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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가이드는 이만 퇴사합니다-9화 (9/65)

09화

여전히 태운을 만나기란 어려웠다. 태운은 S, A급 게이트가 열렸을 때만 투입되었고 해외 파견도 자주 나갔는데, 나는 함께 가고 싶어도 C급이라서 갈 수 없었다. 그저 가이딩 워치를 보며 태운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도하며 기다렸다.

태운은 능력을 사용할 때마다 스케일이 컸기에 가이딩 수치가 빠르게 내려갔다. 그래서 게이트 출몰이 없는 날의 그는 단련실에서 훈련하거나 기계 가이딩을 하면서 지낸다고 했다. 분명 몸에 리스크가 상당할 텐데도 내게 오지 않는 태운이 바보 같고 미웠다.

언젠가 태운이 올 때를 대비해 홀로 전용 가이딩실에서 그가 오기를 기다리다 기숙사로 돌아갈 때가 가장 외롭고 비참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 더욱더 등급에 대한 원망만 커졌다.

오전에 있는 가이드 체력 단련을 마치고 가이딩 훈련을 받기 위해 이동하는 중이었다. 지훤의 목소리가 뒤에서부터 들려왔다.

“신의 형, 가이딩 훈련받으러 가는 거야?”

이웃인 지훤과는 같은 등급이라 자주 마주치다 보니 자연스레 서로 말을 놓게 되었다. 그리고 지훤이 말고도 다른 C급 가이드와도 함께 훈련받으면서 완만한 관계를 형성 중이었다.

공장에 다닐 때는 내 또래가 없어서 늘 혼자였는데, 한 달 동안 센터에서 훈련과 강의를 들으면서 지내다 보니 많은 사람과 알게 되었다. 마치 대학에 온 기분도 들었다. 강의실과 체력 단련실도 있고, 기숙사도 있으니 말이다.

어머니의 치료비를 위해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곧장 공장에 취직했었다. 그래서 늘 마음 한편엔 대학에 가지 못한 미련이 남아 있었는데 센터에 오고 나서 가슴의 응어리가 조금은 풀렸다.

“응.”

“나도 같이 가. 그리고 이번에 김성우 B급 가이드로 승급한 이야기 들었어? C급이랑 대우가 완전히 다르대.”

“그래?”

“비법 좀 알려 달라고 물어볼까.”

알게 되면 나도 알려 달라고 지훤에게 말한 순간, 게이트 경고등이 쉴 새 없이 깜박거리며 게이트 안내 방송이 울려 퍼졌다.

<35구역에 A급 게이트 출현. A급 게이트 출현.>

“A급 게이트 출현했나 봐. 형도 게이트에 가야 하나?”

지훤의 말에 가이딩 워치를 보니 비상 알림과 센터 정문 가이딩 셸터에서 대기하라는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가 봐야 할 거 같아.”

“조심히 다녀와.”

나는 지훤의 걱정스러운 얼굴을 뒤로하고 붉은색 전등이 깜빡이는 복도를 지나 곧장 센터 정문으로 뛰어갔다. 정문에 도착했을 때는 이동식 현장 가이딩 셸터가 정차되어 있었다.

A급 게이트라서 그런지 평소보다 소란스러웠다. 셸터 쪽으로 가자 이미 가이드 몇 명이 와 있었다.

내가 셸터 앞에서 기웃거리자, 셸터 관리자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무슨 일이시죠?”

“셸터로 오라는 메시지를 받아서요.”

“가이딩 워치 확인해도 될까요?”

관리자가 워치를 몇 번 터치하자, 워치에 현태운의 전속 가이드라고 띄워졌다. 그것을 본 관리자가 나를 셸터 안으로 들여보내 줬다.

안으로 들어가자, 특수 전투복을 입은 가이드들의 모습이 보였다.

제복과 특수 전투복 색으로 등급을 알 수 있었는데, A급은 남색, B급은 하늘색, C급 이하는 흰색이었다. 그리고 S급은 검은색이었고. 나는 공통 훈련복을 입고 나와서 등급이 드러나지 않았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사람이 등장하자 순간 가이드들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현태운의 가이드라고 숙덕거리는 소리가 몇 번 들렸지만, 나는 무시하며 중앙 대기실에서 제일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서 있었다.

