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첫날 밤에는 피곤해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
나는 침대맡에 일어나 앉아, 손으로 이마를 짚고 잠시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마치 태아처럼 침대 한가운데에서 웅크리고 누워 자는 정우진을 바라봤다.
자기 베개는 어디에 버린 건지 보이지도 않았고, 내 베개는 자기 다리 사이에 끼우고 이불은 구석에 처박혀서 끄트머리만 보였다. 이렇게 보니 이런 상황이 될 때까지 깨지 않고 잔 나도 신기했다.
어지간해서는 자다가 도중에 잘 깨질 않는데,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통증에 눈을 번쩍 뜰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뭐로, 어떻게 내 이마를 가격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직도 욱신거리고 아팠다.
주먹으로 때렸나? 발로 차였나? 그것도 아니면 천장에서 뭐가 떨어진 건가?
혹시나 싶어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봤지만 당연하게도 내 이마 위로 떨어질 만한 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잠버릇이 이렇게 심한데, 본인이 모를 수도 있는 건가? 아니면 그냥 시치미를 뗀 건가. 그것도 아니라면 정말 컨셉인가…….
“하.”
색색거리면서 잘도 자고 있는 정우진을 보고 있으니 화도 나지 않았다.
나는 다시 침대에 모로 누워 별생각 없이 그냥 규칙적으로 일정한 숨소리를 들으며 계속 잠든 정우진의 얼굴을 주시했다. 멍하게 정우진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지, 조금 더 잘까 말까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었는데 문득 의아해졌다.
“…….”
음……. 좀 비슷한가?
고개를 앞으로 내밀어 조금 더 가까운 거리에서 정우진을 관찰했다.
이마부터 시작해서 눈썹, 미간, 눈, 코, 입, 그리고 턱과 목덜미까지 하나하나 해체하듯 뜯어보다가 시선을 올렸다.
“…….”
“…….”
나는 잠시 동안 이 상황을 이해하질 못했다. 그것도 그럴 게, 정우진은 분명 자고 있었는데 눈을 어떻게 뜨고 있는 거지?
“……일어났어?”
한 박자 늦게 정우진이 깨어 있다는 걸 알아채고 자연스럽게 상체를 일으키며 물었다. 찌를 듯 날카로운 시선이 날 따라 움직였다. 무언가에 놀란 것처럼 크게 뜬 눈으로 빤히 날 쳐다보는 정우진의 얼굴이 낯설었다.
자다가 도중에 깬 게 짜증이 난 건지, 아니면 내가 자길 관찰하고 있는 게 불쾌했던 건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어찌 됐든 잔뜩 예민해져 있는 표정이었기 때문이다.
새카만 눈에서 사람을 얼려 죽이는 레이저가 나오거나, 벌어진 입술로 욕이라도 한바탕 쏟아 낼 것 같은 분위기였다.
“…….”
아니, 근데 그런 폭탄 머리를 하고 분위기를 잡아 봤자…….
뭔가 섬뜩할 수도 있는 분위기를 삽시간에 눈 녹듯이 녹이는 머리 스타일을 감탄하며 보고 있는 그때, 눈도 깜박이지 않고 빤히 날 보던 정우진의 얼굴에 점점 물음표가 뜨기 시작했다.
정우진은 부스스 상체를 일으켜 나를 계속 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
“…….”
저 꼴을 보니 내가 계속 쳐다보고 있었던 건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괜히 입을 열었다가 도둑이 제 발 저리는 말이나 할 것 같아서 나는 그냥 조용히 정우진이 먼저 말하기만 기다렸다.
정우진은 눈을 한번 깜박거리고 상황을 파악하려는 듯 주변을 둘러보다가 다시 나를 보며 물었다.
“지금 몇 시예요?”
“일곱 시.”
“오후요?”
“오후는 무슨 오후? 오전이지.”
