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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4/190)

4화

처음엔 내가 잘못 본 줄 알았다.

그것도 그럴 게 갑자기 떡볶이 먹다가 울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뜨기를 세 번쯤 반복하다가 이게 현실이라는 걸 깨닫고 뒤늦게 놀라 버렸다.

너무 놀라서 왜 우는 거냐고 물어보지도 못하고 짜다 만 간장을 든 채 굳어 있는데, 세가온이 벌벌벌벌 떨리는 손을 허공에 뻗었다. 그러더니 힘겹게 쿨피스를 잡고 입구를 뜯었다. 따라 마실 컵을 찾고 있는 것처럼 지진이 나고 있는 눈으로 주변을 잠시 살피던 세가온은 이내 그런 것 따윈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입을 떼고 쿨피스를 한 모금 마셨다.

“…….”

“…….”

양 볼 가득 쿨피스를 머금은 채 잠시 가만히 있다가 삼키는 순간 다시 두 눈에서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세가온은 말없이 또다시 쿨피스를 마셨고, 그걸 두 번 정도 더 반복했다.

몸의 떨림은 여전했고 얼굴은 귀신처럼 창백해서 눈가는 피가 날 것처럼 붉어져 있는 상태였다. 나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울어?”

“…….”

“…….”

내 물음에 세가온이 입을 여는 순간 턱과 입술이 바들바들 떨렸다. 본인도 그걸 느꼈는지 결국 말은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어 버렸다.

혹시 매워서 그런가? 보통 맛도 좀 맵기는 하지만 그 정도로 맵지는 않은데? 혹시 잘못 주문한 건가 싶어서 영수증을 찾아봤지만 2단계 보통 맛이 확실했다. 매운 걸 많이 못 먹나?

나는 다시 쿨피스를 마시는 세가온을 보다가 떡볶이 하나를 집어 입에 넣어 봤다. 익숙한 양념의 맛과 왠지 모를 쓴맛이 먼저 느껴졌고 쫄깃한 쌀떡이…….

“억…….”

부지불식간에 아구창을 처맞는 것 같은 강렬한 고통이 입 안을 뒤덮기 시작했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그냥 뽝 하고 순식간에 뒤통수를 강타했다. 이게 매운 건지 아픈 건지도 구분이 가질 않았다.

평소에 먹을 때도 보통 맛을 먹었는데 절대 이 정도로 맵진 않았다.

“하.”

입에 있던 걸 뱉을 수는 없어 거의 씹지도 않고 삼켜 버리고 입을 벌렸다. 크게 숨을 마시고 뱉으면서 최대한 고통을 줄이려고 하는데, 조금 전 삼켰던 떡이 목구멍을 지나 위에 닿는 느낌이 생생하게 전해졌다. 마치 불덩어리를 삼킨 것처럼 뜨겁다가 갑자기 기침이 나왔다.

“콜록.”

입을 가리고 작게 기침을 하자 세가온이 나를 쳐다봤다. 반사적으로 나도 세가온을 마주 봤고 우리는 잠시 그렇게 서로를 보기만 했다.

“…….”

“콜록…….”

세가온은 쿨피스를 양손으로 든 채 눈물을 줄줄 흘리며 소리 없이 울고 있었고 나는 기침만 계속했다. 이 상황이 황당해서 웃길 법도 했지만 지나친 고통에 위기감만 느껴졌다.

이러다가 죽는 거 아닐까? 그 정도로 매웠고, 이건 인간이 먹을 만한 음식이 아니라는 생각만 들었다.

“배달이……. 잘못 왔나 봐.”

겨우 입을 열어 말하자 세가온이 바들바들 떨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에…….”

“…….”

혀가 마비돼서 말도 제대로 안 나오는 듯했다. 세가온은 짧게 대답하고 다시 쿨피스를 마셨다. 나도 먹고 싶은데 도저히 손에서 놓을 생각이 없어 보여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물을 찾았다.

하지만 연습실에 오기 전에 가지고 왔던 커피와 물은 전부 다 마셔 버렸기에 빈 통만 남아 있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연습실 밖으로 나가 정수기를 찾았다. 손바닥만 한 일회용 종이컵에 물을 다섯 번쯤 따라 마셔도 매운 게 가시질 않았다.

오히려 가슴과 배가 아프기만 했다. 입 안은 데인 것처럼 아프고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꾸만 입에서 앓는 소리가 나왔다. 다시 물을 한 컵 더 입에 털어 넣고 있는데 뒤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세가온이 쿨피스를 안고 내 뒤에 서 있는 게 보였다. 너무 놀라서 하마터면 물을 뿜을 뻔했다.

“……너도 물 마실래?”

내 물음에 세가온이 고개를 저었다. 눈가도 빨갛고 입술도 퉁퉁 부어서 빨개져 있었다. 왠지 미안한 마음에 나는 세가온을 데리고 다시 연습실로 돌아와 떡볶이 가게로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방금 배달 받았는데 떡볶이가 잘못 온 것 같아서 전화 드렸거든요…….”

지친 목소리로 말하자 핸드폰 너머로 미안해하는 사장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거기 MD 엔터 맞죠? 죄송합니다. 안 그래도 떡볶이가 바뀌어서 다른 집에서도 전화가 왔었거든요. 막 전화 드리려고 했는데…….

“이거 보통 맛은 아닌 거죠?”

-네, 그게 5단계 불지옥 맛이라서……. 혹시 드셨어요? 많이 매우시죠? 아이고, 어떡해.

“아……. 불……. 불, 지옥 맛이요…….”

