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1화 (41/190)

41화

정우진 한 입 먹이고, 나도 하나 먹고 나니 알감자도 금방 동이 났다. 아쉽기는 했지만 나중에 어차피 밥도 먹어야 하니까 그냥 이것만 먹기로 했다.

“야, 너 그럼 오다리 같은 것도 안 먹어 봤어?”

“오다리요? 그게 뭐예요?”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 정우진을 보며 나는 그만 문화 충격을 받고 말았다.

“아니, 그거……. 오징어랑 버터랑 철판에 꽉 눌러 가지고……. 그걸 안 먹어 봤다고? 그것도 영화 보면서 같이 먹으면 맛있는데. 팝콘은 먹어 봤지?”

“팝콘은 예전에 몇 개 먹어 보긴 했는데 무슨 맛인지 생각이 잘 안 나요.”

“미쳤다, 진짜. 넌 도대체 뭘 먹고 사냐?”

진심으로 궁금해져서 묻자 정우진이 조금 생각하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냥 밥 먹어요. 그리고 샐러드랑 닭 가슴살이랑…….”

“왜? 체중 관리 때문에? 너도 그런 거 해?”

“요즘에는 안 하는데 예전에 멤버들이랑 숙소에 같이 살 때는 했어요. 밥도 같이 먹었는데 혼자 다른 거 먹으면 엄청 눈치 주고…….”

아……. 다 같이 살면 그런 게 문제구나. 우리도 같이 살긴 하지만 딱히 애들이 체중 관리나 그런 걸 하지는 않아서 그런 것들이 생소했다. 그냥 우리 애들은 다들 하나라도 더 먹기 바빠서…….

“그럼 넌 관리도 안 하는데 막 샐러드랑 닭 가슴살 먹고 그런 거야?”

어쩐지 좀 시무룩한 표정이라 안타까워져서 묻자 정우진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요? 전 그냥 제가 먹고 싶은 거 먹었어요.”

“뭐? 같이 살 때는 했다며?”

“운동만 같이했어요. 근데 트레이너가 저한테는 식단 안 짜 주고 그냥 평소에 먹는 것처럼 먹으라고 해서…….”

뭔 소리지?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정우진을 보다가 물었다.

“평소에 뭐 어떻게 먹길래?”

“그냥 밥 먹는데…….”

“양이 좀 적나?”

“그냥 평범해요. 밥이랑 국이랑 반찬이랑. 선배님은요?”

그 말에 나는 요 며칠 내가 먹어 왔던 걸 떠올렸다. 매번 다 같이 먹었기 때문에 내가 얼마나 먹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평범한 사람보다는 좀 더 많이 먹지 않을까…….

“우린 엄청 잘 먹어. 처음에 연습생일 때랑 데뷔했을 땐 대표님이 밥 좀 그만 처먹으라고 욕도 엄청 했어.”

“네? 밥 먹는데 왜 눈치를 줘요?”

“그러니까……. 근데 우리 애들이 좀 많이 먹긴 해.”

특히 김강이랑 유노을이 좀 심각하긴 했다. 유노을은 그래도 좀 대식가 수준이라는 느낌인데 김강은……. 거의 밑 빠진 독이랄까? 김강 말로는 한 번도 배가 터질 것처럼 배부르게 먹어 본 적이 없다고 하던데 그게 진짜인지 거짓말인지는 모르겠다.

근데 먹는 걸 보면 진짜인 것 같기도 하고…….

“선배님.”

“어?”

“저도 선배님 때문에 아이돌에 관심 가지게 된 거예요.”

그건 굉장히 뜬금없는 말이었다.

고개를 돌리자 정우진이 펜스에 팔을 받치고 바다 수평선 너머로 시선을 고정한 채 입을 열었다.

“학원 끝나고 집에 가는 중이었는데 그날따라 그냥 너무 걷고 싶은 거예요. 걸어서 집까지 한 시간 정도 걸렸는데 좀 걷다 보니까 다리가 아파서 버스를 탔어요.”

“…….”

갑작스럽게 시작된 영문 모를 이야기에 나는 입을 다물고 경청했다. 정우진의 표정이 어딘지 모르게 아련해 보였기 때문이다.

“버스 뒤에 두 명씩 앉을 수 있는 자리 알죠?”

“응.”

“거기에 앉아 있는데 나중에 어떤 사람이 제 옆에 앉는 거예요. 그리고 핸드폰으로 막 뭘 보길래 저도 힐끗 봤는데 거기에 선배님 얼굴이 크게 나왔어요. 어떤 예능 프로그램이었는데……. 신인이라고 그룹 소개를 하고 있더라고요.”

말을 끝낸 정우진이 고개를 돌려 나를 봤다.

“그때 제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세요?”

그룹 소개하는 걸 보고 왜 놀랐지? 너무 못해서 놀랐나? 하긴, 그때 나는 의욕만 앞선 초짜였으니까……. 갑자기 좀 민망해져서 헛기침을 하고 있는데 정우진이 말을 이었다.

“처음엔 그게 꿈인지 알았어요.”

“……아, 그 정도였어?”

내 말에 정우진이 아무 말도 없이 멀거니 나를 보기 시작했다. 한참이 지나도 말이 없어서 뭔가 좀 의아하다고 느낄 찰나에, 굳게 다물려 있던 입술이 떨어졌다.

“네.”

“…….”

“그 정도였어요.”

