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와 B의 사이-177화 (182/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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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일단 대답은 해 줘야 할 것 같아서 잠시 정우진이 다른 사람과 포옹을 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봤다. 하지만 생각을 해 보니 그냥 이유도 없이 이런 질문을 한 거 같지는 않아서 조금 더 자세한 상황을 물었다.

“왜 포옹을 하는 건데?”

“그러니까요.”

“뭐?”

“그냥……. 그냥 상상을 해 보세요.”

“……?”

혹시 술 마셨나? 술 냄새가 나나 가까이 다가가려다가 저번에도 이런 비슷한 상황에서 뽀뽀 당했던 기억이 나 멈칫했다. 낮게 헛기침을 하고 팔짱을 낀 채 다시 물었다.

“인사하는 거야, 아니면 바람 같은 걸 피우는 거야?”

처음에는 당연히 인사 차원에서 포옹하는 걸 물어보는 줄 알았는데, 분위기를 보면 왠지 후자 같았다. 내 물음에 정우진이 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되레 물었다.

“이유가 상관이 있어요?”

“당연한 거 아니야?”

“안는 행위는 똑같은데, 이유에 따라 달라진다고요?”

“……?”

너무 어이없다는 듯 되물어서 내가 틀린 말을 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혹시나 싶어 찬찬히 다시 생각해 봤지만 당최 정우진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다르지 않나?”

“왜요? 안는 건 똑같잖아요.”

“그래도……. 근데 그런 건 왜 물어봐? 네가 하고 싶은 말이 뭔데?”

갑자기 포옹 얘기를 왜 하는지조차 짐작이 가질 않았다. 아니, 생일 선물 주려고 만난 건데 분위기가 왜 이렇게 심각해진 거야? 하지만 요 며칠 정우진의 상태를 생각해 보면 그냥 지나가면 안 될 일 같았다.

“만약 제가 선배님 앞에서 다른 사람을 꽉 안았는데, 그냥 인사한 거면 괜찮다고요?”

“…….”

애초에 괜찮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었다. 왜 하필 인사를 꼭 포옹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냥 너무 반가우면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친한 사이면 악수를 하면서 인사하는 것만큼이나 서로 가볍게 안아 주는 게 특이할 일도 아닌데.

하지만 정우진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가볍게 대답할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 마음 같아서는 고개를 끄덕이고 싶었지만, 고민하는 척하다가 말끝을 흐렸다.

“음……. 상황에 따라…….”

“무슨 상황이요?”

“……친한 사이면 괜찮고, 아니면…….”

아니어도 사실……. 그냥 그 사람이 인사하는 방법이 그렇다면 딱히……. 별로 아무렇지도 않을 거 같은데. 혹시 스캔들이 날 수도 있으니까 여자면 좀 조심스러울지도…….

내 대답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정우진이 미간을 잔뜩 구겼다.

“그러니까 선배님 말은, 친한 사람이랑은 바람을 피워도 괜찮다는 거죠?”

“……?”

뜬금없는 말에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정우진을 쳐다봤다.

“갑자기 바람 얘기가 왜 나와? 우리 지금 안는 얘기하고 있었던 거 아니야? 포옹.”

“그러니까요.”

“뭔 소리야, 도대체? 아니, 나는 인사의 의미로 가볍게 포옹하는 건 괜찮다고 말한 건데, 갑자기 바람 얘기가 왜 나와? 그러는 사람들 많잖아. 그냥 서로 진짜 가볍게 살짝 어깨만 닿았다가 떨어지는 정도로 안는 거.”

진짜 술 마신 거 아니야? 결국 참지 못하고 슬쩍 상체를 정우진 쪽으로 붙이고 숨을 크게 들이켰다. 딱히 술 냄새는 나지 않는 거 같은데……. 혹시 몰라 이마까지 짚자, 움찔한 정우진이 내 팔을 살짝 뿌리치며 항의하듯 소리를 높였다.

“이렇게 그냥 넘어가려고 하지 마세요!”

“넘어가긴 뭘 넘어가? 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야? 아까부터 왜 그렇게 자꾸 횡설수설해?”

열은 딱히 없는 거 같은데 다시 보니 얼굴이 조금 붉어진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저건 표정을 보면 그냥 씩씩대느라 열이 오른 듯싶었다.

“안으면!”

“…….”

그때 정우진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놀라서 눈을 크게 뜨자 정우진의 표정이 금세 시무룩해졌다. 떨리고 있는 검은 눈에는 억울함이 가득했다.

“안으면 닿잖아요, 몸이…….”

“…….”

