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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화 (94/190)

89화

“네? 정우진이요? 그게 정답이에요?”

송철 피디가 혹시 잘못 들었나 싶었던 건지 다시 물었다. 나도 같은 심정이라 의아한 표정으로 정우진을 쳐다봤다.

“네.”

“…….”

“…….”

도대체 이게 무슨……. 아니, 답이 뭐 그래? 정우진이라니? 갑자기 정우진은 무슨 정우진이야?

어쩌다가 저런 대답이 나온 건지 도저히 감도 잡히질 않아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가만히 있는데, 그건 송철 피디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하.”

손을 들어 뭐라고 말을 하려다가 갑자기 웃음이 터진 송철 피디가 입을 꾹 다물었다가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정우진, 땡!”

“정답이 뭐예요?”

도저히 답을 모르겠어서 내가 묻자 송철 피디가 웃으며 말했다.

“형광펜이요.”

“아……. 형광펜. 형의 광팬…….”

답을 들으니 왜 그런지 알 것 같아 고개를 끄덕이다가 나는 정우진을 바라봤다. 그리고 똑같이 물었다.

“넌 왜 정우진이라고 했어?”

도대체 무슨 메커니즘으로 정우진이라는 답에 도달한 건지 너무 궁금했다. 내 물음에 정우진은 별거 아니라는 표정으로 손가락을 들어 나를 가리켰다.

“형을 매우 좋아하는.”

그리고 이번에는 자기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동생.”

“……?”

“정우진.”

“…….”

그제야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한 나는 황당한 표정을 짓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결국 모든 문제를 맞히지 못했다는 생각에 한숨이 나왔다.

“아쉽다, 두 문제만 더 맞히면 됐는데.”

나는 송철 피디의 눈치를 보다가 혹시나 싶어 물었다.

“혹시 4문제 맞힌 거에 대해서는 다른 보상이 없을까요?”

“네, 없습니다.”

“단호하시네요.”

내가 머쓱한 표정으로 말하자 정우진이 곰곰이 생각하는 것 같더니 말했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시면 안 될까요? 대신에 선배님이랑 저랑 같이 세 문제 맞히는 걸로요.”

무조건 정우진의 편을 들어서 같이 우기려고 했는데,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수였다. 한 번 더 기회를 얻는 것도 힘든 마당에 저런 조건이면 제작진에게 좋을 게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잠시 주춤하는 사이, 아니나 다를까 송철 피디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그러면 저희에게 좋을 게 없잖아요.”

“대신 준비하신 문제 중에 제일 어려운 걸로 내주세요.”

“제일 어려운 거요?”

“네, 그래도 못 맞히면 깔끔하게 포기할게요. 그리고 제가 춤도 출게요.”

그 말에 나는 다시 주춤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확실히 난센스 문제에서 틀리긴 했지만 뭔가 문제의 난이도들이 그리 높지는 않아 보였다. 가장 어려운 문제에 정우진이 춤까지 춘다고 하니, 협상의 여지는 충분했다.

어차피 틀리든 말든 그건 나중 문제고, 기회를 한 번 더 얻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나도 나서서 거들었다.

“저흰 원래 둘이 같이하는 줄 알고 있었는데 따로 해서 당황스러워 본래의 실력을 못 낸 거예요. 그리고 우진이 춤추면 저도 옆에서 개다리 춤을 추겠습니다.”

그냥 나오는 대로 내뱉었는데 정우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맞아요, 저희는 원래 일심동체라서 같이해야 하는데 따로 하라고 그러시고.”

“그치, 그러니까 본래 실력에 반도 안 나온 거지.”

“둘이 같이하면 훨씬 더 잘할 수 있어요.”

“동의합니다.”

정우진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말하고 있자 송철 피디가 스태프들과 조용히 의논하기 시작했다. 종이 카드를 확인하는 걸 보니 아마 어려운 문제를 고르고 있는 듯싶었다. 듣지 않아도 한 번 더 기회를 얻었다는 걸 알 수 있어서 나는 정우진을 보며 소리 없이 웃었다.

