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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가이드는 이만 퇴사합니다-31화 (31/65)

31화

현태운이 다녀가서 그런지 잠을 설쳐 새벽에 일어나고 말았다. 이럴 때 수면 칩이 있다면 바로 잠들 텐데…. 아쉬움을 느끼며 소파에 앉아 일출을 바라봤다.

다시 돌아온 것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지만, 믿어지지 않을 때가 있었다. 분명 나는 죽었는데 어떻게 과거로 돌아온 것인지 여전히 의문이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나는 과거로 돌아왔고 두 번째 삶을 소중히 여기고 싶었다.

조식을 먹고 센터에서 연락이 오기를 기다렸다. 오늘 새로운 담당자가 배치된다고 했기에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

그렇게 9시가 되었을 때 호텔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딱 두 번 울리는 정중한 벨 소리에 담당자라는 걸 직감했다.

문으로 다가가 누구냐고 묻자, 역시 새로 온 담당자였다.

서둘러 문을 여니, 나보다 작은 키에 검은 테의 안경을 낀 남자가 서 있었다. 전체적으로 동글동글하고 포근한 인상이었다.

남자는 문이 열리자마자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이신의 가이드님. 이번에 담당이 된 최진석이라고 합니다.”

“이신의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나 또한 진석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협회에서 옷을 준비했습니다. 갈아입으신 뒤, 오늘 일정 말씀드릴게요.”

어제 치수를 물어봤던 건 역시 옷 때문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진석에게 슈트케이스를 건네받으며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갈아입고 올게요. 편하게 앉아 계세요.”

“알겠습니다.”

진석이 소파에 앉는 걸 보고 침실로 들어가 슈트케이스를 열었다.

검은색 단색 슈트였다. 입어 보니 다행히 모양새가 좋아 딱딱해 보이지 않고 시원스러웠다.

슈트를 입고 나가자 진석이 감탄하다, 입을 막더니 목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잘 어울리시네요.”

“감사합니다.”

나는 그대로 진석의 대각선 소파에 앉았다. 그러자 진석이 태블릿 PC를 보며 말했다.

“우선 오늘 일정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오전엔 제복을 맞추고, 점심을 먹은 뒤에 센터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그다음에는 S급 에스퍼님들과 매칭 테스트가 있을 예정이에요.”

앞의 내용만 들었을 때는 괜찮았는데, 마지막 일정인 S급 에스퍼들과의 매칭 테스트가 마음에 걸렸다.

계속 현태운의 접근을 막았지만, 혹시라도 매칭률이 높은 걸 협회가 알게 되면 어떻게든 그와 나를 엮으려고 할 것이다.

내 등급은 변했지만, 현태운과의 매칭 테스트 결과는 바뀌지 않았을 거다.

“혹시 현태운 에스퍼도 매칭 테스트에 참여하는 건 아니죠?”

“네. 협회 측에서 현태운 에스퍼님은 매칭 테스트 목록에서 빼라고 했습니다.”

“그렇군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현태운이 협회의 말을 들을 리가 없었다. S급 에스퍼이다 보니 그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행동했다. 그래서 더욱더 이번 매칭 테스트는 조심해야 했다.

“가이드님만 괜찮으시다면 지금부터 일정을 진행하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네. 괜찮습니다.”

곧장 나갈 준비를 마치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옛날에는 담당자인 진호 형이 직접 차를 운전했는데, 이번에는 운전사가 따로 있었다.

운전사가 부드럽게 운전하는 차를 타고 제복을 맞추러 갔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몇십 년간 S급 에스퍼와 가이드 제복을 만들고 있는 테일러 숍이었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일반 제복과는 달리 S급 에스퍼와 가이드 제복은 특별하게 테일러 숍에서 만들어졌다. 나이가 드신 재단사님이 반갑게 나를 맞이했다. 내가 10년 만의 S급 가이드였기에 그는 죽기 전에 다시 한번 가이드 제복을 만들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나는 상담실에서 재단사님의 말을 경청하며 미리 선별한 스타일링을 하나씩 보았다.

현태운의 제복과 같은 디자인이라고 생각했는데, 같은 제복이라도 S급의 제복은 조금씩 다르다고 했다.

원단에 대한 설명을 들었지만, 솔직히 들어도 뭐가 어떻게 좋은지 알 수 없었기에 재단사님이 추천해 주는 원단들과 버튼을 골랐다. 피팅도 해 가며 치수를 재다 보니 벌써 1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제작은 늦어도 보름 안에는 완료될 겁니다. 완성되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제복을 맞춘 것뿐인데 살짝 피곤했다. 생각해 보니 잠을 제대로 못 잔 것이 떠올랐다.

이대로 잠깐 쉬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센터까지 40분 정도 거리였기에 차 안에서 잠깐 쪽잠을 잘 수 있었다.

***

센터 근처의 각성자 전용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다. S, A급 전용 레스토랑이 있단 건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내 전용 개인실도 따로 있었다.

편하게 식사를 마치고 진석에게 센터 안내를 받았다. 이미 알고 있던 곳이 대부분이었지만, S급만 사용할 수 있는 전용실도 소개받으니 느낌이 새로웠다.