아직 잠이 덜 깬 게 분명한 모습에 내가 피식 웃으며 말하자 이번에는 정우진이 반대쪽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저 언제 잠들었어요?”
“어제 나한테 그런 거 아니라고 하고, 바로.”
“네?”
다시 한번 갸우뚱하는 정우진을 보며 나는 침대에서 일어섰다.
“좀 더 자든가, 잠을 깨든가 해. 난 아궁이에 피워 놨던 불 좀 보고 와야겠다.”
그렇게 말하고 밖으로 나가는데, 정우진이 내 뒤를 따랐다. 아직도 뭐가 뭔지 잘 이해를 못 하는 표정으로 비틀거리면서 따라오는 게 술에 취한 사람 같기도 했다.
혹시 아직 술이 덜 깬 건 아니겠지? 나는 정우진이 잘 따라올 수 있도록 보폭을 맞춰 주며 그 모습을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아침이라 그런지 밖으로 나오니 조금 쌀쌀해서 부르르 몸을 떨자 정우진도 옆에서 똑같이 눈을 감고 몸을 가볍게 떨었다. 그리고 하품을 하는 걸 보니 나도 덩달아 하품이 나왔다.
왜 하품하는 사람을 보면 나도 똑같이 하품이 나오는 걸까?
“일어나셨어요?”
“아, 네. 안녕히 주무셨어요.”
“안녕하세요.”
다시 봐도 충격적인 건지 송철 피디가 정우진의 뻗친 머리를 보더니 흠칫 놀라는 게 보였다. 그걸 보니 어쩐지 웃겨서 피식거리며 아궁이 쪽으로 다가갔다.
“불 다 꺼졌네.”
“그래도 잘 우러난 거 같은데요?”
정우진이 가마솥 뚜껑을 슬쩍 열어 안을 보더니 말했다. 그 말처럼 국물은 우유처럼 뽀얀 빛깔을 띠고 있었다.
“데워서 아침은 이걸로 먹자.”
“좋아요.”
그 말에 나는 잠시 말없이 정우진을 쳐다봤다.
흐리멍덩하던 눈도 또렷해졌고 말도 똑바로 하는 걸 보니 잠이 깬 모양이었다. 아주 잠깐, 머리 뻗쳤다고 말을 해 줄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냥 입 다물고 아궁이 앞에 자리를 잡았다.
불씨를 넣고 마른 낙엽과 종이로 그 위를 덮고 살살 부채질을 하고 있는데, 정우진이 내 옆에 쪼그려 앉았다.
“마지막 밤이라서 밤새도록 얘기하고 싶었는데…….”
“무슨 얘기?”
“그냥……. 오늘이 마지막이니까.”
어딘지 모르게 아련한 듯한 목소리였다.
하긴, 여행의 마지막 날은 원래 시원섭섭한 법이지.
“다음에 또 가면 되지.”
“다음에 언제요?”
마치 이 말을 유도한 사람처럼 정우진이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 나는 어느 정도 불이 붙은 아궁이 안으로 잔가지와 장작을 넣고 다시 부채질을 하며 말했다.
“글쎄. 둘이 시간 맞으면, 뭐…….”
“그럼 차박 할까요? 저 그거 인터넷에서 봤는데 엄청 재미있어 보이던데.”
“…….”
쟤는 무슨 차박 못 해서 죽은 귀신이 들러붙었나? 여기 올 때도 그러더니, 또……. 혹시 편집됐을 걸 대비해서 다시 물어보는 건가? 증거를 남기려고? 정말 철두철미한 놈이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정우진은 분명 자기가 원하는 대답을 들을 때까지 징징거릴 게 뻔해서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음에 한번 가자.”
“재미있겠다. 캠핑용품, 콜록.”
무릎에 머리를 기대고 말하던 정우진이 연기를 마셨는지 작게 기침을 했다. 나는 부채질하던 손을 멈추고 정우진의 어깨를 가볍게 밀었다.
“넌 가서 파나 좀 썰어.”
