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게이트 시뮬레이션은 세 가지로 나뉘었다. 개인 게이트 시뮬레이션, 페어 게이트 시뮬레이션, 팀 게이트 시뮬레이션.
이 세 가지가 주 1회 이상 진행되었고, 에스퍼들은 시뮬레이션할 때 현장에서처럼 능력을 사용했기에 가이딩 수치가 떨어졌다. 그래서 에스퍼들이 시뮬레이션을 한 날에는 가이드가 가이딩해 줘야 했다.
저번에 성요한과 매칭 테스트를 했을 때, 매칭률이 높게 나오면서 그와 페어가 되었다. 그래서 성요한이 게이트 시뮬레이션을 할 때는 내가 그의 시간에 맞춰서 가이딩해 줘야 했다.
현재 나는 성요한의 가이딩실에서 그의 시뮬레이션을 모니터로 보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성요한의 능력을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마물들이 마치 날카로운 칼에 베인 것처럼 조각나더니 사라졌다. S급 에스퍼의 능력은 기밀이기에 협회에서는 안 알려 줄 거 같지만, 그래도 페어니까 성요한에게 물어본다면 알려 줄 것이다.
성요한의 게이트 시뮬레이션이 끝났다는 안내음이 들려왔다. 가이딩 워치를 확인하자, 아직 평정권에 있었다. 평정권에 있다면 굳이 가이딩을 해 줄 필요는 없을 거 같다.
30분이 넘도록 성요한이 오지 않아 가이딩 워치를 보며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문이 열리며 제복 차림의 성요한이 안으로 들어왔다.
“오래 기다리셨죠?”
“아니에요.”
나는 다시 가이딩 워치를 확인하고 성요한에게 말했다.
“가이딩 수치는 평정권이라서 오늘은 가이딩 안 해도 될 거 같아요.”
“저는 안정권 될 때까지 하고 싶은데요.”
성요한은 내게 가이딩을 받고 싶어 하는 거 같았다. 생각해 보면 가이딩 훈련 때를 제외하곤 그와 가이딩한 적이 없었다. 실제로 가이딩해 보는 것도 좋을 듯했다. 현재 가이딩 수치가 68%이니, 안정권인 80%까지 맞추는 데 오래 걸릴 것 같지도 않았다.
“알겠습니다. 옆에 앉으세요.”
내 말에 성요한은 싱긋 웃으며 바로 내 옆에 앉았다. 나는 그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1차 접촉 가이딩 하겠습니다.”
“저는 2차 접촉 가이딩 하고 싶은데요. 3차면 더 좋고요.”
1차는 손, 2차는 포옹, 3차는 점막 접촉인 입맞춤이었다. 실제 게이트가 아니라 게이트 시뮬레이션이니 1차면 충분할 것이다. 그런데도 성요한은 3차 접촉 가이딩을 해 달라고 했다. 순수한 의도일 리 없었다. 나는 그를 흘겨봤다.
접촉 가이딩을 할 때도 예의란 것이 있었고, 지금 성요한의 행동은 살짝 무례했다.
“평정권이라서 손잡는 것만으로 빠르게 가이딩 수치를 높일 수 있어요.”
“저는 2차나 3차 하고 싶어요.”
성요한은 그렇게 말하며 팔을 벌렸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인상을 찌푸리고 단호히 말했다. 이대로 그의 말을 들어주게 된다면 계속 그가 해 달라는 대로 하게 될 것이다.
“현장 게이트에서는 2차 가이딩까지 해 드릴 수 있지만, 지금은 시뮬레이션이잖아요. 손 주세요.”
내 완고한 말에 성요한도 수긍했는지 손을 내밀었다. 나는 안심하며 그의 손을 잡고 바로 가이딩했다. 가이딩 워치를 확인하며 수치를 확인하는데, 여전히 현태운 때보다는 느리게 수치가 올라갔다.
현태운보다 매칭률이 높은데 이상했다.
“생각보다 가이딩 수치가 안 올라가네요?”
“그럼 2단계로 넘어가야 하는 거 아닌가요?”
“평정권이라서 2단계까지는 안 해도 된다고 말했잖아요.”
“신의 씨, 생각보다 고집이 있네요.”
고집이 있다는 말은 살면서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의 말에 조금 전 내 모습들을 되짚어 보니, 살짝 확고한 면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고집은 지금 성요한이 부리고 있었다.
“제가 고집이 있어요? 성요한 씨가 있는 게 아니고요?”
“네. 보통은 제가 원하는 대로 다 해 주거든요.”
“저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라서요.”
지지 않고 말하는 내 모습에 성요한이 피식 웃었다. 그리고 내 손을 보며 말했다.
“그런 거 같아요. 그런데… 가이딩에 능숙하시네요. 마치 오래 해 본 사람처럼요.”
성요한의 말에 나도 모르게 손이 한 번 작게 움찔했다.
아무도 내가 회귀한 것을 몰랐다. 알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가요?”
“네. 매칭률이 높아서 그런가?”
성요한은 낮게 웃으며 잡고 있는 손을 들어 전체적으로 훑어 왔다.
