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현태운은 꽃만큼이나 어여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얼굴을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문을 닫으려고 했지만, 현태운이 빠르게 문을 잡았다.
“신의 씨, 좋은 아침이에요.”
“왜 현태운 씨가 여기 있는 거죠?”
아침부터 현태운을 만난다는 건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제가 센터까지 픽업해 드리려고 왔어요. 그리고 이건 S급 가이드 각성 축하 선물이에요.”
현태운이 내게 꽃을 건넸다. 나랑 어울리지 않는 화사한 꽃들이었다. 꽃향기가 바로 내 주변을 맴돌았지만, 내겐 마치 회귀 전 현태운이 피우던 담배 냄새처럼 지독하게 느껴졌다.
“저 꽃 싫어합니다.”
“꽃 싫어하세요?”
“네. 그리고 현태운 씨랑 같이 갈 생각 없어요.”
“왜요?”
“불편하니까요.”
나는 문을 잡은 현태운의 손을 떼어 내고 문을 닫았다. 문 너머로 현태운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무시하며 센터 직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센터에서 곧장 데리러 오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정문에 도착했다는 직원의 전화에 나갈 채비를 하고 문을 열자, 현태운이 여전히 문 옆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설마 했는데, 기다리고 있는 모습에 짜증이 일었다. 조금 전의 꽃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꽃을 싫어한다는 내 말에 처리한 거 같다.
현태운은 내게 말을 걸려고 했지만, 나는 그대로 무시하고 엘리베이터로 걸어갔다.
호텔 로비에 도착하니 센터 직원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직원의 차를 타고 센터로 가는데 뒤에서 현태운의 차가 쫓아왔다. 신경에 거슬렸지만, 무시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최대한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센터에 도착했을 때는 어제 받았던 지상 테스트실이 아니라 지하로 이동했다. 원래는 더욱 세밀한 가이드 등급 테스트를 받으려면 국제 협회로 가야 했지만, 이번엔 물리계 에스퍼의 능력으로 테스트 기계를 센터까지 이동해 주었다고 한다.
지하 복도에는 연구원들과 가이드, 에스퍼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이동할 때마다 그들은 조심스러운 움직임으로 멀찍이 떨어졌다. 마치 주원재와 현태운이 매칭 테스트를 했을 때와 비슷했다.
안내받은 방에는 윤 박사님과 센터 연구원들이 미리 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신의 가이드님 오셨군요. 밤은 편안하게 보내셨는지요?”
“네. 덕분에 잘 잤습니다.”
“다행이에요. 오늘은 협회장님도 오셨습니다.”
3년간 협회에서 지냈지만, 협회장님은 처음 뵈었다. S급이 협회에 중요하긴 한가 보다.
나는 윤 박사님 안내로 협회장님께 인사를 했다. 협회장님은 생각보다 젊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나와 짧게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등급을 다시 테스트해 보자고 말했다.
그렇게 나는 수십 명의 센터 관리자들과 현태운이 보는 앞에서 재테스트를 시작했다.
국제 협회의 등급 테스트 유리 돔은 센터에 있는 것보다 크고 두께도 두꺼웠다. 안으로 들어오자 위압감에 숨이 막히는 기분마저 들었다.
나는 가운데에 놓여 있는 의자에 앉아 윤 박사님의 말을 기다렸다.
- 신의 가이드님, 테스트 시작하겠습니다. 어제보다는 빠르게 끝날 거예요. 편안하게 있으세요.
“네.”
윤 박사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돔 안의 기류가 거칠어졌다. 그리고 그와 함께 내 파장 또한 술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파장이 돔의 기류를 잠재우기 시작했다. 이런 느낌은 처음인지라 나 또한 당황스러웠다.
한동안 불규칙한 기류들이 내 몸을 거칠게 강타했다. 마치 태풍 속에 있는 기분이었고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내 파장은 침착하게 기류를 감쌌다. 주변이 태풍목에 들어온 듯 잠잠해졌을 때, 윤 박사님의 높아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 신의 님, 현재 S급 가이드 중에서 최상위 수치가 나왔습니다!
윤 박사는 흥분한 목소리를 감추지 못한 채 말했다. 그와 함께 연구원들의 기뻐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 신의 가이드님, S급 각성 다시 축하드립니다.
