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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화 (90/190)

85화

당황한 건 스태프들도 마찬가지인지 주변에서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렸다. 송철 피디는 황당한 얼굴로 반으로 쪼개지기 직전의 모탕을 보다가 말했다.

“일단 다치지는 않으셨죠?”

“네, 멀쩡해요.”

“안 다쳤어요.”

정우진과 내가 차례대로 말하자 송철 피디가 스태프들에게 혹시 여분이 없는지 알아보라고 지시하는 게 보였다. 그걸 보며 죄인처럼 나도 모르게 슬금슬금 구석으로 가자 정우진도 날 따라 양손을 공손하게 앞으로 모은 채 내 옆으로 다가왔다.

나는 팔꿈치로 정우진을 치면서 작게 말했다.

“야, 저걸 저렇게 다 부수면 어떡해?”

“부수지는 않았어요.”

“이제 어떡하냐고……. 불 못 피우면 밥도 못 먹는 거 아니야?”

“나뭇가지라도 주워 올까요? 아니면 커다란 나무 찾아서 우리가 모탕 하나 만들면 안 돼요?”

뭔가 그럴듯해 보였지만 장작을 패는 것과 실제 나무에 도끼질을 하는 건 차이가 많이 날 것 같았다. 다칠지도 모르고…….

“일단 빨리 죄송하다고 해.”

내가 다시 팔꿈치로 툭툭 치면서 말하자 정우진이를 나를 보며 시무룩하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아니, 나한테 말고!”

내 말에 정우진이 송철 피디에게 다가가 다시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이렇게 힘이 장사이신 걸 예측 못 한 저희 잘못이죠. 그것보다 다치지 않으셔서 다행이에요.”

“근처에 파는 곳 없을까요? 있으면 제가 새것 하나 사 올게요.”

“일단 여분 있는지 확인해 보라고 했으니까…….”

정우진이 송철 피디와 이야기하는 걸 가만히 보다가 나는 나를 찍고 있는 카메라를 향해 작게 말했다.

“앞으로 장작은 제 담당인 걸로 해야겠어요. 아니, 엄청 말라 보이는데 힘이 왜 저렇게 센 거야?”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 있는데, 어느새 다가온 건지 정우진이 내 뒤에 붙어서 어깨에 턱을 콱 찍었다.

“무슨 말 하고 계세요?”

“여분은 있어?”

“네, 지금 가지고 오신대요.”

“다행이다. 앞으로 장작은 나 혼자 팰게. 너 여기 보고 집주인분들께도 사과해.”

내 말에 정우진이 내 손목을 잡아 제 옆에 세우더니 말했다.

“선배님도 사과하세요.”

“내가 왜?”

“원래 부부는 일심동체예요.”

“……?”

옆에서 허리를 숙이는 바람에 나도 덩달아 영문도 모른 채 고개를 숙이며 뒤늦게 말을 따라 했다.

“집주인분들 죄송합니다.”

“……송합니다.”

“제가 새 모탕 구해 드리겠습니다.”

“예, 구해 드리겠습니다…….”

“저희 잘 살겠습니다.”

“잘 살겠…….”

그 말도 무심코 따라 하려다가 나는 얼른 정신을 차리고 정우진을 밀어내며 허공에 발차기를 했다.

“너 혼자 살아, 너 혼자.”

“아파요.”

“맞지도 않았는데 아프긴 뭘 아파!”

“마음이 아프다고요.”

“으.”

가슴을 부여잡고 슬픈 척을 하는 정우진을 보며 질색하기도 하고, 쓸데없는 잡담을 하면서 시간을 조금 보내자 새로운 모탕이 준비되었다.

“내가 장작 팰 테니까 너는 가서 불 좀……. 너 근데 불 피울 줄 알아?”

“그냥 라이터로 불붙이면 되는 거 아니에요?”

정우진 말대로 불이야 그냥 붙이면 되긴 하지만, 그걸 계속 유지시키는 게 쉽지 않았다. 왠지 잘 못 할 것 같아서 나는 조금 고민하다가 말했다.

“그럼 일단 너는 쌀이랑 냄비를 좀 씻어. 쌀은 씻을 줄 알지?”

“당연하죠.”

의기양양하게 하는 말이 너무 웃겨서 나는 입술을 꽉 다물었다가 말했다.

“너무 든든하다, 우진아. 그럼 쌀이랑 냄비 씻는 건 너한테 맡길게.”

“네.”

착실하게 대답한 정우진이 자기 할 일을 하러 간 동안 나도 장작을 조금 더 팼다. 처음에 한 게 요행이었으면 어쩌나 잠시 걱정했지만 역시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몇 번 해 보니 요령까지 붙어 손쉽게 장작을 다 패서 아궁이 쪽으로 가지고 갔다.

“쌀 다 씻었어?”

“네, 냄비에 쌀이랑 물도 다 받아 놨어요.”

정우진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도마에 된장찌개에 넣을 애호박과 양파 같은 야채들을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있었다. 나는 아궁이에 불을 피울 준비를 하며 물었다.

“너 근데 냄비 밥 할 줄 알아?”

“그냥 죽 끓이듯이 끓이면 되지 않아요?”

“그거 막 뜸도 들여야 하고 불 조절도 잘 해야 하고 그럴 텐데……. 인터넷 검색해 보자.”

혹시 이것도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반칙 같은 행위라고 할까 봐 나도 모르게 핸드폰을 만지면서 카메라와 송철 피디의 눈치를 봤다. 불안한 눈으로 내가 자꾸 힐끗힐끗 쳐다보자 송철 피디가 웃으며 물었다.

“왜 그렇게 쳐다보세요?”

“아니, 뺏어갈까 봐…….”

“네?”

“검색해서 찾아봐도 되죠?”

