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9화 (144/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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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도대체 무슨 미친 짓거리일까?

결국 건물의 꼭대기 층까지 올라와 더 이상 도망갈 곳도 없어졌다. 잠겨 있는 옥상 문을 등진 채 숨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내 앞에 서 있는 정우진을 보며 말했다.

“언제까지 쫓아올래?”

“지구 끝까지요.”

계단을 너무 급박하게 빨리 올라왔더니 숨이 차서 몇 번 헐떡거리다가 조금 진정한 다음에 말했다.

“붕어빵이나 먹어. 너 먹으라고 사 온 건데, 박치기고 나발이고 그런 소리 좀 그만하고.”

“그거 하고 붕어빵 먹으면 안 될까요? 아니면 먹고 할까요?”

“주어를 좀 똑바로 해. 이상하게 들리잖아.”

앞에서 비켜 주지도 않을 것 같아서 그냥 문에 등을 기댄 채 그대로 주르륵 미끄러지듯 앉아 버렸다. 그러자 정우진이 급하게 겉옷을 벗으며 말했다.

“잠깐만 일어나 보세요. 그렇게 앉으면 엉덩이 차갑잖아요.”

됐다고 하려는데, 정우진이 내 말은 듣지도 않은 채 내 팔을 당겨 벌떡 일으켜 세우더니, 바닥에 제 옷을 돗자리처럼 깔았다. 그리고 그 위에 나를 다시 앉히며 자기도 옆에 다소곳하게 앉았다.

식은 붕어빵을 마저 먹으며 힐끗힐끗 옆을 봤다. 또 이상한 소리를 할까 봐 경계를 한 것인데, 정우진은 별말 없이 날 따라 다시 붕어빵을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시 조용해졌다.

난 원래 붕어빵을 먹을 생각도 없었고, 그냥 이걸 정우진에게 주고 다시 연습실에 가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까 두 개나 먹어 버렸다. 이제 하나밖에 남지 않은 붕어빵을 정우진에게 건넨 후, 빈 봉투를 꽉꽉 구겨서 주머니에 넣었다.

“그걸 왜 주머니에 넣으세요?”

“어? 쓰레기통에 버리려고. 왜?”

“저 주시면 안 돼요?”

그 물음에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다시 구겨진 종이봉투를 꺼내며 물었다.

“이걸? 왜?”

“제가 버릴게요.”

“내가 버려도 되는데…….”

정우진은 내 손에서 자연스럽게 종이봉투를 가져가더니 자기 옷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아까 받은 붕어빵을 반으로 갈라, 내게 한쪽을 줬다. 그냥 너 먹으려고 하려다가 왠지 어릴 때가 떠올라서 그냥 받았다.

내가 매일 먹을 걸 가져다줘서 그랬던 걸까? 매번 받아먹기만 해서 미안했던 건지, 뭔지 어렸던 정우진이 내게 사탕 하나를 줬던 적이 있었다. 투명한 비닐에 포장되어 있던 작고 하얀 사탕이었는데, 크기도 굉장히 작고 끄트머리에는 살짝 녹았다가 다시 굳은 흔적까지 보이던 것이었다.

설마 이런 걸 받을 줄은 몰랐던 터라 굉장히 놀라기도 했고, 고맙기도 하고, 감동적이라 잠시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데, 정우진이 사탕을 들고 있던 내 손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혹시 이 사탕이 정우진의 보물 같은 게 아니었을까? 하는 아무런 근거도 없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꼭 보물이 아니더라고 아끼던 것임에는 틀림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오래된 사탕을 굳이 녹았다가 다시 굳을 때까지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을 테니까…….

‘나 먹으라고?’

‘응.’

‘…….’

다시 한번 묻자 정우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시선은 사탕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대답하는 목소리에는 강단이 있었다. 정우진은 봉두난발이 된 머리를 세차게 끄덕이며 어서 먹으라는 듯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걸 보다가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해 주고 근처에 있던 돌멩이를 가져와 사탕을 살살 내려쳤다. 그러자 정우진이 화들짝 놀라서 물었다.

‘오빠, 그거 싫어해?’

‘아니, 나눠 먹자. 앗, 가루 됐다.’

