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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가이드는 이만 퇴사합니다-23화 (23/65)

23화

오전 훈련을 마치고 윤 박사님의 부름에 그의 연구실로 향했다. 그는 평소보다 밝은 웃음을 지으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윤 박사님은 대체로 웃고 계셨기에 이것으로 승급했다고 단정할 순 없었다.

나는 긴장한 얼굴로 인사를 하고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윤 박사님은 나를 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승급 결과가 나왔어요.”

역시 승급 때문에 부른 것이었다.

“어떻게 나왔나요…?”

결과를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쿵쿵 뛰었다. 윤 박사님은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 내게 태블릿 PC를 보여 줬다.

“신의 가이드님, 축하드려요. A급으로 승급했어요.”

“정말요? A급이 맞아요?”

나는 믿어지지 않아 태블릿 PC 화면과 윤 박사님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그러자 윤 박사님은 맞다고 재차 말해 주었다.

그리고 나를 자신의 모니터 쪽으로 데리고 갔다. 모니터 프로그램 창에 내 데이터가 나열되어 있는데 A급이 될 수 있는 조건을 모두 넘어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기쁨의 탄식이 터져 나왔다.

“박사님, 감사해요.”

승급됐다는 흥분으로 목소리가 쉴 새 없이 떨렸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요. 이젠 S급이 되는 일만 남았네요.”

“네. 이제 한 번만 더 승급하면….”

“지금처럼만 하면 돼요.”

이젠 한 단계만 올라가면 되었다. 윤 박사님은 A급이 되었으니 협회와 새로운 계약서를 작성해야 한다고 했다. 내일 중으로 센터장님께 연락이 올 거라는 말을 듣고 연구실에서 나왔다.

곧장 태운에게 승급 사실을 알리고 싶었지만, 전화가 아니라 직접 얼굴을 보고 소식을 전하고 싶었다.

나는 복도에 서서 태운에게 전화를 걸었다.

- 왜.

무신경한 태운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지금은 그저 좋았다.

“오늘 일찍 들어올 수 있어?”

- 내일 생일이라서 그러냐?

태운의 말에 서둘러 캘린더를 확인해 보고 나서야 내일이 내 생일이란 걸 알았다. 승급만 생각하다 보니 날짜 개념이 사라졌다.

내 생일을 기억하는 태운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생각해 보니 작년 생일 때도 태운이 선물을 챙겨 줬었다.

“기억하고 있었어?”

- 생일만 되면 징징대서 잊고 싶어도 떠오른다.

태운의 말에 작은 웃음이 나왔다. 그의 말대로 작년 생일 때 함께 케이크를 먹자고 졸랐었다. 그리고 태운은 마지못해 나와 생일 케이크를 먹어 주고 작은 선물도 주었다.

“알면 오늘 일찍 와 줘.”

- 저녁에 일정 있어서 늦을 수도 있어.

“괜찮아. 기다리고 있을게.”

태운이 내 생일을 아는 것만으로 기뻤기에 늦어도 상관없었다. 그리고 빨리 그에게 승급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이제 태운의 곁에 떳떳하게 있을 수 있었다.

센터에 내 승급 소식이 금세 소문이 났는지 가이드와 에스퍼들이 일부러 내 훈련실까지 찾아와 축하를 해 줬다.

“신의 가이드님, A급 승급 축하드려요.”

“고마워요.”

“현태운 에스퍼님도 좋아하실 거예요.”

“네.”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마 좋아할 것이다. 빨리 집에 가서 태운을 만나고 싶었다.

“형, 오늘 축하 파티 해야지!”

아까부터 나보다 더 기뻐 보이는 지훤이 내게 어깨동무하며 말했다. 그의 말이 고마웠지만, 오늘은 태운과 집에서 보내고 싶었다.

“미안. 오늘은 안 될 거 같아.”

“왜!”

“태운이랑 만나기로 했어.”

내 말에 지훤과 동료들이 아쉬워했다. 미안했지만, 그들보다 내겐 태운과의 만남이 더 중요했다.

“그럼 내일은?”

“내일은 모르겠는데.”

“그럼 주말은?”

“주말은 괜찮아.”

동료들은 내 일정을 꼬치꼬치 캐묻더니, 이번 주 주말에 내 승급 파티를 열어 주겠다고 했다. 이제는 동료를 넘어서 친한 친구처럼 느껴졌다. 4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센터에서 잘 지냈다는 걸 알려 주는 것 같아 뿌듯하기도 했다.

그렇게 주말 약속을 잡고 팀 전용실로 오니, 팀원들도 나를 반기며 축하해 주었다. 훈련을 받는 내내 나는 퇴근 시간이 되길 기다렸다.

팀장님과 훈련을 끝내고 제복으로 갈아입기 위해 이동하고 있을 때였다.

맞은편에서 성요한이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반사적으로 기밀 프로젝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와 가이딩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날은 더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 중 하나가 되었기에 빠르게 기억을 지웠다.

성요한도 나를 알아봤는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신의 씨, 오랜만이에요.”

“네. 오랜만입니다.”

“잘 지냈어요? 몸이 안 좋다고는 들었는데.”

“저는 괜찮아요.”

