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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도 불편해서 액세서리는 하지 않는 편이었다. 스케줄이 있을 땐 어쩔 수 없이 하긴 하지만, 반지나 목걸이, 시계 같은 것은 물론이고 가방도 잘 들고 다니지 않았다.
특히 반지는 그중에서도 제일 불편했다. 손가락에 딱 맞기는 했지만 그래도 팔을 세게 휘두르면 괜히 빠질 것 같고, 손을 씻고 수건에 물기를 닦을 때도 찝찝하고……. 아무튼 여러모로 성가셨다.
그래도 계속 끼고 있다 보면 익숙해지지 않을까 싶어서 며칠은 불편함을 감수해 봤지만, 딱히 그런 것도 없었다. 원래 반지를 안 끼다가 이것만 끼면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까 싶어 여러 개를 껴서 더 그런 걸까?
반지가 빠질까 봐 걸을 땐 주먹을 쥐는 버릇도 생겼다.
“진짜 불편해 죽겠네.”
마치 손목이 꽁꽁 묶인 것 같은 느낌에 자꾸 신경 쓰여 하는 수 없이 정우진이 준 반지만 제외하고 전부 빼서 주머니에 넣어 버렸다. 밥 먹을 때만이라도 빼 놓고, 나중에 다시 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핸드폰이 진동했다.
[목소리 듣고 싶다..]
얘는 왜 혼잣말을 문자로 보내는 걸까? 뭐라고 답장을 보낼까 잠시 고민하다가 할 말이 딱히 떠오르질 않아 그냥 통화 버튼을 눌렀다.
-선배님!
신호음이 나오기도 전에 곧장 전화를 받은 정우진이 들뜬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목소리는 갑자기 왜?”
-왜냐니요? 이유가 어디 있어요, 그냥 듣고 싶은 거지. 아, 맞다. 선배님, 그거 아세요? 저희 베스트 커플상 후보래요. 오늘부터 투표한다고 하던데.
“…….”
별거 아닌 것처럼 하는 말에 순간 얼이 빠져 버렸다. 베스트 커플상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지? 설마 사귀는 게 들켰나? 어떡하지?
짧은 시간 동안 기자 회견을 하는 상상까지 하다가 퍼뜩 정신이 들어서 헛기침을 했다.
“오남자?”
-네, 오남자요. 저는 왠지 후보 될 줄 알았어요.
“아…….”
-목소리가 왜 그러세요? 선배님은 안 좋으세요?
딱히 좋고 말고 할 게 있나? 물론 상을 준다니 기쁘기는 했지만, 그게 왜 하필 베스트 커플상인 건지……. 내가 정우진과 아무런 사이가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찝찝하지 않을 텐데, 아무 사이도 아닌 게 아니라서 문제였다.
“근데 투표면 우리가 상 못 받을 수도 있는 거 아니야?”
-그렇기는 해요. 근데 후보 보니까 저희가 받을 거 같은데요?
“그 정도야?”
-네, 프로그램도 엄청 잘됐고……. 저희 갈 때 커플룩 입을까요?
나는 지금 혹시라도 이상하게 보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을까 봐 걱정이 돼 죽겠는데, 정우진은 소풍 가는 어린애처럼 마냥 신 나 보였다. 커플룩이라니? 진짜 제정신인가?
당황해서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어차피 갈 때 슈트 입을 거잖아요. 커플룩이 부담스러우면 일단 반지 끼고, 넥타이핀 같은 거라도 맞출까요? 선배님, 반지는 끼실 거죠? 그쵸?
“…….”
만약 정우진이 내 앞에 있었다면 나는 또 이 새끼가 술을 마신 건 아닌지 얼굴을 들이밀고 냄새를 맡았을 것이다. 너무 황당한 말이라 장난인 것 같았지만, 목소리를 들으면 정말 진심인 것 같아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하지 마.”
-왜요? 넥타이핀 정도는 괜찮지 않아요?