어제와 같이 모두에게 축하받았지만, 내 얼굴은 그들과 상반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S급이란 사실을 여전히 인정할 수 없지만, 테스트 결과가 S급인 이상 이번엔 무를 수 없단 걸 알 수 있었다.
S급 등급이 확정되고, 나는 곧장 계약서를 쓰기 위해 협회장과 함께 협회로 이동했다.
어제도 그랬지만, S급이 되었는데도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내가 그토록 바랄 때는 죽어라 애를 써도 올라가지 못했는데, 원하지도 않는 지금은 처음부터 S급이라니. 게다가 C급이라면 비교적 일반인과 비슷한 삶을 살 수 있었지만, S급이 된 이상 국가에 충성해야 했다. 나는 귀속된 삶을 바라지 않았다.
협회에 도착하고, 응접실에 갔을 때는 협회장의 비서가 계약서 준비를 끝내 놓은 상태였다.
나는 협회장과 임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있는 앞에서 계약서를 찬찬히 읽었다.
솔직히 종신 계약서나 다름없었지만, 충분히 내가 유리한 쪽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수정하고 싶으신 부분이 있다면 편하게 말씀 주세요.”
“우선 저는 누군가의 전속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계속 생각했던 말을 했다. 현재로선 전속에 관한 항목이 제일 중요했다.
“물론이죠.”
“그리고 현태운 에스퍼의 가이딩은 하지 않겠습니다.”
“네? …왜죠?”
내 말에 협회장은 예상치 못한 말을 들은 것처럼 당황하더니 의아한 얼굴로 물어봤다.
“이유는 없습니다.”
“…우선 알겠습니다.”
“그리고 해외 쪽으로 이동하는 에스퍼, 가이드들이 있다고 하던데요.”
예전에 B급으로 승급했을 때 동료 가이드들한테 들었다. A급 이상부터는 다른 나라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이동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했다.
“정확히는 한국 협회가 아니라 다른 나라의 협회 소속으로도 계약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 네.”
협회장은 내가 구체적인 정보를 모르리라 생각했었는지 살짝 당황한 눈치였지만, 빠르게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솔직히 다른 나라에 가서까지 가이딩하면서 지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S급 가이드가 10년 만에 나온 한국 협회에 내가 필요한 것을 알기에, 이 점을 철저히 이용할 생각이다.
“제가 원하는 조건은 딱 세 가지예요. 현태운 에스퍼의 가이딩은 하지 않는 것. 현태운 에스퍼가 제 주위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것. 그리고 협회에서 제 개인행동에 신경 쓰지 않는 것. 이렇게입니다.”
“우선 알겠습니다. 하지만 현태운 에스퍼님에 관한 건 조금 더 생각해 주시면 안 될까요?”
“더 고민한다고 제 생각이 바뀔 일은 없어요.”
내 말에도 협회장과 임원들의 간곡한 설득이 이어졌고, 결국 이틀 뒤에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고 나왔다.
우선 이틀간 내게 유리한 새로운 조건을 생각해 봐야 했다.
협회 1층 로비에서 센터 직원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에 엘리베이터로 향하고 있을 때였다.
멀리 익숙한 장신의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그가 성요한이란 걸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지금 시기면 파병되어 해외에 나가 있어야 할 텐데 의아함을 느꼈다.
성요한과 처음 만났을 때처럼 그가 먼저 내게 인사를 건네 왔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이번에 S급으로 각성한 가이드님이시군요.”
“네.”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협회와 센터에 내 이야기가 퍼졌을 확률이 높았다.
“전 S급 에스퍼 성요한이라고 해요.”
“이신의입니다.”
“이신의 가이드님은 S급이 된 소감이 어떠세요?”
내 말에 성요한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뜬금없이 소감을 묻는 그에게 지금 생각 그대로를 말했다.
“좋지도 않고 싫지도 않아요.”
“별로라고 말하는 거 같네요.”
성요한의 말이 맞았지만, 그렇다고 대꾸하진 않았다. 성요한은 답 없는 나를 내려다보더니 마치 둘만의 비밀을 말하는 것처럼 말했다.
“그래도 C급보다는 낫잖아요?”
“그렇죠.”
C급이었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대우가 좋았다. 하지만 지금의 내 상황에서는 하나도 좋지 않았다.
“같은 S급끼리 자주 봐요.”
“네. 그럼 저는 1층에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 먼저 가 보겠습니다.”
