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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7/190)

7화

세가온도 사진을 올리고 있는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사진을 올린 나는 핸드폰을 옆에 내려 둔 후 젓가락으로 김밥을 집어 먹고 있는데 세가온이 다시 물었다.

“선배님, 방금 올리신 사진에 댓글 달아도 돼요?”

조심스러운 질문의 내용이 좀 황당해서 나는 웃으며 물었다.

“너는 항상 그렇게 모든 일을 다 허락받고 하는 편이야?”

“네? 아니요, 그건 아닌데…….”

“그냥 네 마음대로 해. 아무렇게나 전부 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되니까. 네가 여기서 벌거벗고 손으로 김밥 주워 먹으면서 원숭이 흉내 내도 아무 말 안 할게.”

“…….”

아직도 너무 긴장하고 있는 것 같아서 웃으라고 한 말인데 세가온은 정색하며 입을 꾹 다물었다. 장난친 건데 너무 조용해져서 나는 얼른 웃음기를 지우고 헛기침을 했다.

“그만큼 나는 네가 뭘 해도 괜찮다는 뜻이었어…….”

“……네.”

“……그래.”

머쓱해져서 나는 다시 김밥을 입 안으로 욱여넣었다. 내가 계속 말없이 먹자 세가온도 머뭇거리다가 다시 튀김을 깨작거리기 시작했다. 배가 안 고픈 건가, 아니면 입에 맞지 않는 건가 싶어서 유심히 보다가 뭔가 하나를 깨달았다.

아무래도 세가온은 뭘 먹는 속도가 많이 느린가 보다. 입에 뭘 많이 넣지도 않고 꼭꼭 씹어서 입 안에 있는 걸 다 삼켜야 다시 음식을 먹었다. 느리지만 꾸준하고 열심히 먹고 있는 모습이 어쩐지 새롭게 보였다.

왜냐면 나를 포함해서 우리 애들은 다 먹는 속도도 빠른 편이었고, 저렇게 꼭꼭 씹어서 삼키지도 않았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나도 먹는 속도를 조금 늦췄다.

“선배님.”

“어?”

그때 소리도 내지 않고 열심히 먹던 세가온이 나를 불렀다. 목소리가 어쩐지 비장하기까지 해서 나는 또 쟤가 나한테 뭘 허락받으려고 그러는 줄 알았다. 이번에는 물 마셔도 되냐고 물어보는 거 아니야?

“아까 벌거벗고 원숭이라고 하신 거요.”

하지만 내 예상은 빗나갔다. 또 뭘 물어보는 게 아니라 다행이긴 했는데 내용이 좀 이상했다. 저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몰라서 나도 모르게 좀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그게 왜?”

“혹시 장난치신 거예요?”

“…….”

진지하게 묻는 말에 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장난이 맞긴 했지만 이걸 굳이 다시 물어보는 게 내 상식으로는 너무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마 그딴 걸 장난이라고 쳤냐고 뭐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당연히 아니겠지만 지금 분위기에서 그 말 말고는 나올 게 없었다.

“재미있었어요.”

“뭐?”

또 예상이 빗나갔다. 하지만 그딴 걸 장난이라고 쳤냐는 말을 들은 것과 비슷하게 충격을 받았다. 내가 얼빠진 표정으로 쳐다보자 세가온이 오디션 프로그램 심사 위원처럼 덧붙였다.

“좋았어요.”

“아……. 그래, 고마워.”

“네.”

“…….”

뭐지, 씨발?

나는 황당한 얼굴로 세가온을 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내가 지금 얼마나 황당하냐면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욕이 나올 뻔했다. 그러니까 세가온이 싫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이 상황이 너무 이상하고 어색하고 미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이럴까? 쟤는 화법이 왜 저렇게 특이할까? 내가 이상한 건가?

혼란스러운 얼굴로 순대를 소금에 찍고 있는데 세가온이 다시 물었다.

“혹시 원숭이 좋아하세요?”

“원숭이? 그냥……. 좋아하지도 않고 싫어하지도 않는데. 실제로 본 적 한 번도 없어.”

갑자기 여기서 원숭이 얘기를 한다고?

나는 이제 모든 걸 포기한 채 그냥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예상을 벗어난 질문에 당황하긴 했지만 그냥 그런 앤가 보다 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거짓말처럼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나는 세가온을 가만히 보다가 똑같이 물었다.

“너는 원숭이 좋아해?”

“저도 실제로 본 적은 없어요.”

“동물원 안 가 봤어?”

“선배님은요?”

“난 안 가 봤어.”

“저도 안 가 봤어요.”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물었다.

“그럼 하마는 좋아해?”

“네? 하마요? 하마는 갑자기 왜요?”

세가온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동안 계속 내가 저런 표정으로 세가온을 봤을 거라고 생각하니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너도 갑자기 원숭이 물어봤잖아.”

“그건 갑자기가 아니라 선배님이 원숭이 얘기를 하셔서…….”

“너 벌거벗고 김밥 먹어 본 적 있어?”

“네?”

“없지?”

“네, 선배님은요?”

“나도 당연히 없지.”

세가온은 착실하게 대답하면서도 내가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그 얼굴을 가만히 보다가 나는 계속 궁금했던 걸 물었다.

“너 근데 여긴 진짜 왜 온 거야?”

계속 궁금했다.

감시를 하러 온 건지, 친해지려고 온 건지, 아니면 배가 고픈데 혼자 밥 먹기 싫어서 온 건지……. 전부 다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너무 뜬금없었다.

BB가 데뷔하고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말 한마디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는데 이제 와서 이러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냥…….”

세가온이 입술을 달싹거리면서 말끝을 흐렸다. 재촉하지 않고 조금 기다리자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냥 지나다가다…….”