중앙 대기실 벽면엔 수십 개의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모두 게이트 상황이 송출됐다. 현장에 투입된 에스퍼의 숫자 또한 적혀 있었다. S급 한 명과 A급 열 명,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B급이었다.

나는 모니터에서 태운의 모습을 찾아냈다. 오랜만에 본 태운은 마지막으로 보았던 모습과 같았다. 그 모습이 반가우면서도 서운했다.

나는 가이딩 워치로 태운의 가이딩 수치를 확인했다.

100%에서 80%까지는 안정권, 79%에서 60%까지는 평정권, 59%에서 40%까지는 위기권, 39%에서 20%까지는 위험권, 19% 이하부터는 폭주 주의권으로 10%부터는 폭주였다. 그리고 0%까지 내려가면 사망.

태운은 현재 평정권이었지만, 조금만 능력을 사용한다면 위기권에 들어갈 것이다.

불 속성 계열의 태운이 능력을 사용할 때마다 주변이 붉게 타올랐다. 그리고 불길이 거세질수록 가이딩 수치가 빠르게 내려갔다.

머지않아 가이딩 셸터 문이 닫히고 게이트로 이동했다. 단거리 순간 이동이 가능한 셸터였기에 바로 게이트 근처에 안착했다는 안내 방송이 들렸다. 이번 게이트는 한강 위에서 출현했다. 주변에 고층 빌딩이 있었기에 물리계 에스퍼가 미리 게이트 주변에 배리어를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태운과 에스퍼들은 서로 각자의 능력을 사용하며 보스 마물에게 대미지를 입혔다.

마물들이 태운을 향해 공격할 때마다 불안했다. 혹시라도 태운이 다치는 것은 아닐지. 다행히도 태운은 자신의 주변에 배리어를 만들어 자신을 보호했다.

이번 보스 마물은 바윗덩어리가 덕지덕지 붙은 골렘이었다. 에스퍼들과 대치하던 골렘이 기어코 게이트 밖으로 나왔다.

이내 골렘이 던진 마력 덩어리를 맞고 에스퍼 한 명이 강에 떨어졌다. 태운의 능력과 바위는 상성이 좋지 않은 거 같았다. 저번과 달리 태운이 애를 쓰는 모습에 걱정으로 이맛살이 구겨졌다.

나도 모르게 손톱 주변 살을 쉴 새 없이 물어뜯으며 빨리 게이트가 닫혔으면 했다.

붉은 불길에 휩싸인 보스 마물의 주변에서는 마치 태풍이 오는 것처럼 천둥 번개가 끊임없이 쳤다.

태운과 에스퍼들의 끈질긴 전투 끝에 두껍게 깔렸던 구름이 찢겨 나가는 듯 흩어졌다.

쿵! 산이 붕괴되는 듯한 굉음과 함께 마지막 단말마의 비명을 지른 바위 골렘이 조각나며 무너져 내렸다.

보스 마물이 죽기 무섭게 게이트가 큰 소리를 내며 닫히기 시작했다.

게이트가 닫히자, 셸터 안에서 안도의 한숨이 들려왔다. 나 또한 긴 한숨을 토해 냈다.

태운의 능력으로 강뿐만 아니라 주변은 불바다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물 속성 계열 에스퍼가 장대비를 내렸다.

에스퍼들이 하나둘씩 셸터 쪽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모니터로 보였다. 나는 태운이 셸터 안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리며 문을 바라봤다.

이내 에스퍼들이 안으로 들어와 가이드에게 가이딩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태운이 들어왔다. 그의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나는 빠르게 태운에게로 뛰어갔다. 태운은 내 모습에 당황하는가 싶더니, 결국엔 성가신 얼굴로 바뀌어 나를 노려봤다.

“너 뭐야? 네가 왜 여기 있어?”

