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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가이드는 이만 퇴사합니다-40화 (40/65)

40화

아침 일찍 일어나 가사 도우미 아주머니께서 만들어 준 아침을 먹고 출근했다.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니, 진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이드님 오셨어요.”

“네. 좋은 아침입니다.”

“어제 일로 각성자 커뮤니티에서 가이드님 평판이 더 올라간 거 같아요.”

“커뮤니티에요?”

“네. 안 보셨어요?”

“커뮤니티는 안 해서요.”

C급일 때는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얻곤 했지만, 지금은 각성자 시스템에 회의감을 가지고 있었고 퇴사도 할 것이기에 더는 커뮤니티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커뮤니티에 요즘 가이드님 얘기가 많이 올라와요. 나쁜 말은 없고 좋은 말들뿐이에요.”

S급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의 관심이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의 시선을 좋아하지 않았기에 부디 내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으면 했다.

“알려 줘서 고마워요.”

“저는 가이드님이 인기 많은 게 좋아요.”

인기가 많아졌으면 한다는 진석의 말에 나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살고 싶다고 말했다.

센터에 도착하고 훈련실로 이동하기 전, 탈의실로 향했다. 훈련복으로 갈아입고 있는데 핸드폰이 쉴 새 없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번에 협회에서 받은 핸드폰 번호를 아는 사람은 몇 없었기에 의문을 느끼며 화면을 보자, 모르는 번호였다. 처음 보는 번호라 받을까 말까 고민했지만, 급한 용무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결국 전화를 받았다.

“누구세요?”

- …….

내 물음에도 상대방은 답이 없었다. 꺼림칙함을 느끼며 전화를 끊으려는 찰나였다. 목소리가 들려왔다.

- 잘 지냈어요?

현태운의 목소리였다. 폭주 소동으로 근신 중임에도 연락해 오다니, 기가 찼다.

“내 핸드폰 번호 어떻게 알았어요?”

- 번호는 쉽게 알아낼 수 있어요.

생각해 보니 태운은 공장 주소도 찾아냈었다. 지금의 핸드폰 번호는 협회에 아는 사람이 있다면 쉽게 알아냈을 것이다.

“스토커 같은 짓 그만해 줄래요?”

- 미안해요. 저번에 도와줘서 고맙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근신 중이라서….

“제가 원해서 도와준 거 아니에요.”

- 알아요. 그리고 어제 이야기 들었어요.

어제 있었던 일이라면 내가 B급 에스퍼를 도와준 일을 말하는 것 같았다.

- 왜 B급은 가이딩해 주면서 저는 안 되는 거예요?

“현태운 씨가 싫으니까요. 싫어서 도와주기 싫어요.”

- 제 어느 부분이 싫으세요? 다 고칠게요.

또 내 생각은 안 하고 자기 멋대로 생각하는 태운의 행동에 질려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이번에 저 없었으면 현태운 씨 죽었을지도 몰라요. 저한테 이러지 말고 다른 S급 가이드를 찾는 건 어떠세요?”

- …….

“매번 말하지만 현태운 씨와 대화하고 싶지 않아요. 그럼 전화 끊겠습니다. 그리고 협회에도 오늘 일 말해 둘게요.”

- 신의 씨.

“다시는 전화하지 마세요.”

나는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이렇게 절실할 거였으면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도 잘해 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오늘 현태운의 행동으로 협회는 믿을 수 없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역시 협회의 계약을 무효화할 방법을 물색해 봐야 했다. 계약을 파기하고 나서 어떻게 평범한 생활을 되찾을지 또한 말이다.

***

세현에게 전화가 온 건 저녁을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환영회 이후로 처음 온 연락이었다.

왠지 모르게 긴장되는 걸 느끼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안녕하세요, 신의 씨. 차세현입니다. 기억하시나요?

“기억하고 있어요. 무슨 일이신가요?”

- 제가 출장 간 동안 청사에 왔었다는 이야기 들었어요.

세현에게 전화가 왔을 때, 이 이야기를 하겠거니 짐작했었다. 정부에 방문했을 때 세현을 만날 걸 염두에 두고 간 것도 있었다. 세현이라면 날 도와줄 것 같았고, 안면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네.”

- 저랑 다시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신의 씨가 바라는 대로 해 드릴 수 있어요.

“제가 정부 가이드가 되는 조건으로요?”

- 그렇겠지만, 신의 씨께 불리한 조건도 좋지 않은 상황도 없을 겁니다.

“못 믿겠습니다.”

세현의 첫인상이 좋아서 그를 좋은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아는 건 겉모습뿐이었으니 그를 완전히 믿을 수 없었다.

- 제가 그때 있었어야 했는데······.

“이제 정부에 갈 생각은 없습니다.”

- 그래도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다면 편하게 말씀 주세요.

“지금은 없어요.”

- 그럼 이번에 협회나 정부 이야기 없이 편하게 같이 식사하실래요?

“식사요?”

세현과는 더는 만날 일도 할 이야기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나와 달리 식사 자리를 권유하는 그에게 놀랐다.

- 네. 스카우트 제의나 협회, 정부 이야기는 하지 않을게요. 신의 씨가 괜찮은 시간대에 연락해 주세요. 언제든지요.

