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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가이드는 이만 퇴사합니다-10화 (10/65)

10화

나는 꼼짝없이 치유계 에스퍼에게 붙잡혀 다친 곳을 치료받았다. A급 에스퍼라서 그런지 상처 부위가 놀라울 정도로 빠른 재생 속도를 보였다. 뒤틀렸던 뼈가 다시 원래의 자리를 찾아가고 찢어졌던 살 조직이 빠르게 아물며 흉터도 없이 말끔해졌다.

하지만 나는 내 상처는 안중에도 없었다. 빨리 치료를 끝내고 태운에게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치유계 에스퍼는 그런 내 마음을 느꼈는지 빠르게 치료한 뒤 가도 좋다고 말했다. 나 또한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셸터는 어느새 센터로 이동해 있었다. 나는 가이딩 워치를 확인하며 태운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의 심장 박동과 체온이 점점 올라가고 있었고 가이딩 수치는 내려가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김진호 담당자님께 연락해 태운의 위치를 확인했다. 담당자들은 담당하고 있는 에스퍼의 체내에 삽입된 위치 추적기로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담당자님은 위치를 추적하지 않고서도 태운의 위치를 바로 말해 주었다. S급 전용 가이딩실에 있을 거란 말에 서둘러 훈련동으로 이동했다.

솔직히 내가 찾아왔을 때 태운이 보일 반응은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했기에 그를 만나는 게 무섭기도 했지만, 이대로 피하면 계속 멀어지게 될 것이다.

S급 전용 가이딩실 문을 노크하고 들어가자, 태운이 기계 가이딩을 받고 있었는지 몸에 전극을 잔뜩 붙이고 있었다. 그는 갑작스럽게 들어온 내 모습에 놀라며 인상을 팍 썼다.

“너 어떻게 왔어?”

“담당자님께 여쭤봤어요. 이제 제가 가이딩해 드릴게요.”

내 말을 들은 태운은 여전히 인상을 쓴 상태였지만, 기계에 몸이 묶여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그 모습이 오히려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저는 태운 씨 전담 가이드예요. 제가 옆에 있어야 위험한 상황에서도 가이딩할 수 있어요.”

“나는 싫다고.”

“싫어도 어쩔 수 없어요. 태운 씨한테는 제가 필요해요.”

‘저도 그렇고요.’ 마지막 말은 하지 않고 그대로 태운의 옆에 앉았다.

“너 같은 거 필요 없어!”

하지만 말과는 달리 태운은 작은 저항만 할 뿐이었다. 그의 입술은 보라색에 가까웠고 얼굴에도 핏기가 없었다.

나는 태운의 손목에 조심스럽게 손을 대었다. 가이딩 훈련을 받으면서 어떻게 가이딩해야 수월하게 할 수 있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태운의 파장이 내 파장과 닿자마자 수치가 점차 오르기 시작했다.

가이딩실은 기계 소리를 제외하고는 조용했기에 나는 숨소리도 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지만 결국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태운과 단절한 채 지낼 수 없었다.

“태운 씨, 우리 평생 같이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들었어요.”

“매칭률 높은 가이드가 나오면 전속은 끝이야.”

한겨울의 눈보라보다도 차가운 태운의 말에 가슴 언저리가 따끔거렸지만, 이대로 그와 멀어지는 것이 더 가슴 아픈 일이기에 말을 이었다.

“알아요. 하지만 이렇게 높은 매칭률은 처음이라고 했잖아요.”

“…….”

“왜 저를 모질게 대하는 거예요? 제가 C급이라서 그런 거예요?”

“이제야 알았어?”

태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C급인 내가 미덥지 않을 수밖에 없을 거다. 그러나 나는 잘할 자신이 있었다. 딱 한 번만 기회를 얻고 싶었다.

“등급은 낮지만, 태운 씨랑 매칭률이 높아서 훈련만 받으면 S급과 동일한 가이딩을 할 수 있다고 했어요.”

“개소리하지 마.”

“지금도 봐요.”

벌써 가이딩 수치가 50%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걸로 증명된 거나 다름없었다.

“왜 C급이 싫은 거예요?”

김진호 담당자님의 말을 들었을 때는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그 이유를 안다면 다 고칠 생각이었다.

“그냥 싫어.”

태운은 나와 더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듯 입을 일자로 굳히고 얼굴을 돌렸다. 그 모습에 입을 열었다 떼기를 반복하다 결국 입을 떼지 못했다. 이상하게도 태운이 슬퍼 보였기 때문이다.

가이딩 수치가 딱 50%가 되자, 태운이 나를 밀치며 전신에 부착된 전극을 억지로 떼어 냈다. 그 모습에 ‘그렇게 나와 가이딩하기 싫나?’라는 생각과 함께 다시 침울해졌다. 하지만 50%는 아직 위기권이었기에 태운을 붙잡았다.

“50%론 부족해요. 더 해야 해요.”

안정권까지는 가이딩 수치를 올려야 태운도 부작용으로 괴로워하지 않을 것이다.

“너 같은 C급이랑 같이 있는 것도 싫고, 가이딩도 싸구려 느낌이라서 기분 더러워.”

