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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가이드는 이만 퇴사합니다-6화 (6/65)

06화

상위 에스퍼들은 오만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라는 말이 많은데, 태운은 그런 선입견을 깨 줄 만큼 한결같이 친절하고 따뜻한 배려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태운은 자신보다도 나를 먼저 생각했고 그런 그의 모습에 나 또한 좋은 면들만 보여 주기 위해 노력했다.

태운과 함께 지내면서 몇 가지 알게 된 것이 있다.

태운은 다른 사람에게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서 하는데 오직 나한테만 존댓말을 사용했다. 그 모습에서 나에 대한 존중을 느낄 수 있었기에 그의 존댓말이 좋았다.

그리고 태운은 불면증이 심했다. 이번에 침대를 새로 들이고 함께 자면서 증상은 많이 호전되었지만, 나를 만나기 전에는 일주일이 넘도록 부작용에 의한 고통으로 잠을 제대로 못 잤다고 한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는 걸 알려 주듯 방에는 몇십 개의 가이딩 약물과 수면제가 쌓여 있었다.

태운이 어떤 생활을 했을지 짐작이 가니 그가 너무나도 가여웠다. 그를 위해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다 해 주고 싶을 정도였다.

내 옆에서 곤히 자는 태운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지금은 너무나도 평온해 보였다. 나는 태운이 푹 자길 바라며 밤새도록 가이딩했다.

***

금방 나올 줄 알았던 등급 결과는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세 번이나 센터에서 재테스트를 받았다. 한 번 검사할 때마다 1시간이 넘는 시간이 소요되었기에 스트레스가 상당했다.

그런 나를 위해 태운은 스트레스 지수 완화엔 초콜릿이 좋다면서 유명 브랜드의 수제 초콜릿을 사 왔다.

마트에서 파는 저렴한 초콜릿만 먹어 왔기에, 처음 먹는 수제 초콜릿의 맛은 가히 충격적일 정도였다. 살살 녹는 고급스러운 달콤함을 계속 입에 담고 싶었다. 하지만 비싼 초콜릿이었기에 하루에 한 알씩 아껴서 먹었다.

태운은 내가 초콜릿을 좋아하는 걸 눈치챘는지 밖에 외출할 때마다 다양한 초콜릿을 사 왔다.

오늘도 태운이 사 온 초콜릿을 먹고 있을 때였다. 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점심이 한참 지난 늦은 오후였다.

가이드 등급이 나왔으니 센터에 와서 가이드 각성 증명서를 받고 가라는 연락이었다.

“신의 씨, 가이드 등급이 나왔나 봐요!”

“등급 나왔대요?”

“네. 지금 빨리 센터로 가요.”

태운은 기대감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목소리에 나 또한 등급 결과가 기대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불안하기도 했다. 어머니의 마지막 때도 그랬지만, 내 감은 너무나도 예리했다.

“왜 또 불안한 얼굴이에요. S급일 테니까, 걱정하지 마요.”

태운의 말에 애써 얼굴을 풀며, 부정적인 생각을 지우고 함께 센터로 향했다.

센터장님의 방으로 가는 내내 두려움을 동반한 기대감을 느꼈다.

노크를 하고 방으로 들어가자, 바로 맞은편에 센터장님의 모습이 보였다. 센터장님은 방 한가운데에 놓여 있는 소파 상석에 앉아 있었다. 그는 몸을 일으키더니 웃으며 나를 반겼다.

“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나는 어색하게 인사를 하며 센터장님 쪽으로 걸어갔다. 센터장님은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 내게 악수를 건네 왔다.

“신의 가이드님과는 초면이죠? 박석철 센터장입니다.”

“안녕하세요, 이신의입니다.”

“어떤 분인지 뵙고 싶었는데 이제야 뵙네요. 앉으세요.”

가볍게 악수하고 태운과 함께 센터장님의 대각선에 놓여 있는 소파에 앉았다.

“결과는 어떻게 나왔어요?”

태운은 앉자마자 바로 등급에 관해 물었다. 태운의 말에 센터장님은 말없이 태블릿 PC를 우리 앞에 놓았다.

태블릿 PC에는 며칠 전에 센터에서 찍은 내 증명사진과 이름이 떠 있었다. 그리고 이름 옆에 영어가 쓰여 있었는데, S 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등급란 옆에 쓰여 있는 한 글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C.

나는 C등급이었다.

믿을 수 없어 눈을 꾹 감았다 뜨며 재차 확인했지만, C등급이었다.

“C라니…?”

태운 또한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 또한 믿을 수 없는 결과였기에 센터장님께 물어봤다.

“저 C급인 거예요?”

“네, 이신의 가이드님은 C등급입니다.”

“재검사해 봐요. 어떻게 C야.”

태운은 격하게 고개를 저으며 내 등급을 부정했다.

“검사 기간이 길어진 것도 여러 차례 재검사해서 그렇습니다. 이신의 가이드님은 C등급 가이드예요.”

사실 재검사를 할 때마다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등급 재측정 때문이었다니….

“C등급은 많이 안 좋은 건가요?”

“네. 평균 등급에 못 미쳐요. 어떻게 S급과 매칭률이 높은지도 의문입니다.”

“다시 해 봐.”

날이 선 태운의 말에 센터장님은 길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네 번이나 검사했어요. 몇 번을 해도 등급은 같을 거예요.”