몸이 좋지 않다는 건 기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연구원들과 태운만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아무래도 윤 박사님께 들은 것 같았다.

“다행이에요. 그런데 요즘은 가이딩 안 하나 봐요?”

“…네?”

“태운이 파장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요. 태운이랑 사이가 안 좋다면 언제든지 저한테 와요.”

성요한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그 웃음에 나는 살짝 인상을 쓰며 말했다.

“저 태운이랑 사이좋아요.”

“그래요? 며칠 전에 바에서 태운이가 새벽까지 가이드랑 술 마시고 있길래 전속이 끊길 줄 알았어요.”

성요한의 말에 그간 태운이 새벽에 만취 상태로 돌아오곤 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가 가이드를 싫어하는 걸 넘어서 혐오하는 것을 알기에 늦게 들어와도 괜찮았는데, 성요한의 말에 작은 배신감을 느꼈다. 나는 애써 아닐 거라고 생각하며 부정했다.

“아니에요. 잘못 보신 거겠죠.”

“같이 대화도 나눠서 잘못 본 건 아니에요. 이번에 S급으로 각성한 주원재 가이드랑 같이 있었죠.”

“정말 주원재 가이드였어요?”

“네.”

확고한 성요한의 말에 짧게 헛웃음이 나왔다. 성요한의 말을 믿고 싶지 않았지만, 정말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가 앙다물어졌다.

“전속이 끊기면 언제든지 연락해요.”

성요한이 떠나고 나는 한동안 복도에 서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탈의실 쪽으로 이동했다.

내가 직접 본 것이 아니니까, 믿지 않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이런 소문을 만들고 다니는 태운이 원망스럽고 미웠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손으로 캐비닛을 열었을 때였다.

꽃향기와 함께 장미 꽃다발과 축하 메시지가 적힌 쪽지가 있었다.

태운인가 싶었지만, 그는 절대로 이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다. 아마 동료 중 한 명이겠지.

성요한을 만나기 전이라면 분명 기뻤겠지만, 기쁘지도 않고 꽃도 예뻐 보이지 않았다.

나는 무관심한 손길로 꽃을 들고 센터에서 나왔다.

오늘은 진호 형에게 혼자 가겠다고 말해 두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베이커리에 들러 케이크를 샀다. 평소보다 큰 홀 케이크를 사고, 근처 와인 숍에서 샴페인도 샀다. 나는 그저 기계처럼 움직이며 물건들을 구매했다.

집에 도착하고 소파에 앉아, 지갑을 꺼내 어머니의 사진을 보며 말했다.

“저 A급이 되었어요.”

어머니는 가만히 나를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말을 이었다.

“이 능력도 태운이도 모두 어머니가 저를 걱정해서 주었다고 생각해요.”

어머니의 생일에 찾아온 가이드 각성과 현태운. 여전히 내게 선물처럼 느껴졌다.

“어머니가 걱정하지 않도록 잘 살게요.”

마지막 말을 끝으로 지갑을 접어 두고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봤다.

정신을 차린 것은 거실이 어둑어둑해질 무렵이었다. 전등을 켰지만, 혼자 있는 집 안은 너무나도 적적했다. 결국 티브이를 켜고 채널을 돌리다 손이 멈췄다. 가이드&에스퍼 전용 뉴스에서 생방송을 하고 있었다.

화면엔 태운의 모습이 클로즈업되고 있었고, 그 옆에는 주원재가 있었다. 둘은 연인처럼 잘 어울렸다.

오늘 저녁에 있다는 일정이 주원재를 위한 축하 파티였단 걸 알 수 있었다.

잊으려고 노력했던 성요한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나는 채널을 돌리고 저녁을 먹기 위해 주방으로 이동했다. 영혼이 나간 것처럼 얼굴에 표정이 지어지지 않았다.

저녁을 다 먹고 멍하니 티브이를 보며 시간을 확인했다. 밤 11시였다.

여전히 태운에게 연락은 없었고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다. 그가 약속을 지킨 적은 드물었기에 오늘도 늦게 올 것이 분명했다.

자정까지 태운이 들어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면 내 모습이 너무나도 비참할 것이 분명했다.

나는 태운이 들어오지 않을 걸 확신하며 몸을 일으켜 수면 칩을 가지러 갔다. 그런데 머리에 두통이 일기 무섭게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목을 쥔 채 그대로 주저앉았다. 코에 출혈까지 생겼는지 바닥에 피가 뚝뚝 떨어졌다.

몸을 일으키려고 해도 힘이 들어가지 않아 바닥에 몸이 늘어졌다. 이 순간에도 ‘태운이 함께 있어 줬더라면.’이란 생각을 하며 간신히 주방까지 기어가, 윤 박사님이 주신 약을 물도 없이 목구멍으로 넘겼다.

분명 승급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오늘만큼은 내 세상인 것만 같았는데. 지금은 너무나도 괴로웠다. 그냥 이대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게 잠들고 싶었다.

다행히 약을 먹으니 피는 바로 멈췄다. 두통은 여전했지만, 정신을 못 차릴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내가 흘린 피들을 닦고 한동안 바닥에 앉아 있었다. 그러다 자정이 다가오는 걸 확인하며 수면 칩을 가지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결국 내가 잠들 때까지 태운은 들어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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