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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가이드는 이만 퇴사합니다-47화 (47/65)

47화

세현에게 연락이 온 건 퇴근 후였다. 핸드폰에 떠오른 그의 이름에 반가운 마음이 들면서도 또 연락을 안 했다는 걸 깨달았다.

“여보세요.”

- 신의 씨, 차세현입니다.

“세현 씨, 안 그래도 연락하려고 했어요.”

- 정말요?

세현은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농담이 섞인 말투로 말했다. 나는 정말이라고 거듭 말했다. 그에게 연락하고 싶었던 건 맞으니까 말이다.

“정말이에요.”

세현은 믿겠다고 말하며 나와 간단한 안부를 나눴다. 그는 이번에도 먼저 만나자는 이야기를 꺼냈다.

- 신의 씨, 지금은 한가한 거 맞죠?

“네.”

- 이번에 괜찮은 한식 전문점을 찾아냈는데 같이 갈래요?

“좋아요. 언제 만날까요?”

가리는 것도 없고 세현이 추천한 곳에 가 보고 싶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약속 시간을 정하지 않으면 못 만날 거 같았다.

- 수요일 어떠신가요? 협회로 마중 나가겠습니다.

“좋아요. 그런데 협회에 와도 괜찮아요?”

협회와 정부가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어서 되물었다.

- 괜찮습니다. 그럼 수요일에 뵙는 걸로 할까요?

“네.”

통화가 끝나자, 내일이 기대되었다. 그동안 센터에서만 지냈기에 밖에서 사람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

세현과의 약속 날이 되었다. 오늘은 제복과 함께 사복도 준비해 왔다. 제복을 입고 나가면 너무 튀어서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럽기 때문이었다.

점점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미리 탈의실에서 사복으로 갈아입고 핸드폰을 확인하자, 원재에게 연락이 와 있었다. 저녁 약속 있어 집에 먼저 가 있으라는 메시지에 대한 답장이었다.

[원재: 누구랑 약속인데요ㅠㅠ?]

[친구. 일찍 들어갈게.]

[원재: 네…. 일찍 오세요.]

늘 함께 퇴근했기에 원재는 많이 아쉬운 거 같았다. 하지만 이제 내가 없이 지내야 할 날이 머지않았기에 조금씩 나와 멀어지는 게 좋을 것이다.

탈의실에서 나와 건물 밖으로 나가고 있는데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사복도 잘 어울린다며 칭찬해 주었다. 그 소리에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평소보다 살짝 신경 썼다.

센터 정문으로 나오자, 차에 기댄 채 핸드폰을 하는 세현의 모습이 보였다.

“세현 씨!”

내 목소리에 세현이 나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그를 안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오래된 친구처럼 느껴졌다.

세현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온화한 파장이 느껴졌다. 이렇게 파장이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아마 세현도 나와 매칭률이 높을지도 몰랐다.

“신의 씨, 기다리고 있었어요. 오늘은 사복이네요?”

“네.”

“잘 어울려요.”

“감사해요.”

세현에게 칭찬받으니 더 기분이 좋았다. 세현은 살짝 미소 지으며 조수석 문을 열어 주었다.

“차에 타세요.”

나는 그가 열어 준 차에 올라 안전띠를 맸다. 세현 또한 운전석으로 들어와 안전띠를 매고 음식점으로 향했다.

“신의 씨는 각성하지 않았으면 배우 하셔도 좋았을 거 같아요.”

“과찬이세요.”

배우는 내가 아니라 세현이 해야 하지 않나 생각될 정도로 오늘 그는 멋있었다. 가이드가 되고 에스퍼들을 많이 봤지만, 특히 S급 에스퍼들의 외모가 한결같이 다 잘생겼다. 처음에는 외모와 등급이 직결되나 하는 바보 같은 생각도 했었다.

우리 둘 다 늦은 새해 덕담을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음식점에 도착해 있었다. 한옥 스타일인 음식점이었다.

예약해서인지 직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직원이 안내한 개인실로 이동해 추천 코스를 주문했다.

