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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가이드는 이만 퇴사합니다-3화 (3/65)

03화

곧바로 가이드 등급 테스트도 받고 싶었지만, 태운의 전담 박사님께 받아야 한다는 말에 다음으로 미뤄졌다. 생각보다 센터는 절차에 깐깐한 거 같다.

사실 가이드 등급보다도 태운과의 매칭률이 궁금했던 터라, 일단 높은 수치를 확인하자 안심되었다. 윤 박사님이 오시면 매칭 테스트를 다시 받아야 했지만, 아마 결과는 다르지 않을 것이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태운과 함께 테스트실에서 나왔다.

시간이 벌써 점심때가 되었는데, 담당자님이 따로 일을 보러 가셔서 나와 태운은 센터 밖에서 식사하기로 했다. 다행히 태운은 차가 여러 대라 몇 대는 늘 센터에 주차되어 있다고 한다.

“신의 씨, 오늘 뭐 먹고 싶은 거 있어요?”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태운이 내게 물었다. 그의 낮은 목소리는 전보다 더 부드러웠다.

“저는 다 괜찮아요. 태운 씨는요?”

“저도요. 그러면 근처에 괜찮은 한식 전문점 있는데 그쪽으로 갈까요?”

“좋아요. 그런데 저 핸드폰이 사라졌는데, 혹시 보셨나요? 일터에 연락해야 하는데 안 보이네요.”

“저는 못 봤는데, 없어진 거예요?”

나는 난처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어제 도로에서 넘어졌던 일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그때 잃어버린 것 같다.

구역 분실물 센터에라도 가 봐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그런 내 생각을 태운이 끊었다.

“그런데 이제 핸드폰 사용 못 할 거예요.”

“왜요?”

“신의 씨는 이제 협회 소속이라서 일반인 때 사용하던 물건들은 더는 사용할 수 없어요.”

그간 일반인으로 살았기에 이런 규율이 있는 건 알지 못했다.

“그렇군요…. 그래도 찾을 방법이 없을까요? 사용하지 못해도 가지고 있고 싶어서요.”

사람들과 연락을 못 한다는 것도 걱정되었지만, 핸드폰에 어머니의 사진과 생전 그녀와 나누었던 문자들이 많았기에 아쉬움이 컸다.

“이전 핸드폰은 못 찾을 확률이 높지만, 센터에서 전용 단말기를 주니까 특정 기간 지나면 지인이랑 연락할 수 있어요.”

“알겠습니다….”

이대로 지인들과 연락할 수단이 끊길까 걱정되었는데 태운의 말에 걱정을 덜었다. 공장에서 나오더라도 반장님께 인사하고 나오고 싶었다. 하지만 단말기를 준다는 말에 안심하긴 했어도 여전히 잃어버린 핸드폰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 그런 내 마음을 느낀 것일까. 태운은 핸드폰 기종과 구별할 수 있는 특징이 있으면 알려 달라고 했다.

생각나는 대로 말해 주자마자 타이밍 좋게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나는 태운의 옆을 따라 걸으며 차로 향했다. 그런데 어디선가 담배 냄새가 훅 풍겼다. 냄새를 맡자마자 잔기침이 쉴 새 없이 나왔다.

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기관지에 문제가 생긴 탓이었다.

“왜 그래요?”

“제가 기관지가 약해서 담배 냄새 맡으면 이래요.”

나는 손으로 코와 입을 막은 채 주변을 둘러봤다. 주차장 안쪽에서 담배를 피우는 남자가 보였다. 내 시선을 따라 태운 또한 남자를 보았다.

“잠시만 여기서 기다리세요.”

태운이 남자에게 다가가 무어라 말을 건넸다. 멀리 있어서 내용은 들리지 않았지만, 남자가 놀라며 빠르게 담배를 끄는 모습을 보아 하니 아무래도 담배를 끄라고 말한 것 같았다.

다시 돌아온 태운은 나를 걱정하며 서둘러 자신의 차 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안심하라는 듯 말했다.

“센터의 모든 구역은 금연이에요. 이런 일 두 번 다시 없게 할게요.”

“고마워요, 태운 씨. 신경 써 줘서.”

“당연한 일인걸요. 그리고 걱정하지 말아요. 저는 담배 같은 거 안 피워요.”

조금 전 핸드폰도 그렇고 날 위해 곧장 남자에게 다가가 상황을 해결해 준 태운에게 고마움과 함께 마음이 작게 설렜다.

나는 태운의 옆모습을 흘끗 바라봤다. 그의 다부진 몸과 잘생긴 얼굴은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제부터 태운과 사는 것이다. 걱정도 되었지만, 기대도 되었다.

차에 탄 태운과 나는 그가 안내하는 한식 전문점으로 이동했다.

음식점은 회원제로 운영되는지, 먼저 온 사람들은 들어가기 전 하나같이 회원 카드를 내밀었다. 하지만 태운을 본 직원은 카드 없이도 곧장 우리를 프라이빗 룸으로 안내했다.

태운 덕분에 순조롭게 룸에 들어왔지만, 자리에 앉자마자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직원이 준 메뉴 페이퍼에는 처음 들어 보는 음식뿐이었는데, 설명이 모두 영어인 데다 가격은 아예 적혀 있지 않았다.

내가 고르지 못하고 있자, 태운이 하나씩 설명해 주었다.

“전 태운 씨가 추천해 주는 거 먹을래요.”

“그럼 제가 골라 드릴게요.”

메뉴를 고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스별로 음식이 나왔다. 직원이 고기를 구워 주는 서비스가 있었지만, 태운이 직접 구워 줬다.

“신의 씨, 많이 먹어요.”