“그래요. 매칭 테스트 때 봬요.”
나는 답하지 않은 채 고개만 끄덕이고 다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성요한은 왠지 껄끄러운 남자였기에 현태운과 마찬가지로 가까이 지내고 싶지 않았다.
매칭 테스트 때 보자는 말을 들으니 앞으로의 일이 그려졌다. S급이 되었으니 아마 국내 S, A급 에스퍼들과 매칭 테스트를 할 것이다. 벌써 골치가 아팠다.
협회 1층에서 나를 기다리던 센터 직원이 다시 협회 호텔로 데려다주었다.
센터 직원은 내일부터는 전속 담당자가 붙을 거라는 말과 함께 계약이 성사되면 축하 파티도 열릴 거라고 했다. 생각만으로 피곤해지는 소식에 관자놀이를 손으로 짚었다.
호텔 룸에 들어오자마자 냉수를 마시고 피곤에 찌든 몸을 소파에 기댔다.
너무나도 적적해 티브이를 틀자, S급 가이드 각성자인 나에 관한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아직 나에 대해 알려진 것이 없지만, 조금은 노출이 되었는지 내 뒷모습이 찍힌 사진과 함께 [S급 가이드는 과연 누구인가.]라는 타이틀이 티브이 상단에 쓰여 있었다.
사실 호텔에 들어오기 전 로비에 기자들이 있어 직원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왔다. S급이 뭐라고. 죽으면 다 똑같이 썩어서 사라질 건데.
티브이를 끄고 그대로 소파에 누워 계약서를 다시 훑어봤다.
독소 조항이 너무나도 많았다. 나는 하나씩 수정할 부분을 체크했다. 그렇게 하나하나 체크하고 있을 때였다.
초인종이 울렸다. 방문할 사람이 없는데 의아했다. 순간 기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기자는 여기까지 올라올 수 없었기에 나는 누군지 확인하려 현관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누구세요?”
“신의 씨, 저예요. 현태운이요.”
현태운이라는 말에 팍 인상이 써졌다. 그의 파장이 현관 안쪽으로 들어와 내게 달라붙어 더욱더 불쾌해졌다.
“어떻게 오셨어요?”
분명 현태운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아 달라고 직원에게 말해 두었는데.
“협회장한테 들었어요. 왜 저랑은 가이딩하지 않겠다고 한 거예요?”
협회장은 생각보다 입이 가벼운 사람인 것 같았다. 현태운과 대치하는 상황에 짜증과 성가심을 느끼며 말을 이었다.
“하기 싫으니까요.”
“문 좀 열어 주세요. 얼굴 보고 대화하고 싶어요.”
“싫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빌려서 말할게요. 저 현태운 씨 싫어요. 가까이 지내고 싶지도 않고요, 되도록 엮이고 싶지 않습니다.”
“왜요? 저는 신의 씨가 S급이란 걸 처음부터 안 사람이에요. 분명 매칭률도 높을 거예요.”
S급이란 걸 처음부터 알았다는 말에 웃음이 나왔다. 회귀 전에도 같은 말을 했지만, 그때는 C급이었다.
“더는 말 섞기 싫네요.”
“그럼 이유만이라도 알려 주세요.”
“사람을 싫어하는 데 꼭 이유가 필요한가요? 더는 대화하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그대로 몸을 돌려 센터 직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현태운 씨가 지금 방문 앞에서 난동 부리고 있어요. 치워 주세요.”
센터 직원은 현태운이 온 줄도 몰랐는지 서둘러 알겠다고 말했다. 현태운은 공간 이동도 가능했기에 그 능력으로 들어온 것일지도 몰랐다.
여전히 밖에서 현태운의 사정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회귀 전 현태운이 했던 말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부작용으로 매번 수치가 내려가는 상황에서 자기랑 매칭률이 높은 가이드도 없고, 급이 맞는 가이드도 없어서 매일 불안하다 했다. 그래서 매칭률 높은 내가 나타나서 너무 행복하다고.
지금의 현태운은 S급 가이드인 내가 나타났으니, 구명줄이라도 내려진 것 같겠지.
나라도 현태운의 입장이었다면 나를 잡기 위해 달콤한 말을 속삭이고 상냥함을 가장한 행동으로 나를 속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회귀 전 내가 아니었고, 현태운의 거짓된 모습들에 속을 생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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