돌멩이로 사탕을 몇 번 때리자 몇 조각으로 갈라지고 가루가 된 곳도 있었다. 나는 제일 큼지막한 조각을 정우진의 입에 넣어 주고 다른 조각을 내 입에 넣으며 말했다.

“맛있네.”

“네?”

어릴 적 일을 떠올리다가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소리가 나와 버렸다. 고개를 돌리자 정우진이 한 입 먹은 붕어빵을 든 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머리카락은 흐트러진 곳 없이 단정했고, 비쩍 말라서 뼈가 보이지도 않았으며, 옷도 깨끗했다.

그래도 손을 뻗어 머리를 정리해 주듯이 뒤통수와 정수리 쪽을 꾹꾹 누르듯 힘을 주며 쓰다듬었다. 그러자 정우진이 어깨를 움츠리며 나를 보다가 웃었다. 갑자기 왜 이러는지 물어보지도 않고 한참 웃고 있다가 내 어깨에 자신의 머리를 기대더니 붕어빵을 야금야금 먹기 시작했다.

덩치도 나보다 커서 남들이 보기에는 이상한 모습이겠지만, 어차피 여기엔 우리 둘밖에 없으니 아무 상관도 없었다.

“이대로 잠들고 싶다.”

정우진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나도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더 있고 싶었지만 이제는 정말 가 봐야 했다. 이래서 회사에서 연애 금지 조항을 만들었나 보다. 애인이 생기면 일도 제대로 안 하고 농땡이나 치고 정신을 딴 데 팔고 있으니까…….

“이제 내려가자.”

나는 들고 있던 붕어빵 머리 부분을 반으로 갈라 정우진의 입에 넣어 주고 나도 먹으며 말했다. 바닥에 널려 있던 옷을 팍팍 털어서 입혀 주고 계단을 내려가려는데 정우진이 지렁이처럼 굼뜨게 움직였다.

결국 한 층 먼저 내려가서 위를 보며 가만히 기다리다가 피식 웃었다.

“빨리 내려와.”

“내려가고 있어요.”

“빨리빨리 움직이라고.”

“그러다가 넘어지면 선배님이 책임지실 거예요?”

아까 계단을 두세 칸씩 성큼성큼 올라오던 놈이 할 말은 아니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며 갓 태어난 기린처럼 걷고 있는 정우진을 보고 있자니, 또 어릴 적 시절이 떠올랐다.

그땐 진짜 정우진이 갓 태어난 아기처럼 제대로 걷지를 못해서 내가 종종 업어 주고는 했었는데, 어쩐지 저 모습을 보니 한번 다시 업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업히라고 하려다가 계단에서 이러는 건 좀 위험할 것 같아서 관두긴 했는데, 기분이 좀 이상했다.

내가 정우진과 함께 있을 때 종종 불편한 느낌이 들거나 브레이크가 걸리는 건 혹시 이런 이유 때문일까? 물론 지금 우리는 이제 다 큰 성인이기는 했지만, 내게는 아직도 어릴 때의 모습이 더 크게 남아 있었다.

그래서 자꾸만 내가 저 어린애를 데리고 뭐 하는 짓인지, 하는 회의감이 밀려오기도 했고…….

“저 손 좀 잡아 주시면 안 돼요? 계단이 너무 가팔라서 넘어질 거 같아요.”

옆에 계단 손잡이도 있고 별로 가파르지도 않은데, 정우진이 또 개수작을 부렸다. 저렇게까지 뻔뻔하니 이제는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얼굴이 두꺼워도 보통 두꺼운 게 아니었다.

뭐라고 한마디 하려다가 또 유치한 말다툼이나 하게 될 것 같아서 그냥 한숨을 내쉬며 손을 내밀었다. 어차피 내가 뭐라고 하든 정우진은 이상한 논리를 펼치면서 결국 내 손을 기어이 잡고야 말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었다. 그러니 그냥 어지간한 건 원하는 대로 해 주는 게 내 정신 건강에도 좋았다.

“자꾸 꿈지럭거리지 마.”

“아, 네.”

손을 잡자마자 꽉 힘을 주고 꿈틀거려서 한마디 하니, 정우진이 웬일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빠르고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손가락 사이에 제 손가락을 넣어 깍지를 꼈다.

