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화
집에 가자는 태운의 말투는 상냥했지만, 여전히 걱정되었다. 내가 가이드로 각성했다고 해도 가이딩의 정확한 정의도 방법도 몰랐기에 태운이 실망할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저 정말 가이딩할 줄 몰라요….”
“괜찮아요. 아까처럼 손만 잡고 있어 주면 돼요.”
태운이 살며시 내 손을 잡자, 다시금 그의 무겁고 날카로운 기운이 느껴졌다.
“느껴지죠?”
내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태운은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내 손을 자기 목덜미에 둘렀다.
“제가 지금 여유가 없어서 이대로 집으로 이동할까 해요. 꽉 잡고 있어요.”
태운은 그 말을 끝으로 내 몸을 안아 들고 허공에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버둥거렸지만, 그는 내게 눈을 감고 있으라고 말했다.
이대로 떨어질 거 같은 느낌에 나는 태운을 꽉 껴안은 채 눈을 감았다.
앞이 보이지 않아도 이동 속도가 빠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옷과 머리가 바람에 강하게 흩날렸다. 태운은 내 몸이 딱딱하게 굳은 걸 눈치챘는지,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일 같이 센터에서 매칭 테스트 받아요. 분명 우리 매칭률 높을 거예요.”
나는 답하지 않은 채 고개만 끄덕였다. 태운은 그런 내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도착했다는 말과 함께 나를 조심스럽게 지상에 내려놓았다.
눈을 살짝 뜨자, 고개가 뒤로 꺾일 만큼 높다란 고층 아파트가 눈앞에 있었다. 태운은 내 손을 잡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집은 최상층에 있는 펜트하우스였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 처음 보는 고급 아파트의 내부가 눈앞에 펼쳐졌다. 나는 쉴 새 없이 주변을 둘러봤다. 그런 내 모습을 태운이 웃으며 바라봤다.
“편안하게 앉아 있어요.”
“네.”
태운의 말에 나는 거실 중앙에 있는 소파에 살며시 앉았다. 당연하다는 듯이 내 옆에 앉으며 태운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제 소개를 안 했네요. 현태운이에요. 나이는 23살이고요.”
그가 소개하지 않아도 현태운이란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이 또한. 태운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제일 유명한 사람이기도 하니 말이다.
“저도 23살이에요.”
“나이도 같다니까 더 좋네요.”
“저도요. 저… 이제 어떻게 하면 될까요?”
“아까처럼 손잡아 주면 돼요.”
태운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의 말에 나는 말 잘 듣는 아이처럼 조심스럽게 손을 잡았다. 태운은 내 손을 잡은 채로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대더니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오늘 너무 피곤해서 그러는데, 잠깐 눈 붙여도 될까요?”
게이트에서 마물과 전투했으니 당연히 힘들고 피곤할 것이다.
“네. 편히 쉬세요.”
태운은 그대로 고개를 내리더니 내 어깨에 기댄 채 잠들었다.
느낌이 이상했다.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인데 왜 이리도 편안한 걸까. 아마 태운의 배려가 느껴지는 다정한 어조와 행동 때문일 것이다.
나는 태운과 맞잡은 손을 바라봤다. 누군가와 이렇게 손을 잡은 것도 오랜만이었다. 맞닿은 살이 부드럽고 따뜻했다.
태운의 체온을 느끼며 소파 등받이에 머리를 기댄 채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아이같이 곤히 자는 모습이 마물과 싸울 때와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한동안 태운의 잠자는 얼굴을 보다, 나 또한 안도와 피곤을 느끼며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천천히 감았다.
***
“신의 씨, 아침이에요. 일어나세요.”
눈을 뜨자, 제일 먼저 태운의 말끔한 얼굴이 보였다. 그 모습에 나는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아무래도 가이딩하다가 잠든 것 같았다.
“죄송해요. 깜박 잠들었나 봐요.”
“그럴 수도 있죠. 미안해하지 마요. 깨울 수도 있었는데 너무 곤히 자고 있어서 안 깨웠어요.”