태운은 내 손을 떼어 내며 싸늘하게 말하고 나갔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초라한 내 등급과 상황 때문에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간신히 입술을 꾹 다문 채 참아 냈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믿어지지 않는 것은, 이런 대접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내가 태운을 좋아한다는 사실이었다. 여전히 그와의 만남이 행운같이 느껴졌다. 그를 만난 뒤로 내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고, 지금은 매 순간 그에게 삶이 좌우되는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

태운이 엉망으로 만들고 간 가이딩실을 정리하고 나오자 벌써 자정에 가까워져 있었다.

복도를 걸으며 엘리베이터로 향하고 있는데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 윤 박사님이 보였다.

“현태운 에스퍼님 가이딩하고 가는 길이에요?”

“네. 박사님도 늦게까지 일하시네요.”

내 말에 윤 박사님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나는 계속해서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질문 중 하나를 그에게 물었다.

“박사님, 태운 에스퍼님이 저를 싫어해요…. 혹시 이대로 전속이 끊길 수도 있나요?”

“전속 계약을 싫다는 이유만으로 끊기는 어려울 거예요.”

“그렇군요.”

태운에게 멸시와 냉대를 받음에도 그의 전속을 계속할 수 있다는 말에 안도했다.

“현태운 에스퍼님이 등급이 낮아서 가이드님이 싫다고 하시죠?”

“네, 맞아요….”

태운이 낮은 등급의 가이드를 싫어하는 건 모두 알고 있었다.

윤 박사님은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처럼 한동안 말이 없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신의 가이드님, 승급을 목표로 훈련받는 건 어떠실까요?”

“승급이요?”

“네. S급까지는 어렵겠지만, C급에서 A급까지 간 선례가 있어요.”

윤 박사의 말은 내게 너무나도 반갑고 듣고 싶었던 이야기였다.

“제가 가능할까요?”

“S급과 매칭률이 높다는 건 파장 통제력이 높다는 거예요. 충분히 승급할 수 있어요.”

승급이라는 말이 계속해서 귓가에 맴돌았다. 나를 향해 상냥하게 웃던 태운의 모습도 함께.

“그럼 저 해 볼게요. 저도 가능한 거 맞죠?”

“네. 그런데 많이 힘들 수도 있어요. 괜찮겠어요?”

다시 태운과 예전처럼 지내고 싶었다. 그도 아마 내가 A급이 된다면 예전처럼 상냥하고 다정하게 대해 줄 것이다. 그렇다면 몸이 혹사당해도 상관없었다.

“괜찮아요. 승급만 할 수 있다면요.”

“좋아요. 시간이 늦었긴 하지만 잠깐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네. 박사님께서는 괜찮으세요?”

“당연히 괜찮죠.”

윤 박사님은 그렇게 말하며 내 어깨에 자기 손을 둘렀다. 나는 그렇게 윤 박사님의 연구실로 이동했다.

***

가이드 등급을 높이기 위해 윤 박사님이 제안하신 승급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로 했다.

나는 매일 퇴근한 뒤 승급 프로그램실로 가 기계를 이용해 파장을 교정하고 파장 증폭 훈련을 받았다. 윤 박사님과 연구원들의 도움으로 어렵지 않게 빠르게 적응 중이었다.

오늘도 6시에 칼퇴근하고 석식을 먹은 뒤 승급 프로그램실로 이동했다.

한동안은 미숙한 파장을 교정했는데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파장을 확장한다고 했다. 확장 단계에 돌입하면 빠르게 등급을 올릴 수 있다는 말에 기대되었다.

프로그램실 가운데에는 이름 모를 기계와 침대가 놓여 있었다. 나는 윤 박사님의 안내를 받아 침대에 누웠다.

“원래는 에스퍼와 같이 훈련받아야 효율이 높지만, 신의 가이드님은 이미 전속 계약이 되어 있어서 기계를 사용해야 해요.”

“네.”

윤 박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연구원 두 명이 기계 2대를 더 가지고 들어왔다. 어떤 용도의 기계인지는 모르겠지만, 승급할 수 있다면 상관없었다.

“전극 붙이겠습니다.”

윤 박사는 기계에서 선을 길게 뽑았다. 그러고는 선과 이어진 전극을 내 관자놀이와 목덜미, 손목, 발목, 그리고 심장과 배에 붙였다. 얼핏 들었을 때 전류를 통해서 억지로 파장을 늘린다고 했다.

훈련받을수록 가이딩도 수월하게 할 수 있고 가이딩 등급 또한 올라간다고 하니 빨리 훈련 회차가 늘어났으면 했다. 그만큼 몸에는 무리가 갈 것을 알기에 걱정도 되었다. 그래도 승급할 때까지 프로그램에 참여할 생각이다.

“전류가 몸에 들어가는 거라 아플 수 있어요.”

“네.”

“끝나면 말씀드릴게요.”

윤 박사님이 기계 전원을 올리자, 그의 말대로 몸에 전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찌릿한 고통에 당황스러웠지만, 양손을 주먹 쥐며 고통을 이겨 내고자 노력했다.

무엇이든 쉽게 얻어지는 건 없다. 나는 나중에 승급한 나를 웃으며 맞이할 태운을 떠올리며 이 순간을 견뎌 내기로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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