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가이드는 이만 퇴사합니다-11화 (11/65)

11화

기계 가이딩 훈련을 끝내고 기숙사로 돌아가는데 온몸이 저릿저릿했다. 지금은 효과가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꾸준히 받으면 분명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 믿었다.

집으로 돌아가면서 가이딩 워치로 태운의 가이딩 수치를 확인했다. 아침에는 61%였는데 지금은 조금 올라가 있었다. 윤 박사님께 현재 태운이 약물 가이딩을 받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내가 있는데 약물 가이딩을 받는다니…. 속상함을 감출 수 없었다.

C급 판정을 받은 날부터 태운은 철저히 날 무시했다. 지금도 그에게 당장 연락하고 싶었지만, 전화해도 받지 않았다.

그를 향한 내 마음과 행동이 비참함으로 돌아올 것을 알고 있음에도 멈출 수 없었다. 그만두고 싶어도 이미 태운을 좋아하게 되어 버렸다.

아무래도 담당자님께 태운과 대화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부탁해야겠단 생각을 하며 복도를 걷고 있을 때였다. 맞은편에서 내 이름을 반갑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신의야!”

귀에 익은 목소리에 시선을 돌리자, 고등학교 동창인 민혁이 뛰듯 걸어오고 있었다. 민혁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에스퍼로 각성하면서 학교를 자퇴한, 나의 몇 안 되는 친구였다.

“민혁아!”

나 또한 민혁을 반갑게 부르며 그가 있는 쪽으로 뛰어갔다. 이곳에서 만나다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가이드 명단에 네 이름이랑 같은 이름이 있어서 설마 했는데, 너무 반갑다.”

“그러니까. 5년 만이지?”

민혁의 얼굴을 보니 저절로 반가움의 미소가 지어졌다.

“응. 그동안 연락 못 해서 미안해.”

당시에 일방적으로 연락이 끊겨서 민혁을 원망하기도 했는데, 내가 각성하고 나니 그때도 협회에서 일반인과의 접촉을 막았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무리 각성한 순간부터 더는 일반인이 아니라고 해도, 기밀 유지 때문에 모든 접촉을 막다니. 다들 나처럼 가족도 없고, 친구도 거의 없는 건 아닐 텐데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자, 오랜만에 만난 민혁이 더욱 반갑게 느껴졌다.

“아니야. 이렇게 다시 만나서 기쁘다.”

“나도. 이제 자주 보자. 내 번호 알려 줄게.”

민혁과 나는 서로 핸드폰을 꺼내 번호를 주고받고 다시 대화를 이었다.

“신의 너 지금 어디서 살아?”

“가이드 기숙사.”

“기숙사 사는구나. 나도 지금 집에 가려고 하는데 데려다줄까?”

“괜찮아. 담당자님이 데려다주셔.”

내 말에 민혁은 아쉬워하며 내일 같이 점심을 먹자고 말했다. 그 말에 승낙한 순간 지하 주차장에 도착했다는 담당자님의 연락에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민혁을 만나니 확실히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A급 제복을 입고 있던 민혁을 떠올리며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훈련실에서 체력 훈련을 받고 있을 때였다. 가이딩 워치에서 게이트 출현 알림이 울렸다. 그 소리에 트레이너 선생님께 서둘러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게이트 출현은 생각보다 자주 있어서 훈련 중에 나가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저번처럼 센터 정문으로 가자, 이동식 셸터가 있었다. 나는 셸터 앞에 있는 관리자에게 가이딩 워치를 보여 주고 들어가려고 했지만, 저지당했다.

“이신의 가이드님은 현장 가이딩 불가합니다.”

“네? 왜요?”

저번에는 들어갔는데 왜 오늘은 안 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내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얼굴로 보자, 셸터 관리자가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C급 가이드는 A급 게이트 이상의 현장 가이딩은 불가합니다. B급 가이드부터 가능해요.”

그제야 저번에 태운이 C급 가이드가 어떻게 현장에 왔냐며 화냈던 게 떠올랐다.

“그럼 저는 어떻게 해요?”

“센터 전용 가이딩실에서 대기해 주세요.”

“제 파트너는 S급이에요. 그래도 안 되나요?”

태운이 언제 위험에 처할지 몰랐기에 현장에서 대기하고 싶었다.

“네. 안 됩니다.”

“알겠습니다….”

C급이라는 등급은 항상 내 앞길을 가로막았다. 이곳에 오기 전부터 비참한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등급 앞에서는 더한 비참함을 느꼈다.

결국 센터로 돌아가, 전용 가이딩실 안에서 대기했다. 다행히 가이딩실 내부에 있는 모니터를 통해 게이트 상황을 볼 수 있었다.

태운과 팀원들이 보였다. 태운은 단독으로 행동했고, 그가 화염 능력을 사용할 때마다 마물들이 빠르게 재가 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태운의 가이딩 수치 또한 줄어들었다. 나는 게이트가 닫히기를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게이트는 장기전으로 이어졌고 결국 1시간을 넘겼다. 여전히 게이트에서는 쉴 새 없이 마물들이 나왔지만, 결국 태운의 일격으로 보스 마물이 소멸하면서 게이트가 닫혔다.

