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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가이드는 이만 퇴사합니다-39화 (39/65)

39화

정부와의 협상도 물 건너간 이상, 내 힘으로 협회를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역시 협회와 계약한 건 섣부른 결정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 가이드 등급 테스트를 받고,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뿐이었다. 해외 협회로 갈 것인지, 아니면 국내 협회와 계약할 것인지.

애초에 해외 협회에 갈 생각은 없었기에 국내 협회로 결정하고 가이드 계약을 5년으로 한 것이다.

협회에 있는 동안 현태운과 완전히 단절하고 가이드가 아니라 일반인 이신의로 살 방법을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달리 현태운은 계속 내 근처를 맴돌았고, 협회와 정부에서는 더는 일반인으로 살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여전히 믿고 있었다. 그리고 일반인이 되기 위해서는 에스퍼와 가이드에게서 멀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우선 지금은 내게 이목이 집중된 상태이기 때문에 센터에서 생활하면서 협회에서 나올 계획을 세워야 할 거 같았다. 그렇게 나는 다시 협회 가이드 생활로 돌아갔다.

평소와 같이 기계 가이딩 훈련을 하고 있을 때였다. 모니터링실에서 작은 소란이 들려왔다. 문을 열어 보니 윤 박사님과 진석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싸우는 것처럼 보였다.

“여기에 들어오실 권한은 없습니다.”

“내가 연구동 총책임자입니다.”

“신의 가이드님 담당은 저고, 제가 관리합니다, 윤 박사님.”

점점 언성이 높아지는 대화에 결국 중재하기 위해서 끼어들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입니까?”

“가이드님, 아무 일도 아닙니다. 훈련실에 들어가 계셔요.”

내 모습을 본 진석은 놀라며 다시 훈련실에 들어가라고 말했지만, 그와 동시에 윤 박사님께서 반가운 얼굴로 내 쪽으로 다가왔다.

“신의 가이드님,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왔습니다.”

진석은 내게 재차 들어가라고 말했지만, 윤 박사님은 회귀 전에 나를 도와주셨던 분이었기에 내치고 싶지 않았다.

“무슨 일이신데요?”

“저번 무례에 대해 사과하고 싶습니다.”

현태운과 매칭 테스트 때의 사과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윤 박사님께서 협회의 명령에 어쩔 수 없이 따른 것을 알기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거라면 괜찮습니다.”

“그래도 식사를 대접하고 싶습니다. 이야기도 나누고 싶고요.”

윤 박사님과는 척지고 싶은 마음이 없었고, 오랜만에 그와 대화를 나누며 식사하는 것도 좋을 거 같단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알겠습니다.”

“안 됩니다!”

갑자기 진석이 나와 윤 박사님 사이에 끼어들며 소리쳤다.

“당분간 협회에서 외출은 삼가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건 제가 협회에 잘 말해 놓겠습니다. 그럼 오늘 저녁은 어떠신가요?”

“좋습니다.”

내 말에 진석은 어느새 이마에 땀까지 흘리며 고개를 젓고 있었다. 진석이 왜 저러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윤 박사님과 식사하는 걸 막고 싶어 하는 거 같았다.

이내 윤 박사님은 나와 약속을 잡은 것에 만족하며 모니터링실에서 나갔다.

윤 박사님이 나가자마자 진석은 걱정이 담긴 얼굴로 나를 보며 말했다.

“저녁 약속 취소하시면 안 될까요?”

고작 밥을 먹는 것뿐인데 절박해 보이는 진석의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요?”

“윤 박사와 엮여 봤자 좋을 일이 없습니다.”

윤 박사님은 내가 A급 가이드가 되도록 도와주신 분이었고 내게는 은사 같은 분이셨다. 그렇기에 이제는 윤 박사님과의 만남을 제지하는 진석의 행동이 이상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그건 제가 판단하는 거예요.”

“우선 오늘은 안 됩니다.”

“왜죠? 저는 갈 거예요.”

진석은 내 확고한 태도에 안절부절못했다. 그 모습에 결국 한마디 하고 말았다.

“저번부터 과하다는 생각 안 드세요?”

“가이드님을 위해서 말하는 거예요.”

생각해 보니 평소보다 더 절박한 진석의 모습이 줄곧 의아했었다.

“왜 윤 박사님과 저녁 식사를 하면 안 되나요?”

“자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신의 가이드님께는 절대로 좋은 분이 아닐 거예요.”

“그렇게 말씀하셔도 이유를 모르면 납득할 수 없어요.”

“…그럼 이대로 가실 건가요?”

“네.”

진석이 윤 박사님과의 식사를 거부할 만한 이유를 말해 주지 않는다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럼 동행하게 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나도 혼자 이동하는 데 무리가 있었기에 진석이 같이 가면 좋을 것 같았다.

저녁 시간이 되자, 진석과 나는 윤 박사님과 함께 센터 근처에 있는 한식 전문점으로 이동했다.