“5분만 있다가요.”
그러더니 다시 자세를 잡고 가만히 있었다. 갈 생각이 없어 보여서 나는 정우진의 시선을 따라 이제 불이 붙은 아궁이 속을 바라봤다. 계속 보고 있으니 뭔가 작은 캠프파이어 같기도 해서 정우진이 왜 이러는지 알 것도 같았다.
“이런 걸 불멍이라고 하나 봐.”
“네?”
“너 불멍 몰라?”
“그게 뭐예요?”
이렇게 물어보니까 또 설명하기가 애매했다. 나는 조금 고민하다가 직관적으로 대답했다.
“불 계속 보면서 멍 때리는 거.”
내 말에 정우진이 조금 놀란 얼굴로 빤히 나를 보다가 별안간 웃었다. 갑자기 터진 이유를 몰라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정우진이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리고 무릎에 얼굴을 기댄 채 또 배시시 웃었다.
“…….”
“…….”
머리카락이 사방팔방으로 뻗친 동그란 머리통 뒤로 형형색색의 꽃이 퐁퐁 터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뭐지?
갑자기 계속 날 보면서 말도 없이 방실방실 웃기만 하는 정우진을 기분 나쁜 표정으로 보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뭐 해?”
“선멍.”
“뭐?”
“선배님 보면서 멍 때리기.”
“…….”
갑작스럽게 정신 공격을 당한 나는 오만상을 찌푸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헉…….”
그때였다. 옆에서 존재감 없이 우리를 찍고 있던 카메라맨이 숨을 크게 들이켜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우진과 나는 마치 짜기라도 한 듯 동시에 카메라를 돌아봤다.
“아, 죄송해요.”
카메라맨이 당황한 목소리로 다급히 사과를 했다. 그걸 기점으로 여기저기서 웃음을 참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당황한 얼굴로 주변을 보다가 정우진의 뒷목을 잡고 힘을 줬다.
“빨리 카메라 보고 죄송하다고 해.”
“왜요?”
“네 아재 개그 때문에 다들 놀라셨잖아.”
“……죄송합니다.”
어쩐지 납득하기 힘든 목소리였지만, 정우진은 카메라를 보며 껄렁한 자세로 사과를 했다. 그리고 고개를 들면서 나를 보며 개 소리를 냈다.
“멍멍.”
“……?”
“멍멍.”
잘못 들었나 싶어 눈을 크게 뜨자 정우진이 다시 짖었다. 이게 갑자기 무슨 상황이지? 왜 갑자기 개 흉내를 내지? 혹시 억지로 사과하라고 해서 반항하는 건가? 미친개처럼?
온갖 추측을 하면서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몰라 우물쭈물하는 사이 정우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멍멍이 보면서 멍 때리면 멍멍.”
“…….”
이 새끼 잠이 덜 깼나? 아니면 진짜 술이 아직 안 깬 건가?
내가 경악하든 말든 정우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를 드러내며 개구쟁이처럼 웃었다. 주변에서도 이젠 참지 않고 웃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제일 크게 웃고 있는 송철 피디를 보며 나도 모르게 삿대질을 했다.
“야, 그럼 피디님 보면서 멍 때리는 건 피멍이냐?”
내 말에 다시 모두가 웃었다. 하지만 정우진만은 달랐다. 마치 말하는 원숭이라도 본 듯 경악하며 천천히 손을 올려 입을 가리고 있었다.
설마 아까의 복수라도 하는 건가 싶어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발끈해서 욱해 버렸다.
“네가 먼저 했잖아!”
“선배님, 이런 거 좋아하세요?”
“아니? 네가 먼저 했잖아. 선멍, 멍멍!”
정우진이 내 말은 듣지도 않고 심각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보며 공손하게 허리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마치 학교에 불려 온 학부형 같은 모습에 나는 참지 못하고 그대로 헤드록을 걸어 한동안 정우진을 질질 끌고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