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와 B의 사이-174화 (179/190)

174

스케줄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음악 방송, 음원 1위 기념으로 갑작스럽게 라이브 방송을 하기로 했다. 원래 예정에 없던 일이고, 시간도 꽤 늦었지만 수상 소감도 제대로 말하지 못해서 짧게라도 켜서 인사를 다시 하고 싶었다.

“아, 진짜 나 도대체 왜 그렇게 울었지? 인사도 제대로 못 했어.”

“나도 너무 놀라서 일단 형 달래기만 했잖아.”

다들 씻고 거실에 나와서 자리를 잡았다. 대충 로션만 바르고 밖으로 나오자 이미 자리를 잡은 애들이 아직도 상기된 얼굴로 그때의 일들을 말하고 있었다. 머리가 좀 덜 말라서 대충 손으로 털면서 소파 밑에 앉자, 라이브 방송을 위한 핸드폰 세팅을 끝낸 유노을도 내 옆으로 왔다.

다들 편한 차림으로 이진혁과 김강은 소파에, 나와 유노을은 소파 바로 밑의 바닥에서 앞의 탁자에 고정되어 있는 핸드폰 화면을 바라봤다. 이진혁은 소파 위에 다리를 올려서 양반다리로 앉아 있고, 유노을은 소파 밑에서 김강의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라이브 방송을 시작하자 모두가 짠 것처럼 화면만 보다가 유노을이 먼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시작했어?”

“지금 들어오고 계시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손을 흔들면서 인사하자 채팅창으로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화면이 너무 작아서 집중하지 않으면 잘 보이지는 않았다. 평소에 라이브 방송을 밥 먹듯이 하는 유노을답게 자연스럽게 진행을 하기 시작했다.

“일단 우리 인사, 인사.”

네 명이 다 같이 라이브 방송을 하는 건 엄청 오랜만이라 뚝딱거리다가 유노을의 지시대로 다시 인사를 했다.

“둘, 셋. 안녕하세요, 어나더입니다!”

동시에 말하자 유노을이 설레는 표정으로 물 흐르듯 말을 이었다.

“저희가 이렇게 늦은 시간에 방송을 켜게 된 이유는……. 여러분……. 저희들이 드디어, 데뷔 이래로 처음 1위를 했습니다. 와아아!”

다들 환호하며 박수를 치자 채팅창에도 폭죽이 터지는 이모티콘과 우는 표시, 축하한다는 글들이 빠르게 올라왔다.

12ab12

진짜 축하해 얘들아ㅠㅠㅠㅠㅠㅠ

강생이

나 눈물나ㅠㅠㅠ 미치겠어ㅠㅠㅠㅠ

보쌈족발세트

ㅊㅋㅊㅋ

우리나더

노래 진짜 넘 좋음ㅠㅠㅠㅠ

그걸 보고 있으니 이제야 조금씩 실감이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사실 무대에서부터 지금까지 계속 어안이 벙벙해서 사실감이 없는 상태였다.

“아니, 저희가 너무 놀라고……. 진혁이 형은 막 계속 울어서, 수상 소감을 제대로 말하지 못했더라고요. 감사하다는 말도 제대로 못 한 거 같고……. 그래서 숙소에 돌아오니 아쉬운 마음에 다시 인사드리고 싶어서 방송을 켰어요.”

유노을의 말에 울던 이진혁을 가장 옆에서 달랬던 김강이 웃으며 말했다.

“맞아, 진혁이 형 정말 엄청……. 막 추운 강아지처럼 발발발발발 떨면서 히끅히끅거리고, 진짜……. 아무튼 무지 울었어.”

“야, 그 정도는 아니었어. 그리고 벌벌도 아니고 발발은 좀 너무하잖아.”

“진짜 발발발발 떨었다니까? 그 치와와 알지? 치와와 겁먹어서 발발발발 떠는 거. 그런 것처럼 떨었다고. 숨도 계속 먹기만 하고 뱉지를 않는 거야. 숨넘어갈까 봐 무서워서 계속 숨 좀 쉬라고 그랬잖아.”

