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태운의 집에 돌아오고 제일 먼저 걱정되었던 것이 온실이었다. 나를 쫓아냈는데 식물이라고 돌봐줬을 리가. 오래 돌보지 못했으니 당연히 말라 죽었으리라 예상했다.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달리 식물은 누군가 관리한 것처럼 마지막 때의 모습 그대로 잘 자라고 있었다.
‘태운이 관리를 해 주고 있었던 것일까?’
나는 태운에게 물어보기 위해 그의 방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태운이 곧장 답해 왔다.
“왜.”
“잠깐 물어볼 게 있는데 들어가도 돼요?”
“뭔데.”
문이 열리며 태운의 모습이 보였다. 갑자기 문이 열려서 놀랐지만, 놀람을 가라앉히며 궁금했던 점을 그에게 물었다.
“태운 씨, 혹시 온실에 있는 꽃에 물 줬어요?”
“아니. 내가 왜?”
아니라는 태운의 말에 가사 도우미 아주머니가 챙겨 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기대와는 다른 상황에 아쉬움을 느꼈다.
“아…. 아주머니였구나.”
“내가 줬을 거 같아?”
태운은 빈정거리는 말투로 말했다. 그 모습을 보자 괜히 물어봤다는 후회도 들었다.
“궁금해서 물어봤어요. 그럼 다시 쉬세요.”
나는 다시 온실로 가려고 했지만, 그런 나를 태운이 잡았다.
“방에만 있으라고 했을 텐데?”
그의 말에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멈췄다. 방에만 있어야 했지만, 식물이 걱정되어 온실을 확인했던 것이다.
이대로 아주머니께 온실을 봐 달라고 해도 되었지만, 어머니가 남기고 간 식물들과 태운이 선물로 준 수선화는 내가 키우고 싶었다.
“…온실만 허락해 주면 안 돼요?”
“안 돼. 방으로 들어가.”
그의 말에 나도 모르게 눈가가 붉어지며 입술이 떨려 왔다. 내가 울 것 같은 얼굴로 있자 결국 태운이 짜증 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게 울 일이냐?”
“안 울어요….”
태운의 말에 정말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나는 입을 꾹 다문 채 울음을 삼켰다. 그런 내 모습을 보던 태운이 바닥을 차더니 방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온실만이야. 다른 곳은 안 돼.”
예상치 못한 태운의 허락에 그를 바라보자, 그는 나를 곁눈질로 보더니 방문을 닫았다. 나는 작게 고맙다고 말하고 다시 온실로 향했다.
아마 내가 싫었다면 태운은 온실에 가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확실히 우리 둘의 관계가 호전되고 있다는 걸 느꼈다.
***
C급인 나는 원래 게이트 시뮬레이션에 참여할 수 없었지만, 박 팀장님과 민성 선배 덕분에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박 팀장님과 팀원들은 내가 다음 등급 테스트 때 B급이 될 거라 믿고 있었다. 나 자신보다도 나를 믿어 주는 팀원들의 믿음에 감사했다.
하지만 태운은 내가 팀 게이트 시뮬레이션에 참여하는 것에 탐탁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박 팀장님께도 나는 아직 시뮬레이션에 참가하기엔 부족하다고 계속해서 말한 것 같았다. 하지만 박 팀장님은 태운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결국 태운은 내게 찾아와 참여하지 말라고 말했지만, 나는 모른 척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결국 태운의 바람과는 달리 전투 훈련복을 입고 게이트 시뮬레이션실로 갔다. 먼저 대기하고 있던 태운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결국 왔네.”
“네. 지금부터 연습해야 나중에 도움이 될 거 같아서요.”
“발목이나 잡지 마.”
“조심할게요.”
팀원들에게 짐이 될 생각은 절대로 없었다.
들어가기 전, 우선 팀원들과 소통할 수 있는 이어셋을 착용했다. 손에는 에너지 건을 쥐었다. 박 탐장님께 개인적으로 게이트 훈련을 지도받을 때 접했던 가이드 무기 중 내가 가장 잘 다루는 것이었다. 오늘 실력을 선보이기에 좋을 거 같았다.
“들어갑시다.”
박 팀장님의 말을 끝으로 시뮬레이션실 문이 열렸다.
시뮬레이션실 내부는 가상 공간이었기에 상황에 따라 배경이 바뀌었다. 오늘은 도심 속이었다.
팀 게이트 시뮬레이션은 실제 게이트 출현 상황과 비슷한 환경에서 이루어졌다. 어디서 게이트가 나타날지 몰랐다.
머지않아 이어셋에 게이트 시작 알림 안내가 들려왔다.
<게이트 시작하겠습니다. 스리, 투, 원, 제로.>
건물 사이로 게이트가 형성되더니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가상 공간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게이트가 천공에 뜨는 모습이 진짜 같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번 시뮬레이션은 나를 배려해 A급 중에서도 하급에 속하는 게이트로 진행되었지만, 하급이라고 해도 A급이었기에 조심해야 했다. 게이트 시뮬레이션은 마물의 수도 설정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100마리였다. 실제 게이트에 비하면 적은 숫자였지만, 이것 또한 나를 위한 배려였다.
“긴장하지 말고 훈련 때처럼 하면 돼요.”
“네.”
