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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가이드는 이만 퇴사합니다-37화 (37/65)

37화

이른 새벽부터 시작된 요란한 진동 소리에 결국 잠에서 깨어났다. 인상을 쓴 상태로 손을 더듬어 핸드폰을 확인했다.

진석과 센터에서 수십 통의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가 쌓여 있었다. 무슨 일이 생긴 건 바로 알 수 있었다.

때마침 연락이 온 진석의 전화를 곧장 받았다. 전화를 받자마자 평소와 다른 진석의 급박한 목소리가 들렸다.

- 가이드님! 이제야 전화 받으시는군요.

“무슨 일 있어요?”

- 현태운 에스퍼님이 지금 폭주했다고 연락이 왔어요.

“폭주요?”

생각지도 못한 폭주라는 단어에 잠이 확 깨며 저절로 상체가 일으켜졌다.

- 네.

현태운이 폭주라니. 그와 3년간 함께 지내면서 폭주한 걸 본 적이 없었다.

“왜요? 수면 칩이 작동하지 않은 거예요?”

- 지금 가이딩 수치가 28%인데도 폭주하셨어요. 지금 가이드님 집 앞인데, 죄송하지만 도움받을 수 있을까요?

“제가 왜요?”

현태운이 폭주한 건 나와 상관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어제 그와 나눴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폭주해서 죽으라고 했지만, 내 말을 듣고 정말 폭주할 것이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 이대로 20% 아래로 내려가면 무슨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겠습니다. 죽을지도 몰라요.

“마취 시도는 해 보셨어요?”

- 안 돼요. 주변이 불길로 휩싸여서 어렵다고 합니다.

진석의 말에 저절로 미간이 구겨졌다. 어제 내가 죽으라고 했지만, 내게 시위하는 것도 아니고. 이런 상황을 만든 현태운에게 화가 났다.

하지만 그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말이 계속해서 머릿속에 맴돌며 마음이 술렁였다. 이런 내 모습에 화가 났다.

“이번 건은 계약 불이행이라는 건 알고 계시죠?”

- 협회 측에서도 충분한 보상을 해 주실 겁니다.

“알겠습니다. 지금 내려갈게요.”

나는 잠옷을 빠르게 벗고 제복 와이셔츠와 바지만 입은 채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현관문 앞에는 이미 진석이 있었다.

“가이드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서둘러 왔는지 이마와 몸이 땀으로 범벅이었다.

“빨리 갑시다.”

“네.”

나와 진석은 빠르게 엘리베이터에 올라 로비로 내려갔다.

“그런데 어디서 폭주한 거예요?”

“훈련동에서요.”

“센터는 실시간으로 에스퍼 가이딩 수치 관리 안 합니까?”

“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현태운 에스퍼님이 게이트 시뮬레이션 중이라서 쉽사리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고 합니다.”

헛웃음이 연달아 튀어나왔다. 진지하게 센터의 관리가 궁금했다. 몇 없는 S급 에스퍼면 집중적으로 케어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긴, 나를 막무가내로 데리고 온 것을 떠올려 보면 에스퍼와 가이드의 인권은 고려 대상이 아닐 것이다.

“새벽인데 게이트 시뮬레이션을 했다는 거예요?”

“현태운 에스퍼님은 불면증이 심하셔서 새벽에도 훈련한다고 합니다.”

생각해 보니 회귀 전에도 태운이 종종 새벽에 나갔다가 들어오면 가이딩 수치가 확 줄어들었을 때가 있었다. 이제야 그가 훈련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 정문 앞에 센터 차량이 대기하고 있어 곧장 센터로 갈 수 있었다. 도착했을 땐 훈련동 전체가 불길에 휩싸인 뒤였다. 생각보다 위험한 상황이었다.

물 속성 계열 에스퍼가 폭우처럼 물을 쉴 새 없이 내리치고 있었지만, 불길이 사그라드는 일은 없었다.

“불길이 강해서 특수 방화복을 입으셔야 할 거 같아요.”

대기하고 있던 센터 직원의 말에 나와 진석은 방화복으로 갈아입었다. 훈련동 가까이 가자 불길의 화력을 더욱더 실감할 수 있었다.

훈련동 앞에서 에스퍼들과 센터 직원들이 불을 끄기 위해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내 모습을 보자마자 서둘러 뛰어왔다.

“가이드님, 오셨습니까.”

이미 A급 가이드가 훈련동 주변에 있었지만, 가이드의 파장은 현태운의 날카로운 파장에 닿지도 못한 채 끊어졌다.

현태운과 매칭률 높은 가이드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나라면 바로 그의 파장에 접촉할 수 있을 것이다. 더 큰 피해가 있기 전에 현태운의 파장을 잠재워야 했다.

나는 결국 가이딩하기로 마음먹고 현태운의 파장을 찾았다.

“현태운 에스퍼 어디 있습니까?”

“지하 1층에 계십니다.”

“현태운 에스퍼랑 연동된 가이딩 워치 가져오세요.”

이미 대기하고 있었는지, 진석이 내게 가이딩 워치를 건넸다. 나는 곧장 가이딩 수치를 확인했다.

‘가이딩 수치는 24%.’

그 잠깐 사이에 수치는 더 내려가, 금세 23%가 되었다.

현태운이 이렇게 되기까지 분명 내 책임이 있었다. 그가 죽든 말든 상관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대로 폭주하게 되면 주변에 큰 피해를 줄 것이 분명했기에 내가 가이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번 건으로 제 행동에 협회가 더는 간섭할 수 없을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 훈련동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현태운의 파장을 찾으며 방사 가이딩을 시도했다.

