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강수민은 내게 하나밖에 남지 않은 가족이었다. 가족이라고 해 봤자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서로 존재도 몰랐던 사촌지간이었지만, 어쨌든 지금은 내게 가족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저런 인간 말종밖에 없었다.
“담배 꺼.”
“뭐?”
“담배 끄라고. 집에서 좀 피우지 마.”
머리가 계속 지끈거려서 인상을 찌푸리고 말하자 강수민이 코웃음을 쳤다.
“내 집에서 내가 담배 피운다는데 네가 뭔 상관이야?”
“경비실에 자꾸 민원 들어온다잖아. 그냥 좀 나가서 피워. 그게 힘들어?”
“씨발, 내 집에서 담배도 마음대로 못 피우네……. 끈다, 꺼.”
당연히 내 말도 안 들을 줄 알았는데 강수민은 언제부터 있었는지도 모를 빈 맥주 캔 안에 반쯤 태운 담배를 넣었다.
“담배 껐으니까 300만 보내.”
“…….”
웬일로 내 말을 듣나 했더니 역시 돈이 목적이었다. 강수민은 내가 돈을 줄 거라고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걸 보니 기가 막혀서 화도 나지 않았다.
“일 한다며? 저번에 형 친구 일하는 곳에서 잠깐 일하기로 하지 않았어?”
“야, 씨발. 그거 알바야. 내가 그래도 나이가 있는데 쪽팔리게 아르바이트를 어떻게 해.”
“아, 그래서 안 해? 뭐, 어디 면접 보러 간다며? 그거 때문에 옷 산다고 나한테 돈 달라고 해서 줬잖아. 그것도 아르바이트여서 때려치웠어?”
내가 웃으면서 묻자 강수민이 소파에서 일어나 냉장고에서 캔 맥주를 꺼내 한 모금 마시더니 말했다.
“그거 해 봤는데 나랑 안 맞아.”
“뭐가 안 맞아?”
“난 누구 밑에서 일 못 해. 적성에도 안 맞고 그냥 성격에 안 맞아.”
“그래?”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말하자 맥주를 두어 모금 더 마신 강수민이 나를 힐끗 보며 다시 말했다.
“가게 같은 거나 좀 하면 좋겠는데.”
“그것도 괜찮지.”
“아, 자리 좋은 곳에서 인테리어만 좀 뽝 힘주고 하면 돈은 그냥 쓸어 담는 건데. 요새는 분위기 좋고 포토 존 잘 해 놓고 인스타 감성으로 장사하면 음식 좀 맛없어도 전국에서 다 온다고 하더라고. 너 내 친구 현서 알지? 걔가 지방에서 가게 하나 냈는데 그게 입소문 타더니 지금 포르쉐 몰고 다닌다더라.”
그 말에 계속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시간을 확인했다. 이제 슬슬 가 봐야 할 것 같아서 나가려고 하는데 강수민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너 돈 좀 모아 둔 거 없냐? 모자란 건 대출 좀 받아서 장사하면 좋을 것 같지 않아?”
“대출을 어떻게 받아? 형 백수잖아.”
“야, 당연히 네가 받아야지. 내가 어떻게 받아? 너 연예인이라 이름값 뭐, 그런 거 때문에 대출 잘 나오지 않냐? 아무튼 돈 얼마나 있어? 한 번 시원하게 까 봐.”
“…….”
까긴 뭘 까라는 거지? 정신 나간 새낀가?
한심하다는 얼굴로 강수민을 빤히 보고 있는데 분위기 파악을 못 한 건지 계속 나불나불 떠들었다.
“연예인들 은퇴하고 장사 많이 하잖아. 팬들한테 장사도 하고 같이 사진 한두 장 찍어 주면 걔네들이 그거 인터넷에 올려서 홍보도 다 해 주고 완전 개꿀이지. 조금만 하면 본전치기는 금방 할 걸? 네 연예인 친구들도 와서 좀 먹어 주고 인별에 맛집 태그 좀 걸어 주고 그러면 진짜 금방이야.”
이미 저 새끼 머릿속에는 우리가 같이 동업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계속 가만히 내버려 뒀다가는 쓸데없는 희망을 가질 것 같아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내가 형이랑 장사를 왜 해? 저번에 형 면접 본다고 했을 때 마지막으로 돈 준 게 끝이었어. 모아 둔 돈도 없고 만약 있다고 해도 형이랑 같이 장사 안 할 거야.”
“구라치지 말고, 솔직히 말해 봐. 비상금 같은 거 있잖아.”
“형.”
“응?”
내가 조용히 부르자 강수민이 씨익 웃으면서 고개를 옆으로 젖혔다. 마음 같아서는 아구창이라도 날려 버리고 싶었지만 나는 이제 더 이상 이 인간과 엮이고 싶지 않았다.
“내가 말했잖아.”
“뭘?”
“형 서른 되면 우리 각자 알아서 살자고. 형도 이제 나이가 서른이면 정신 좀 차려. 진짜 걱정돼서 하는 말이니까 지금이라도 제발 정신 차리고 좀 살아. 일도 하고. 적성에 맞아서 남 밑에서 일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런 사람은 세상에 없어. 그냥 돈 벌려고 좆같아도 참고 일하는 거야. 다들 그러고 살아, 형.”
“그러니까 그 좆같음을 못 참겠다고. 나라고 이러고 싶어서 이러겠냐? 도저히 못 하겠으니까 그러는 거지.”