내가 답하자마자 박 팀장님은 공중에 뜬 채 게이트로 이동했다.
게이트에서 하급 마물들이 지상으로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나와 민성 선배는 지상에서 그 마물들을 처리했다.
에너지 건의 탄알에는 B급 에스퍼 정도의 위력이 응축되어 있었다.
나는 마물의 머리를 향해 에너지 건을 쏘았다. 이번에 훈련받으면서 내가 사격 쪽에 두각을 보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번에도 나는 한 번에 마수의 머리에 탄알을 맞추며 소멸시켰다. 마물들이 소멸할 때마다 게이트 문 위에 설치된 모니터의 숫자도 줄어들었다.
- 신의 씨, 처음인데도 잘하는데요?
이어셋으로 민성 선배의 목소리가 들렸다.
“감사해요. 열심히 할게요.”
- 열심히 하면 뭐 해, C급인데.
민성 선배와 내 말 사이에 태운이 끼어들었다. 팀원 모두와 이어셋 통신이 이어져 있었기에 태운이 우리의 대화를 들었나 보다. 게이트로 고개를 돌리자 태운이 보스 마물과 대치하고 있었다.
- 현태운 에스퍼, 팀원끼리 예의는 지키죠. 무례하네요.
민성 선배는 불쾌하다는 목소리로 말했지만, 태운도 지지 않고 말했다.
- 사실이잖아요?
태운의 말이 끝나자마자 위쪽에서 큰 불꽃과 함께 굉음이 터졌다. 위를 보자 보스 마물이 불에 휩싸인 채 타고 있었다.
- 이제 슬슬 그만하죠.
태운은 더는 게이트 훈련을 하고 싶지 않다는 듯 말했다.
게이트는 닫혔지만, 여전히 마물들이 있었다. 나는 태운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 마물들을 향해 총을 겨누었지만, 태운이 먼저 내 목표물을 향해 불을 쏘아 댔다. 그리고 그대로 무차별적으로 능력을 사용하며 나머지 마물들을 모두 죽였다.
하지만 팀 게이트 시뮬레이션은 게이트가 닫히면 끝나는 현실과는 달리 가이딩까지 해야 끝이 났다. 이제 가이딩을 해야 하는데, 태운은 가이딩받을 생각이 없다는 듯 박 팀장님께 나가겠다고 말했다.
“저는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태운 씨, 신의 씨랑 가이딩해야죠.”
“늘 하던 대로 기계 가이딩 받으려고 하는데요.”
“오늘은 신의 씨 있잖아요.”
태운의 모습에 민성 선배가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저 그들의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태운은 나와 가이딩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 박 팀장님의 단호한 말에 가상 가이딩 셸터로 들어갔다.
태운을 따라가야 하나 고민하는데 태운이 나를 불렀다.
“안 따라오고 뭐 해.”
“갈게요!”
태운의 말에 나는 강아지처럼 그의 뒤를 따라 함께 가이딩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가이딩실이 생각보다 작았다. 1평 정도의 크기였는데 나와 태운이 들어가자 꽉 찬 느낌을 받았다.
“여기는 여전히 좁네.”
가이딩실에 마련된 두 개의 의자 중 하나에 앉은 태운이 말했다. 나는 그의 옆에 앉으며 서둘러 손을 내밀었다.
“제가 빠르게 가이딩할게요.”
다행히 태운은 별다른 말 없이 내 손을 잡았지만, 다시 타박이 이어졌다.
“C급이면서 왜 시뮬레이션에 참여해.”
태운의 말에 그제야 나는 그가 화난 이유가 나와 가이딩해야 해서가 아니라 내가 시뮬레이션에 참여해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까 보셨잖아요. 저 발목 안 잡고 잘할 수 있어요.”
“실전이랑은 달라.”
“알아요. 승급할 때까지는 현장 게이트에는 안 나갈게요.”
내 말에도 현태운은 여전히 탐탁지 않아 했다. 그 모습에 나는 가이딩에 더 집중했다. 태운에게 내가 도움이 되고 있다는 걸 빨리 알려 주고 싶었다.
이곳에 오기 전에 확인한 태운의 가이딩 수치는 58%였다. 여기서 70%까지는 올리고 싶었다.
“저 그래도 오늘 잘하지 않았어요?”
“아직 멀었어.”
“더 열심히 노력할게요.”
태운은 더는 말하지 않은 채 눈을 감았다. 그래도 내 가이딩은 마음에 드는지, 가이딩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트집을 잡지 않았다. 그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가이딩 수치가 70%를 넘겼을 때, 태운이 눈을 떴다. 그리고 가이딩 수치를 확인하자마자 인사도 없이 나가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씁쓸했지만, 그래도 가이딩을 거부하지 않아서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조금씩 태운이 내게 자신의 옆자리를 내주는 기분이 들어 더 열심히 노력하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원래는 이대로 퇴근해도 되었지만, 나는 곧장 훈련실로 이동해 가이딩 훈련을 했다. 팀원들 모두 쉬라고 했지만, 나는 꿋꿋하게 훈련했다.
박 팀장님은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오후에는 자율 훈련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그렇게 나는 오전에도 오후에도 저녁에도 훈련만 받았다. 힘든 일정이었지만, 태운을 생각하면 전혀 힘들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