“…….”

도대체 이게 무슨 분위기지? 너무 못하거나 우스꽝스러워서 놀란 게 아닌 건가? 갑작스럽게 묘해진 분위기에 내가 당황하고 있는 사이, 정우진은 다시 자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래서 그때부터 인터넷 검색도 엄청 해 보고……. 선배님 나오는 영상 다 찾아보고 그랬어요.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저도 김강처럼 롯데리아에서 죽치고 살았을 거예요.”

“……뭐?”

“그럼 나도 같이 데뷔해서 선배님한테 우리 애들이라는 소리도 들을 수 있었을 텐데.”

“…….”

아까부터 정우진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도대체 뭐 때문에 이 대화가 시작됐던 거지? 우리 뭐 식단 얘기하고 있었던 거 아닌가?

아니면 우리 애들 어쩌고 하는 거 보니까……. 진짜 멤버들이랑 사이가 별로 안 좋은 건가? 그러고 보니까 예전에 호두 공장에서도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기도 했다.

그때도 나한테 멤버들이랑 사이 좋냐고 물어봤었는데…….

“야, 너 혹시…….”

“우진이라고 불러 주세요.”

“어? 어, 그래. 우진아, 너 혹시 멤버들이랑……. 넌 근데 왜 자꾸 우진이라고 불러 달라 그래?”

이 말을 한두 번 들었던 게 아니어서 갑자기 궁금해져 묻자 정우진이 힐끗 나를 보며 당당하게 말했다.

“그럼 좀 더 친해 보이잖아요.”

“이름 부르는 게?”

“야, 라고 하거나 정우진이라고 하면 안 친해 보이잖아요. 별로 가까운 사이도 아닌 것 같고.”

“…….”

유노을도 가끔 성 붙이고 부르면 한 소리 할 때가 있었는데 정우진은 그 빈도가 잦았다. 그리고 뭔가 유노을이 그러는 거랑 정우진이 이러는 건 의미가 달라 보이기도 해서 같은 말을 들어도 느낌이 이상했다.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닌 것 같아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인 뒤에 다시 물었다.

“근데 너 혹시 멤버들이랑 사이 별로 안 좋아?”

“선배님은 좋으세요?”

“나?”

“네.”

나는 엄청 친하고 좋긴 한데……. 왠지 지금 좋다고 말하면 뭔가 눈치가 없어 보이는 것 같기도 해서 쉽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조금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난……. 나는 그냥 나쁘진 않아.”

“저도 나쁘지는 않아요. 그냥 서로 별로 관심이 없어서…….”

“…….”

같은 멤버인데 관심이 없다니……. 그건 그냥 사이가 안 좋다는 거 아닌가? 설마 불화인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사색이 된 얼굴로 당황하고 있는데 정우진이 별안간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웃었다.

“정말 나쁘진 않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럼 다행이긴 한데…….”

정우진이 웃길래 나도 덩달아 웃으면서 말끝을 흐리다가 뭔가 좀 심각한 이야기인 것 같아서 혼잣말처럼 말했다.

“아, 이런 얘기는 술 마시면서 해야 되는데.”

“술이요? 선배님 술 드시는 거 좋아하세요? 그럼 지금 술 마시러 갈까요?”

당장이라도 갈 것처럼 말하는 정우진을 보며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영화는? 네가 보고 싶었던 거라며?”

“아……. 영화는 내일 봐도 돼요.”

“됐어, 예매까지 다 해 놨는데……. 술은 다음에 마시자. 원래 속마음 얘기 같은 거는 술 마셔야 좀 잘 나오지 않냐? 그래서 그냥 해 본 소리였어.”

사전 미팅 날짜도 얼마 안 남았고, 사전 미팅 다음에는 곧 촬영도 들어갈 것 같아서 한동안은 금주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술도 그렇게 자주 마시던 것은 아니었고…….

“그럼 내일은 어때요?”

하지만 그런 내 생각과 무색하게 정우진이 다급하게 말했다.

“내일 말고……. 아무튼 다음에 날을 다시 잡자.”

“그럼…….”

“이제 뭐 먹으러 가자. 너 점심도 안 먹었다며. 밥 먹으러 가야지.”

나는 정우진이 뭐라고 하기 전에 말을 끊고 말했다. 근데 표정이 너무 시무룩해진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마음이 약해져서 나는 두서도 없이 주절주절 말했다.

“내가 원래 낯도 좀 가리고 속마음 얘기 같은 걸 남한테 잘 못 하거든. 근데 아까 여기 오면서 차 안에서 얘기한 것도 그렇고……. 이상하게 너한테는 말하는 게 별로 어렵지가 않네. 네가 말이 많아서 나도 옮았나 봐.”

“앞으로는 절 대나무 숲처럼 쓰셔도 돼요. 새벽 두 시에 전화해서 회사 욕해도 제가 다 들어 줄게요.”

또 오버하는 정우진을 보며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무튼 다른 얘기는 다음에 술 한 잔 하면서 더 하자. 좀 있으면 사전 미팅도 해야 하고 그거 끝나면 촬영도 금방 들어갈 거 같으니까……. 알았지?”

최대한 정우진이 기분 나빠하지 않게 말했는데 다행히 내 뜻이 전해진 것 같았다. 정우진은 내 말에 가만히 나를 보다가 활짝 웃었다.

“네.”

선글라스 안쪽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눈이 가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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