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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가이드는 이만 퇴사합니다-15화 (15/65)

15화

이번에 B급으로 승급하면서 제복을 새롭게 받았다. C급일 때는 흰색 제복이었는데 이번에는 하늘빛 제복이었다.

등급이 높아질수록 제복 색이 진해지는데, S급인 태운의 제복은 검은색이었다. 나도 언젠가 그와 같은 색의 제복을 입고 싶었지만, 평생 이루지 못할 바람이란 걸 알고 있다.

그래도 이렇게 승급해서 B급 가이드 제복을 입을 수 있어서 기뻤다. 새로운 제복을 입으니까, 내가 B급 가이드가 된 것도 실감되었다.

제일 먼저 팀 전용실로 가서 박 팀장님과 팀원들에게 승급을 축하받았다. 가이드 동료들이 이번 승급을 축하해 주니 더욱더 기뻤다.

C급 훈련실이 아니라 B급 훈련실로 가는 발걸음이 유난히 가벼웠다.

B급으로 승급하고 훈련 방식이 바뀌었다. B급 이상부터는 가이드와 에스퍼가 훈련 파트너를 맺고 함께 훈련받았다. 나도 이번에 B급 에스퍼로 각성한 김성주 에스퍼님의 훈련 파트너가 되었다.

훈련 파트너가 되면 가이딩 훈련도 함께해야 하지만 나는 이미 태운의 전속 가이드였기에 신체 강화 훈련만 같이 받았다.

김성주는 태운과 달리 자상했다. 그리고 B급으로 승급한 나를 멋있게 봐주었다. 태운으로 인해 죽었던 자존감은 늘 동료들 덕분에 회복되는 것 같다.

승급 프로그램실에서 훈련받고 나오자 벌써 늦은 밤이 되어 있었다.

집에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로 향하고 있을 때였다. 엘리베이터 앞에 낯익은 모습이 보였다. 민혁이었다. A급 에스퍼인 민혁은 남색 제복을 입고 있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그에게 빠르게 다가갔다.

“민혁아!”

“어? 신의 너 제복 바뀐 거 같다?”

A급 이상은 지하에서 훈련을 받아서 자주 못 만나니 민혁은 내가 승급한 걸 몰랐을 것이다. 그래도 그가 딱 눈치채 주니 기뻤다.

“응. 나 이번에 B급으로 승급했어!”

“승급했으면 연락해 주지. 축하해.”

“고마워.”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민혁의 모습에 저절로 미소가 띠어졌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집에 가는 거야?”

“응.”

“그럼 내가 기숙사까지 태워다 줄게.”

“아! 나 이제 기숙사에서 안 살아.”

“그럼 어디서 살아?”

“태운 에스퍼님 집에서 살고 있어.”

내 말에 민혁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뀌어 나를 바라봤다.

“신의 너 현태운 에스퍼님 전담이었지. 그러면 거기까지 바래다줄게. 오랜만에 더 길게 이야기하고 싶고.”

나 또한 민혁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나는 담당자님께 사정을 이야기하고 민혁의 차로 집까지 이동했다. 민혁과 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어느새 태운의 이야기까지 하게 되었다.

“현태운 에스퍼님이랑 사이가 안 좋다고 들었는데, 괜찮아?”

“응, 괜찮아.”

이미 센터의 모두가 나와 태운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태운의 성격이 나쁘단 것도 이미 다들 알고 있었기에 내게 응원과 연민의 시선을 보내곤 했다. 나는 그런 동정의 눈빛이 싫어 최대한 태연한 척 행동하고 있었다.

“너무 힘들면 전속 끊는 것도 생각해 봐.”

“끊는 방법이 있어?”

태운이 나를 투명 인간 취급하지만 그와의 전속 계약을 끊고 싶진 않았다. 태운도 현재 전속을 끊을 생각을 하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응. 다른 에스퍼와 각인하면 돼.”

민혁의 말에 바로 거부 반응이 올라왔다. 다른 에스퍼와의 각인 같은 건 생각해 본 적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아니야. 나는 지금이 좋아.”

내 말에도 민혁은 여전히 나를 염려하는 것 같았지만, 필요 없는 걱정이었다.

“너 엄청 피곤해 보여.”

“정말 괜찮아.”

사실 무리하면서 등급을 올리고 있는 건 맞았다. 하지만 B급으로 승급하니 그동안의 힘들었던 일들이 더는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의욕이 생겨서 더 열심히 승급 프로그램 훈련을 받고 있었다.

“그러면 다행이고.”

“응.”

어느새 집 앞에 도착해 있었다. 민혁은 아파트 정문 앞에 나를 내려 주었다.

“데려다줘서 고마워.”

“푹 쉬고 조만간에 따로 밥 먹자.”