센터장님의 말에 태운의 얼굴이 납빛처럼 창백하게 굳었다. 그 모습에 나 또한 피가 통하지 않는 차가운 손을 맞잡으며 걱정이 담긴 얼굴로 태운을 올려다봤다.

“태운 씨, 괜찮아요?”

내 말에 태운은 답이 없었다. 그는 그저 C등급이라고 쓰여 있는 태블릿 PC 화면만 노려봤다.

“신의 가이드님과는 가이드 계약 조건으로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태운 에스퍼님은 잠깐 나가 계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센터장님의 말에 태운은 넋 나간 얼굴로 그대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나는 태운이 걱정되어 그의 뒷모습을 봤지만, 그는 한 번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태운이 나간 문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런 나를 센터장님이 불렀다.

“신의 가이드님, 각성한 걸 축하드려요.”

가이드로 각성한 건 매칭 테스트 때부터 알았지만, 이렇게 센터장님 입으로 듣게 되니 내가 가이드가 되었다는 것이 실감 났다.

“계약서예요.”

센터장님이 태블릿 PC로 전자 계약서를 보여 주었다. 그러나 내용을 읽어도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은 태운의 창백한 얼굴만 떠오를 뿐이었다.

“그리고 이건 현태운 에스퍼님 전속 가이드 계약서고요.”

나는 내용도 제대로 읽지 않은 채 승인란에 사인했다. 계약을 빨리 끝내고 태운과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일반인이었을 때의 일들과 정보는 센터에서 모두 정리할 거예요. 이제부터 신의 씨는 에스퍼·가이드 협회 사람이에요. 협회 것이기도 하고요. 이제는 모든 행동을 조심해야 합니다.”

“…네.”

마지막으로 센터장님께 가이드 ID 카드와 가이딩 워치를 받았다.

ID 카드는 센터와 협회 출입증 역할을 했고, 가이딩 워치는 태운의 체내에 삽입된 마이크로칩과 연동되어 있어 가이딩 수치를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고 했다.

처음 가이드가 된 날보다도 머릿속이 시끄럽고 센터장님의 말도 잘 들리지 않았다. 빨리 태운과 대화하고 싶었다.

센터장님도 내 생각이 딴 곳에 있다는 걸 눈치챘는지 나가도 좋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태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복도를 걸으며 마주치는 사람마다 태운을 봤냐고 물었지만, 모른다는 답이 돌아왔다.

나는 태운에게 연락하려고 했지만, 그제야 그의 핸드폰 번호도 모르고 핸드폰도 없단 걸 깨달았다.

결국, 센터장님의 도움으로 태운의 집까지 갈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최상층으로 올라가는 동안 계속해서 속이 울렁거렸다. 한 번도 이랬던 적이 없는데 아무래도 몸이 긴장한 것 같았다.

그동안 태운과 함께 살면서 내 지문 또한 도어 록에 저장되어 있었기에 집 내부로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태운 씨.”

복도를 걸어가면서 나직이 태운을 불렀지만, 대답은 없었다. 나는 혹시 태운이 집에 들어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걱정되었지만, 거실에서 태운의 모습을 찾았다.

“태운 씨, 저 무사히 가이드 계약 하고 왔어요.”

나는 애써 웃으며 태운에게 말했지만, 내 말에도 태운은 말없이 온더록스 잔을 입술에 기울이고 있었다.

“태운 씨? 저 가이드 계약 했어요.”

혹시 목소리가 작아서 태운에게 들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 더 큰 소리로 말했지만, 그는 여전히 답이 없었다.

평소와 다른 모습에 위화감을 느끼며 가까이 다가가자 태운이 그제야 나를 바라봤다. 나를 향한 그의 얼굴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처음 보는 차가운 얼굴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왜 왔어. 김진호가 말 안 했어?”

평소 쓰던 존댓말도 사라지고 없었다. 태운은 반말하며 나를 차갑게 노려봤다.

“네?”

그는 사이드 테이블에 놓여 있는 담뱃갑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분명 담배는 피우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미 테이블에 놓인 재떨이에 담배꽁초가 쌓여 있었다.

“씨발. 참느라 힘들었네.”

담배에 불을 붙이는 태운의 모습에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담배 연기가 허공에서 흩어지며 내 앞까지 다가왔다. 갑작스러운 연기에 나도 모르게 기침이 나왔다. 태운은 그런 내 모습을 보고도 짜증 난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태운 씨, 갑자기 왜 그러세요…. 너무 차가워요.”

이런 태운의 모습은 내가 알던 그와 달랐다. 무서웠다.

“하, 네가 C급이었다고?”

태운의 말에 그제야 내 등급을 듣고 표정이 굳어지던 그의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아무래도 내 등급에 실망한 것 같았다.

“나가.”

태운이 나가라고 했지만, 다리가 긴장으로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C급이지만… 저희 매칭률이….”

“씨발, 나가라고!”

그는 멍청하게 서 있는 나를 향해 잔을 던졌다. 다행히 잔은 옆으로 비켜 나가며 바닥에 떨어져 깨졌다. 날카로운 파열음만큼이나 날이 선 유리 조각을 보다 다시 태운을 바라봤다.

몇 시간 전까지 나를 다정하게 보던 태운의 모습은 더는 찾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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