“뭐가 괜찮아? 진짜 미친 거 아니야?”
-어차피 베스트 커플상 받으러 나왔는데, 뭐 어때요? 그리고 저희 생일도 12월이니까 탄생석도 같잖아요. 혹시 누가 물어보면 그냥 탄생석으로 만들었다고 하면 되지…….
듣다 보니 그럴듯한 소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못 들켜서 안달인 걸까? 이러다가 누가 이상한 낌새라도 알아채면 어쩌려고.
-그럼 커프스는요?
“넥타이핀이나 커프스나 뭐가 달라?”
-뭐가 다르냐니요? 당연히 다르죠. 일단 제가 사 둔 거 있으니까 한 번 봐보세요. 사진 찍어서 보내 드릴게요.
“뭐라고? 사 놨다고?”
눈을 크게 뜨고 되묻는데 핸드폰이 진동했다. 이미 사진도 찍어 둔 건지 여러 각도에서 찍은 넥타이핀과 커프스 버튼 사진이 여러 장 전송되었다.
“…….”
휙휙 넘기면서 보고 있는데, 갑자기 마음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왜냐면 진짜 예쁘긴 예뻤기 때문이다……. 그리고 별로 커플 아이템처럼 보이지도 않고. 정우진 말대로 우리는 생일도 같은 달이라 혹시라도 누가 물어보면 탄생석이라는 변명도 있고…….
“…….”
-예쁘죠? 어때요? 네?
“…….”
-네? 네? 네?
경박한 목소리로 자꾸 되묻는 말에 정신이 들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흔들면서 말했다.
“아, 좀 그래. 아무튼 이건 다음에 하자.”
-네? 다음이요? 다음 언제요? 다음에 또 커플상 못 받으면요?
“그럼 어쩔 수 없지.”
하마터면 넘어갈 뻔했지만,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이잉, 하고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정우진이 투정을 부렸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였다.
단호하게 거절하면서 마음을 다잡았지만, 도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다.
“와, 진짜 엄청 잘 어울린다.”
“…….”
나는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에 식은땀을 흘렸다.
“진짜 예쁘다. 진짜 멋있다. 진짜 완전 엄청나게 귀여워요.”
옆에서 정우진이 양손으로 엄지를 치켜세우며 부산스럽게 난리를 쳤다. 그걸 보면서 나는 정말 이게 잘하는 짓인가 회의감이 들었다.
정우진과 나는 현재, 방송 연예 대상 시상식에 참여하기 위해 방송국에 와 있는 상태였다. 아직 시작 전이라 대기실에 잠시 있는 중인데, 거울을 보니 머릿속이 하얗게 표백됐다.
방송국에 들어올 때 레드 카펫에서 사진도 무슨 정신으로 찍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우리는 특별할 것도 없이 둘 다 평범한 검은색 슈트를 입었다. 정우진이 가지고 온, 탄생석인 터키석이 박힌 넥타이핀과 커프스 버튼을 제외하면……. 나는 넥타이핀을, 정우진은 커프스 버튼을 착용했는데 색깔도 하필이면 맑은 하늘색이라 검은색 슈트에서 단연코 먼저 눈에 띄었다.
분명히 안 하려고 했는데,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걸까?
“선배님, 오늘 진짜 너무 예뻐요.”
“…….”
“왜 이렇게 예쁠까? 진짜 말도 안 돼.”
사색이 된 얼굴로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보다가 나는 호들갑을 떨고 있는 정우진을 바라봤다. 내 옆에 딱 붙어서 발까지 구르면서 난리 블루스를 추던 정우진이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평소에 후줄근한 옷을 입고 모자에 마스크까지 해도 연예인인 게 숨겨지지가 않았는데, 이렇게 대놓고 꾸미니까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콩깍지가 씌었거나, 사귀는 사이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객관적으로 봐도 그랬다.