윤 박사를 계속 힐끔힐끔 쳐다보며 무언가를 살피는 진석과는 달리 윤 박사님은 진석을 신경 쓰지 않는 거 같았다.

“신의 가이드님, 저번의 무례를 용서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따져 보면 박사님 탓도 아니니까 괜찮아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에요.”

웃음기를 띠고 있던 윤 박사님의 시선이 처음으로 진석에게 옮겨졌다. 그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신의 가이드님과 둘이서만 이야기하고 싶은데, 자리 좀 피해 주겠어요?”

“안 됩니다.”

진석이 딱 잘라 말했다. 그 모습에 나는 윤 박사님께 말했다.

“다음에 제가 연구실에 찾아뵈어도 될까요?”

“그래 주신다면 저야 감사하죠.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그게 더 좋을 거 같네요.”

내 말에 윤 박사님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센터 생활에 관해 물었다.

생각해 보면 현태운 때문에 힘들어할 때마다 윤 박사님이 위로해 주셨었다. 나는 과거로 돌아오기 전처럼 윤 박사님과 편하게 대화를 나눴다.

식사를 마치고 아파트로 돌아가는데 진석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이드님.”

“네.”

“윤 박사와 절대로 엮이지 마세요.”

“담당자님, 윤 박사님한테 악감정이라도 있어요?”

내 말에 진석은 답하지 않았다. 그 모습이 대답해 주는 느낌이었다. 진석이 윤 박사님을 보는 표정만 봐도 악감정 있다는 걸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윤 박사님이 제게 해를 가한 적도 없는데 멀리할 필요는 없는 거 같아요.”

“그건 가이드님이 윤 박사의 실체를 모르기 때문이겠죠.”

“뭐라고요?”

“아닙니다. 도착했어요.”

어느새 아파트 정문 앞에 도착해 있었다. 진석은 화를 가라앉히듯 낮게 호흡하며 말했다.

“내일 아침에 다시 오겠습니다.”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진석의 차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조금 전 그가 했던 말을 되씹었다.

‘그건 가이드님이 윤 박사의 실체를 모르기 때문이겠죠.’

진석이 윤 박사님과 나 사이를 왜 이간질하는지 모르겠다. 윤 박사님을 비하하는 이유 또한 말이다.

같은 연구원이라면 친하게 지낼 법한데, 아무래도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음은 확실했다. 하지만 진석이 사적인 감정에 나를 계속 끌어들인다면 더는 그를 신뢰할 수 없었다.

***

C급 가이드 대련실에서 지훤과 함께 훈련받고 있을 때였다. 복도가 소란스러워졌다.

밖으로 나가자, 불규칙한 파장이 느껴졌다. 현태운이 폭주했을 때와 비슷했지만 다른 느낌이었다.

“무슨 일이에요?”

“훈련 중에 문제가 생긴 거 같아요.”

나와 지훤은 B급 대련실로 다가가 상황을 살폈다. B급 에스퍼가 능력을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해서 쉴 새 없이 능력을 사용하는 모습이 보였다.

연달아 능력을 쓰며 불규칙한 파장을 내뿜던 에스퍼는 결국 정신을 잃으며 쓰러졌다.

바로 도와줘야겠단 생각만 들었다. 폭주를 막은 적이 있는 나였기에 다른 가이드보다 나을 터였다. 나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며 말했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내 말에 사람들이 쓰러진 에스퍼에게서 멀리 떨어졌다. S급 가이드의 가이딩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에 모두 신기한 눈으로 나를 주시했다.

그동안 S급인 현태운과 성요한을 상대했다 보니 B급 에스퍼의 파장을 잠재우는 건 쉬웠다. 에스퍼의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었고, 몸 전체는 능력 과용으로 인해 살이 갈라지고 핏줄이 모두 솟아 있었다. 아마 괴로웠을 것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감도 느꼈을 것이고 말이다.

“괜찮아요.”

나는 에스퍼의 손을 잡은 채 가이딩했다. 이렇게 파장이 잔잔한데 어쩌다 폭주했을까.

에스퍼가 된 지 얼마 안 되었을지도 모른다.

“가이딩 수치 확인해 주실 수 있나요?”

“네.”

훈련 트레이너로 보이는 남자가 서둘러 가이딩 수치 측정기를 가지고 왔다.

“아직 위험권이에요.”

나는 위기권이 될 때까지 에스퍼에게 가이딩하다, 40%가 넘어갔을 때 손을 떼어 내며 잘 보살펴 달라고 말했다.

내가 몸을 일으키자, 사람들이 내가 나갈 수 있게 길을 터 주었다.

대체 어떤 이야기가 퍼졌는지, 이 사건 이후로 소문 속의 나는 마치 마더 테레사 같은 희생정신을 지닌 사람이 되어 있었다. S급임에도 B급 에스퍼의 폭주가 일어나자 곧장 달려온 내 모습에 가이드와 에스퍼들이 감동한 거 같았다.

하지만 현태운과 성요한은 그런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거 같았다. 그 둘은 다음 날 곧장 반응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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