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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가이드는 이만 퇴사합니다-5화 (5/65)

05화

태운의 진심을 알게 되고 나니 확실히 전보다 불안함은 사라졌다. 그리고 그의 곁에 있는 것이 자연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태운 또한 내게 익숙해졌는지 매일 내 몸에 살갗을 붙이며 가이딩해 달라고 졸랐다.

게이트도 없고 능력을 사용한 일 또한 없음에도 태운은 가이딩 수치가 내려갔다며 매일 내가 가이딩을 해 주길 바랐다.

혹시 태운의 몸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되어 조심스럽게 물었다.

“능력을 사용하지도 않는데 왜 매일 가이딩을 받는 거예요?”

“그러고 보니 신의 씨한테 말하지 않았네요. 저는 능력 부작용 때문에 가이딩을 받지 않으면 계속 수치가 떨어져요.”

생각지도 못한 말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가이딩 수치가 계속 떨어지는 부작용이라니. 에스퍼에게는 치명적인 문제였다.

“그러면 지금까지는 어떻게 지낸 거예요?”

“약물이나 기계 가이딩으로 제어했어요.”

그동안 상성이 맞는 가이드가 없어서 인공적 가이딩을 한 것 같다. 태운의 지난 생활들이 상상되며 안타까웠다.

“매일 가이딩해 달라고 해서 이상했죠?”

“아니에요. 걱정만 했어요.”

“이상하게 저는 신의 씨가 걱정해 주면 기분이 좋아요.”

태운은 어리광 피우듯이 내 어깨에 머리를 비볐다. 그리고 내 얼굴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아래에서 바라본 태운의 얼굴은 너무나도 잘생겨서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사실, 신의 씨랑 붙어 있고 싶어서 가이딩해 달라고 하는 것도 있어요.”

나와 붙어 있고 싶다는 태운의 말에 내 얼굴이 목까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보름이 가까운 시간 동안 태운이 말한 대로 그를 연인이라고 생각하니 어려웠던 스킨십에도 조금씩 익숙해졌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그를 연인처럼 대하게 되었다.

태운은 내게 매일 좋아한다고 속삭였다. 그의 말에 세뇌당한 듯, 서로의 몸이 맞붙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 또한 태운을 향한 마음이 커져만 갔다. 그는 내 가이딩이 마약 같다며 중독될 거 같다고 말했다. 그 말에 내심 기뻐 열심히 가이딩했다.

“오늘도 가이딩해 줄게요.”

“고마워요.”

늘 손을 내밀던 태운이 오늘은 자신의 품에 안기라는 듯 양손을 벌렸다.

나는 망설이다 그의 품에 파고들었다. 태운의 체취가 느껴졌다. 무슨 향인지는 모르겠지만, 태운의 살 내음이 좋았다.

“기분 좋아요.”

태운은 내가 가이딩해 줄 때마다 기분 좋다고 말했다. 나른하게 뱉는 말이 너무나도 야하게 들려왔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변태같이 느껴졌지만, 벗어나기엔 그의 품이 너무 따뜻하고 포근했다.

그렇게 태운의 품에 안긴 채 한창 가이딩하고 있을 때였다. 태운의 핸드폰이 쉴 새 없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태운은 화면을 보더니,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윤 박사 왔어? 지금 가도 돼?”

나도 모르게 그의 통화에 귀를 기울였다. 이내 태운이 전화를 끊더니 말했다.

“윤 박사가 왔나 봐요. 지금 등급 테스트하러 오래요.”

그동안 태운은 내 등급 테스트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등급이 확실히 나와야 전속 계약서를 쓰고 내가 자신만의 가이드가 된다고 했다.

나 또한 태운의 전속 가이드가 되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그를 따라 서둘러 센터로 향했다.