“…….”

우리 연습실은 복도 가장 끝에 있는 방이었다. 그러니까 복도 막다른 길에 있는 가장 마지막 방이라는 뜻이다. 이쪽으로는 갈 곳도 없고 볼 것도 없이 우리 연습실밖에 없어서 애초에 우리 말고는 이 복도를 걷는 사람조차 거의 없었다.

그나마 있는 건 청소하시는 분들? 절대 그냥 지나가다가 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좀 이상하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추궁할 생각은 없었다. 사실 세가온이 어딜 가든 자기 마음이고 이 연습실이나 복도를 우리가 전세를 낸 것도 아니니까. 그냥 정말 궁금해서 물어본 건데 꼭 잘못한 사람처럼 안절부절못하는 걸 보니 더 물어보기가 힘들었다.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정말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우리가 뭐 안면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

내 말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세가온이 시선을 들어 날 쳐다봤다. 새까만 눈동자와 눈이 마주치자 별안간 가슴이 술렁거렸다. 롤러코스터를 타고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갔다가 순식간에 아래로 떨어질 때처럼 말이다.

갑작스러운 이상 현상에 잠시 가슴께의 옷을 잡고 고개를 갸웃하는데 세가온이 계속 나를 쳐다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다시 시선이 마주치자 나는 왜 그의 별명이 얼음송곳인지 알 것 같았다.

표정이 하나도 없는 새하얀 얼굴은 계속 당황하고 긴장하고 어색해하고 곤란해하던 지금까지와는 딴판이었다. 눈도 깜빡이지 않고 못이 박힌 듯 빤히 바라보는 검은색 눈동자까지 더해지니 아무것도 안 했는데 혼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화내고 있는 건가?

긴가민가한 얼굴로 마주 보다가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튀김 먹어.”

“…….”

“너 고구마튀김 좋아하지? 아까 보니까 계속 그것만 먹고 있던데……. 오징어튀김이랑 쥐포도 다 네가 먹어.”

왜 왔냐고 한 번 잘못 물어봤다가 개박살이 된 분위기를 어떻게든 수습하기 위해 세가온 앞에 튀김을 산처럼 쌓았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잠깐 나를 보던 세가온은 곧 젓가락을 들고 튀김을 먹기 시작했다.

“…….”

“…….”

나도 체할 것 같은 심정으로 김밥이랑 순대랑 오뎅을 집어 먹었다. 침묵의 식사를 하던 와중에 세가온이 입을 열었다.

“선배님 계시는 것 같아서 와 봤어요.”

“그래, 그랬구나. 더 먹어. 너 점심도 안 먹었다며?”

이 주제로 대화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져 나는 노골적으로 말을 돌렸다. 세가온은 우물쭈물하다가 이내 좀 풀이 죽은 것 같은 얼굴로 다시 튀김을 먹기 시작했다.

그걸 보니 좀 황당하기도 했다.

화는 자기가 먼저 내놓고 왜 저래? 아니, 화를 낸 건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말도 없이 사람을 그렇게 쥐 잡듯 쳐다봐 놓고……. 하여튼 정말 특이해서 그런지 맞춰 주기도 힘들었다.

그 뒤로 별 쓸데없는 얘기들을 하면서 남은 음식들을 먹어 치웠다. 세가온은 느리지만 꾸준하게 열심히 꼭꼭 씹어서 정말 그 많은 튀김을 전부 다 먹었다. 그러곤 뒷정리를 하고 신문지까지 치우자 세가온이 계속 나무젓가락을 들고 있는 게 보였다.

“그거 저기에 버려.”

쓰레기가 담긴 봉지를 가리키며 말했지만 세가온은 알겠다고만 하고 나무젓가락을 버리지는 않았다. 연습실을 나설 때까지 계속 손에 들고 있는 걸 의아한 표정으로 보다가 낯가리느라 그러는 것 같아 내가 가져가 봉지 안에 버렸다.

그때 세가온이 대뜸 물었다.

“선배님 혹시 제 이름 아세요?”

“이름? 당연히 알지.”

“…….”

뜬금없는 질문에 황당한 얼굴로 대답하자 세가온이 입을 꾹 다물었다. 어디 한번 말해 보라는 뜻 같아서 나는 눈을 깜빡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세가온이잖아.”

“……활동명 말고요.”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나? 아무리 그래도 같은 소속사 후배인데 이름도 모를까 봐? 나는 허탈하게 웃으며 다시 말했다.

“정우진.”

“…….”

가만히 나를 보던 세가온의 눈이 천천히 커지기 시작했다. 놀란 것 같은 표정이라 덩달아 나도 놀라 버렸다. 얜 진짜 내가 자기 이름을 모를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왜 그렇게 놀라? 넌 내 이름 알지?”

웃으며 묻자 세가온이 작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는 손을 뻗어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인사를 했다.

“그래, 또 심심하면 와. 간다.”

“선배님.”

쓰레기를 들고 문을 열며 나가려는데 세가온이 나를 불렀다. 고개를 돌리자 어딘지 모르게 간절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다음에 만날 땐 우진이라고 불러 주시면 안 돼요?”

“뭐?”

“우진이요.”

어려운 건 아니었지만 별것도 아닌 말을 왜 저런 표정으로 하는 거지? 누가 보면 장기 기증이라도 부탁하는 사람인 줄 알겠네.

“알았어. 너도 선배님이라고 하지 말고 그냥 선배라고 불러. 형이라고 해도 되고.”

“네, 선배님. 안녕히 가세요.”

알겠다고 해 놓고 또 선배님이라고 하는 걸 보며 나도 인사했다.

“그래, 세가온.”

“…….”

입술이 삐죽 튀어나오는 정우진을 보다가 웃으며 연습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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