적당히 버려서 처리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더라고. 사실은 자기도 그랬대.”

“직접 돌린다고? 너 오래 걸으면 힘들잖아.”

“응, 그럴 거 같아서 일단 난 지하철역이나 사람 많은 곳에 서서 나눠주려고. 튀김 갖고 나온 김에 아까 시험 삼아 저 앞에서 좀 나눠줘 봤어.”

윤재는 밝은 표정을 짓고서 말했지만 그의 대답을 들은 준석은 좀처럼 밝은 표정을 지을 수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다리도 불편한 윤재가 추운 곳에 홀로 서서 무심하게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는 모습을 상상하자 아무래도 웃을 기분이 들지 않는 그였다.

잠시 그대로 생각에 잠겨 있던 준석이 문득 윤재의 무릎 위에 놓여 있던 종이뭉치를 허락도 없이 집어 들어 뒷좌석으로 옮기며 말했다.

“이게 다는 아니지?”

“어? 어...”

“그럼 일단 이건 내가 돌릴게. 내일 출근해서 직원들한테 나눠줄 거야.”

“아니, 그래도...”

“더 있으면 또 가져와. 나 일하면서 발을 꽤 넓혀놔서 여기저기 돌릴 데가 많아.”

예상치 못한 준석의 행동에 잠시 그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윤재가 이내 고마움과 미안함이 교차하는 표정을 지었다. 도움을 받기 위해 꺼낸 이야기가 아니었는데 결과적으로 그에게 도움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이 윤재로 하여금 복잡한 기분을 느끼게 하고 있었다.

“...고마워.”

문득 들려온 윤재의 말에 이제 막 차를 출발시키려던 준석이 손을 멈추고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조수석에 앉아 살짝 고개를 숙인 윤재가 씁쓸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지금의 그는 어딘가 금방이라도 깨어질 것 같은 연약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서 그를 바라보는 준석의 마음을 욱신거리게 만들었다.

“고맙기는 징그럽게. 정 그러면 다음에 내가 갈 때 좋아하는 해물누룽지탕이나 끓여줘. 특대로.”

애써 태연을 가장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서 차를 출발시킨 준석은 잠시 텀을 두고 옆에서 들려온 ‘네가 좋아하는 표고버섯도 많이 넣어줄게.’라는 대답을 듣고 피식 웃음소리를 냈다.

지금 이 순간 준석은 다시 한 번 절실히 깨닫고 있었다.

자신을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아프게 하는 것도, 치유 하는 것도 오로지 단 한 사람뿐이라는 사실을.

*

사람들의 웅성임을 뒤로 한 채 고급 융단이 깔려 있는 계단을 천천히 오른 수영은 좁은 복도를 걷는 동안 느슨하게 풀려 있는 넥타이를 출근 당시의 상태처럼 타이트하게 조였다. 한바탕 놀 목적으로 이곳을 찾은 대다수의 손님들과 확연히 차이가 나는 단정한 수트 차림을 하고 있는 그는 유민의 안내에 따라 VIP룸으로 향했다.

똑똑.

먼저 수영을 VIP룸으로 안내한 뒤 혼자서 마주한 방으로 다가가 노크를 하고 조심스레 문을 연 유민은 넓은 방안을 채우고 있는 손님들 사이에서 호연을 찾아내고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무슨 일...”

다가오는 유민을 돌아보고 거기까지 말하던 호연이 문득 머릿속에 뭔가를 떠올리고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곧 소매를 걷어 시계에 시선을 던진 그는 수영과 약속되어 있던 시간이 이제 막 지난 것을 확인하자마자 함께 자리한 지인들에게 먼저 실례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입구로 향했다.

한동안 각자가 바빠 통화만으로 관계를 이어왔던 터라 모처럼 만에 수영과의 만남을 앞두고 걸음을 옮기고 있는 지금 호연은 마치 첫 데이트를 앞둔 것 같은 설렘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똑똑.

형식적인 노크를 한 뒤 곧바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호연의 눈에 곧바로 넓은 고급 소파에 긴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수영의 모습이 들어왔다. 오너인 자신이 직접 신경을 써서 주문한 테이블 위가 아직 깨끗한 상태인 걸로 보아 수영은 조금 전에야 막 이곳에 들어온 듯 했다.

“아아... 정말 이게 얼마만이야? 안 본 사이 살이 좀 빠진 것 같네. 일이 많이 바빴나 봐.”

엷은 미소를 머금은 채 그렇게 말한 호연이 수영의 옆자리에 엉덩이를 내려놓았다.

“증축 일은 잘 돼 가고 있어?”

길게 연기를 뱉어낸 수영이 최근의 근황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살짝 고개를 끄덕인 호연이 ‘대강.’이라고 짧게 대답했다. 가장 중요한 인테리어 쪽 계획은 이틀 전에 확정을 지어놓은 상태라 이제는 현실적으로 공사 일정을 잡아야 할 차례였다. 최근 들어 입소문을 타고 오는 손님들이 급격히 늘어난 덕분에 하루 가게 문을 닫을 때마다 금전적으로 엄청난 손해가 초래될 수밖에 없었지만, 일에 관한 욕심이 많은 호연에게 있어 지금의 만족스럽지 못한 상태를 유지하는 건 아무래도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술, 어떤 걸로 가져오라고 할까? 안주는 뭐가 좋아?”

테이블에 놓여 있는 수영의 담뱃갑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며 호연이 물었다. 먼저 불을 붙인 담배를 걸치듯 입술 사이에 밀어 넣고 천천히 결 좋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긴 그의 다른 쪽 손이 탄탄한 수영의 허벅지 위로 올라왔다.

“지금은 별로 술 생각이 없어.”

조금 딱딱한 목소리로 그렇게 대답한 수영이 손에든 담배 끝부분을 바로 앞 테이블에 놓인 재떨이에 툭툭 털었다. 비단 목소리뿐 아니라 그를 감싸고 있는 전체적인 분위기가 어딘가 평소와 다르게 경직되어 있는 것을 느끼고 있는 호연은 입에 물고 있는 담뱃재가 타들어가는 것도 까맣게 잊은 채 마주한 수영을 바라보았다.

바로 앞에 위치한, 멋진 각도로 솟아 있는 수영의 코를 한동안 집중해서 바라보던 호연이 잠시 후 자신에게 고개를 돌려온 수영과 시선을 마주하고 미소를 머금었다.

“뭐, 내일도 출근하려면 술은 안 마시는 게 좋겠지. 그보다... 다음 달에 가기로 한 여행 말인데 프라하와 밀라노, 피렌체 세 곳으로 추려봤어. 나는 일단 이탈리아 쪽으로 가고 싶은데 당신은 어때?”

며칠 전 미용실에서 멋지게 자른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 넘기며 호연이 묻자 잠시 그를 마주 바라본 채 조용히 담배를 입에 물고 있던 수영이 천천히 손가락 사이로 담배를 옮기고서 연기를 내뱉었다.

“미안한데 그 여행 나는 못 갈 것 같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