“이런 곳은 처음이에요.”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전통 한옥의 우아함을 담은 내부였다.

“그래요? 저 이런 곳 많이 아는데, 제가 자주 대접해 드릴게요.”

그의 말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미소를 본 세현이 말을 이었다.

“협회에 계속 있을 생각인가 봐요?”

“아직은요.”

내 말에 세현은 걱정을 담은 얼굴로 바라봤다.

“순순히 보내 주지 않을 거예요.”

“그래도 해 볼 건 다 해 봐야죠.”

“저번에도 말했지만, 제가 도울 일이 있다면 도울게요.”

세현과 만날 때마다 생각하는 것이지만, 내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돕겠다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세현 씨는 왜 저를 돕겠다고 하시는 거예요?”

“저번에 정부에 오셨을 때의 일을 들었습니다. 원해서 협회에 들어가신 게 아니잖아요.”

“그렇긴 하죠.”

“그래서요. 제가 불의를 못 참는 성격이기도 하고, 신의 씨가 좋아서요.”

세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거짓 미소처럼은 보이지 않았지만, 이 미소가 정말 진짜일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제 어디가 좋으세요?”

S급이 되고 유독 사람들이 내게 호의를 가졌다. 그래서 그 호의가 등급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오직 인간 이신의에게 향하는 것인지 알고 싶었다.

“올곧고, 다정하고, 무엇보다 얼굴이 제 취향이에요.”

마지막 말은 농담조였다. 세현의 말을 들어 보니 등급과 연애 감정이 포함된 호감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에 호감을 느끼고 있는 거 같았다.

“그러니까 절 마음껏 이용해도 돼요.”

“…….”

“신의 씨는 손해 보는 사람인 거 같아서 걱정이거든요.”

“그럼 나중에 도움 필요할 때 연락할게요.”

때마침 코스별로 요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세현이 말했다.

“좋아요. 이제 무거운 이야기는 그만하고 맛있게 먹어 볼까요?”

“네. 잘 먹을게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세현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했다. 세현은 정부 사람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에게 믿음이 갔다. 다른 사람과는 달리 내게 바라는 게 없기 때문이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세현은 집 앞까지 나를 데려다줬다. 헤어지기 전, 세현이 뒷좌석에 놓여 있던 쇼핑백을 가져와 내게 건넸다.

“이거 선물이에요.”

“뭔데요?”

“가이드 전용 비타민이에요. 가이딩할 때마다 피곤하잖아요.”

“맞아요. 챙겨 줘서 고마워요.”

“그럼 곧 또 봬요.”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나는 세현의 차가 출발하는 것을 보고 나서야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이상하게도 세현을 만나고 나니 마음이 평온했다.

그가 준 비타민이 든 가방을 들고 집으로 올라가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자, 내가 집에 온 소리를 들었는지 원재가 현관으로 달려왔다.

“형, 왔어요!”

“응. 밥은 먹었어?”

“네.”

원재는 그렇게 말하며 나와 함께 거실로 왔다. 옆자리에 앉은 원재는 아무래도 무언가 말하고 싶은 눈치였다. 그런데 힐끔힐끔 쳐다보기만 하고 말을 꺼내지 않아서, 내가 먼저 그에게 물었다.

“할 말 있어?”

“그게…. 네.”

“뭔데?”

“형이… 오늘 정부 사람이랑 만났다고 하던데, 사실이에요?”

오늘 정말로 세현과 만났기에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어떻게 소문이 났는지가 궁금해 원재에게 되물었다.

“어떻게 알았어?”

“경비원이 센터 앞에서 봤대요.”

확실히 센터 앞에서 만났다 보니, 센터 사람들이 봤을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형, 저 오기 전에 정부로 이동하려고 했었다고 하던데.”

“응, 맞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코트를 벗었다.

“정부로 가려고 하는 거예요?”

“갈 생각 없어.”

원재의 말에 곧장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정부로 이동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정말이죠?”

“응. 그리고 오늘 만난 사람은 친구야.”

“정부 사람이랑 친구인 거예요?”

“응.”