“그러면…….”

가장 어려운 문제를 다 골랐는지 송철 피디가 손에 쥔 종이 카드를 무릎 위에 엎어 놓으며 말했다.

“말씀하셨던 것처럼 어려운 문제로 세 문제 다시 내드릴게요. 이건 시간제한도 없고 두 분이서 충분히 의논하신 다음에 정답을 말씀해 주셔도 좋아요.”

일단 기회를 다시 얻기는 했지만 저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면 정말 어려운 문제를 내려고 하는 것 같았다. 어차피 내가 맞히기는 글렀고, 나는 전적으로 정우진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 기회입니다. 이번에도 못 맞히시면 두 분이서 무반주로 개다리 춤추고 군말 없이 출발하시는 거예요.”

“네, 맹세할게요.”

“저도 맹세할게요.”

무반주로 춘다는 말은 안 했는데 그래도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둘이 하는 거니까 덜 민망하지 않을까 싶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첫 번째 문제 갑니다.”

“…….”

“…….”

나는 손으로 무릎을 짚고 허리를 살짝 숙인 채 송철 피디의 입술만 노려봤다. 어려운 문제라고 해도 무조건 내가 모르는 게 나오리라는 법은 없었다. 한껏 집중한 표정으로 가만히 있자 곧 그의 입에서 문제가 흘러나왔다.

“이 사태는 2001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부채 담보부 증권 시장의 확대와 그에 따른 서브 프라임 주택 담보 대출의 확대, 미국 부동산 버블로부터 시작된…….”

“…….”

문제를 가만히 듣던 나는 부채 담보 어쩌고저쩌고 하는 순간 급격하게 집중력을 잃기 시작했다. 구부리고 있던 허리를 천천히 펴고 황당한 표정으로 아직도 문제를 읊고 있는 송철 피디를 보다가 힐끗 시선을 돌려 정우진을 바라봤다.

정우진은 조금 전과 같은 표정과 자세로 그냥 가만히 듣고만 있을 뿐이었다.

“세계적인 대침체, 양극화를 유발한 이 사태는 무엇일까요?”

“…….”

잠시 다른 생각을 해서 중간에 말을 놓쳤지만 어차피 다 들었어도 내가 답을 맞힐 수는 없는 문제였다.

“두 분 충분히 상의하시고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넋이 나가 있는 내 얼굴을 본 송철 피디가 웃음을 참는 얼굴로 말했다. 내가 계속 뭐라고 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거리자 송철 피디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서주 씨, 왜 그러세요? 혹시 하실 말씀 있으세요?”

“아니……. 문제가 뭐였죠?”

“다시 읽어 드릴까요? 자, 그럼 한 번 더 천천히 읽어 드리겠습니다. 이 사태는 2001년부터 본격적으로…….”

“…….”

들어도 뭔 말인지 알 수가 없어서 나는 송철 피디가 문제를 읽는 동안 슬금슬금 정우진의 뒤로 가서 그의 어깨를 조물조물했다. 그러자 정우진이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려 나를 보며 물었다.

“왜 그러세요?”

“아니……. 너 힘내라고…….”

머쓱한 표정으로 말하며 이번에는 주먹을 살짝 쥐고 정우진의 어깨를 통통 때렸다.

“정답 지금 말하면 되나요?”

그때 정우진이 살짝 손을 들더니 물었다.

“네,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나는 놀란 얼굴로 정우진을 보며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이걸 이렇게 바로 정답을 말한다고? 솔직히 난센스 퀴즈를 할 때처럼 엉뚱한 대답이 나올 수도 있어서 살짝 걱정이 되기도…….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

“…….”

생전 처음 듣는 단어에 아주 조금 남아 있던 불안감이 전부 사라졌다. 내가 듣도 보도 못했던 말이니까 왠지 정답일 것 같아서 눈을 크게 뜨고 송철 피디를 바라봤다.

“정답!”

“와!”

나는 양손으로 입을 가리고 정우진에게 물었다.