“그럼요, 당연하죠. 아니, 저희들을 도대체 어떻게 보고 계신 거예요?”

송철 피디는 황당한 표정으로 웃었지만 나는 의심을 완전히 거두지 않은 눈으로 계속 눈치를 보다가 냄비 밥을 검색했다.

“뚜껑 닫고 중불로 끓이다가 바글바글 끓으면 중약불로 줄이고…….”

혹시 몰라 여러 군데에서 찾아보고 있는데, 어느새 야채를 썰고 있던 정우진이 내 옆으로 다가와 핸드폰 화면을 보며 말했다.

“근데 여기서 불 조절이 돼요?”

“…….”

그러고 보니 그랬다. 아궁이에서 끓이는 거라 불 조절도 마음대로 안 될 텐데……. 나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정우진을 보며 물었다.

“어떡하지?”

“일단 이건 제가 한 번 해 볼게요.”

정우진이 내 핸드폰을 가져가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레시피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너무 전문가처럼 보여서 일단 내버려 두고 아궁이에 불을 붙였다. 오랜만에 하는 거라 안 붙으면 어쩌나 했는데 어렵지 않게 불이 붙어서 다행이었다.

아궁이가 두 개라 두 군데 다 불을 붙이고 석쇠를 하나 올리고 그 위에 냄비를 놨다.

정우진은 냄비 밥과 된장찌개를 준비하고, 나는 자연스럽게 호박잎을 조금 전에 배운 것처럼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구기면서 비비고 껍질을 벗겼다.

중간중간 나무 평상도 닦고 쓰레기도 정리하고 있는데, 정우진이 밥을 하던 냄비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게 보여 물었다.

“밥 다 된 거야?”

“네, 이제 뜸만 들이면 돼요.”

“열어 보면 안 되겠지?”

“지금은 안 되고, 5분 있다가요.”

일단 탄 냄새는 안 나서 다행이었다.

화려한 꽃무늬가 그려진 동그란 양철 상 위에 하나씩 완성된 음식을 놨다. 야채를 큼지막하게 자른 자작한 된장찌개와 찐 호박잎, 그리고 배추김치밖에 없었지만 너무 맛있어 보였다.

수저도 놓고 모든 준비를 마친 우리는 긴장되는 마음으로 뜸을 다 들인 냄비 밥의 뚜껑을 조심스레 열었다. 새하얀 김이 크게 한번 확 피어올랐다가 가라앉자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눈처럼 새하얀 쌀밥이 보였다.

“와…….”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자 정우진이 주걱을 안쪽까지 넣어 밥을 뒤집으며 섞었다. 그리고 주걱에 조금 붙은 밥풀을 먹어 보더니 내게도 내밀었다. 나는 긴장된 마음으로 뜨거운 밥풀 뭉텅이를 손으로 집어 입에 넣었다.

“…….”

“…….”

오물오물 입을 움직이면서 정우진을 가만히 보던 나는 밥을 삼키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 진짜 냄비 밥 처음 해 보는 거 맞아?”

“네, 밥 잘 됐죠?”

“너무 맛있는데? 아니, 고기 굽다가 숯 덩어리로 만들던 애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어서 이렇게 된 거야…….”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정우진이 콧대를 높이며 말했다.

“집에서 매일 연습했어요.”

“냄비 밥은 처음이라며?”

“하다 보면 감이라는 게 생겨서 처음 보는 것도 대충 할 수 있게 되는 거죠.”

“…….”

뭔가 멋진 말 같은데 저렇게 콧대를 세우고 의기양양하게 말하니까 동조해 주기가 싫었다. 그래도 어쨌든 정우진 덕분에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라 나는 손으로 그의 등을 팍팍 쳤다.

“완전 멋있다.”

“영혼 좀 담아서 말해 주시면 안 돼요?”

“너무 멋있어요!”

어떻게 영혼을 담을까 하다가 호들갑을 떨면서 발을 구르며 말하자 정우진이 피식 웃었다. 그러더니 손을 뻗어 내가 제 등을 친 것처럼 정우진도 내 어깨를 옆으로 톡톡 치면서 말했다.

“고마워.”

별안간 후배 앞에서 재롱을 부린 선배가 된 것 같은 느낌에 나는 정우진의 손을 쳐 내며 말했다.

“너도 영혼을 좀 담아서 말해 봐.”

내 말에 정우진이 잠시 고민하는 것 같더니 양손으로 입을 가린 채 놀란 소녀처럼 눈을 크게 뜨고 발을 동동 굴렸다.

“너무 고마워요!”

“…….”

“……밥이나 먹을까요?”

“으응.”

우리는 서로 멋쩍은 표정으로 냄비째 나무 평상으로 가지고 와 자리에 앉았다. 된장찌개는 앞접시에 덜고 밥까지 푸니 그럴듯해 보여서 감탄하고 있는데, 정우진이 여러 각도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다 찍을 때까지 기다리다가 핸드폰을 내리기에 물었다.

“다 찍었어? 먹어도 돼?”

“네, 맛있게 드세요.”

“너도 맛있게 먹어.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윤기 나는 쌀밥을 숟가락으로 떠 입 안에 넣자 고소한 단맛이 가득 퍼졌다. 어쩐지 감동받아서 나는 정우진을 보며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야, 너 완전 밥 짓기 장인 아니냐?”

“맛있어요?”

그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번에는 호박잎에 밥 한 숟가락과 야채를 가득 넣은 된장찌개를 듬뿍 떠 흘리지 않게 이파리를 잘 덮고 입 안에 넣었다.

“맛있어요?”

나를 가만히 보고 있던 정우진이 조금 전과 똑같이 물었다. 나는 또다시 감동을 받아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눈을 감고 반대쪽 손으로 엄지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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