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현태운은 들어오자마자 나와 성요한의 사이를 떼어 놓으며 말했다.
“왜 나랑은 매칭 테스트 안 하겠다는 건데요?”
“현태운 씨가 싫다고 말했잖아요.”
“왜요? 신의 씨도 저랑 파장 잘 맞는 거 느꼈잖아요. 내가 성요한보다 높게 나올 거예요.”
현태운과 내 매칭률은 83%였다. 아마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회귀 전에는 늘 현태운과의 매칭률에 자부심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더 높은 사람이 나왔으니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게 되었다.
“성요한 에스퍼보다 낮게 나오든 높게 나오든 현태운 에스퍼랑 매칭 테스트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른 에스퍼는 언제 오는 거죠? 안 오면 먼저 일어나도 될까요?”
나는 윤 박사님을 보며 물었다. 그러나 박사님은 답이 없었다. 어쩌면 윤 박사님이 현태운을 도와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상황을 봐도 그렇고 말이다.
“신의 씨, 매칭 테스트만이라도 하게 해 주세요.”
“매칭 테스트 결과가 좋아도 제 마음은 안 바뀌어요.”
“신의 씨 제가 억지로 데리고 와서 미안해요. 하지만 신의 씨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저에 대한 노여움은 조금이라도 푸시고 매칭 테스트만이라도 해 주시면 안 될까요?”
현태운의 말에 조금 전 성요한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거 알아요? 매칭률이 80% 이상이면 페어가 되는 거. 제 가이딩 수치가 평정권 아래면 신의 씨는 저를 가이딩해 줘야 해요.’
현태운도 이 법을 안다면 이걸 노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렇지 않고선 계속 매칭 테스트를 바랄 이유가 없었다.
“싫습니다.”
“신의 씨, 너무 매정해요.”
우리 둘의 모습을 보던 성요한이 웃으며 말했다.
“태운이 이런 모습 처음 보네요. 신의 씨, 한번 해 주세요. 어차피 우리보다 높게 나올 리가 없어요.”
“싫습니다. 다 끝났으면 먼저 일어날게요.”
나는 그대로 나가려고 했지만, 갑자기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몸을 움직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내 곁으로 현태운이 다가왔다. 그 모습에 그가 능력으로 내 몸을 묶었단 걸 알 수 있었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당장 능력 풀어요.”
“신의 씨한테는 미안하지만 매칭 테스트 해야겠어요.”
그 말에 나는 내 파장으로 어떻게든 능력을 쳐 내려고 했지만, 이미 매칭 테스트 중이라는 문구가 모니터에 떠 있었다.
매칭 테스트 문구가 적힌 모니터를 보다, 현태운을 노려봤다. 그리고 윤 박사님을 향해 말했다.
“박사님, 테스트 멈춰 주세요.”
그러나 윤 박사님은 여전히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윤 박사님이 현태운을 도와주고 있음을 확신했다.
“멈추라고요!”
“신의 씨, 한 번이에요. 더는 강요하지 않을게요.”
현태운은 그렇게 말하더니 내 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고개를 젓고 싶었지만, 여전히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손잡을게요.”
“잡지 마요. 잡지 말라고!”
이대로 가이딩하게 되면 분명 80% 이상 매칭률이 나올 것이기에 절대로 안 되었다.
“미안해요.”
현태운이 기어코 내 손을 잡고 매칭률을 측정하는 의자에 앉혔다.
“신의 씨는 내가 찾았어요. 분명 매칭률도 높을 거예요.”
손에서부터 느껴지는 현태운의 파장이 점점 내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내 파장은 현태운의 파장을 계속해서 피했지만, 결국 맞닿으며 서로 얽혔다.
나는 계속해서 그만하라고 말했지만, 현태운이 멈추는 일은 없었다.
현태운의 파장에 몸이 거부 반응을 일으키듯 쉴 새 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현태운은 놀란 듯 내 몸을 살폈다.
“신의 씨, 괜찮아요?”
“그만하라고…!”
식은땀으로 체온이 떨어지는 걸 느꼈다. 그리고 때마침 윤 박사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매칭률 83% 측정되었습니다.
윤 박사의 말에 현태운과의 매칭률은 여전히 같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매칭률이 나오자 현태운의 파장이 바로 거두어졌지만, 여전히 몸은 움직여지지 않았다. 나는 현태운을 향해 낮게 말했다.
“매칭률 나왔잖아요. 풀어요.”
처음 매칭률이 나왔을 때처럼 현태운이 웃을 줄 알았는데, 그는 충격받은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왜 저런 표정인지 모르겠지만, 느낌상 자기가 성요한보다 높게 나올 것이라 자만하고 있었던 거 같다.
“태운이도 높게 나왔네요. 하지만 저와 신의 씨 매칭률보다는 낮아요.”
현태운은 여전히 표정 변화 하나 없이 가만히 있었다. 성요한이 뒤에서 내 어깨를 잡자, 나는 곧장 압박에서 풀려났다.
