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6화 (121/190)

116화

“하…….”

따라오지도 말고 신경 쓰지도 말라고 했지만, 저런 상태의 정우진을 혼자 보낼 수는 없었다. 나는 조금 거리를 두고 정우진의 뒤를 따라가며 박준오에게 문자를 보냈다.

[준오야, 늦은 시간에 미안한데 혹시 자냐?]

문자를 보내자 곧 답장이 왔다.

[아니요, 괜찮아요. 무슨 일이세요?]

지금 차 가지고 좀 오라고 하려는데, 조금 걷던 정우진이 택시를 보자마자 손을 드는 게 보였다. 정우진이 택시에 타자마자 출발하는 걸 보다가 번호판을 확인하고 전화를 했다.

-네, 형.

“준오야, 늦게 미안하다. 자고 있었던 거 아니지?”

-아니에요, 괜찮아요. 방금 집에 와서……. 근데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데……. 방금 우진이랑 술을 좀 마셨는데, 혹시 집에 도착했는지 확인 좀 해 줄 수 있냐? 택시 타고 가긴 했는데…….”

-네? 우진이 형이요?

“어, 어…….”

놀라서 묻는 말에 좀 찔려서 대답하자 박준오가 말했다.

-어, 오전 일찍 스케줄 있는데……. 일단 제가 확인 한 번 해 보고 연락드릴게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내가 데려다준다고 했는데 잠깐 한눈판 사이에 가 버려서……. 아무튼 고맙다.”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불안하긴 매한가지였다. 이대로 정우진이 집에 간 거면 다행이겠지만, 혹시라도 딴 길로 샜으면……. 오전 일찍 스케줄도 있다는데 그러진 않을 거라고 믿는 수밖에 없었다.

택시가 사라진 길을 한참 보다가 혹시 몰라 조금 전 봤던 번호판의 숫자를 핸드폰 메모장에 적으며 걸음을 옮겼다.

정우진에게도 미안하고 박준오한테도 미안했기에, 나는 심란한 마음에 한숨을 푹푹 내쉬며 터덜터덜 숙소로 돌아갔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애들은 이미 다 자느라 집 안은 고요했다. 조용히 씻고 나와 옷까지 갈아입는데 소파에 뒀던 핸드폰이 진동했다. 당연히 박준오일 거라고 생각해서 확인도 하지 않고 전화를 받았다.

“어, 가 봤어?”

하지만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질 않아, 이상한 마음에 액정을 확인하자마자 숨을 들이켰다. 액정 위에 뜬 이름은 ‘세가온’이었다.

“여보세요? 너 지금 어디야? 집에 도착했어?”

-…….

“여보세요? 여보세요?”

-……흑…….

한참 아무 말도 들리지 않던 핸드폰 너머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다. 목소리가 왜 이렇게 울리지? 분명 나는 지금 전화를 하고 있는데…….

-선배님, 저 아까……. 화내, 흑. 화낸 게 아니라…….

“……?”

정우진이 울면서 웅얼웅얼 뭐라고 하는 걸 가만히 듣다가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핸드폰을 귀에서 뗐다.

-흐윽, 끅…….

“…….”

그리고 사색이 된 얼굴로 천천히 현관문 쪽으로 가 문을 열었다.

“…….”

정우진이 현관문 바로 옆 계단에 앉아 무릎에 얼굴을 묻고 있다가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새카만 눈동자가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리다가 펑펑 눈물을 쏟아 냈다.

“저 아까 화낸 게 아니라요……. 선배님이 저는, 저한테는 맨날…….”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려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울던 정우진이 무릎 사이로 다시 고개를 묻으며 울기 시작했다. 계속 무슨 말을 하고 있기는 한데, 우는 소리 때문에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것보다 건물 안이라 그런지 정우진의 우는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커다랗게 울리고 있었다.

“야, 너 일단…….”

“흐엉…….”

“우, 울지 좀 말고……. 잠깐만, 일단 일어나 봐. 너 여기까진 도대체 어떻게 온 거야? 아까 택시 타고……. 아니, 쉿. 쉿. 야, 일단 조용히 해 봐. 쉿. 쉬잇!”

내가 손을 입에 대고 계속 쉿 소리를 내자 정우진이 입을 꾹 다물고 헐떡거렸다. 나는 그런 정우진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울지 마.”

“윽.”

“너 지금 시간도 늦었는데, 여기에서 이렇게…….”

속삭이듯 작게 말하고 있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나는 사색이 된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봤다.

“형, 무슨 일이야? 누구 왔어?”

정우진이 우는 소리에 결국 애들이 다 깬 건지, 세 명이 동시에 거실로 나왔다. 하얗게 질린 내 얼굴을 보며 심각한 상황이라고 생각했는지, 이진혁은 금방이라도 어딘가에 전화할 듯 핸드폰까지 손에 들고 있었다.

하지만 곧 내 앞에 있는 게 정우진이라는 걸 확인하자, 세 명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질리기 시작했다.

당황하는 애들을 보고 있자니 덩달아 나까지 놀라서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그 와중에도 정우진은 계속 히끅히끅하면서 울기만 했다.

그때, 맞은편 현관문 안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도대체 이 늦은 시간에 누가…….”

낯익은 아주머니의 목소리에 나는 반사적으로 정우진의 손목을 잡아당겨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려 했다. 그럼과 동시에 맞은편 현관문이 열리면서 막 잠에서 깬 것 같은 아주머니가 나오다가 나를 바라봤다.

“안녕하세요.”

“아, 응……. 아니, 자는데 자꾸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서……. 누가 우는 거 같기도 하고.”

“아……. 저 아는 사람이……. 이제 안 울 거예요.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그래요, 나도 혹시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서 나온 거라……. 아무튼 잘 자요.”