“너 이런 거 어떻게 알아?”

“그냥 문제에서 서브 프라임 어쩌고 하길래 찍었어요.”

“미쳤다, 진짜! 난 모가지밖에 모르는데…….”

역시 전교 1등이라고 하더니 찍는 것도 남달랐다. 이러다가 세 문제 다 맞히는 거 아니야? 나는 손에 조금 더 힘을 줘서 정우진의 어깨를 안마하며 말했다.

“다음 문제 주세요.”

“그럼 다음 문제는 수도 맞히기입니다.”

“네네.”

천군만마를 얻은 나는 정우진을 앞세워 자신감 있게 대답했다. 송철 피디는 한 박자 쉬면서 숨을 한 번 삼킨 다음 말했다.

“키리바시의 수도는 어디일까요?”

“……네?”

“키리바시의 수도는 어디일까요?”

“…….”

키리바시가 뭐지? 난생처음 듣는 나라였다. 왠지 일본말 같기도 한데…….

나는 쭈구리처럼 입을 다물고 통통통 정우진의 어깨를 계속 안마했다. 그러자 송철 피디가 나를 보며 웃었다.

“서주 씨는 아까부터 대체 뭐 하고 계신 거예요?”

“네? 아, 이러면 혹시 머리가 좀 더 잘 돌아갈까 싶어서…….”

“아, 서포트하시는 거예요?”

“네네, 제 기운을 나눠 주는 거예요.”

나와 송철 피디가 짧은 대화를 주고받는 동안 곰곰이 생각하는 것 같던 정우진이 살짝 손을 들었다.

“정답 말할게요.”

“네, 말씀해 주세요. 키리바시의 수도는?”

“타라와.”

“정답!”

“와!”

두 번 연속 정답이었다. 이제 더 이상 놀랄 수도 없을 만큼 놀란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정우진의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너 완전 천재네!”

“예전에 심심해서 수도 찾아보기 같은 거 했는데, 우연히 봤던 게 떠올랐어요.”

“야, 운도 실력이지!”

정우진도 좋은지 수줍어 보이는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이제 정말 마지막 문제만 맞히면 끝이었다. 나는 다시 자세를 잡고 정우진의 어깨를 힘줘 주무르며 말했다.

“그럼 마지막 문제 주세요. 우리 우진이가 다 맞혀 줄 거예요.”

“네, 마지막 문제는 난센스 퀴즈입니다.”

“네네.”

“달콤한 라면은?”

“네?”

“달콤한 라면은 무엇일까요?”

달콤한 라면? 그게 뭔데?

고개를 갸웃하고 있는데 정우진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

“…….”

아주 잠시 동안 서로 시선을 교환하는데 불현듯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저 눈빛은 정우진이 조금 전 정답으로 정우진이라는 말을 했을 때와 똑같았기 때문이다.

“정답 지금…….”

“자, 잠깐만.”

나는 팔을 올리는 정우진의 손을 붙잡고 작게 속삭이듯 물었다.

“정답 말할 거야?”

“네.”

“뭐라고 할 건데? 나한테 먼저 말해 봐.”

내가 가까이로 귀를 대자 정우진이 손으로 제 입을 가리더니 내 귀에 대고 작게 말했다.

“……라면이요.”

“뭐라고?”

“설탕 라면.”

“…….”

귓속말을 속삭이던 정우진의 말을 들은 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정우진을 쳐다봤다.

“설탕 라면이라고?”

“네, 달콤한 라면이니까…….”

말끝은 흐리고 있었지만 표정을 보아하니 자신감이 넘쳤다. 나도 정답은 몰랐지만 설탕 라면은 절대 아니라는데 내 손모가지를 걸 수도 있었다.

내 표정이 점점 심각해지자 정우진이 쭈뼛거리다가 슬금슬금 내 뒤로 오더니 안마를 하기 시작했다.

통통통통.

“…….”

“…….”

통통통.

이 자리가 이렇게 부담이 되는 자리였구나…….

통통통통.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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