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주원재를 찾기로 마음먹었지만, 그에 대해 아는 거라곤 이름과 나이뿐이었기에 결국 진석에게 신원 조사를 부탁했다. 나보다는 진석이 주원재를 빠르게 찾을 것이다.
“담당자님, 혹시 사람 한 명 찾아주실 수 있나요?”
“누군데요?”
누구냐고 묻는 진석의 말에 대충 지어서 말했다.
“오래전에 알고 지낸 사람인데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서요. 이름은 주원재고 저보다 4살 어려요.”
“다른 정보는 없나요? 이름만으로는 어려울 거 같아서요.”
“각성자는 아직 아니에요. 아마 79구역에 살고 있고요.”
“우선은 찾아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솔직히 이 정보만으로 찾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는데, 진석은 일주일도 안 되어서 79구역에 사는 주원재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 리스트를 쫙 뽑아 왔다. 그 모습에 진석을 다시 보게 되었다.
나는 리스트에서 앳되어 보이는 주원재를 찾아냈다.
주원재는 현재 19살이었고 도심에 있는 오피스텔에서 혼자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부모님 둘 다 사망이라고 되어 있고, 사망한 시기는 몇 달 전이었다.
‘사망?’
주원재는 지금 19살이니, 이번에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고아가 된 것 같았다. 주원재를 좋아하진 않았지만, 나 또한 어머니를 잃었기에 그에게 연민을 느꼈다.
현재 그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걱정되었기에 진석에게 외출해도 되냐고 물었다.
“담당자님, 저 오늘 외출해도 될까요?”
“어디 가시는데요?”
“주원재를 만나고 오려고요.”
“중요한 사람이에요? 가이드님이 친구분 뵈러 가는 건 처음 보는 거 같아서요.”
현재 주원재는 내게서 현태운을 떼어 놓아 줄 중요한 사람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이자, 진석이 데려다주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나는 진석의 차를 타고 주원재의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한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았는지 우체통에 고지서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여기에 사는 거 확실하죠?”
“네.”
‘친척 집에서라도 지내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의 내가 생각났다. 밥도 먹지 않고 종일 방에서 누워 있던 내 모습이.
혹시나 하는 생각과 함께 계단 쪽으로 뛰어갔다.
“가이드님?”
“잠시 올라갔다 올게요!”
“같이 가요!”
진석과 함께 주원재가 사는 층까지 올라갔다. 나는 곧장 초인종을 눌렀지만, 안쪽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문 따야 할 거 같아요.”
“왜요?”
“사람이 안에 있을지도 몰라요.”
“아래에 고지서 쌓여 있는 거 보셨잖아요. 부재중인 거 아닐까요?”
“우선 열어 봅시다.”
결국 내 말에 진석이 협회에서 기능사를 불렀다.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가자, 내부는 냉골에 싸늘한 기운이 맴돌고 있었다.
묘한 위화감을 느끼며 서둘러 방 전체를 살폈다. 그리고 침실에 주원재가 쓰러져 있는 걸 발견했다.
“구급차 불러 주세요!”
내 뒤를 쫓아온 진석도 쓰러진 주원재의 모습에 놀란 거 같았다.
나는 곧장 주원재에게 다가갔다. 다행히 숨은 붙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본 주원재는 덩치도 있고 잘생긴 미청년이었는데. 이곳에 있는 그는 삐쩍 마른 소년이었다.
머지않아 구급차가 왔고, 우리는 정신을 잃은 주원재를 데리고 센터 병원으로 이동했다.
“가이드님, 사람 한 명 구하셨네요. 사람이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어요.”
“저도요.”
결국 주원재와 대화하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서도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말라 있던 주원재가 계속해서 떠올랐다.
갑작스레 부모님과 이별했으니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이다. 나는 한동안 주원재를 생각하며 그가 부디 무사히 깨어나기를 바랐다.
***
다음 날 진석에게 주원재가 깨어났다는 말을 듣고 그의 병실을 찾았다. 주원재는 센터 병원 1인실에 입원한 상태였다. 입원비는 모두 내가 지불하기로 했다.
병실에 가자 주원재가 침대 등받이에 기대앉아 있었다. 그는 내가 들어오자 빤히 바라봤다. 지금의 주원재는 나를 모르므로,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네며 자기소개를 했다.
“안녕하세요. 이신의라고 합니다.”
“저를 도와주셨다는 가이드님이시군요.”
원재는 내 이름을 듣고 나서야 자신을 도와준 사람이란 걸 알았는지, 그제야 환히 미소를 지었다.
“네.”
“감사해요. 가이드님 아니었으면 저 죽었을지도 몰라요.”
“몸은 괜찮아요?”
“이제 괜찮아요. 며칠 밥을 제대로 안 먹어서 영양실조가 왔다고 하더라고요.”
주원재의 목소리에는 예전과 달리 힘이 없었다. 그 모습이 안타깝기만 했다. 과거와 달리 그는 고아가 된 미성년자였으니 말이다.
“한동안은 병원에서 회복만 신경 써요.”
