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예전과 비교해서 확실히 파장 컨트롤에 능숙해졌음을 느꼈다. 가이딩 훈련 중에서도 상위 코스인 변동이 큰 기계 파장도 내 파장이 닿으면 금세 잔잔해졌다.
진석과 연구원들 모두 내 가이딩에 감탄했다.
“가이드님, 너무 잘하고 계세요. 이렇게 컨트롤이 뛰어난 파장은 처음이에요.”
그들의 칭찬에 나는 미소를 띤 채 기계 가이딩 수치를 확인했다. 현재 74%이니 80%가 됐을 때 퇴근할 생각이었다.
빠르게 퇴근하기 위해 파장을 대량 방출해 기계 파장을 잠재웠다. 그러자 가이딩 수치가 단숨에 80%가 되었다.
가이딩을 하고 나면 피곤해지기 때문에 최대한 힘을 조절해 가이딩해 왔지만, 오늘은 평소보다 힘을 더 사용해서라도 일찍 퇴근하고 싶었다. 유난히 피로한 기분이었다.
80%를 다 채우고 몸을 일으켰다. 내가 퇴근하면 연구원들도 퇴근이었기에 그들 또한 인사를 하고 나갔다. 나는 진석과 훈련실에 남아 주변을 정리했다. 원래 도구 정리는 연구원의 일이었지만, 늘 이렇게 도와주고 있었다.
평소보다 빠르게 정리가 끝나갈 때쯤, 갑자기 문이 팍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따라 문을 보니 얼굴이 잔뜩 상기된 현태운이 있었다. 나도 모르게 인상이 팍 써졌다.
일주일 동안 일어나지 못했다고는 들었는데 이렇게 느닷없이 나타난 걸로도 모자라 훈련실에까지 찾아오다니 당황스러웠다.
현태운과 나는 몇 초간 말없이 선 채로 서로를 응시했다. 먼저 움직인 것은 현태운이었다. 빠른 발걸음으로 내게 다가온 그가 나를 꽉 껴안았다.
“이신의.”
그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쉴 새 없이 떨렸다. 그 모습에 당황해 순간 얼어 있다, 곧장 그를 밀쳤다.
“뭐 하는 거예요!”
태운을 떼어 내려고 했지만, 그는 절대로 안 놔주겠다는 듯 나를 꽉 잡고 있었다. 그런 그를 간신히 떼어 내고 바로 욕을 퍼부어 주려고 하는 찰나, 태운의 얼굴을 확인한 내 입술이 딱 붙어 버렸다.
입을 꾹 다문 태운이 눈 주변을 붉게 물들인 채 소리 없이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몸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굳은 내 모습을 본 태운이 다시 나를 껴안았다.
늘 냉정하고 자존심이 강한 태운이었기에 그에게 눈물이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가 내 앞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으니 내가 헛것을 보나 싶었지만, 나를 안고 있는 사람은 현태운이 맞았다.
“다행이야.”
현태운은 목이 메는지 천천히 말했다. 하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떨렸다.
뭐가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조금씩 정신을 차리고 다시 그를 떼어 내며 말했다.
“현태운 씨, 갑자기 오셔서 뭐 하시는 거예요.”
“…….”
내 말에도 현태운은 여전히 나를 보며 울었다. 손으로 닦아 내도 눈물이 멈추지 않아 속눈썹까지 젖은 채로, 그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런 현태운의 모습은 처음이었고, 그가 우는 이유를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일주일간 쓰러져서 머리에 이상이라도 생긴 걸까? 아니면 나와 페어가 되기 위해 이상한 수를 쓰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왜 제 앞에 나타나서 우는 거예요? 일주일 동안 일어나지 못했다고 하던데 정말 어디 아픈 거예요?”
다시 보니 현태운은 병원복을 입고 있었다. 그의 우는 모습을 보자 마음이 혼란스러웠지만, 더는 사적인 감정을 느끼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다잡았다.
“담당자님, 현태운 씨 내보내는 거 도와주세요.”
내 말에 우리 둘을 멀찍이 보고 있던 진석이 가까이 다가왔다.
“신의야, 미안해.”
“왜 갑자기 사과하는 거예요.”
나는 예나 지금이나 그의 사과를 바라지 않았다. 내가 냉정한 얼굴로 보자 현태운의 눈에 빠르게 눈물이 고였다.
“현태운 에스퍼님, 협회에서 신의 가이드님과 접촉은 불가하다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요. 이만 돌아가 주세요.”
진석의 말에 태운은 나와 담당자님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왜 접촉이 불가해요? 제가 지금 정신이 없어서 이해를 못 하겠어요.”
여전히 눈물을 멈추지 못하는 태운의 모습에 진석이 손수건을 건넸다. 그러나 진석의 손수건을 받아 든 태운은 눈물을 닦는 대신 그 손수건을 움켜쥔 채로 다시 입을 열었다.
“신의, 아니 신의 씨, 저랑 잠깐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요?”
“지금 퇴근해야 해서 안 될 거 같네요.”
“그래도, 퇴근 전에 잠깐이라도….”
“싫은데요.”
내 말에 태운은 원망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그 얼굴에 더 화가 났다. 원망스러운 사람은 오히려 나였다.
“이제 돌아가 주실래요?”
“같이 집에 가는 건….”
“제가 왜 현태운 씨랑 같이 집에 돌아가요. 지금 접근 금지 불이행하신 거 아시죠?”
내 말에 태운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나를 봤다. 뚫어져라 나를 쳐다보던 태운의 눈길이 문득 내 제복에 닿았다. 태운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S급 제복?”