“고마워요. 그런데 저도 고기 잘 구워요. 구워 드릴게요.”

내가 집게를 잡으려고 하자, 태운이 막았다.

“어제오늘 고생하셨으니까 제가 구울게요.”

“괜찮은데…. 태운 씨도 드시면서 하세요.”

“손이 안 비어서 그러는데, 신의 씨가 먹여 줄래요?”

태운의 말에 나는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내가 먹여 주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알겠어요.”

나는 적당히 구워진 고기에 소금을 찍어 태운의 입가에 대 주었다. 곧장 받아먹는 태운의 모습이 귀여웠다.

“맛있네요.”

“그렇죠? 태운 씨가 구워 줘서 더 맛있는 거 같아요.”

말주변이 없는 나였지만, 태운의 앞에서는 호감형이 되고 싶어 자꾸만 말이 많아졌다.

“신의 씨가 칭찬해 주니까 기분 좋네요. 많이 먹어요.”

“네.”

나는 고기를 먹으면서 태운의 입에 계속 고기를 넣어 주었다. 누군가와 함께 식사하는 자리가 오랜만이라 화기애애한 이 시간이 즐겁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태운이 다정한 사람이라 다행이었다. 앞으로 태운과 같이 살게 되면 이런 행복한 일이 많을까? 기대가 되는 동시에, 만약 매칭률이 낮았으면 이렇게 태운과 있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하자 아찔했다.

“이번에 매칭률이 높게 나와서 다행이에요.”

“저는 높게 나올 줄 알았어요.”

그 말대로, 태운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매칭률에 대해 확신하며 나를 안심시켰다. 덕분에 나 또한 큰 걱정을 하지 않은 거 같다. 처음부터 내게 한결같은 믿음을 준 태운이 고마웠다.

***

집에 도착하자, 태운은 내게 방을 하나씩 소개해 주었다. 매칭률이 높게 나왔으니 내가 이곳에서 사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자신의 옆방을 열며 내 방이라고 말했다.

“이제부터 여기가 신의 씨 방이에요.”

나는 내 침실이 될 방 안을 둘러봤다. 방 안엔 침대와 책상 등 필요한 가구들이 다 갖추어져 있었다.

어제 처음 만난 태운이였지만, 이상하게도 처음 만난 거 같지 않고 편안했다. 아무래도 첫 만남부터 태운이 편안하게 대해 줬기 때문이리라.

어머니의 병원비로 쓰인 사채를 갚으려면 평생 공장 일만 해도 모자라겠다고 생각했는데, 태운의 가이드가 되다니. 내게는 이 상황이 너무나도 꿈같았다.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요.”

“네, 신경 써 줘서 고마워요.”

“저도 고마워요. 그리고 잠자기 전에 잠깐 가이딩해 줄 수 있어요?”

“가이딩이요?”

가이딩해 달라고 말한 걸 들었음에도 나는 바보같이 되물었다.

“네.”

태운은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조심스럽게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거실 소파로 데려가 앉혔다.

손을 잡자마자, 내 기운이 기다렸다는 듯 태운을 감싸는 걸 느꼈다. 나는 내 손을 잡은 태운의 손을 보며 계속 걱정해 왔던 것을 그에게 물었다.

“가이딩은 신체 접촉을 많이 할수록 수치가 높아진다고 연구원이 말하던데…. 저랑 손잡는 거나 껴안는 거 불편하지 않으세요?”

“전혀 불편하지 않아요.”

“그렇다면 다행이에요.”

나는 태운과의 스킨십이 전혀 불편하지 않은데 혹시라도 태운이 불편하면 어쩌나 했다.

“손잡는 건 접촉 가이딩 중에서도 가장 낮은 단계의 가이딩이에요.”

“그렇군요….”

여전히 가이딩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되도록 빨리 배우고 싶었다.

“스킨십에 익숙해져야 해요. 신의 씨가 불편하면 저를 연인이라고 생각해도 좋아요. 혹시 지금 연인이 있는 건 아니죠?”

“저… 사실 한 번도 누군가랑 사귄 적 없어요. 그래서 더 어색한 거 같아요.”

나는 태운과 맞잡은 손을 어색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내 말에 태운이 살짝 웃었다. 비웃음이 담긴 웃음은 아니었다.

“다행이에요. 혹시 애인이 있나 걱정했어요. 그리고 저도 신의 씨랑 같아요. 지금껏 누구와도 사귀어 본 적 없습니다.”

혹시 태운에게 연인이 있다면 스킨십 때문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데 다행이었다. 그도 연애 경험이 없다는 말을 듣자 안심되다 못해 동질감이 들기까지 했다. 태운이 곧이어 폭탄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럼 저희, 서로를 연인이라고 생각하는 건 어때요?”

태운과 연인이라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 입 안이 마르고 손끝이 떨려 왔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었지만, 확실한 건… 싫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랑 신의 씨가 진짜 연인이 될 수도 있어요. 사실 보자마자 운명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신의 씨는 그런 생각 들지 않았어요?”

사실 나 또한 태운의 말처럼 그와 운명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머니의 성묘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그에게 도움을 받은 것도, 그와 접촉한 것만으로 가이드로 각성한 것도, 매칭률이 높은 것도 말이다. 절대로 우연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태운과의 만남이 마치 혼자 남은 내게 어머니가 주신 선물 같았다.

나는 차마 머릿속 생각은 말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태운이 그런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시간은 많으니까. 우리 서로 천천히 알아 가요.”

태운의 말대로 그를 더 깊게 알아 가고 싶었다. 나는 작게 “네.”라고 답하고는 태운의 따스한 온기와 다정한 말을 들으며 그에게 가이딩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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