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성요한은 참으로 이상했다. 게이트 시뮬레이션이나 훈련을 하지 않은 날에도 가이딩 수치가 계속해서 떨어졌다. 현태운처럼 부작용은 없는 거 같은데, 어디선가 능력을 사용하고 뻔뻔하게 나를 찾아와 가이딩을 요구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성요한에게 가이딩 요청이 왔다. 거부하려고 했지만, 이번에 제대로 한 소리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가이딩실로 이동했다. 성요한은 이미 가이딩실에 있었다.
“신의 씨, 왔어요?”
나는 곧장 성요한을 향해 작은 핀잔을 주었다.
“요즘 자주 부르는 거 아닌가요?”
“제 몸이 신의 씨가 보고 싶나 봐요. 가이딩 수치가 계속 떨어지네요.”
“이번 주만 벌써 다섯 번째 만나는 건 알고 있는 거죠?”
월요일에서 금요일인 오늘까지.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도 쉴 시간이 필요해요.”
“저는 가이딩이 필요해요.”
절대로 지지 않는 성요한의 말에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런 내 모습을 보던 성요한이 제복 재킷을 벗으며 말했다.
“신의 씨가 매번 1차 접촉 가이딩을 해서 그렇잖아요. 3차까지 한다면 지금보다 빠르게 끝날 수 있어요.”
“현장 게이트가 아니면 2차 이상은 안 한다고 했잖아요.”
내 말에 성요한이 웃더니 금세 곁으로 다가와 내 머리칼을 만졌다.
“혹시 저랑 더 오래 있고 싶어서 그래요?”
“그럴 리가 없잖아요.”
나는 바로 손을 쳐 냈지만, 성요한은 그대로 내 손목을 잡고 침대에 앉혔다.
“신의 씨는 보면 볼수록 귀여운 구석이 많은 거 같아요.”
“다 큰 어른한테 귀엽다는 말 하지 마세요. 조롱으로밖에 안 들리니까요.”
“진짜예요.”
성요한은 그렇게 말하더니 믿어 달라는 듯 내게 밀착했다. 여전히 그의 접촉이 거북해 더 다가오기 전에 말했다.
“너무 가까이 오지 마세요.”
“싫은데요?”
나는 성요한에게서 멀찍이 떨어지려고 했지만, 어느새 그는 내 허리에 손을 둘렀다.
그가 점점 가까워지는 걸 느끼며 어깨를 손으로 밀었지만, 성요한은 그런 내 손을 한 손으로 꽉 쥐고 나와 마주했다.
평소와 다른 성요한의 모습에 위화감을 느꼈다. 그러나 내가 다음 행동을 취하기도 전에 성요한의 입술이 뺨에 닿았다.
“뭐 하는 거예요!”
입술이 닿기 무섭게 혀가 느껴지자, 목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그의 입술이 내 입술 근처에 다가왔을 때, 손으로 밀쳐 간신히 얼굴이 멀어졌다.
“하지 마요!”
“가만히 있어요. 오늘 3차 접촉 가이딩 할 거니까.”
혹시나 했는데 역시 3차까지 하려는 속셈이었다. 집요함이 느껴지는 그의 말에 나는 입술을 꾹 다문 채 몸부림쳤다. 그러자 성요한이 웃으며 내 뒷머리를 단단하게 쥐었다.
도저히 힘으로는 이길 수 없어 그만하라고 입을 열었지만, 기다렸다는 듯 성요한이 벌어진 내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 그만!”
그만하라는 내 말에도 성요한은 내 입술을 빨았다. 같은 남자임에도 힘을 이길 수가 없었다. 온 힘을 다해 밀어도 그의 몸은 요지부동이었다. 힘이 통하지 않으니 순간 무서운 감정이 먼저 들었다.
결국 성요한의 입술을 깨물었지만, 그 또한 내 입술을 강하게 물었다.
“윽.”
내 신음에 성요한이 웃었다. 나는 얼얼한 입술을 느끼며 어떡해서든 그를 밀어 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만하라고요!”
성요한은 한동안 피가 묻어 나오는 자기 입술을 핥더니, 이제는 내 허벅지에 자신의 아랫도리를 비비기 시작했다. 나는 발이며 손이며 할 것 없이 걷어차고 휘두르며 성요한을 떼어 놓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변하는 건 없었다.
기어코 성요한의 손이 내 아랫배를 배회하더니 바지 쪽으로 손을 옮겼다.
“안 돼. 거기는 안 돼요!”
성요한의 차가운 손이 바지 속으로 들어와 내 속옷을 매만졌다. 이 이상 선을 넘게 되면 이건 가이딩이 아니라 성추행이었다.
성요한이 드디어 입술을 떼더니, 내 목덜미를 물고 빨아 왔다. 나는 끝까지 반항하며 성요한에게 거부 의사를 밝혔다.
“성요한 씨, 그만하라고요! 제발 정신 차려요.”
내 말에도 성요한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의 손이 엉덩이로 옮겨 가는 것을 느끼며 눈을 질끈 감은 순간 가이딩 워치의 긴급 버튼이 떠올랐다.
나는 성요한에게 잡힌 손목을 비틀어 손가락으로 가이딩 긴급 버튼을 눌렀다. 아마 진석과 센터에 긴급 알림이 갔을 것이다.