서울 센터는 두 번째 방문이었다. 나는 태운과 함께 윤 박사님의 연구실로 향했다. 연구실에서 만난 윤 박사는 철제 안경을 쓴 중년 남성으로, 마치 학교 교장 선생님처럼 푸근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신의 가이드님, 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미 나에 대한 데이터를 받았는지 보자마자 나를 반겼다. 그러나 태운이 하도 재촉하는 바람에 짧은 인사말을 건네고 곧장 등급 테스트실로 이동했다.

테스트실 안에는 여러 명의 연구원이 있었는데 시선이 모두 내게 쏠려 있어 부담스러웠다.

나는 윤 박사님의 지시대로 5평 크기의 유리 돔 안으로 들어갔다.

가이드 등급 테스트는 총 세 가지 검사로 이루어져 있었다. 각각 파장력, 파장 전달력, 파장 전파력을 살피는데, 등급이 높을수록 세밀하게 데이터를 측정해야 해서 1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다.

검사하는 동안에는 연구원들만 있어야 했기에 태운은 밖에서 나를 기다렸다. 그는 내게 긴장하지 말고 평소대로 하라고 응원한 뒤 밖으로 나갔다. 그의 응원에 힘입어 평소보다 열중해서 가이드 등급 테스트를 받았다.

윤 박사님은 내 상태를 태블릿 PC로 확인하며 돔 밖에서 보고 있었다. 박사님이 중간중간 상태를 묻거나 질문을 해 와서 1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현태운 에스퍼님이 괴롭히지는 않아요?”

태운이 나를 괴롭히다니. 그는 늘 자상하고 상냥했다. 그리고 나를 괴롭혔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태운 씨는 늘 자상하세요.”

내 말에 윤 박사님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 모습이 태운을 욕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매칭률 높은 가이드를 만나면 에스퍼는 첫눈에 반한다고 하던데. 진짜인가 보네요.”

윤 박사님의 말에 며칠 전 태운이 내게 했던 고백이 떠올랐다. 종종 그의 고백이 거짓말같이 느껴질 때가 있었다. 하지만 첫눈에 반했다는 말이 사실이라는 것처럼 태운의 눈에서 나를 향한 애정이 뚝뚝 떨어지고, 윤 박사님까지 이렇게 말하자 더욱더 믿음이 갔다.

“현태운 에스퍼님께 첫사랑이 찾아왔나 보네요. 하지만 신의 가이드님은 좋아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이미 늦었다. 태운처럼 나 또한 그를 좋아하게 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태운의 다정함과 상냥함에 어느새 그를 마음에 품어 버렸다.

“에스퍼님이 괴롭히면 언제든지 말해도 돼요. 하소연 정도는 얼마든지 들어 줄 수 있어요.”

태운이 나를 괴롭힐 일은 아마 평생 없을 것이란 걸 알기에 답하지 않았다. 내 행동에 윤 박사님은 ‘이것 봐라?’ 하는 얼굴로 보더니 검사가 끝났다고 말했다.

윤 박사님께 감사하다고 말하고 밖으로 나오자, 태운이 대기 의자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작 1시간 떨어져 있었는데 그가 너무나도 반가웠다.

“신의 씨, 끝났어요?”

“네. 기다리느라 지루했죠?”

“전혀요. 검사는 잘했어요?”

“네. 국제 연합 쪽에서도 등급 테스트를 해야 해서 시간이 좀 더 걸린대요.”

“그래요? 딱 봐도 S급인데 너무 시간을 들이네요.”

태운은 고개를 젓더니 내 손을 잡았다. 그런 우리의 곁으로 윤 박사님이 오더니, 테스트에 관한 이야기를 몇 가지 하고 결과가 나오면 연락하겠단 말을 했다. 그렇게 등급 테스트는 끝이 났다.

나와 태운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함께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저희 오늘은 가구 사러 갈까요?”

“가구요?”

“네. 침대가 작은 거 같아서요.”

얼핏 보았던 태운의 침대는 내 방에 놓인 것과 비슷한 크기였다. 나는 그 정도 크기면 충분한데, 덩치가 더 큰 태운은 그동안 불편했었던 모양이다.