“제가 태운 씨 가이드니까 당연히 여기 있죠.”

나는 다른 가이드처럼 태운의 손을 잡고 가이딩을 시도했다. 보름 만에 보는 태운이었다. 너무나도 반가웠고 보고 싶었다. 그리고 빨리 태운과 화해하고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컸다.

“네 도움 따위 필요 없어.”

태운이 차갑게 말하며 내 손을 쳐 냈다. 나는 굴하지 않고 다시 태운의 손을 꽉 잡았다.

“안정권 들어갈 때까지만요.”

내 말에 태운은 성가시다는 얼굴이 되어 주변이 울릴 정도로 큰 목소리로 말했다.

“어떤 새끼가 C급을 현장에 데려왔어?”

태운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나를 들여보냈던 셸터 관리자가 서둘러 우리 쪽으로 뛰어왔다.

“C급이었어요?”

“ID 카드 확인해 봐. 확인도 안 하고 들여보낸 거야?”

“태운 에스퍼님 가이드라서 안 봐도 A급 이상인 줄 알았어요.”

“똑바로 일해.”

태운은 다시 내 손을 떼어 내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곧장 태운을 뒤쫓았다. 뒤에서 셸터 관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무시했다.

밖에서는 여전히 물 속성 계열 에스퍼가 비를 내리는 중이었다. 순식간에 온몸이 젖고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태운 씨!”

나는 태운을 불렀지만, 그는 여전히 나를 무시하며 공중으로 떠올랐다. 서둘러 기다리라고 소리쳤지만, 빗소리에 묻히고 말았다.

나는 망연자실한 상태에서 태운을 올려다보았다. 태운은 이미 멀어져 거의 보이지 않았다.

태운이라고 비 맞는 게 좋진 않을 터였다. 내가 보이지 않으면 가이딩을 받으러 올 거란 생각이 들어, 우선 셸터로 돌아가 몸을 숨기려고 했다. 그런데 뭔가가 돌아가는 길에 서 있었다.

비에 실루엣이 흐릿했지만 작은 골렘이란 걸 눈치챘다.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기에 나는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눈이 마주치자마자 골렘은 곧장 나를 향해 포효하며 뛰어왔다.

그 모습에 앞을 향해 필사적으로 뛰었지만, 결국 빗물에 미끄러져 넘어지고 말았다. 바닥에 쓸린 피부에서 피가 빠르게 맺히며 비와 함께 섞였다.

나는 고통을 무시하며 다시 몸을 일으켜 뛰었다. 이대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필사적으로 다리를 끌었다. 그러나 골렘은 느려진 속도를 금세 따라잡았다.

골렘의 거친 숨소리가 바로 뒤에서 들린 순간, 절망과 함께 머릿속에 태운이 떠올랐다.

그리고 주변이 불길에 휩싸였다.

뒤를 보자, 불기둥에 갇힌 골렘의 형체가 완전히 부서져 사라지고 있었다. 하늘에 떠 있던 태운이 내 앞에 내려왔다.

“너 미쳤어?”

갑작스러운 태운의 고함에 놀랐지만, 그가 도와줬다는 것에 기쁜 마음이 더 컸다.

“제 몸 하나 건사 못 하는 놈이 현장에 올 생각을 해?”

태운은 내 팔뚝을 잡고 셸터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치유계 에스퍼를 불렀다. 그는 여전히 성가시다는 얼굴로 다시는 현장에 오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대로 태운과 헤어지면 언제 또 만날지 몰랐기에 그를 붙잡고 싶었지만, 조금 전에 넘어지면서 발목이 잘못되었는지 살짝 움직이자마자 비명이 터져 나왔다.

결국 태운이 떠나고 나는 홀로 남아 치유계 에스퍼에게 치료받을 수밖에 없었다. 도움을 주는 역할인 내가 도움을 받는 꼴이라니 너무나도 한심했다.

그래도 태운을 잠깐이나마 만날 수 있어서 기뻤다. 그리고 다음 게이트가 열리기를 기다렸다. 태운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보이면 그도 다시 돌아와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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