나는 어느새 힘이 빠진 몸을 일으키며 모니터링실과 현태운을 향해 말했다.
“오늘 있었던 일은 협회에 보고하겠습니다.”
내 말에 윤 박사님은 유감이라는 얼굴로 나를 봤지만, 나는 그들을 한 번씩 노려보고 밖으로 나왔다.
복도에서 대기하고 있던 진석이 내 얼굴을 보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가이드님, 얼굴이 왜 그러세요?”
“지쳤어요. 집에 빨리 가고 싶어요.”
“알겠습니다….”
내 얼굴은 조금 전의 현태운의 능력으로 희게 질려 있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쉬고 싶었다. 그런데 그런 내 마음도 모른 채 성요한이 쫓아왔다.
“신의 씨, 저희 이제부터 페어예요.”
“저는 페어 될 생각 없어요. 그리고 피곤한데 쫓아오지 말아 주실래요?”
“그래요. 제일 중요한 매칭률을 알게 됐으니까.”
나는 더는 답하지 않았다. 그런 우리의 모습에 진석이 눈치를 봤다.
“다음에는 페어로 만나요.”
다행히 성요한은 더는 쫓아오지 않았다. 그 모습에 안심하며 집으로 향했다.
“협회에 오늘 일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데요.”
“저한테 말씀하시면 협회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진석을 통해 오늘 있었던 일을 협회에 말했지만, 현태운과의 매칭 테스트는 협회와도 합의된 이야기였던 걸 알게 되었다.
실종되거나 파견을 떠난 가이드를 제외하고 한국에 남아 있는 S급 가이드는 7명이었다. 그래서 누구든 매칭률이 높기를 바라며 진행한 일이라고 협회는 변명했다.
듣자 하니 현태운과 상성이 좋은 가이드가 없어서 그동안 애를 먹은 거 같았다.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성요한이 말했던 대로 매칭률이 80% 이상이면 자동으로 페어가 되었기에 현태운과 나의 매칭률이 80% 이상이길 바라며 벌인 짓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나와 현태운의 매칭률은 회귀 전과 같이 83%였다.
협회의 독소 조항으로 계약 서명을 미루고 있었는데 이런 일이 벌어진 참이라, 나는 더는 협회와 계약을 이어 갈 수 없음을 밝혔다.
협회 쪽에서 계속해서 협상을 제안했지만, 나는 무시로 일관했다.
이 와중에 독일 협회 쪽에서 연락이 왔다. 이것 또한 협회의 귀에 들어갔는지, 아니면 내 핸드폰을 감시하고 있는지 협회는 내가 원하는 대로 계약서를 재작성하겠다는 의사를 전해 왔다.
나는 애초에 해외에 갈 생각이 없었기에, 결국 독소 조항을 모두 삭제하고 내가 원하는 요구 사항에 현태운과는 절대로 가이딩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추가해 협회와 계약하게 되었다.
협회 가이드 전속 기간은 5년으로 했다. 원래는 10년 이상 전속을 맺거나 종신해야 했지만, 내 경우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만큼 협회가 나를 잡고 싶어 한단 걸 알 수 있었다.
계약을 마치고 로비로 내려가자, 진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차를 타고 이번에 배속받은 S급 전용 자택으로 향했다.
도착한 자택은 낯익은 곳이었다. 바로 현태운과 3년간 살던 아파트였는데, 다행히 현태운이 사는 동은 아니고 옆 동이었다. 층도 같은 최상층.
“여기는 너무 큰 거 같아요.”
“살다 보면 익숙해질 거예요.”
담당자님의 말에 고개를 낮게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현태운과 3년간 같은 곳에서 생활했으니 말이다. 매일 가사 도우미 아주머니가 오셔서 식사와 청소를 해 주신다고 했다.
한동안 이 집에서 머물러야 했으므로 편한 대로 꾸며도 된다고 말하고 진석은 돌아갔다.
나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집 내부에는 생활에 필요한 가구들이 모두 갖추어져 있었다. 방을 하나씩 확인하던 나는 딱 하나, 현태운의 집과 다른 점을 찾아내었다. 온실이었다.
태운이 나를 위해 만들어 준 온실이 없었다. 그에게 받았던 수선화 구근도 말이다. 과거가 바뀌면서 더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 되었다.
갑자기 집이 너무나도 크게 느껴졌다. 태운과 살았을 때도 종종 외로움을 느꼈지만, 이 정도로 공허한 느낌은 들지 않았었다.
맥이 빠지며 온몸이 처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침실로 가서 침대에 누웠다.
침대는 현태운과 함께 샀던 침대보다는 작았지만, 내가 양손을 벌려도 남을 정도로 큰 사이즈였다. 이 넓은 침대에서 혼자 자야 한다고 생각하니, 거부감부터 들었다.
결국 거실로 나와 소파에 누워 티브이를 켰다. 조금이나마 혼자 있다는 기분을 지우고 싶었다. 그러면 이 우울함이 사라질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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