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어느새 연말이 훌쩍 다가와 있었다. 파티를 좋아하는 협회는 역시나 연말 파티를 열었다.
연말 파티는 내 환영회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국내에서 제일 큰 호텔에서 열렸고 친목 위주의 파티였다.
나는 성요한의 페어였기에 그와 함께 다녀야 했지만, 성요한은 파티에 참석하지 않았다. 갑자기 연락이 두절되어 파티에 참석하지 못하는 이유를 물을 수도 없었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했다. 성요한은 늘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기에 최대한 접촉을 줄이고 싶었다. 그리고 그가 오지 않게 되면서 원재와 함께 파티를 편히 즐길 수 있었다.
원재와 함께 연회장 안으로 들어가자,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는 주변을 둘러보며 지정석에 앉았다.
우리가 앉은 테이블에 안면이 있는 가이드들이 함께 있어, 어색하지 않게 파티에 어울릴 수 있었다.
협회장의 연설과 각 팀 팀장들의 인사가 끝나고 파티장으로 이동했다. 이번 연말 파티는 S, A급들만 참석했고 각자 이야기를 나누며 친목을 다졌다.
나와 원재는 각성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모임에 나간 적이 드물었기에 관심을 가지고 접근하는 에스퍼와 가이드들이 많았다.
내가 정말 막 각성한 가이드였다면 각성자들 사이에서 우왕좌왕하고 있었겠지만,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는 파티에 종종 참석한 적이 있어 적당히 인사하고 떨어졌다.
그리고 사실 원재보다도 내게 접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무래도 S급이라서 그런 거 같았다.
“형은 너무 인기가 많아요.”
“S급이라서 그래.”
“아닌 거 같은데요. 다 형 얼굴만 보고 있어요.”
원재의 말대로 사람들이 내 얼굴을 계속 흘낏 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것 또한 S급이기 때문일 것이다.
“형은 에스퍼 싫어하니까 이런 자리 힘들 거 같아요.”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살피던 원재가 내 어깨를 두드려 주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원재와 지내면서 종종 현태운과 성요한을 향한 혐오를 드러낸 적이 있어, 내가 에스퍼를 싫어한다고 생각한 거 같았다.
“에스퍼가 싫은 건 아니야.”
“어, 그래요?”
원재는 생각지도 못했다는 얼굴로 나를 봤다. 자기 딴에는 나를 파악했다고 생각했는데 빗나가는 바람에 시무룩한 거 같기도 했다.
“응.”
나는 현태운이 싫은 것뿐이지 모든 에스퍼가 싫은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좋아하는 것도 아니긴 하지만.
“가이딩 훈련할 때마다 싫어하는 뉘앙스로 말씀하셔서 그렇게 생각했나 봐요.”
“그럴 수 있지. 그리고 싫어하는 에스퍼는 몇 명 있어.”
“저도요.”
자신도 싫어하는 에스퍼가 있다는 원재의 말에 살짝 놀랐다.
“누구? 혹시 나 없는 사이에 괴롭힌 사람 있어?”
“아니요. 그냥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에스퍼가 있어요.”
누구냐고 묻고 싶었지만, 원재의 표정이 좋지 않아 더는 물어볼 수 없었다.
“누가 괴롭히면 나한테 바로 말해야 해.”
“네. 형이 있어서 늘 든든해요.”
원재는 그렇게 말하며 해맑게 웃었다. 그 웃음에 나 또한 웃음으로 답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다행히 현태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원재와 간단히 음식을 먹고 있는데 진석이 서둘러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원재 가이드님은 슬슬 집에 가셔야 할 거 같아요.”
“왜요?”
“미성년자라서 9시에는 숙소로 돌아가야 해요.”
진석의 말에 원재는 아쉬운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그 모습에 진석에게 말했다.
“며칠 뒤면 성인이잖아요. 오늘만 봐주세요.”
“안 돼요. 보는 사람도 많고, 아직은 미성년자니까요.”
결국 원재는 진석을 따라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나 또한 따라가려고 했지만, 진석이 나는 아직 남아 있는 게 좋다고 말했다. 결국 나만 파티에 남게 되었다.
그렇게 홀로 샴페인을 마시며 다가오는 사람들과 가볍게 이야기하고 있을 때였다. 01S팀 팀원들이 보였다. 그들은 여전히 사이가 좋아 보였다. 그들에게 말이라도 붙여 볼까 하고 가까이 다가가려는 순간, 파티장 안으로 현태운이 들어왔다.
현태운도 나를 봤는지 바로 눈이 마주쳤다. 나는 현태운이 내게 다가올 거 같아 서둘러 몸을 돌려 술을 마저 마셨다. 그런 내 곁으로 에스퍼들이 다시 다가왔다.
“신의 가이드님, 혼자 뭐 하세요?”
저번에는 성요한이 함께 있어 줘서 괜찮았지만, 홀로 남게 된 지금은 상당히 많은 에스퍼들이 다가왔다.