머지않아 현태운이 파장이 읽혔다. 그를 가이딩한다고 생각하자 다시 숨이 막혀 오는 듯했지만, 이번이 마지막 가이딩이 될 거라는 사실을 계속해서 떠올리며 떨지 않으려 애썼다. 그리고 마침내 나의 파장과 태운의 파장이 얽혔다.

내 파장이 닿자마자 태운의 파장은 이상하리만큼 빠르게 온화해졌다. 마치 내 파장을 기다린 거 같았다. 그 느낌이 너무나도 꺼림칙했지만, 지금은 가이딩 수치를 위기권까지 올리는 것이 목표였기에 나는 집중하며 그의 파장을 진정시켰다.

폭주하는 에스퍼를 잠재우는 방법은 가이딩 훈련 수업 때 주의를 많이 받았기에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방사 가이딩으로 파장을 진정시키며 위기권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로는 접촉 가이딩으로 평정권에 돌입해야 했다.

성요한 때와는 다르게 가이딩 수치가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니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도 현태운과 가이딩만큼은 상성이 잘 맞았다. 그래서 현태운이 조금은 내게 자신의 옆자리를 주었던 것이고 말이다.

불길이 점점 사그라지기 시작하자, 에스퍼들이 안으로 들어가 현태운을 데리고 나왔다. 현태운은 밖에서 내리는 비로 축 젖었다.

나는 가이딩하는 내내 느꼈던 불쾌한 의문점을 그에게 묻기 위해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현태운이 고개를 살짝 들며 입을 열었다. 피곤에 찌든 얼굴이었다.

“가이딩해 줄 줄 알았어요.”

“일부러 폭주한 겁니까? 폭주한 건 맞아요?”

일반적인 폭주는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지금 현태운은 정신이 있는 상태였다.

“…….”

현태운은 대답이 없었다. 지금의 침묵으로 나는 그가 일부러 폭주했음을 확신했다.

“현태운 씨, 좋아서 가이딩해 준 거 아닙니다.”

현태운을 돕기 싫었지만, 큰 피해가 있을 수도 있고 협회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그를 가이딩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현태운 또한 알 것이다.

나는 현태운에게서 등진 채 진석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담당자님, 집으로 가죠. 그리고 내일은 쉬겠습니다.”

“네, 가이드님.”

다시 집으로 돌아온 나는 탄내로 뒤덮인 몸을 씻고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잠이 오지 않아 결국 억지로 잠을 청하기 위해 수면 칩을 사용했다.

그렇게 잠들었다 느지막이 일어난 뒤에도 여전히 몸에서 탄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빠르게 샤워하고 드레스 룸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제복이 아니라 편안한 니트와 면바지를 입고 밖으로 나왔다.

오늘 새벽의 일로 내가 사직서를 내도 협회는 아무 말도 못 할 것이다. 하지만 순순히 사직서를 받아 줄 그들이 아니었기에 먼저 할 일이 있었다.

택시를 타고 정부 청사까지 도착하는 데 1시간이 걸렸다. 청사 정문에서 내리자, 마스크를 썼음에도 직원들이 나를 알아봤다.

“이신의 가이드님, 여기는 어쩐 일이 십니까?”

“각성자 계약서 위반 관련해서 신고하러 왔는데요.”

내 말에 정부 직원이 반색하며 나를 응접실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더니, 머지않아 중년의 남자와 함께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이신의 가이드님. 각성자 인권 보호부 부장, 한주영입니다.”

“이신의입니다. 이번에 협회에서 계약을 불이행해서 계약 파기를 하고 싶은데 정부의 도움을 받고 싶어서 찾아왔어요.”

차분해 보이려 애쓰는 듯했지만, 내 말을 들은 부장의 입가에는 미처 지우지 못한 웃음기가 남아 있었다. 이 또한 정부와 협회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증거였다.

회귀 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협회장과 정부 총장의 싸움 이후로 협회와 정부의 사이는 원수만도 못했다. 정부로 이동하는 각성자들을 막기 위해, 협회에서 각성자들의 정부 청사 출입을 금지할 정도였다.

“가이드님의 의사가 확고하시다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부장과 직원은 성심성의껏 내 상황에 대해 상담해 주었다. 그들은 내가 협회에서 나오는 것에 호의적이었다.

“그럼 내일 계약서를 가지고 오시면 더 자세히 상담해 드릴게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저희 쪽에서 거처를 마련해 드리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그쪽에서 지내시면 저희가 계약 파기를 도와드리기 더 용이할 듯싶습니다.”

나는 알겠다고 대답한 뒤 계약서를 가지러 집에 다녀오겠다고 말했다. 내 말에 한주영은 정부 직원과 동행할 것을 권했다.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정부 측 직원과 함께 다녀오는 게 좋을 거 같았다.

내일 계약서를 가지고 다시 이야기를 나누자고 말한 뒤 응접실에서 나왔다. 정부가 내게 호의적인 것을 확인했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밖으로 나오자, 정문에 협회 차가 세워져 있었다. 나를 감시한 것인지 차 문이 열리며 진석이 내렸다.

“가이드님, 왜 여기에 오신 거예요?”

“더는 협회에 협조하지 않겠습니다.”

정부의 도움을 받아 협회에서 나오기로 했으니 더는 진석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잠깐이라도 좋으니까 저랑 대화해요.”

“무슨 대화요? 대화해도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이대로 정부 쪽에 가면 가이드님이 더 불리할 수 있어요.”

“…….”

“저는 가이드님 편이에요. 믿어 주세요.”

진석이 협회에 소속되어 있는 이상 내 편이라는 그의 말을 신뢰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그를 무시하고 정부 직원의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계약서만 가지고 곧장 나올 것이다. 그리고 두 번 다시 현태운과 엮이지 않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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