최대한 알아들을 수 있게 친절히 말했지만 강수민은 내 말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한 것 같았다. 근데 생각해 보면 내가 굳이 강수민을 설득시켜야 할 이유도 없었다.
나는 그냥 다시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래, 그럼 그냥 일하지 말고 그렇게 살다가 집도 팔고 그 돈으로 또 좀 살다가 돈 다 떨어지면 저기 서울역 가서 노숙이나 해. 아무튼 난 갈 테니까 이제 나한테 연락하지 마. 오늘은 마지막으로 그 말 하려고 온 거야.”
“야, 강서주. 네가 나한테 이러면 안 되지. 씨발, 난 너 때문에 엄마랑 아빠도 잃고 내 인생 좆 됐는데.”
강수민의 표정이 점점 험악해지고 있었다. 어릴 땐 저렇게 화내는 모습이 무섭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냥 한심해 보일 뿐이었다.
“형 인생 좆 된 건 누구 탓도 아니고, 그냥 형이 좆같이 살아서 그런 거야.”
“이 새끼가 근데 말을 좆같이 하네? 내 탓이라고? 우리 엄마 아빠 죽은 것도 내 탓이냐? 그때 씨발, 네가 사고만 안 쳤어도……! 야, 강서주. 야! 사람이 말하고 있는데 어딜 가! 야!”
더 이상 말도 섞고 싶지 않아서 나가려고 걸음을 옮긴 순간, 등에 뭔가가 부딪치면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숙이자 조금 전 담배꽁초를 넣었던 맥주 캔이었다.
“너 뭘 믿고 이렇게 막 나가냐? 이제 돈도 벌고 연예인도 됐겠다, 나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지? 엄마 아빠 죽었을 땐 허옇게 질려서 찍 소리도 못 하고 미안해하더니 이젠 세월 좀 지났다고 미안한 마음도 없어졌지? 어?”
먹다 남은 맥주가 등에 묻었는지 점점 축축해지기 시작했다. 강수민은 내 옆으로 와서 삿대질을 하며 침을 튀기고 있었고, 담배 냄새와 술 냄새까지 합쳐져서 머리가 지끈거렸다.
나는 그대로 티셔츠를 벗어 대충 등을 닦고 계속 떠들어 대고 있는 강수민의 얼굴로 던져 버렸다.
“아이, 씨발! 뭐야!”
욕이라도 한바탕해 주고 싶었지만 한 번 시작하면 나도 멈출 자신이 없어서 그냥 그대로 현관으로 걸어갔다. 신발을 신고 있는데 강수민이 다시 욕을 하기 시작했다.
“야! 너 이대로 나가면 진짜 가만 안 둔다. 그냥 하는 소리 아니야. 야! 야, 어디 가 이 새끼야! 돈이나 주고 가든가!”
쾅 소리가 나게 현관문을 닫고 나오자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잠깐 있었을 뿐인데 온몸에 담배 냄새가 진동을 했다. 얼른 숙소로 가서 씻고 싶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아파트 공동 현관을 나가자마자 경비 아저씨와 마주쳤다.
경비 아저씨는 나를 보자마자 눈을 둥그렇게 뜨고 입을 벌리더니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윗도리는 왜 벗고 있어요?”
“…….”
그 말에 나는 할 말이 없어서 그냥 입을 다물고 있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남는 옷 좀 있을까요?”
“…….”
이번에는 경비 아저씨가 말문이 막혔는지 입을 다물었다.
***
다행히 고맙게도 경비 아저씨가 경비실에서 티셔츠 한 장을 줘서 그걸 입고 밖으로 나왔다. 옷을 벗을 땐 그냥 빨리 여기서 나가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어 하마터면 윗도리도 입지 않은 채로 밖을 나돌아 다닐 뻔했다.
핫 핑크색 티셔츠에 앞뒤로 ‘용가리 찜질방’이란 글씨가 명조체로 대문짝만하게 박혀 있었지만 그래도 옷을 벗고 다니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지친 얼굴로 택시를 잡아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온몸을 빡빡 문지르며 담배 냄새와 술 냄새를 씻어 내니 그나마 좀 기분이 나아졌다. 너무 힘들어서 그대로 방으로 들어가 침대 위로 쓰러졌다.
“…….”
강수민은 이제 더 이상 나와 상관이 없는 사람이다. 그 인간은 그 인간대로, 나는 나대로 살면 된다.
‘난 너 때문에 엄마랑 아빠도 잃고 내 인생 좆 됐는데.’
조금 전 들었던 말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환청처럼 다시 들렸다.
그때 내가 그 말에 반박할 수 없었던 건 나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강수민이 말했던 것처럼 그때 내가 부르지만 않았어도 어쩌면 삼촌이랑 숙모는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섯 살부터 열다섯 살이 될 때까지 십 년간 삼촌과 숙모가 나를 돌봐 줬던 것처럼, 열다섯 살부터 스물다섯 살이 되기까지 십 년 동안 강수민을 돌봐 주고 살았다.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돈을 달라면 주고 때리면 맞고, 욕을 하면 듣고 굶으라면 굶고 나가라면 나가면서, 그렇게.
이건 내가 혼자 정한 내 나름대로의 속죄였다.
“……씨발.”
침대에 대자로 누워 2층 침대의 밑바닥만 보고 있다가 몸을 뒤척였다. 모로 누워 이불에 얼굴을 파묻자 잠이 오기 시작했다. 분명 지금 잠들면 안 좋은 꿈을 꿀 것 같았지만 깨어 있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 그냥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