오늘 세현과 만나고 그가 단지 정부 사람이 아니라 친구 같단 생각이 들었다. 아마 세현도 조금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가까이 지내지 않는 게 좋을 거 같아요…. 형이 정부로 갈까 봐 무서워요.”

“그럴 일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내 말에 원재는 안심한 얼굴이었다. 늘 원재에게 내뱉은 말들은 지키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원재와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수록 그에게 미안했다. 계속 함께 지낸다는 말을 지킬 수 없어서.

원재와 함께 협회에서 나올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었다. 원재도 나와 함께 나오는 상황을 계획해 봤지만, S급인 나도 나오기 힘든데 A급인 원재도 함께 퇴사한다고 하면 퇴사가 더욱더 어려워질 것이다. 그러니 원재만큼은 협회에서 잘 지냈으면 했다. A급 가이드이니 좋은 대우를 받으며 편안하게 지낼 수 있을 거다.

“그럼 나 씻고 올게.”

“네.”

나는 식탁에 쇼핑백을 놓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확실히 오늘은 기분이 좋았다. 아마 세현을 만나서일 것이다.

***

오전 훈련을 받고 쉬고 있을 때였다. 노크 소리와 밖에서 현태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의 씨, 현태운입니다.”

없는 척하려고 했지만, 어차피 내가 있는 것을 알고 왔을 게 뻔했기에 그를 향해 물었다.

“왜 왔어요.”

“신의 씨와 대화하려고 왔어요. 중요한 이야기예요.”

평소라면 가라고 했을 테지만, 잠시 고민한 뒤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태운은 매번 중요한 용건이라는 핑계를 댔지만 막상 들어 보면 별것 아니었다. 이참에 제대로 조롱해 망신을 주면 한동안은 찾아오지 못할 것이다.

문이 열리며 현태운이 안으로 들어왔다.

“중요한 이야기가 뭔데요?”

“신의 씨가 절 싫어하는 거 이제 충분히 알겠어요.”

“그게 중요한 이야기예요?”

“네. 계속 부정했지만, 인정했어요.”

그렇게 말하는 태운의 얼굴은 씁쓸해 보였다.

“더는 신의 씨 귀찮게 하지 않을게요. 전담이 되어 달라고도 말하지 않고요.”

“정말인가요?”

“네. 그리고 저희가 같은 등급이다 보니 행사나 센터에서 만나는 일이 많잖아요. 접근 금지를 풀어 주셨으면 좋겠어요.”

“말만 그렇게 하고, 접근 금지 풀면 다시 귀찮게 하려는 거 아니에요? 접근 금지 걸려 있을 때도 제멋대로 찾아오셨으면서.”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맹세합니다. 제가 만약 그런다면, 바로 다시 접근 금지를 신청하세요. 아예 저를 격리하신다고 해도 받아들이겠습니다.”

결국 또 자기만 편하자는 부탁을 하러 온 것이었다. 더는 실망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새삼 그가 미웠다.

나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그를 노려보며 생각을 이어 갔다.

협회가 현태운을 제대로 제지하지도 못하는 데다, 그의 말처럼 계속해서 마주칠 일이 잦아 불편한 것도 사실이었다. 어차피 변하는 게 없다면, 현태운에게 직접 조건을 달고 접근 금지를 풀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대신 조건이 있어요.”

“뭔데요?”

“제 근방 1m 안으로 접근하지 마시고, 간섭하거나 참견하지 마세요.”

“알겠어요. 그렇게 할게요.”

“말을 바꾸실 수도 있으니까 각서도 받고 싶은데요.”

“당연하죠. 제 담당자를 통해서 보내겠습니다.”

이 말을 마지막으로 태운은 귀찮게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듯 돌아갔다. 접근 금지를 푸는 것이 옳은 일인지 아직 모르겠지만, 올해 안에는 협회를 떠날 생각이었다. 퇴사할 때 태운이 걸림돌이 될 수도 있었기에 미리 손을 써 놓는 게 좋을 것이다.

그렇게 태운의 각서를 받고 나서야 진석을 통해서 접근 금지 취소를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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