활동을 할 때도 의외로 슈트를 입은 적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좀 새삼스러운 느낌이기도 했다. 난리를 치면서 여러 각도로 사진을 찍고 있는 정우진을 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만 찍어.”
“같이 찍을래요?”
“사진 좀…….”
내 뒷모습을 찍고 있던 정우진이 금세 내 옆으로 다가와 핸드폰을 들었다. 그러더니 머리통을 내 어깨 쪽으로 기울여 기댄 다음 사진을 찍었다.
찰칵, 찰칵, 찰칵, 찰칵.
“…….”
찰칵, 찰칵.
“……야, 도대체 몇 장을 찍는 거야? 연속 촬영이야?”
“여기 보고 웃어 보세요.”
“…….”
나는 일단 정우진이 하라는 대로 웃었다.
“이번에는 정색.”
정색도 했다.
“울상.”
울상도 하고.
“입술 삐죽.”
삐죽도 하고…….
액정에 비치는 정우진의 얼굴이 너무 행복해 보여서 혼란스러운 마음도 조금씩 진정이 되고 있었다.
쪽.
하지만 입술을 삐죽하는 순간 예고도 없이 입술에 소리 나게 뽀뽀한 정우진 때문에 다시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설레거나 떨려서가 아니었다.
“너 도라이니?”
나는 대기실에 우리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돌발 행동을 한 정우진은 옆에서 뭐가 그렇게 웃긴 건지 박장대소하고 있었다. 그걸 보며 등짝을 후려치려던 그때, 벌컥 문이 열렸다.
“이제 들어가실게요!”
“아, 네.”
“하하하.”
놀라서 황급히 대답하는 순간까지도 정우진은 계속 웃고 있었다. 정말 조금만, 진짜 1, 2초만 늦었어도 뽀뽀하는 게 들켰을지도 모른다. 나는 정우진과 함께 대기실을 나서며 팔꿈치로 그의 옆구리를 퍽퍽 때렸다.
“진짜 조심 좀 해.”
“알았어요. 근데 아무도 없었잖아요.”
“내 옆으로 한 발자국 이상 다가오지 마.”
“에엥, 그럼 그냥 죽을래요.”
어깨를 축 늘어뜨리는 정우진을 피해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정우진은 그런 내 뒤를 빠르게 쫓아오며 계속 주절주절 떠들었다.
“반 발자국 안 돼요?”
“어, 안 돼.”
“반의반 발자국은요?”
“반 발자국도 안 된다고 했는데, 반의반 발자국은 당연히 안 되지. 너 수학 못 해?”
“네, 그래서 잘 모르겠어요.”
수학을 못 하는 정우진 때문에 우리는 결국 어깨가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로 시상식장에 도착했다.
***
지정된 자리에 앉아 축하를 하고, 박수를 치고, 카메라가 보이면 웃기도 하다 보니 MC가 다음 상을 호명했다.
“2022, 방송 연예 대상, 베스트 커플상.”
사실 정우진과 나는 이 상을 우리가 타게 될 것이라는 걸 사전에 살짝 언질을 받았다. 그래서 떨리지 않을 줄 알았는데, 등 뒤로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오두막집 남자들, 강서주, 정우진 커플. 축하드립니다.”
우리의 이름이 발표되자 주변에서 박수 소리가 들렸다. 정우진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놀란 표정으로 인사를 하며 시상대까지 올라갔다. 분명히 상을 받을 줄 알고 있었는데, 심장이 정신없이 뛰고 있었다. 놀란 표정도 가짜로 지어낸 게 아니라, 진짜로 놀라서 나온 모습이었다.
“강서주, 정우진 커플은 오두막집 남자들에서 호흡을 맞췄는데요. 두 분 커플의 귀엽고 달달한 로맨스에 시청자들도 가슴 졸이며 열광을 했습니다. 올해 가장 핫한 연인으로 선정되신 커플, 정말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두 분의 사랑 응원하겠습니다.”