“그래도요. 빨리 나갈게요.”
“우선 아침부터 먹어요. 아침밥 차려 놨어요.”
아침이라는 말에 이곳에서 하루를 보냈단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무단결근한 걸 깨달았다. 나는 곧장 핸드폰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런 내 상황을 모르는 태운은 내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밥 먹고 같이 센터 가요.”
태운의 말에 어제 함께 매칭 테스트를 받으러 가자고 했던 말 또한 떠올랐지만, 지금은 공장이 우선이었다.
“저 어제 결근해서 먼저 일터에 연락해야 할 거 같아요….”
“매칭 테스트 받고 일터에 연락하는 건 어때요? 가이드 각성 확정받으면 더는 일터에 안 가도 되고요.”
태운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이미 공장에 결근했고, 그의 말대로 내가 가이드라면 더는 공장에서 일할 수 없었기에 매칭 테스트 결과를 받고 공장에 연락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가이드가 아니어도 결근할 핑곗거리가 생기고 말이다.
“그럼 매칭 테스트 받고 공장에 연락해도 될까요?”
“당연하죠.”
결국 태운의 손에 이끌려 다이닝 룸으로 갔다. 긴 식탁에 2인분의 식사가 정갈하게 차려져 있었다.
“직접 만드신 거예요?”
“아니요. 일 봐주시는 아주머니가 계세요.”
이렇게 넓은 집이라면 가사 도우미가 있는 게 당연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태운이 빼 주는 의자에 앉았다. 어제부터 느낀 거지만, 태운은 배려가 몸에 밴 사람인 것 같았다.
태운은 나와 대화를 나누며 편안하게 식사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그 덕분에 식사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간단하게 씻고 태운이 빌려준 옷을 입자, 센터에 갈 준비가 끝났다. 태운을 따라 내려간 로비에는 태운의 전속 담당자가 차를 대기한 채 기다리고 있었다.
태운은 그를 김진호라고 불렀고, 그가 나도 함께 담당하게 될 거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담당자님의 차를 타고 에스퍼·가이드 연구 센터로 향했다. 태운은 뒷좌석에서 나와 함께 앉았다.
담당자님께 미리 이야기를 해 두었는지, 어제 일을 짧게 전한 태운이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더니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손잡아도 돼요?”
나는 운전석에 있는 담당자님을 흘낏 봤다. 다행히 운전에만 신경 쓰고 있었다.
“네.”
내가 작게 답하자, 태운은 내 손을 스스럼없이 잡으며 엄지손가락으로 내 살을 문질렀다.
“이번에 매칭률이 높으면 같이 살아야 할 거예요.”
나는 태운과 함께하는 일상을 생각해 보았다. 그를 만난 지 하루밖에 안 되었지만, 좋은 사람이란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함께 사는 건 어려울지도 몰랐다. 나도 태운도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성급하단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내 생각을 방해하듯 차가 멈추며 센터에 도착했다는 담당자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신의 씨, 가요.”
“네.”
나는 긴장감에 마른침을 삼키며 태운과 함께 센터 안으로 들어갔다. 센터는 외관도 내부도 병원과 비슷했다. 온통 하얗고 소독약 냄새가 옅게 풍겼다.
태운은 내 손을 잡은 채 능숙하게 센터 복도를 걸어갔다. 서울 지부 센터는 처음이었기에 안을 살피며 태운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긴장하지 말아요.”
“네.”
태운에게는 ‘네’라고 답했지만, 여전히 긴장되었다. 그렇게 태운과 도착한 곳은 5층 501호 연구실이었다. 안으로 들어간 태운은 흰 가운을 입은 연구원에게 물었다.
“윤 박사님 어디 있어요?”
“…윤 박사님 이틀 전에 해외로 파견 나가셨어요. 공지했는데 못 보셨어요?”
“언제 오는데요.”
“보름 뒤에 오셔요.”