안내가 끝나고 마지막 일정인 매칭 테스트실로 이동했다. 그런데 옅게 현태운의 파장이 느껴졌다. 현태운은 매칭 테스트 명단에 없다고 했는데….

오늘 내가 매칭 테스트를 하는 걸 알고 찾아온 것이 분명했다.

불길한 느낌에 서둘러 진석에게 물었다.

“오늘 현태운 에스퍼 센터에 없는 거 확실한가요?”

“네. 오늘은 출입 불가능해요. 왜요?”

현태운의 파장을 느낄 수 있는 건 분명 매칭률이 높아서일 것이기에 파장을 느껴서라고 말할 수 없었다.

“신경 쓰여서요. 한 번만 더 확인해 주실 수 있을까요?”

진석이 다시 한번 센터에 현태운이 있는지 확인해 보았지만,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복도에서 현태운의 파장이 느껴졌다.

현태운이 근처에 있는 게 걱정됐지만, 만나면 어제처럼 내보내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매칭 테스트실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서도 현태운의 파장이 느껴지는데 방에는 윤 박사와 그의 조수만 있었다.

진석도 들어오려고 했지만, 그런 그를 윤 박사가 막으며 내보냈다. 오늘 매칭 테스트는 기밀로 진행된다고 한다.

진석을 내보낸 윤 박사는 늘 그렇듯 웃으며 나를 맞이했다. 그는 내게 오늘은 S급 에스퍼 네 명과 매칭 테스트를 하고, 다음 주 내로 해외 파견 나갔던 다른 S급 에스퍼와도 매칭 테스트를 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매칭 테스트실에서 성요한 에스퍼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매칭 테스트실로 들어갔다. 회귀 전과 같이 흰 방에 의자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의자에 앉아 있던 성요한이 반갑게 나를 맞이했다.

“신의 씨, 또 만났네요.”

“그러게요.”

나는 퉁명스럽게 답하며 성요한 바로 옆 의자에 앉았다. 그는 고개를 내려 내 쪽을 보며 물었다.

“우리 매칭률 어떻게 나올까요?”

“글쎄요. 모르겠네요.”

성요한과 말을 섞고 싶지 않아 짧게 말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말을 멈추지 않았다.

“저는 전속이 없어서, 이번에 신의 씨가 제 전속이 되어 주셨으면 좋겠어요.”

“죄송하지만 저는 전속 계약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왜요?”

“엮이기 싫으니까요.”

내 말에 성요한의 한쪽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게 보였다. 나를 향한 비웃음처럼 느껴졌지만, 얼굴이 잘생겨서 미소가 밉지 않았다.

“그래요? 그래도 예외라는 건 늘 존재하는 법이죠.”

무슨 뜻이냐고 물으려는 찰나, 윤 박사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매칭 테스트 시작하겠습니다. 신의 씨, 어제 드렸던 책자대로 성요한 에스퍼님께 가이딩하면 됩니다.

가이딩 책자를 받았지만, 이미 3년간 가이딩이라면 질리도록 해서 잘 알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윤 박사님께 답한 뒤 성요한에게 손을 내밀자, 그는 두 손을 다소곳하게 내 손 위에 얹었다. 나는 최대한 파장을 조절하면서 가이딩했다.

괜히 평소대로 했다가 매칭률이 높게 나올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어지는 윤 박사님의 말로 상황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음을 알 수 있었다.

- 가이딩 컨트롤 능력 수치가 월등히 높네요.

“S급이라서 컨트롤이 잘 되나 봐요.”

성요한이 쿡쿡 웃었다. 나는 최대한 평균에 맞춰 보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가이딩을 한번 시작하자, 파장이 말도 안 될 만큼 방출되었다.

지금까지는 S급이 되어도 별다른 점은 느끼지 못했지만, 가이딩을 하니 확실히 다르단 걸 깨달았다.

- 매칭률 88% 나왔습니다.

“88%라고요?”

“저희 88%라네요.”

현태운과의 매칭률은 83%였는데…. 믿을 수가 없었다.

당황해하고 있는 내게 성요한이 기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거 알아요? 매칭률이 80% 이상이면 자동으로 페어가 되는 거. 제 가이딩 수치가 평정권 아래면 신의 씨는 무조건 저를 가이딩해 줘야 해요.”

“그런 말 처음 들어요.”

회귀 전에 혹시나 현태운이 나와 전속을 끊을까 봐 각성자 법에 대해서도 다 읽어 봤지만, 그런 내용은 없었다.

“당연하죠. 이번 달에 만들어진 법이니까요.”

성요한의 말로 조금씩 내가 알고 있던 미래가 바뀌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신의 가이드님.”

성요한이 나를 껴안기 무섭게 현태운의 파장이 강하게 느껴지더니, 그가 윤 박사님 옆에 모습을 드러냈다. 갑작스러운 현태운의 모습에 놀랐지만, 놀람은 잠깐이었다.

센터 안에서 그의 파장이 느껴져 혹시나 했는데 역시 몸을 숨기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 내가 더 높게 나올 수 있어. 내가 찾아냈다고!

“뭐예요? 현태운 에스퍼는 출입 금지 아니었나요?”

내 말에 윤 박사님은 난처한 얼굴이었다. 나는 현태운에게 나가라고 말했지만. 그는 내 말을 무시한 채 매칭 테스트실 안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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