시상대까지 올라가는 도중에 MC가 뭐라고 하는 소리조차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내가 너무 놀란 상태라는 걸 정우진도 느낀 건지 나를 살피며 내 걸음 속도에 함께 발맞춰 걸었다.
꽃다발과 트로피까지 받고 마이크 앞에 서자 수많은 사람들과 밝은 조명이 보였다. 그 거대한 해일 같은 광경에 순간 압도되어 말문이 턱 막혔지만 빠르게 정신을 차리며 입을 열었다.
“어……. 우선 정말……. 상을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베스트 커플상……. 받을 줄 몰랐는데…….”
내가 계속 버벅거리자 가만히 나를 보고 있던 정우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게 마이크에도 작게 잡혀서 휙 고개를 돌리자 정우진이 꽃다발로 얼굴을 가리며 어깨를 들썩거리고 있었다.
그걸 보니 나까지 웃음이 터져서 고개를 돌리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네, 지금 두 분이 베스트 커플상을 받으셔서 굉장히 행복하신가 봅니다.”
MC의 말에 사방에서 웃음이 터졌다. 나는 가까스로 터지려는 웃음을 참고 다시 입을 열었다.
“이렇게 정우진 씨와 함께 상을 받을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고, 행복한 마음이고요.”
이제 좀 웃음이 멈춘 건지 정우진이 슬쩍 꽃다발을 내리는 게 보였다. 내가 옆에서 툭툭 건드리자 정우진이 얼른 고개를 내 옆으로 기울이며 말했다.
“저도 선배님과 함께 베스트 커플상을 받을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고 기쁩니다.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고, 먹지 않고 마시지 않아도 배가 부르고,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주절주절 길게도 말하는 걸 듣고 있자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졌다. 하지만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는데 그만하라고 눈치를 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옆에서 혼자 초조해하고 있는데, 정우진이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했다.
“그리고 저희 멤버들과 대표님께도 너무 죄송하고…….”
“아, 멤버들과 대표님께요? 왜 죄송하시죠?”
듣고 있던 MC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나도 궁금해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정우진을 바라봤다.
“저희가 원래 연애 금지인데……. 이렇게 활동 중에 선배님과 만나게 돼서, 그저 죄송하다는 말밖에는 드릴 말씀이 없네요.”
“아……. 세상에, 그렇군요.”
정우진의 헛소리에 시상식장이 다시금 웃음으로 가득 찼다.
“그쵸, 선배님?”
나를 보며 묻는 말에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 네. 저도 멤버들과 대표님께 너무 죄송하고……. 진짜, 진짜로……. 며, 면목이 없고……. 팬들한테도 죄송…….”
말을 하다 보니까 정말로 면목이 없어져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내가 눈에 띄게 당황하자 정우진이 내 어깨를 부여잡은 상태로 내 쪽으로 몸을 돌리더니, 그대로 고개를 숙였다.
나는 내 어깨에 이마를 붙이고 웃고 있는 정우진을 내버려 두고 대국민 사과를 했다.
“정말, 클래스……. 그리고 쉐도우분들께도 죄송하고……. 제가 잘할게요……. 잘 살겠, 아니. 아니, 잘 지낼게요. 감사합니다.”
MC가 뭐라고 하고 사방에서 웃는 소리가 터졌지만, 나는 지금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 내 상태를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정우진이 웃다가 눈물까지 고인 얼굴로 갑자기 나를 끌어안았다.
“앞으로 잘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우진이 나를 안은 상태로 짧게 말했다.
“선배님도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하세요.”
그 말에 나는 혼이 빠진 얼굴로 모든 걸 포기한 채 정우진에게 끌어 안겨 허허 웃었다.
“네……. 예쁜 사랑 하겠습니다…….”
“네, 귀여운 커플의 예쁜 사랑을 저희도 응원하겠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우리는 그렇게 박수갈채를 받으며 시상식대에서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