그는 내가 난처할 상황 또한 없을 거라고 덧붙였다. 거절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결국 알겠다고 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세현과의 전화가 끝나고 나는 한동안 핸드폰을 바라봤다. 그동안 내 이야기를 듣지 않고 붙잡아 두려는 협회나 정부와는 달리 세현은 내 말을 들어주고 배려하는 것이 느껴졌다. 연기일지도 몰랐지만, 식사 제안을 받아들인 데는 그가 현태운과는 다르다는 걸 느꼈다는 이유가 컸다. 왠지 모르게 그와의 식사가 기대되었다.

***

근래 성요한의 훈련 횟수가 부쩍 늘었다. 이번 주만 해도 성요한이 가이딩실에 온 것이 벌써 네 번째였다.

성요한을 가이딩할 때는 둘만 남았기에 침묵이 여간 어색한 게 아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성요한의 요구를 받아 주기 힘들었다.

“손만으로는 부족해요.”

“저는 손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매번 손만으로 부족하다는 성요한의 말에 미쳐 버릴 것 같았다.

“30분 동안 평정권에도 못 진입했는걸요.”

“그건 성요한 에스퍼님이 능력을 불필요하게 많이 사용해서 그런 거죠. 요즘 훈련이 잦은 거 같습니다.”

“알고 있었어요?”

“네. 왜 그러는 거예요?”

나는 살짝 인상을 쓰고 성요한을 보며 말했다. 그러자 그는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신의 씨 만나고 싶어서요.”

“저도 제 일정이라는 게 있어요.”

“그래요?”

“네.”

나는 짧게 답한 뒤 가이딩 워치를 확인했다. 평정권까지 10%가 남아 있었다. 솔직히 이대로 그만두고 나가고 싶었다.

“안아 주면 곧장 평정권 될 거 같은데. 아니면 이대로 1시간 채울 거 같아요. 저한테는 좋은 일이지만요.”

이대로 성요한과 있는 것도 힘들었기에 결국 그의 손을 풀며 말했다.

“이번만이에요.”

내 말에 성요한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나는 그의 어깨에 양손을 두르고 껴안았다. 그러자 성요한이 내 허리에 손을 두르더니 자기 쪽으로 끌어안았다.

“뭐 하는 거예요!”

“2차 접촉 가이딩이요.”

“너무 가깝잖아요.”

“신의 씨는 가이드가 된 지 얼마 안 돼서 모르는 거 같은데, 원래 이렇게 하는 거예요.”

3년을 가이드로 생활했고 가이딩 훈련은 수백 번이나 했었다. 이건 가이드와 에스퍼의 가이딩이 아니라 연인들의 포옹에 가까웠다.

“거짓말하지 마요!”

“진짜인데요? 가이딩 수치 확인해 봐요.”

성요한의 말에 가이딩 워치를 보자 확실히 가이딩 수치가 벌써 1%가 올라가 있었다. 이대로면 10분 안에 끝낼 수 있을 것이다.

‘젠장.’

“신의 씨한테 좋은 향 나요.”

“맡지 마요.”

내 말에도 성요한은 내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었다.

나는 10분만 버티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억지로 참아 냈다. 그리고 평정권이 되었다는 알림이 울리자마자 그를 떼어 냈다.

“더 해 주면 안 돼요?”

“싫어요. 그리고 이제부터 가이딩은 일주일에 두 번만 하겠습니다.”

“신의 씨, 너무해요.”

“기계 가이딩 받으면 되잖아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옷걸이에 걸어 둔 제복 재킷을 입었다.

“기계보다는 신의 씨가 좋은걸요.”

“수고하셨습니다.”

나는 성요한의 말에 더는 답하지 않은 채 수고했다는 말을 남기고 곧장 밖으로 나왔다. 엘리베이터로 향하는데, 현태운의 파장이 느껴졌다.

생각해 보니 그의 근신 처분이 끝나는 시기였다.

이 층에 S급 전용 가이딩실이 모여 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접점이 생겼다.

복도 가운데 문에서 현태운의 파장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평소보다 불규칙적이고 불안정했다. 반사적으로 문에 가까이 다가가자, 기계 가이딩실이라고 적혀 있었다.

생각해 보니,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도 현태운은 약물과 기계 가이딩을 병행하면서 지냈고, 극심한 불면증에 시달렸었다.

예전에는 그런 그에게 연민을 느꼈지만, 이제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머지않아 현태운의 파장이 더욱더 가까워졌다. 나는 서둘러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마침 엘리베이터가 멈춰 있었다.

나는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 닫힘 버튼을 눌렀다. 문이 닫히는 소리에 도로 고개를 들자, 좁아지는 문틈으로 누군가의 실루엣이 보이다 금방 사라졌다.

느낌상 현태운인 것 같았다. 현태운이 인제 그만 나를 포기하고 다른 가이드를 찾았으면 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 도중 주원재가 떠올랐다.

주원재가 각성하는 건 3년 뒤였지만, 그를 더 빠르게 찾는다면 각성 시기를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현태운을 떼어 놓기 위해서는 주원재, 그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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