“네. 감사합니다.”
이따금 과거로 돌아오기 전 현태운과 함께 사라지던 주원재의 모습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가 직접적으로 내게 피해 준 것은 없으니 마냥 미워할 수만도 없었다. 그리고 현재 주원재는 19살인 아이였다.
그렇게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주원재를 찾아갔다. 어느새 주원재는 예전처럼 나를 형이라고 부르며 따르기 시작했다. 나 또한 그를 편하게 대했다.
“이제 내일이면 퇴원이에요. 이제 형이랑은 더는 못 만나겠죠? 저는 비각성자고 형은 S급 가이드니까요.”
“자주 만날 수 있어. 마지막으로 각성 테스트 받았을 때가 언제야?”
“고등학교 입학했을 때요.”
마지막 각성 테스트가 3년 전이니, 이번에 각성 테스트를 하면 S급으로 각성할 것이다.
“다시 각성 테스트 받아 보는 건 어떨까?”
“그게 좋을까요?”
“응.”
“알겠어요. 각성하면 형이랑 자주 만날 수 있으니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처음으로 다가간 사람이 나이다 보니, 원재는 내게 의지하는 듯했다. 아직 신경이 예민해서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과는 거리를 뒀다.
그 모습이 걱정되었지만, 현재 상담 치료도 받고 있으니 곧 나아질 것이다.
만나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어느새 그에게 정이 들었다. 이제는 그가 잘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그렇게 퇴원하는 날, 원재는 나와 함께 센터로 향했다. 미리 센터에 각성 테스트 신청서를 보냈기에 시간에 맞춰서 각성 테스트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원재의 등급은 S급이 아니라 A급이었다.
예상 밖의 일이었기에 당황스러웠다. 계획대로라면 원재가 S등급이 나와 현태운의 전담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A급이라면 매칭률이 높지 않은 이상 현태운의 전담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 현태운은 주원재를 마음에 들어 했으니, 주원재를 전담 가이드로 선택할 수도 있었다.
“형! A급이래요! 저 그럼 이제 형이랑 계속 만날 수 있는 거죠?”
“응.”
A급이라는 결과에 당황했지만, 그래도 원재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A급 가이드가 된 원재는 협회의 관리를 받게 되었다. 미성년자 각성자는 기숙사에 들어가야 했지만, 아직 정신이 불안정했기에 성인이 되기 전까지 우리 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어차피 곧 신년이었기에 그와 지내는 게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챙겨 주고 싶었다. 그렇게 나와 원재는 함께 살게 되었다.
***
오후에는 훈련을 마친 성요한의 가이딩을 했다. 성요한은 가이딩하는 내 모습을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어떻게 찾았어요?”
주어가 없는 말에 성요한을 보며 물었다.
“뭘요?”
“A급 가이드요.”
그제야 원재를 말하는 걸 알 수 있었다.
“우연히 알게 된 거예요.”
“아닌 거 같던데. 구하기 전에 협회에서 정보 받아 갔잖아요.”
“왜 궁금한 건데요?”
“저는 신의 씨에 대한 건 다 궁금해요.”
성요한은 내 뺨을 꾹 누르며 말했다. 나는 빠르게 그의 손을 쳐 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궁금해하지 마세요.”
“저희 엄연히 페어인데 말 못 해 줘요? 그리고 이렇게 있다가 언제 눈 맞을지 모르는데.”
성요한은 나와 잡은 손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나는 얼떨결에 그대로 성요한에게 안겼지만, 곧장 떨어져 그와 거리를 벌렸다.
성요한과 눈이 맞는다니,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었다.
“오늘도 생각보다 가이딩 속도가 느리네요. 2차 가이딩 해 주면 안 돼요?”
저번처럼 안아 달라는 소리임을 알기에 모른 척했다. 그러자 성요한이 속을 긁어 왔다.
“신의 씨는 저랑 손잡는 게 좋은가 봐요?”
“아니요. 이건 그냥 가이딩일 뿐이에요. 사적인 감정은 없습니다.”
“나는 사적인 감정 많은데.”
성요한은 마주 잡은 손을 들더니 내 손등에 입을 맞췄다. 그 행동에 나도 모르게 경기를 일으키며 그의 손을 떼어 내려고 했지만, 성요한의 악력은 강했다.
“성요한 씨, 이런 식으로 하면 더는 가이딩할 수 없습니다.”
“그래요?”
“네.”
“신의 씨가 그렇게 말하니까 무섭네요.”
말과는 달리 성요한은 하나도 무섭지 않다는 얼굴이었다.
“가이딩에 사적인 감정은 넣지 말아 줬으면 좋겠습니다.”
내 말에 성요한은 더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내 손가락을 가지고 놀았다.
현태운 때보다 성요한과의 가이딩이 더 힘이 드는 느낌이었다. 그런 내 마음은 모르는지 성요한이 또 2차 가이딩을 졸랐다.
결국 나는 그에게 2차 가이딩을 해 주며, 하루빨리 협회에서 벗어나기로 다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