그렇겠지, 당연히…….

“냄새도 맡을 수 있고…….”

“……?”

“귀에 숨소리 같은 게 닿을 수도 있고……. 안 그래도 선배님은 귀도 약한데…….”

정우진이 중얼거리는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머릿속에는 물음표만 가득해졌다. 다른 건 그렇다 쳐도 냄새 얘기는 또 뭐고, 갑자기 귀는 무슨 귀?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 귀를 가렸다가 마치 벼락에 맞은 것처럼 퍼뜩 어떤 생각이 들었다.

독이 올라 잔뜩 부푼 복어처럼 서러움이 가득한 정우진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내 생각에 더더욱 확신이 들었다.

그래도 모르니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너 혹시…….”

“…….”

“우리 라이브 방송 보고 이러는 거야?”

“…….”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 침묵이 대답이었다. 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정우진을 보며 다시 물었다.

“거기서 내가 애들이랑 으쌰으쌰 하느라 안은 거……. 아니, 이걸 안았다고 표현하는 거 자체가…….”

“서로 안아 주자고 했잖아요!”

“…….”

분명 그런 거 같긴 한데……. 말문이 막힌 나는 잠시 입을 다문 채 정우진을 바라봤다.

뜻 모를 정우진의 행동들이 이제야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왜 보자마자 갑자기 안아 달라고 했던 건지, 자기가 다른 사람이랑 포옹하면 어떨 거 같으냐고 물어본 거라든지…….

그러니까 이게 다 질투…….

“아, 미친.”

질투라는 단어를 떠올리자마자 욕지거리가 나왔다. 나는 손으로 이마를 짚은 채 고개를 숙였다. 황당하기도 하고 뜬금없기도 했지만, 웃기기도 해서 자꾸만 입꼬리가 올라갔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몇 번이나 입술을 깨물었다가 고개를 들었다.

“야, 너는 무슨…….”

“우진이라고 부르세요.”

그 말에 우진이라고 하려다가 한숨이 터져서 잠깐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우진아. 걔들은 우리 멤버잖아. 그치?”

“같은 멤버랑은 그래도 된다고요?”

“……너 말을 자꾸 묘하게 하는데, 누가 들으면 내가 나쁜 짓이라도 한 것 같잖아. 그냥 서로 수고했다고 등 두드려 주면서 안아 준 것밖에 없는데.”

자꾸 주어를 생략해서 그런 건가? 이상하게 들려서 정정해 주자 정우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무슨 행동을 하든 자기만 떳떳하면 된다는 뜻이세요?”

“…….”

뭔 소리를 하는 거지, 도대체? 그냥 같은 멤버들끼리 수고했다고 안아 준 건데, 그렇게까지 복잡하게 생각해야 하나? 하지만 듣고 보니 틀린 말도 아닌 것 같아서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 아닌가?”

“나는 비록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았지만 취한 게 아니니 괜찮다?”

“……?”

“나는 다른 사람과 밥도 먹고 데이트도 하고 잠도 잤지만, 사랑하는 사람은 너니까 바람은 아니다?”

점점 극단적으로 바뀌는 예시들을 보며 나는 손을 들었다.

“잠시만. 잠시만, 내 얘기 좀…….”

“나는 사람은 죽였지만…….”

“잠깐만!”

도대체 고작 포옹이 왜 사람을 죽였다는 얘기까지 간 건지 모르겠지만, 결국 정우진이 이런 대화를 시작한 이유를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네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알겠어. 알겠는데, 난 진짜 다른 의도나 뜻이 있었던 게 아니라 애들끼리 너 수고했어, 다음에도 잘해 보자, 이런 뜻으로 그런 거야. 라이브 중인데 내가 뭐 다른……. 아니, 씨발……. 아니, 너한테 욕한 게 아니라……. 걔들은 진짜……. 하, 걔들을 데리고 이런 생각한다는 거 자체가 너무 좆같……. 아니, 진짜 가족이나 뭐 형제 같은 그런 거라고.”

말을 하다 보니까 갑자기 현타가 와서 다시 머리를 짚었다. 하필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리 멤버들한테……. 나는 황당해서 고개를 들고 물었다.

“야, 너는 무슨 질투를 우리 애들한테 해?”

“우리 애들이라고 하지 마세요!”

“그럼 걔들이 우리 애들이지, 남의 애들이니?”

“저한테 그런 애들 없어요!”

“뭐? 아니, 우리 애들이라는 게 그런……. 하.”