이진혁이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말했지만 본전도 찾을 수가 없었다. 이진혁이 말도 못 하고 놀라서 울던 모습이 떠오르자 좀 짠하기도 했지만, 치와와라고 하니까 웃기기도 했다.

하파타카차

ㅋㅋㅋㅋㅋㅋㅋ치와와ㅋㅋㅋㅋㅋㅋ

GG12

ㅋㅋㅋㅋㅋ아 웃프다ㅠㅠ 우는거 생각하면 너무 짠한데 또 웃기고ㅠㅠㅋㅋㅋ

강생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계절

근데 또 그렇게 울면서 노래는 잘부르고ㅠㅠ

“나는 그때 너무 좋아서 진짜 형이 우는지도 몰랐어. 나중에 막 뛰면서 돌아보니까 형이 엄청 울고 있는 거야.”

유노을의 말에 이진혁이 박수를 치면서 웃었다.

“야, 나는 막 울다가 고개 돌리니까 네가 방방 뛰면서 엄청 웃고 있는 거야.”

둘이 어린애처럼 웃으며 좋아하는 걸 보며 덩달아 웃고 있는데, 그런 나를 멀뚱멀뚱 보고 있던 김강이 물었다.

“서주 형, 근데 형은 어디에 있었어?”

“어?”

그 말에 웃다 말고 고개를 갸웃하자 유노을이 놀란 눈으로 나를 보며 탁자 밑으로 내 다리를 찰싹 때렸다.

“진짜 형 어디에 있었지? 나 왜 기억이 안 나?”

불과 몇 시간 전의 일인데도 기억이 잘 나지 않아서 잠깐 대답하기를 망설이고 있는 사이, 이진혁이 말했다.

“형은 옆에서 계속 다른 분들한테 인사하고 있던데.”

“형은 울면서도 볼 건 다 봤네?”

“다 봤지. 한순간이라도 놓칠 수 없지. 죽을 때까지 기억할 거야. 아무튼 서주 형은 내가 봤을 때, 그때부터 지금까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거 같아.”

이진혁이 정확하게 내 상태를 간파했다.

“맞아, 나 지금 약간……. 이 상황이 꿈만 같아. 그냥 현실이 아닌 거 같고.”

“형, 차 타고 오면서도 말도 안 했잖아. 계속 멍하고.”

“서주 형 약간 그런 거 있어. 모든 게 좀 느린 편이야. 이러다가 한 며칠 있다가 갑자기 밥 먹거나 씻을 때 뜬금없이 좋아할걸? 혼자 웃거나 소리 지르거나.”

“진짜. 이러고 나중에 다 잘 때 방에 들어가서 혼자 울 수도 있어.”

애들이 웃으면서 떠드는 걸 보고 있는데도, 아직까지 멍한 듯했다. 그래서 옆에서 그냥 별말 없이 웃고만 있는데, 채팅창을 확인하던 유노을이 내게 물었다.

“형, 아까 인사할 때 다른 분들 따라서 나갈 뻔했어?”

“어? 아……. 어, 나도 모르게 인사하면서 막 움직이다가. 그거 다 보셨대? 나 진짜 자연스럽게 다시 돌아왔는데.”

정신을 못 차리고 인사하면서 다들 나가기에 덩달아 따라 움직이다가 나도 같이 퇴장할 뻔했는데, 앙코르곡이 나오는 걸 듣고 정신을 차렸다. 나름대로 자연스럽게 돌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본 사람이 있나 보다.

보쌈족발세트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ㅋㅋㅋㅋㅋㅋㅋ

12ab12

서주야ㅠㅠ 엄청 화들짝 놀라면서 뛰어왔잖아ㅠ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강서주사랑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서주오빠 인사하면서 같이 퇴장하는거 이미 다 찍혀서 짤도 돌아다니고 있어요ㅠㅠ

강생이

아 귀여워

“와, 새삼 진짜……. 우리 아까 엉망진창이었구나. 노을이 없었으면 수상 소감도 말 못 할 뻔했어.”