“네, 뭐 잘못됐나요?”
현태운은 진석을 보다, 다시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는 물었다.
“진호 형은 어디 있어요?”
“김진호 매니저는 왜 이곳에서 찾으시죠?”
내 말에 태운은 답하지 않은 채 갑자기 밖으로 나갔다. 어이가 없었다. 갑자기 나타나서 사람 속을 휘저어 놓고는 말도 없이 가 버리다니. 역시 현태운이었다. 그래도 그의 우는 모습만큼은 보고 싶지 않았다.
“현태운 에스퍼님 저런 모습 처음 봐요. 왜 운 걸까요?”
“모르겠어요. 죽다 살아나서 감격이라도 했나 보죠.”
현태운과 3년을 살았지만, 저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가 우는 모습은 퇴근해서도 계속 떠올랐다.
***
현태운을 다시 만난 건 이틀 뒤였다.
점심을 먹고 가이딩 훈련실로 이동하고 있을 때였다. 내 훈련실 앞을 서성이는 사람의 인영이 보였다. 가까이서 보니 현태운이었다.
그의 얼굴빛은 저번에 만났을 때보다 좋지 않았다.
“신의 씨.”
태운이 내 기척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다행히 저번처럼 우는 모습은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왜 또 오신 거예요?”
“우리 이야기 좀 해요.”
“현태운 씨, 접근 금지 중인 거 계속 잊는 거예요?”
“알아요. 더는 신의 씨 불편하게 할 생각 절대 없습니다.”
“그럼 오지 마세요. 계속 오시면 정부 쪽으로 갈 생각입니다.”
“오늘은 그동안의 일들을 사과하려고 왔어요.”
태운은 또 목이 메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사과도 듣기 싫었다. 하지만 얘기를 들어 주지 않으면 가지 않을 거 같았기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 말하고 가 줬으면 했다. 이제 그와 만나는 건 지긋지긋했다.
“말해 보세요.”
“그동안 제가 신의 씨를 불편하게 만들었어요. 죄송합니다.”
태운은 허리를 깊게 숙이며 사과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이상했다. 옛날에는 그가 내게 사과하는 상상을 한 적도 있었지만, 그마저도 포기한 지 오래였다. 뒤늦은 사과를 받는 기분은… 전혀 좋지 않았다.
“알겠어요. 그럼 다시는 제 앞에 나타나지 마세요.”
“…제게 사죄할 기회를 주시면 안 될까요?”
“사죄할 것도 없어요.”
“저는 이대로 신의 씨와 멀어지고 싶지 않아요.”
내 말에 태운은 절박한 얼굴로 말했지만, 나는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
“전 멀어지고 싶어요.”
“뭐가 문제인지 알려 주시면 안 될까요?”
지금까지 수도 없이 말했기에 더는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다시 말해 주었다.
“이유 없어요.”
태운의 얼굴이 다시 일그러지는 게 보였다. 나는 개의치 않고 가이딩 훈련실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구두 굽 소리와 함께 이제는 익숙한 파장이 내 몸을 감싸는 걸 느꼈다.
성요한의 파장이었다.
“어? 태운이도 있네요. 신의 씨한테 접근 금지되어 있지 않나?”
성요한의 말에 태운의 이맛살이 구겨졌다.
“신의 씨, 좋은 오후예요.”
나는 고개만 까닥였다. 오늘 오후에 성요한에게 가이딩 요청이 왔기에 그를 내 가이딩실로 불렀었다.
“그럼 저는 이만.”
나는 그대로 가이딩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런 내 뒤를 쫓아오는 성요한을 현태운이 붙잡았다.
“성요한, 네가 왜 거기로 들어가?”
“가이딩받으러 가잖아.”
“그러니까 왜 신의 씨 방으로 들어가냐고.”
“신의 씨랑 페어니까.”
“네가 왜 페어야?”
현태운이 표정을 싹 지운 채 정색하며 말했다. 지금의 모습이 내가 지금껏 알던 현태운이었다.
“매칭률이 88%니까. 너보다 높아. 알고 있잖아?”
성요한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현태운의 얼굴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어떻게 네가 88%야?”
“왜? 나는 신의 씨랑 매칭률 높으면 안 돼?”
“말이 안 돼.”
“왜 말이 안 돼? 신의 씨랑 내가 사이좋은 게 싫어?”
성요한은 말을 끝내자마자 내 어깨를 부드럽게 잡았다. 그리고 내 머리칼에 입까지 맞췄다. 나는 반사적으로 경기를 일으키며 멀어지려고 했지만, 성요한의 손이 단단하게 내 몸을 잡고 있었다.
“성요한.”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고 있던 현태운이 화를 참는 듯이 낮은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왜, 태운아?”
현태운과 성요한 사이에 있는 게 너무나도 갑갑하고 거부감이 들었다. 더는 현태운을 보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성요한의 손을 떼어 내고 말했다.
“두 분이 나눌 말씀이 많아 보이네요. 저는 이만 들어가겠습니다.”
이번에는 누가 잡기도 전에 안으로 들어갔다. 밖에서 현태운의 고함이 몇 번 들리긴 했지만, 어느 순간 조용해졌다.
생각해 보니 회귀 전이나 지금이나 현태운은 나와 성요한이 함께 있는 걸 싫어했었다.
나는 가이딩실에서 성요한이 오길 기다렸지만, 그는 오지 않았다. 나는 그가 오든 말든 시간에 맞춰서 퇴근했다.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부디 내게는 피해가 없기를 바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