태운의 가이딩 수치는 42%였다. 곧장 가이딩하지 않으면 계속 수치가 떨어져 폭주할 위험이 있었다.

다른 에스퍼들은 셸터로 이동하는데 태운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는 혹시 내게 오는 걸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을 품었지만, 그가 오는 일은 없었다. 결국 태운의 전용 가이딩실로 향했으나 역시 여기에도 없었다.

아무래도 집에 간 거 같은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태운을 자정까지 기다렸다. 하지만 결국 태운은 오지 않았고,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기숙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태운이 걱정되어 밤새도록 가이딩 워치를 확인했다. 태운은 약물 가이딩을 받았는지 새벽 6시가 되었을 때에야 가이딩 수치가 평정권에 도달했다.

내가 가이딩해 줬으면 안정권에 바로 들어갔을 텐데…. 당장이라도 태운의 곁에 가고 싶었지만, 갈 수 없는 이 상황이 너무나도 답답했다.

***

승급 프로그램을 하면서 격주마다 윤 박사의 상담을 받았다. 오늘도 윤 박사의 상담을 받기 위해 연구실로 향했다.

“파장 방출량이나 전달 속도를 보면 B급 수치와 가까워지고 있어요.”

나 또한 윤 박사님의 말대로 내 수치가 B급과 가까워지고 있단 걸 느끼고 있었다. 그럼에도 윤 박사님의 입으로 직접 듣자, 너무나도 반가웠다.

“언제쯤이면 B급으로 승급할까요?”

“신의 가이드님은 다른 가이드보다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어요. 이대로면 올해 안에 B급으로 승급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다행이에요. B급이 되면 현장 가이딩이 가능해지는 거 맞죠?”

“네. 하지만 권하지는 않습니다. 아무래도 현장에서는 에스퍼들이 흥분하는 경우가 많아서 낮은 등급은 역가이딩으로 사망하는 일이 대부분이에요. 파장을 다루는 데 서투니까요.”

“그렇군요.”

일단 대답하긴 했지만, 머릿속엔 빨리 B급이 되는 것만이 방법이라는 생각만 가득했다. 태운에게 내 발전 가능성을 보여 주려면 현장 가이딩이 가능해져야 했으니까.

“태운 씨는 계속 약물 가이딩 받고 있나요?”

내 질문에 윤 박사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면제도 다시 처방받고 있다고 말했다. 나와 있을 때 곤히 자던 태운의 모습이 떠올랐다. 역시 그에겐 내가 필요했다.

“그래도 슬슬 한계일 거예요. 매칭률이 높은 가이드와의 가이딩은 에스퍼에게 마약처럼 강력한 중독성을 가지게 되거든요.”

나는 제발 내 가이딩에 태운이 중독되었기를 바랐다.

그리고 머지않아 내 바람은 현실이 되었다. 윤 박사님의 말대로 한계에 도달한 태운이 나를 찾아왔다.

가이딩 훈련실에서 파장 증폭 기계를 착용하고 있을 때였다. 문이 열리며 태운이 들어왔다. 갑작스러운 태운의 모습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는 거의 제정신이 아닌 얼굴이었다. 눈 아래와 입술이 검었고 걸음걸이도 술에 취한 사람처럼 휘청거렸다.

“태운 씨?”

태운은 나를 보자마자 달려들었다. 그리고 나를 꽉 껴안으며 침대로 넘어졌다.

“태운 씨, 괜찮아요?”

그는 며칠은 못 잔 사람 같았고 옅게 알코올 냄새도 풍겼다. 늘 나를 거부하던 태운인데 오늘은 말없이 날 껴안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전극을 빼내고 태운을 침대에 제대로 눕혔다. 그리고 태운을 보기 위해 몸을 살짝 떼어 냈지만, 그는 내가 떨어지는 게 싫은지 꽉 껴안았다. 나는 달래듯 태운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안 도망가요. 자세 편안하게 해 줄게요.”

나를 껴안는 태운의 체온이 너무나도 기쁘고 반가웠다. 태운은 내 품 안에서 편히 잠들어 있었지만, 자세히 보니 온몸이 땀범벅이었고 뜨거웠다. 심장 박동 수도 불규칙하고 말이다.

내가 조금 더 믿음직스러웠다면 태운도 내게 의지했을 텐데….

“제가 열심히 해서 태운 씨한테 어울리는 가이드가 될게요.”

“…….”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태운의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가이딩을 했다. 내 파장이 폭주하듯 튕기는 태운의 파장을 부드럽게 감쌌다.

파장이 이어지자마자, 태운의 가이딩 수치가 서서히 올라갔다. 그리고 그를 감싸고 있던 열기가 점점 사그라드는 걸 느꼈다.

나는 태운의 몸을 부드럽게 안았다. 그러자 그도 나를 껴안았다.

매일 태운과 만나기를 기다리고 있었기에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도 행복했다.

태운의 파장이 온화해지며 내 파장과 뒤섞였다. 그렇게 나 또한 안정감을 느끼며 태운과 함께 침대에 누워 서로를 안고 있었다. 오랜만에 느껴 보는 따스한 평온함이었다.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