연구원의 말에 태운은 짧게 혀를 차더니 말을 이었다.
“지금 매칭 테스트 할 수 있어요? 어제 이분이 게이트에서 각성했는데 파장이 잘 맞아서요.”
“지금요? 전담 박사님 아니면 안 되는 거 아시잖아요.”
연구원의 말에 태운이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더니 내게 들리지 않게 무언갈 속삭였다. 그러자 연구원이 살짝 인상을 쓰더니 체념하듯 말했다.
“알겠어요. 대신 윤 박사님 오시면 제대로 다시 매칭 테스트 받으셔야 해요.”
태운이 고개를 끄덕이자 연구원이 우리를 매칭 테스트실로 안내했다. 취조실 같은 느낌의 방이었다. 흰 방에 의자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그런데 일반 의자가 아니라 특이한 구조의 의자였다.
나와 태운은 의자에 앉은 채 맞은편 유리 너머로 보이는 연구원의 지시를 받았다. 연구원은 10분간 가이딩 상태를 유지하라고 했다. 그 말에 태운은 어제처럼 하면 된다며 손을 내게 내밀었다. 나는 손을 잡고 태운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리고 불길한 생각을 애써 지우기 위해 물었다.
“제일 높게 나온 테스트 결과가 몇 퍼센트예요?”
“23%였어요.”
“만약 높게 안 나오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그럴 리가 없잖아요.”
태운은 안심하라는 듯 웃으며 말했다. 그 웃음에 마음이 조금은 안도되었다.
머지않아 방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연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확실히 각성하신 건 맞는 거 같네요. 테스트 시작하겠습니다.
테스트를 시작한다는 말에 나는 태운의 손에 집중했다. 그런데 어제와 달리 귀가 먹먹하고 속이 울렁거렸다. 그리고 1분 정도 지났을까, 연구원의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 이게 뭐야?
뭔가 잘못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태운의 손을 더욱더 꽉 잡았다.
- 수치가 이상해요.
연구원의 말에 걱정되어 태운을 올려다보자, 그는 걱정하지 말라고 재차 나를 달랬다. 나는 그의 위로를 받으며 가이딩에 집중했다.
그렇게 5분 정도 지났을까. 연구원의 상기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매, 매칭률 83% 나왔어요!
연구원의 말에 태운은 그럴 줄 알았다며 환한 미소를 지은 채 날 껴안았다.
“역시 높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나도 어렴풋이 태운과 매칭률이 괜찮게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83%라니. 일반인인 내가 봐도 높은 수치였다.
태운은 여전히 나를 안은 채 연구원에게 물었다.
“가이드 등급도 지금 확인할 수 있나요?”
- 그건 안 돼요. 등급 테스트는 윤 박사님이 하셔야 해요.
“뭐, 보나 마나 S급이지.”
마지막 말은 태운의 혼잣말에 가까웠다. 이내 연구원이 다시 말을 이었다.
- 매칭률이 너무 높게 나와서 그러는데, 한 번만 더 재테스트할 수 있을까요?
태운은 번거롭다는 얼굴을 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그렇게 다시 매칭 테스트를 했다.
재테스트할 때는 다른 연구원들도 들어와 매칭 수치를 확인했다. 하지만 결과는 같았다. 연구원 모두 놀랐고,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연구원뿐만 아니라 소식을 듣고 각성자와 직원들까지 찾아와 축하하는 분위기였다.
듣자 하니 협회에서 기록한 제일 높은 매칭률이라고 했다.
그 말에는 나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금껏 평범한 생활을 해 왔기에 내가 S급인 태운과 매칭률이 높을 것이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내 말이 맞죠? 이제 신의 씨는 제 전속 가이드예요.”
태운은 활짝 미소 지으며 기쁘다는 듯 빈틈없이 나를 꽉 껴안았다. 나는 이 상황이 믿어지지 않았기에 넋 놓고 있었다. 그러다 자신을 안아 달라는 태운의 말에 기계처럼 그의 등 뒤로 손을 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