한 에스퍼가 다가오면 눈치를 보던 다른 에스퍼가 다가오는 일이 반복되며, 어느덧 수많은 에스퍼들에게 휩싸인 내가 난처해하고 있을 때였다. 점점 가까워진 현태운의 파장이 어느새 내 뒤까지 다가왔다.
에스퍼들도 현태운을 껄끄러워하는지 금방 흩어졌다. 그 모습에 현태운이 도움이 될 때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현태운은 내 옆을 지나치며 말했다.
“피곤하면 집에 돌아가세요.”
그의 말대로 슬슬 집에 돌아가는 게 좋을 거 같았다.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습니다.”
나는 현태운에게 높낮이 없이 대답하고는 파티장 밖으로 나가며 진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담당자님, 저 슬슬 집에 가고 싶은데요.”
- 지금 호텔 가고 있어요.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으세요.
“네.”
로비에 가기 전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나오는데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차세현이었다. 그를 보는 건 두 번째였지만,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세현 또한 나를 알아봤는지 웃으며 다가왔다.
“신의 씨, 여기서 다 뵙네요. 그러고 보니 오늘 협회 연말 파티 날이군요.”
“맞아요. 세현 씨야말로 어쩐 일이세요?”
“저도 오늘 연말 동문회가 있어서요.”
오늘따라 사람들이 많다 싶더니, 연말의 주말이라 여러 파티가 동시에 열린 모양이었다. 로비도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잘 지내고 있었어요? 한 달 반 만이죠, 우리?”
“네. 오랜만에 뵈니까 반갑네요.”
나는 솔직하게 내 속마음을 내비쳤다. 그러자 세현은 서운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도요. 사실 계속 신의 씨 연락 기다리고 있었어요.”
생각해 보니 세현에게 연락하기로 했는데 깜빡 잊어버리고 말았다. 원재를 찾고 나서 한동안 바쁘게 지내야 했던 탓이었다.
“죄송해요. 요즘 정신이 없어서요.”
“그런 거 같았어요. 이번에 A급 가이드를 찾아냈다고 하시던데요?”
“찾은 건 아니고 우연히 알게 된 거예요.”
“그래도 대단한 일을 하셨어요.”
세현은 내 행동을 칭찬해 주었다. 칭찬받을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분위기상 고개를 끄덕였다.
“슬슬 신의 씨랑 식사하고 싶은데 언제쯤이면 여유가 생기실까요?”
“이제 한가해질 거 같아요. 곧 연락드릴게요.”
이제 원재도 센터에 익숙해져서 나도 한결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나는 세현이 더 이상 기다리지 않도록 일주일 안에 그에게 연락하기로 마음먹었다.
“얌전히 기다리고 있을게요. 이제 슬슬 귀가 시간일 거 같은데 집까지 모셔다드릴까요?”
“아니요. 담당자님이랑 같이 가야 해서요. 지금 기다리고 있어요.”
“그렇군요. 아쉬워요.”
“세현 씨는 지금 가시는 거 같은데, 조심히 집에 들어가세요.”
“아니요. 신의 씨 가는 모습 보고 갈게요.”
“그러지 않으셔도 돼요.”
내 말에 세현은 고개를 저으며 오랜만에 만났으니 더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 또한 그와 같은 생각이었기에 로비에서 진석을 기다리며 대화를 나눴다.
대화를 나누며 세현의 모습을 봤다. 키가 커서 그런지 정장도 잘 어울렸다. 세현도 내가 자신을 훑어보고 있단 걸 느꼈는지 왜 그러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며 시선을 옆으로 피했다. 그런데 내가 나온 파티장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호텔 직원들이 서둘러 파티장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에 의아함을 느끼며 세현을 바라봤다.
“무슨 일 생겼나 봐요.”
“그러게요.”
이내 세현이 직원 한 명을 붙잡고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고객님이 갑자기 쓰러지셔서 응급 대처 중이에요.”
고객이 쓰러졌다는 말이 이상하게도 신경 쓰였다.
“파티장에 잠깐 들어갔다 와야 할 거 같아요. 아는 사람이 다쳤을 수도 있어서요.”
“알겠어요.”
나는 결국 세현을 뒤로한 채 파티장 안으로 들어갔다. 파티장 한쪽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사람들 사이로 파고들자, 치유계 에스퍼에게 치료받고 있는 현태운의 모습이 보였다.
설마 현태운일까 싶었지만, 그였다.
현태운이 쓰러진 이유를 알기 위해 옆에 있는 에스퍼에게 물었다.
“현태운 에스퍼 왜 쓰러진 거예요?”
“저도 잘 모르겠는데 갑자기 쓰러졌다고 해요.”
에스퍼의 말에 태운이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상태가 너무 나빴다. 치유계 에스퍼가 계속해서 치료하는데도 여전히 현태운은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파장 또한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혹시 가이딩 수치가 떨어져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방사 가이딩을 했지만, 현태운이 눈을 뜨는 일은 없었다.
상황이 점차 심각하게 돌아갔다. 결국 협회 구급차가 왔다.
늘 현태운이 눈앞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아픈 모습을 보자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그렇게 현태운은 구급차를 타고 협회 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깨어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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