“좋아요.”

내 말에 태운은 작게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너무나도 듣기 좋았다.

나와 태운은 함께 백화점으로 향했다. 그리고 가구들을 하나씩 살폈다. 마치 신혼살림을 고르는 듯한 느낌에 가슴 언저리가 간질거렸다.

“두 분이 사용하시는 거예요?”

우리를 주시하고 있던 직원이 곁으로 다가오며 물었다.

“네.”

태운의 말에 놀라며 그에게 물었다.

“우리 둘이 사용하는 거예요?”

“이제 서약할 사이인데 당연하잖아요. 괜찮은지 누워 볼래요?”

매칭률도 높게 나왔으니, 그와 함께 사는 건 확정된 일이었다. 그리고 에스퍼&가이드 책자에서는 서약을 맺은 각성자들이 부부처럼 잠자리도 함께한다고 했다.

태운과 서로 좋아하는 사이니까, 나 또한 이 상황을 즐겨도 되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 생겼다.

태운은 침대에 누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의 옆에 조심스럽게 누워 그를 바라봤다.

“어때요?”

“좋아요.”

침대가 좋다는 말이었는데 마치 태운에게 고백하는 기분이었다. 심장이 또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시선을 피해 천장을 바라봤다.

“그럼 이걸로 결정할까요?”

“네.”

태운과 나는 한동안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본 직원은 잘 어울린다며 칭찬하기 바빴다.

평소와 다른 내 모습이었다. 늘 사람을 경계하고 거리를 두었었는데 태운에게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아마 그의 다정함에 견고했던 벽이 무너지고 만 것이리라.

태운이 나를 보며 이를 살짝 드러내며 예쁘게 웃었다. 그 모습에 나 또한 미소가 지어졌다.

***

우리는 침대와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침대는 내일 오전에 온다고 했다.

집에 오자마자 씻은 태운은 곧장 나를 껴안았다. 이렇게 그와 있으니 정말 연인이 된 것 같았다.

“등급 나오면 우리 바로 각인 서약 맺을까요?”

“그래도 괜찮아요?”

“네. 다른 에스퍼가 신의 씨 뺏어 갈까 무서워요.”

“뺏어 갈 리가 없잖아요.”

“S급이 나오면 저뿐만 아니라 다른 에스퍼랑도 매칭 테스트를 해야 해요.”

태운의 말에 그제야 등급이 나온 뒤의 상황들도 생각할 수 있었다. 다른 S급 에스퍼와 매칭 테스트라니, 절대로 하고 싶지 않았다.

“만약 매칭률 80%가 넘는 에스퍼가 나오면 신의 씨는 의무적으로 그 에스퍼의 가이딩도 해야 해요. 그 전에 서약했으면 좋겠어요.”

각인 서약은 에스퍼와 가이드 사이의 혼인이나 다름없었다. 평생 서로만 바라보며 가이딩해야 했다. 태운이 준 책에는 서약하면 가이딩도 수월해지고 서로를 향한 감정이 더욱더 커진다고 되어 있었다.

“왜 말이 없어요. 저랑 서약하기 싫은 거예요?”

태운은 서운하다는 말을 덧붙이며 상처받은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그럴 리가 없잖아요. 등급 나오는 대로 태운 씨랑 서약할게요.”

내 말에 태운은 곧장 나를 껴안으며 고맙다는 말과 함께 좋아한다고 고백해 왔다.

그 말에 나 또한 입가가 풀어지며 웃음이 나왔다. 190cm가 넘는 사내가 아이처럼 내게 안긴 채 사랑을 갈구하니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진심으로 웃은 게 얼마 만인지. 태운과 함께 있으면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행복한 순간이 계속된다면 태운과 서약을 맺어도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와 서약을 맺고 싶었다. 나 또한 다른 가이드에게 태운을 뺏기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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