그 말에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세가온이 품에 소중히 안고 있던 쿨피스를 다시 한 모금 마시는 게 보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떡볶이 보통 맛으로 다시 보내 드릴까요? 아니면 환불을 해 드릴까요? 정말 죄송해서 어떡해요.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핸드폰 밖으로 소리가 들렸는지 세가온이 화들짝 놀라는 게 보였다. 의아한 표정을 짓자 세가온은 소중히 품고 있던 쿨피스를 바닥으로 내려놓고 양손을 가슴까지 들어 X자를 만들었다. 그 간절한 몸짓과 지친 얼굴을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그냥 환불해 주세요.”

-예, 예. 그러면 저희가 바로 환불해 드리겠습니다. 제가 문자 보내 드릴 테니까 그쪽으로 계좌 번호 보내 주세요. 그리고 다음에 주문하실 때 말씀해 주시면 서비스도 넉넉하게 챙겨 드릴게요. 정말 죄송합니다.

“네, 수고하세요.”

연신 죄송하다고 하는 사장님에게 인사를 한 뒤 전화를 끊었다. 아까보다는 매운 게 조금 가시기는 했지만 고작 떡 하나 삼켰다고 속도 아리고 입 안도 아팠다.

세가온은 점심도 안 먹었다고 했으면 완전 빈속이었을 텐데…….

“아직 매워? 김밥이라도 좀 먹어.”

내 말에 세가온이 천천히 반으로 부러진 젓가락을 들어 느리게 김밥 하나를 집었다. 그리고 김밥을 위로 드는 순간 이음새가 풀려 안의 내용물이 후두둑 아래로 떨어졌다.

세가온은 그걸 가만히 보다가 다시 젓가락을 내리고 쿨피스를 한 모금 마셨다. 딱 봐도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동공은 풀려 있었고 얼굴은 넋이 나가 있었다. 창백한 얼굴하며 붉은 눈가, 빨개진 입술을 보면 귀신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세가온을 일으켜 세워 모자와 마스크를 씌우고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그리고 회사 근처의 편의점으로 가 세가온을 입구 근처 테이블에 앉혀 놓고 아이스크림 다섯 개를 사서 밖으로 나왔다.

검은 봉지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스크류바 하나를 꺼내 껍질을 까서 주자 세가온이 양손으로 받았다.

“감사합니다…….”

“하필 잘못 와도 5단계가 오냐……. 빨리 그거라도 먹어. 막 씹어 먹어. 매울 때 아이스크림 먹으면 금방 괜찮아지니까.”

내 말에 세가온이 마스크를 내리고 아이스크림을 크게 한 입 베어 물더니 씹어 먹기 시작했다. 속 다 버린 거 아니야? 스케줄 없나?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괜히 미안해서 그 모습을 한참 보다가 나도 아이스크림 하나를 먹었다.

그래도 떡 하나만 먹어서 그런지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 괜찮아지기는 했다. 아직도 배가 좀 아프기는 했지만 이것도 조만간 괜찮아질 것 같았다. 그렇게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한숨 돌리고 있는데, 세가온이 갑자기 손을 들어 눈가를 문질렀다.

의아한 표정으로 자세히 보자 눈이 젖어 있었다.

“……야, 그렇게 매워?”

이쯤 되니까 병원에 가 봐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는 사색이 된 얼굴로 안절부절못하며 다시 물었다.

“아직도 매워?”

“그게 아니라……. 눈이 따가워서.”

“설마 눈에 양념 같은 거 튀기라도 했어?”

“아니요…….”

어눌한 발음으로 고개를 흔드는 세가온을 보고 있자니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그럼 왜 또 우는데? 왜 자꾸 우냐고.

“저 살면서 이런 거 처음 먹어 봐요.”

그때 세가온이 훌쩍거리며 웅얼거렸다.

“진짜 엄청 맵기는 맵더라. 쓴맛도 나지 않았어?”

“모르겠어요, 무슨 맛인지도 모르겠고……. 속도 너무 아프고 입 안도 껍질 다 벗겨진 것 같아요. 식도도 조금 탄 것 같고…….”

식도가 조금 탄 것 같다는 말이 장난인지 진심인지 알 수가 없었다.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장난은 아닌 것 같은데 떡볶이를 먹고 식도가 탈 수는 없으니 장난인 게 확실했다.

나는 잠깐 당황하다가 그냥 하하 하고 어색하게 웃었다.

“약국에서 위보호제 같은 거라도 사 줄까? 짜서 먹는 거.”

“선배님은 괜찮으세요?”

시종일관 고개를 숙이고 있던 세가온이 살짝 시선을 올려 나를 쳐다봤다. 눈가는 여전히 붉었고 속눈썹까지 촉촉하게 젖어 있는 게 꼭 불쌍한 큰 개 같았다.

“난 이제 괜찮아졌어.”

“저도 많이 괜찮아졌어요. 목은 괜찮으세요? 아까 계속 기침하시던데…….”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스크림이 담긴 봉지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세가온도 덩달아 날 따라 일어서며 말했다.

“선배님, 죄송해요.”

“……?”

뜬금없는 사과에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세가온을 쳐다봤다. 세가온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입술을 댓 발은 내밀고 말을 이었다.

“처음 사 주신 건데 다 먹지도 못하고…….”

“무슨 소리야? 그런 걸 어떻게 먹어? 그리고 그런 걸로 뭘 죄송하대?”

“그래도 처음 사 주신 건데…….”

“그게 무슨 상관이야. 그럼 다음에 또 사 줄게. 됐지?”

뭔가 아쉬워하는 표정이라 애를 달래듯 황급히 말하자 세가온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창백했던 얼굴에 생기가 돌고 있었다.

“정말요?”

“어? 어어.”

왜 이렇게 좋아하지?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다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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