“알겠어. 조심히 들어가.”

차 문을 닫고 출발하는 차를 보고 나서야 집으로 향했다. 도어 록을 풀고 집 안으로 들어가자 담배 냄새가 풍겼다. 태운이 거실 소파에 앉아 술을 마시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나 왔어.”

내 말에 태운이 흘낏 시선을 주었다. 나는 그 시선을 느끼며 손으로 코와 입을 막고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 내 뒤로 태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승급하니까 좋냐?”

비아냥이 담긴 말이었기에 나도 모르게 살짝 인상이 써졌다.

“당연히 좋지.”

“가이드들은 에스퍼한테 환장한다던데 너도 별반 다르지 않나 봐?”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해?”

의도를 알 수 없는 말이었다. 지금까지 태운 외의 에스퍼에게 가이딩한 적은 없었다. 그리고 따로 연락하는 사람도 없고 말이다.

“너도 그런 거 같아서. 요즘 딴 에스퍼 새끼랑 붙어먹는 거 같은데, 내 가이딩에나 열중해.”

태운은 일부러 내 쪽으로 연기를 뱉었다. 나도 모르게 기침이 나왔다. 괴로워하는 내 모습을 보고도 태운은 계속해서 담배를 피웠다.

그런 그의 모습이 야속했지만, 나 좋자고 태운에게 담배를 그만 피우라고 할 수도 없었다.

“다른 에스퍼랑 붙어먹은 적 없어. 그리고 담배는 테라스에서 피우라고 했잖아.”

“내 집인데? 싫으면 네가 나가.”

그 말에 나는 결국 방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태운이 왜 화가 났는지 모를 일이었다. 아무래도 승급한 뒤 다른 에스퍼들과 놀고 있다는 오해를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매번 내가 승급 프로그램으로 늦게 들어오고 있으니 충분히 오해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내일 오해를 풀어야 할 것 같다. 태운이 들어 줄지는 모르겠지만….

태운이 화를 내는 날이면 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기에 나는 최대한 조금 전의 일을 잊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결국 침울해져 한동안 침대에 앉아 우울함에 빠져 있었다.

***

승급 프로그램 훈련 중에 담당 연구원이 갑자기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묻자, 윤 박사님의 호출을 전달했다.

훈련을 멈추고 곧장 윤 박사님의 연구실로 가자, 그는 모니터를 보고 있다가 내 모습에 몸을 일으켰다.

“신의 가이드님 오셨군요.”

“네. 무슨 일로 부르셨어요?”

윤 박사님은 책장 옆 원형 테이블로 이동하며 내게 앉을 걸 권했다. 나는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이번에 승급했다는 말 들었어요.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윤 박사님 덕분이에요.”

“아니에요. 모두 신의 가이드님 노력 덕분이죠. 그래서 그러는데, 이번에 S급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데 참여해 보실래요? 신의 가이드님께 가능성이 보입니다.”

“S급 프로젝트요?”

S급 프로젝트라는 말에 나는 눈이 휘둥그레져 윤 박사님을 바라봤다. 그는 미소를 지은 채 내 얼굴을 보며 말을 이었다.

“S급으로 승급할 수 있도록 연구진들과 함께 진행하는 프로젝트예요.”

S급. 내게는 꿈같은 등급이었다. 그리고 현재 절실히 바라는 등급이기도 했다.

“제가… 가능할까요?”

“당연히 가능하죠.”

가능성이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솔직히 S급이 될 수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소수 정예로 이루어진 협회 기밀 프로젝트라서 진행 여부와 상황은 저와 신의 가이드님만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럼 태운 에스퍼님한테도 말하면 안 되나요?”

“네.”

태운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윤 박사님의 말이 마음에 걸렸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는 프로젝트였다. 나중에 S급이 되면 태운을 깜짝 놀라게 해 줄 수 있다는 생각에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밀 유지할 수 있어요.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그럼 신의 가이드님도 참여하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네. 소수 정예 프로젝트인데 제안해 주셔서 감사해요.”

“아니에요. 신의 가이드님께는 다른 가이드들과는 다른 특별함이 있어요.”

“그렇게 봐주시니 기쁘네요.”

윤 박사님 덕분에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어 감사한 마음이 컸다. 윤 박사님은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띤 채, 태블릿 PC 화면을 내게 보였다.

“그럼 프로젝트 기밀 보장 계약서부터 먼저 살펴볼까요?”

윤 박사님은 내게 전자 계약서를 보여 줬다. 그의 말을 들으며 하나씩 조항들을 확인했다. 간단한 계약서였다. 프로젝트에 대해서 모두 기밀에 붙이라는 것과 기밀 유지를 위해 정신계 에스퍼 능력을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어떤 능력을 사용하는지는 기밀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S급만 된다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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