그 모습에 나는 다시 손을 내렸다. 이제 가이딩을 끝내고 싶었기에 집중하라고 짧게 말한 뒤 입을 닫았다.
다행히 성요한도 더는 말이 없었다. 머지않아 가이딩 수치가 80%가 되었다는 알림이 뜨자마자 나는 곧장 손을 풀며 말했다.
“가이딩 끝났습니다.”
“다음에는 느리게 해 줘요. 더 같이 있고 싶으니까.”
‘그럴 일은 없을 거 같네요.’
나는 속으로 말하며 성요한의 미소를 따라 했다. 그리고 인사를 하고 빠르게 나왔다. 역시 에스퍼에게 가이딩을 해 주는 건 곤욕이었다. 현태운만 아니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가이딩 자체가 역겨웠다.
이렇게 평생 에스퍼들의 성희롱을 받으면서 가이딩을 하고 싶지 않았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이대로 협회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S급이 나온 이상 협회에서 나를 순순히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머리가 지끈지끈 쑤셔 오는 것을 느끼며 휴식실로 이동하고 있을 때였다. 현태운의 파장이 느껴졌다.
이제는 그의 파장이 느껴지는 것만으로 속이 울렁거렸다. 점점 파장이 가까워지는 것을 느끼며 도망치려고 했지만, 도망치려고 하는 나 자신이 싫어서 꿋꿋이 앞으로 걸어갔다.
문득 조금 전 성요한이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의 말대로 나는 생각보다 고집이 있는 것 같다.
복도를 꺾자 벽에 기대어 서 있는 현태운의 모습이 보였다. 내가 나타나길 기다린 거 같았다.
분명 나타나지 말라고 했는데, 다시 나타난 현태운의 모습에 그가 나를 우습게 보고 있단 걸 알 수 있었다.
현재 협회에서 현태운에 관련해서 제대로 처리해 준 적이 없었다. 이건 계약 불이행이고 협회에서 나올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몰랐다.
나는 현태운을 무시하며 걸어가려고 했지만, 오늘도 현태운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신의 씨.”
그의 말을 무시해도 좋았지만, 지금의 현태운의 행동을 협회에 트집 잡을 생각으로 말에 응했다.
“현태운 씨는 생각보다 머리가 안 좋은가 봐요? 협회에서 접근 금지 나오지 않았습니까?”
“알아요. 신의 씨가 절 싫어하는 것도요. 하지만 제가 절박한 상황이라서요.”
그의 말에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C급일 때는 매칭률이 높아도 찾아오기는커녕 알은척도 안 했으면서. 그는 늘 내게 타박과 핀잔만 주었다.
나는 어디 말해 보라는 식으로 그를 빤히 바라봤다.
“저한테는 신의 씨가 필요해요. 이렇게 매칭률 높은 사람도 처음이고요.”
“그래서요?”
“10년이 넘도록 약물, 기계 가이딩에 의존했어요. 이제는 몸이 받아들이지 않고 있고요. 이대로면 폭주해서 죽을 확률이 높아요.”
이 말은 회귀 전에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아마 나를 속이기 위한 거짓말일 것이다.
“제가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어요.”
“만약 제가 C급이었더라도 지금처럼 행동하셨을까요?”
현태운은 잠시 말이 없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매칭률이 높았다면 그랬을 거예요.”
나도 모르게 큰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내 웃음을 본 현태운이 눈썹을 살짝 찡그렸지만, 나는 계속 웃다가 웃음을 멈추고 정색했다.
“정말요?”
“네.”
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현태운의 얼굴이 미세하게 굳어졌다.
회귀 전 기억을 갖고 있었기에 지금 현태운의 행동을 보자 한없이 머리가 냉정해졌다.
내가 C급이었을 때 현태운 그가 했던 행동들을 지금 당장이라도 말하고 싶었다. 나는 현태운을 살리기 위해서 죽었는데, 여전히 자기 목숨만 생각하는 그의 모습에 질렸다.
“현태운 씨, 편해지는 방법 알려 줄까요?”
“뭔데요?”
“폭주하세요. 죽으면 편해질 거예요.”
내 말에 현태운의 입술이 점점 닫히더니 일자로 굳어졌다. 이렇게 매정하게 굴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그가 여전히 미웠다.
“저 없으면 죽는다면서요. 저는 현태운 씨 가이딩해 줄 생각이 없거든요.”
“신의 씨는 제가 많이 싫은가 봅니다.”
“네. 싫어요.”
내 말에 현태운의 눈썹이 움찔거렸지만, 나는 용건이 끝났다는 듯 엘리베이터로 걸어갔다.
지금까지 현태운이 나를 찾아온 횟수가 한 손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협회에 이 사실을 알려도 제대로 된 제지가 없었다. 이건 계약을 파기해도 협회 측에서 할 말이 없었다.
이대로 협회와 대치 관계인 정부의 도움을 받아 협회에 계약 파기 요청을 넣을 생각이다.
집에 오자마자 현태운이 접촉했던 날짜와 시간을 하나하나 적고, 계약 파기에 대한 내 생각을 적었다. 그리고 프린트까지 하고 나자 마음이 너무나도 평온해졌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정부에 가면 될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었지만, 새벽에 다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현태운이 폭주했다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