“네, 주무세요. 죄송합니다.”

연신 사과하며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닫고 고개를 돌렸다. 정우진은 신발도 벗지 않고 거실 위에 올라서서 눈가를 비비적거리면서 훌쩍거리고 있었다.

“…….”

애들은 거실 구석탱이에 모여서 하나같이 짜기라도 한 듯 입을 벌린 채 미어캣처럼 옹기종기 모여 우는 정우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흑……. 흐윽.”

“…….”

“히끅.”

“…….”

이게 혹시 꿈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잠깐 현실 도피를 하던 나는 몇 번 작게 심호흡을 한 뒤, 일단 애들한테 들어가라고 손짓을 했다. 그러자 세 명이 동시에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도둑놈들처럼 살금살금 방 안으로 들어갔다.

“일단 신발 벗어.”

“흐윽…….”

“그만 좀 울고…….”

“죄송해요…….”

징징 울면서 신발을 벗는 정우진을 기다려 주다가 데리고 욕실로 들어갔다. 조금 전에 씻어서 그런지 거울 끄트머리가 아직도 조금 뿌옜다. 나는 맨발로 욕실 안으로 들어갔는데, 그 와중에도 정우진은 슬리퍼까지 야무지게 챙겨 신더니 코맹맹이 소리로 말했다.

“양말 다 젖었어…….”

“아, 방금 씻어서……. 아니, 하……. 환장하겠다, 진짜. 새 거 줄게, 양말.”

“선배님, 죄송해요. 제가…….”

“일단 세수 좀 해.”

“네…….”

손수 세면대 앞까지 데려다준 뒤, 수건을 챙기러 나가려는데 뒤에서 작게 비명 소리가 들렸다. 또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돌리자 정우진이 벽에 걸어 놨던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을 다 처맞고 있었다.

“뭐 해!”

“아니……. 아니, 물이…….”

“잠가, 빨리!”

내가 다급히 말하자 정우진이 그제야 물을 잠갔다. 하지만 이미 정우진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쫄딱 젖은 상태였다.

“세면대 여기 있는데, 그건 왜 틀어?”

“제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여기에 거품…….”

커다란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바들바들 떨면서 가리킨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바닥에 덜 씻긴 거품이 아주 조금 남아 있는 게 보였다. 그걸 황당한 눈으로 보다가 물었다.

“누가 너한테 청소하래?”

“아니……. 거품이 있어서, 그냥…….”

“물도 잘못 틀었으면 빨리 잠그지, 왜 그걸 다 처맞고 있어!”

답답해서 언성을 높이자 정우진이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덩달아 빽 소리쳤다.

“화내지 마세요! 잠그려고 했는데 선배님이 소리 지르니까 놀라서 그런 거잖아요!”

“아니, 화낸 게 아니라……!”

“저도 화낸 거 아니에요! 아까……! 그러니까 아까, 그렇게 말하고 간 거는, 화를 낸 게 아니라……. 화가 났던 건 맞는데, 선배님한테 화를 낸 게 아니라, 저한테는 자꾸 야, 라고 하면서 매니저 부를 때는……. 맨날, 준오라고 하고…….”

두서없이 주절주절 말하던 정우진이 울먹거리다가 또 울기 시작했다. 나는 이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아 넋이 나간 채 정우진을 보다가 되물었다.

“뭐라고?”

“왜 나만 맨날 야, 라고 하고…….”

“아니,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나한테는 맨날 야, 라고 하거나, 정우진이라고 하잖아요!”

“그게, 뭐!”

내가 고함을 지르자 정우진도 뭐라고 하려는 듯 숨을 크게 들이켜는 순간, 뒤에서 누가 내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잔뜩 흥분한 얼굴로 고개를 휙 돌리자 이진혁이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작게 타이르듯 말했다.

“형, 지금 늦어서……. 그렇게 소리 지르면 또 누가 찾아오지 않을까? 화장실이라서 방음도 더 안 될 텐데…….”

이진혁이 내 등 뒤쪽으로는 시선도 주지 않고 필사적으로 나만 보며 말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뒤늦게 정신이 들었다. 나는 몇 번 숨을 몰아쉬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았어. 너 일단 가서 강이 옷 좀 가지고 와 봐.”

내 말에 이진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방으로 들어갔다.

“…….”

“…….”

고개를 돌리자 정우진이 내 눈치를 보면서 훌쩍거리고 있었다. 그러자 또 불쌍해 보이기도 해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일단 젖은 건 벗고 강이 옷 입어.”

“네……. 선배님, 죄송해요.”

“……씻고 나와.”

조금 진정이 되자, 안 그래도 우느라 정신도 못 차리는 애한테 소리를 질렀던 게 마음에 걸렸다. 나까지 그렇게 소리를 지르면 안 됐던 건데…….

“형, 이거…….”

그때 김강이 자기 옷을 가지고 내게 다가왔다. 그걸 받으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옆에서 기웃거리던 유노을이 쭈뼛거리며 오더니 물었다.

“형, 우리 나가야 돼?”

“뭐?”

“나갈까?”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싶어 말문이 막혔다. 이진혁도, 김강도 전부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눈치였다. 나는 애들을 한 번씩 번갈아 가며 보다가 입을 열었다.

“어딜 나가, 이 시간에?”

“아니…….”

말을 제대로 하지 못 하고 머뭇거리는 걸 보니, 숨이 막히기 시작했다. 나는 몇 번이나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고, 숨을 뱉으며 마음을 진정시킨 뒤 변명하듯 말했다.

“쟤 술 마셔서 저런 거야.”

“아…….”

“세수만 하고 나갈 거야.”

“아…….”

“…….”

동태 눈깔로 아…… 소리만 해 대는 애들을 보고 있자니 욕밖에 나오지 않았다.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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