이진혁의 말에 나도 덧붙였다.

“진혁이 너 없었으면 노래도 못 불렀을걸.”

이진혁이 앙코르곡을 부르고 있을 때도 나는 옆에서 넋이 나가 있었고, 유노을은 여전히 방방 뛰고 있었고, 김강은 팬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만 하고 있었다. 네 명이 어쩌면 이렇게 다 가지각색으로 행동을 했던 건지.

“우리 소감 좀 다시 말하자.”

“맞아, 이거 다시 해야 돼. 우리 못 한 말도 너무 많고, 지금 감사하다고 말씀드려야 할 분들도 엄청 많은데. 막내부터 해 보자.”

그 말에 김강이 주섬주섬 소파 위에서 무릎을 꿇더니 공손한 자세로 입을 열었다.

“진짜 너무 감사합니다. 저희가 1위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 여러분들 덕분이고, 또…….”

마치 미리 써 둔 글을 읽고 있는 것처럼 막힘없이 술술 나오는 말에 유노을이 내 귓가에 속삭였다.

“쟤 미리 준비해 뒀나 봐.”

“뭐 보고 읽고 있는 거 아니야?”

김강의 시선이 닿는 곳을 몇 번이나 확인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길고 긴 연설이 끝나자 그다음은 유노을이었다. 수상 소감을 말할 때처럼 흥분해서 두서없이 말하는 건 똑같았다.

유노을 다음 이진혁의 차례가 됐다. 김강처럼 청산유수도 아니고 유노을처럼 흥분한 것도 아닌 딱 그 중간쯤이었다. 또 우는 건 아닌지 혼자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그건 아니었다.

이진혁의 소감까지 말하고 마지막으로 내 차례가 됐다. 할 말은 이미 애들이 다 했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할까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더 열심히 활동하라고 주시는 상이라고 생각…….”

어디서 들어 본 것 같은 흔한 말이나 하고 있는데,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내가 말을 하다 말자 앞을 보며 조용히 박수를 치고 있던 애들이 동시에 나를 쳐다봤다. 시선이 너무 따가워서 마치 방송 사고를 낸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얼른 다시 말을 잇기 위해 도로 입을 열었다.

“생각하…….”

하지만 금방 다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목이 매여서 목소리가 잘 나오질 않았다. 왠지 눈시울이 점점 뜨거워져서 나도 모르게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는데,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를 보고 있던 유노을이 하늘을 나는 개라도 본 것 같은 표정으로 물었다.

“……형, 설마 울어?”

그 물음에 순간 등 뒤로 소름이 끼쳐서 나오려고 했던 눈물이 그만 쏙 들어갔다.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김강이 거친 손길로 내 어깨를 붙잡아 돌렸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경악하고 있는 얼굴이 보였다.

“형…….”

이진혁은 양손으로 입가를 가린 채 겁먹은 치와와처럼 발발 떨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나는 하, 하고 웃으며 손을 저었다.

“무슨 소리야? 울긴 뭘 울어?”

“…….”

“…….”

“…….”

강생이

헐.... 서주 진짜 울어?

mamma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2ab12

아ㅠㅠㅠㅠㅠ미친 나도 울어ㅠㅠㅠㅠㅠ

귤껍질

ㅠㅠㅠㅠㅠㅠ서주야ㅠㅠㅠㅠㅠㅠ

눈물을 흘린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렁그렁해진 것도 아닌 그냥 아주 잠깐, 정말 찰나의 시간만큼 눈가가 뜨거워졌을 뿐이다. 진짜로 울지도 않았고, 눈물이 난 것도 아닌데 애들은 마치 내가 울다가 기절이라도 한 것 같은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