반사적으로 손을 빼내려고 했지만, 맞잡은 손이 생각했던 것보다 서늘해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 그러게 도대체 이 추운 날 왜 비상계단에서 만나자고 해 가지고……. 바닥이 차갑다고 겉옷까지 벗고 있었기 때문에 몸이 차가워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느릿느릿 거북이가 기어가듯 계단을 내려갔지만 결국 우리는 4층에 도착했다. 그사이 손이 조금은 따뜻해진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이제 손을 놓고 들어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눈이 따끔했다.

“왜 그러세요?”

한쪽 눈을 질끈 감고 반사적으로 손을 올리자 정우진이 걱정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먼지나 속눈썹 같은 게 눈에 들어간 것 같았다.

“아, 눈에…….”

“눈이요? 뭐 들어갔어요? 어디 한번 봐요.”

정우진이 내 뺨을 붙잡고 천천히 얼굴을 드는 게 느껴졌다. 별생각 없이 따끔거리는 눈을 보여 주려고 하다가 멈칫했다. 나는 화들짝 놀라서 정우진의 어깨를 밀어내고 두어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아니, 이제 괜찮아.”

“괜찮다고요? 눈도 계속 못 뜨고 있잖아요.”

“이건 그냥, 눈물이 좀 나와서 그런 거야. 아무튼 됐어.”

“좀 봐요.”

“아니, 됐다고.”

하필 이 타이밍에 눈에 뭐가 들어간다고? 꼭 누가 날 놀리는 것 같은 심정이었다.

분명 정우진은 눈을 봐 준다는 핑계로 이리저리 내 얼굴을 살피다가 눈 박치기인지 비비기인지 지랄인지, 그런 걸 할 게 분명했다. 무조건 ‘그런다’에 내 손모가지도 걸 수 있었다.

“그냥 보기만 할게요.”

“이제 괜찮아졌다니까?”

“그럼 한쪽 눈은 왜 계속 감고 있어요?”

“원래 가끔 윙크하는 거 좋아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정우진이 내 뒤를 졸졸 쫓아오며 잔소리를 해 댔다.

“왜 안 보여 주는 건데요? 눈물도 계속 흘리고 있잖아요.”

눈이 너무 아파서 눈물이 계속 줄줄 흘렀다. 눈가를 비비자니 안쪽이 아파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화장실이 보여서 얼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세면대에 물을 세게 틀어 거의 수영을 하듯 어푸어푸 거세게 세수를 했다.

온 사방으로 물이 튀고 옷이며 머리카락까지 다 젖은 다음에 고개를 드니, 벌겋게 충혈되어 있는 눈이 보였다. 거울 너머로 정우진이 내 뒤에서 약간 황당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얼굴도 보였다.

“……이제 진짜 괜찮아.”

세수를 하면서 빠진 건지 눈 안에서 자꾸 걸리적거리던 느낌이 사라졌다. 좀 진정이 되니 민망해서 헛기침을 하자 정우진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무슨 짓이라도 할까 봐 그러시는 거예요?”

“아니?”

정곡을 찔렸지만 늘 그랬던 것처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일단 우겼다. 내 말에 정우진이 다시 뭐라고 하려는 순간, 화장실 안으로 누군가가 들어왔다.

“아잇, 깜짝이야!”

빠른 걸음으로 들어오던 사람은 바로 유노을이었다. 유노을은 세면대 앞에 멀뚱멀뚱 서 있는 우리를 보더니 소스라치게 놀랐다가 정우진을 한 번, 그리고 나를 한 번 보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샤워했어?”

젖어 있는 내 모습은 누가 봐도 수상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조금 전에 그랬던 것처럼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태연스레 말했다.

“아니?”

“아니요?”

“…….”

그런데 내가 말하는 것과 동시에 정우진도 입을 열었다. 고개를 돌리자 정우진은 누가 봐도 빈집을 털다가 들킨 도둑놈 같은 얼굴로 당황해하고 있었다. 속으로 조졌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유노을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우리를 피해 멀찍이 돌아 화장실 안으로 들어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래, 나 화장실 좀 갈게…….”

“…….”

“…….”

씨버럴…….

나는 속으로 욕을 삼키며 조용히 정우진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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