아까랑 똑같이 논리라고는 개뿔도 없는 말을 하고 있었지만, 어쨌든 정우진의 마음이 상했다는 건 알았다. 짜증은 나는데 할 말이 없으니 자꾸 꼬투리를 잡는 것 같아서 그게 또 좀 안쓰럽기도 했다.

내가 멤버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정우진은 확실하게 모를 수도 있으니 충분히 오해할 수도 있고…….

아니, 근데 이렇게 생각을 해도 좀 이상한 거 아닌가? 내가 다른 짓을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잠깐 서로 토닥거려 준 거밖에 없는데……. 나도 솔직히 억울하긴 했지만 더 말해 봤자 나만 손해인 거 같아서 기세를 한풀 꺾었다.

“알았어. 내가 잘못했어.”

“…….”

내가 사과를 하자 정우진이 입을 다물었다. 입술을 삐죽삐죽거리는 게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것 같았지만 내가 먼저 말했다.

“근데 변명하는 게 아니라 진짜 우리는 그런……. 걔들도 날……. 하. 우진아, 진짜……. 미치겠다.”

멤버들을 상대로 이런 말을 하는 것조차 너무 괴롭고 힘들었다. 내가 한숨을 내쉬자 정우진이 울먹거리는 소리로 말했다.

“저도 미칠 뻔했어.”

“그래, 알겠어. 네 마음은 내가 알겠어, 우진아. 근데 그런 거 아니니까 이상하게 오해하지 마. 그냥 서로 힘내자는 의미로 한 행동이고, 거기에 정말 다른 뜻도 없었어.”

“그럼 그냥 말로 하면 되잖아요……. 꼭 그렇게 서로 살을 만지면서 몸을 비비적거려야 돼요?”

“…….”

눈가가 벌게진 정우진이 원망하듯 하는 말에 말문이 막혔다. 정우진은 이상한 재주가 있었다. 저렇게 말하니까 내가 정말 애인을 두고 다른 사람이랑 쓰레기 같은 짓을 한 사람이 된 듯했다.

“……너 계속 이거 때문에 기분이 별로였던 거야?”

라이브 방송에서 애들이랑 안은 것 때문에?

황당했지만 그런 티를 내면 또 삐칠 것 같아서 최대한 무표정을 유지하며 물었다. 그러자 정우진이 입을 다물고 있다가 작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표정을 보니 왠지 다른 이유도 있을 거 같아서 한숨이 나왔다.

“지금 말해 봐, 그냥. 또 뭐 때문에 그런 건데?”

“아니에요, 이제 괜찮아요.”

“괜찮기는 뭐가 괜찮아? 하나도 안 괜찮아 보이는데.”

“아니에요…….”

더 작아진 목소리로 꿍얼거리는 걸 보고 있으니 마음이 복잡해졌다. 고작 멤버들이랑 포옹 좀 한 거 가지고 난리를 치는 게 이해가 되진 않았지만, 또 어떻게 생각해 보면 저렇게 여윌 정도로 마음고생을 할 때까지 혼자 참고만 있었다는 게 안쓰러웠다.

한편으로는 저런 일련의 행동들이 너무 애 같기도 하고, 너무 과한 거 같기도 하고……. 그럴 수도 있겠다 싶으면서도, 뭔가 좀 핀트가 어긋나는 거 같기도 하고…….

아무튼 진짜 복잡 미묘한 상태였다.

“말을 해 봐. 자꾸 그렇게 혼자 꿍해 있지 말고. 말을 해야 내가 알지.”

달래듯이 말하자 그제야 정우진이 입을 열었다.

“저 사실…….”

조심스럽게 운을 떼는 걸 보며 나는 마치 처음 말문을 뗀 아기를 응원하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혼자 있어서…….”

“내가 바빠서?”

“네……. 그리고 연락도 잘 안 될 때도 있고…….”

“…….”

내 응원에 화답하듯 정우진이 눈꼬리를 축 늘어뜨리고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걸 꺼내기 시작했다. 발음이 다 뭉개질 정도로 작은 소리로 웅얼거리고,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뜨릴 것처럼 서러운 표정으로 힐끗힐끗 내 눈치를 보며 끊어질 듯 말 듯 계속 말했다.

가만히 그 모습을 보다가 나는 참지 못하고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걸로도 모자라 양손으로 얼굴을 벅벅 비비면서 마른세수를 했다.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하던 말을 멈춘 정우진이 아까보다 훨씬 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왜 그러세요?”

“…….”

얼굴에서 손을 떼지 못한 채 나는 계속 그 자세로 가만히 있었다. 손가락 끄트머리에서 폭죽이 터지고 있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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