여전히 성요한의 노골적인 손을 느끼며 제발 누군가 와 달라고 빌었다. 다행히 5분도 안 돼서 진석이 가이딩실 안으로 들어왔다.
“에스퍼님, 뭐 하시는 거예요!”
그는 내 위에 올라탄 성요한을 보며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성요한을 내 위에서 떼어 냈다.
성요한은 내가 거부할 때와는 달리 순순히 물러났다. 진석이 온 이상, 더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못 할 거란 걸 아는 거 같았다.
“신의 씨, 이게 제가 원하는 거예요.”
그렇게 말한 성요한은 한동안 나를 보더니 나와 달리 말끔한 모습으로 가이딩실에서 나갔다.
놀란 심장이 강하게 요동치며 몸이 덜덜 떨려 왔다. 이대로 끝까지 갔으면 성요한과 각인했을 것이다.
“가이드님, 괜찮으세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양손으로 몸을 껴안고 떨어야만 했다. 진석은 흐트러진 내 옷을 보더니 서둘러 옷매무새를 가다듬어 주었다.
점차 시간이 지나자 떨리던 몸이 진정되기 시작했다. 진석을 낮은 목소리로 불렀다.
“담당자님.”
“네, 가이드님.”
“이번 일, 퇴사 사유가 되는 거지요?”
“…그렇죠.”
“지금 당장 협회로 가겠습니다.”
오늘의 일로 마음을 확실히 잡았다. 이대로 성요한에게 언제 겁탈당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더는 센터에 있고 싶지 않았다.
진석 또한 위험성을 느낀 것인지 함께 협회로 이동했다. 협회장이 때마침 자리에 있었다.
나는 조금 전 있었던 일들을 협회장에게 말하며 퇴사하겠다고 말했다. 가이딩실 영상 또한 협회장에게 보여 줬다.
성요한에게 강간당할 뻔한 내 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인다는 생각만으로도 힘들었지만, 이것으로 협회 또한 내 퇴사 사유를 인정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협회장의 답은 현태운 때와 비슷했다.
“성요한 에스퍼님께 경고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영상을 봤을 때는 접촉 가이딩을 하는 것처럼 보여요.”
협회장은 그렇게 말하더니 태블릿 PC로 어떤 영상을 보여 줬다.
에스퍼와 가이드가 접촉 가이딩을 하는 영상이었다. 그들은 조금 전의 나와 성요한처럼 몸을 맞대고 서로의 몸을 쉴 새 없이 만지고 있었다. 하지만 둘은 합의하에 하는 행동이었다. 나와는 경우가 달랐다.
“강간당할 뻔했어요.”
“신의 가이드님의 말씀 잘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걸로 퇴사는 어려워요.”
“왜요?”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신체적 접촉은 자주 사용하는 가이딩 방법입니다. 원하신다면 당분간 성요한 에스퍼님이 접촉하지 못하도록 하겠습니다.”
협회장의 말에 기가 찼다. 결국엔 퇴사는 안 된다는 말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도 없이 밖으로 나왔다. 협회에서 나를 존중하지 않으니 나 또한 그들을 존중할 생각이 없었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진석이 잘 이야기했냐고 물어 왔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집에 데려다 달라고 말했다.
집으로 가는 도중 계약서에 징계 처분과 해고에 대한 항목이 떠올랐다.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전자 계약서를 열어 해고 및 징계 처분에 대한 목록을 찾았다.
<해고 사유>
1. 정당한 이유 없이 삼 일 이상 무단결근한 자
2. 고의, 중과실에 의한 직무 태만, 근무 불량으로 협회에 손해를 입힌 자
3. 지시 명령, 업무 명령, 인사 명령을 위반한 자
4. 근무시간 중 업무 이외의 일로 무단이탈을 한 자
5. 협회의 정보와 기밀 사항을 누설한 자
6. 위법한 노조 활동, 불법 집단 행위, 쟁의 행위를 한 자
7. 횡령, 배임, 절도 또는 중대한 사고 등으로 협회에 손해를 끼치는 행위를 한 자
해고 사유가 되는 조항은 모두 일곱 가지였다. 이를 이용하면 충분히 해고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한 가지, 내가 S급 가이드라는 사실이 걸렸다. 저 조항에 따르면 이미 해고당하고도 남았어야 할 현태운도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는 것은, 그 또한 S급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우선은 시도라도 해 봐야 할 것 같았다.
내일부터 삼 일간 센터에 나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무단결근 사유에 부합되었다.
***
그렇게 나는 삼 일간 협회에 나가지 않았다.
연락도 무시했지만, 협회에서는 내게 일주일간 휴가를 준다고 했다. 그 소식을 듣고 나니 더욱더 오기가 생겼다. 고작 일주일간의 휴가로 무마하려 하다니. 이렇게 된 이상 해고 사유의 항목 일곱 개를 모두 실행할 생각이었다.
퇴직하기 위해서 이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생각이다.
원재는 그런 내 모습에 해고당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그러나 그거야말로 내가 원하는 바였다. 협회에서 준 일주일의 휴가가 끝나면 그들이 어떻게 나올지 기대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