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가이딩 셸터에서 게이트 상황을 보고 있을 때였다. 보스 마물 근처에서 능력을 사용하고 있는 현태운과 성요한의 모습이 보였다.
“에스퍼님들은 여기서도 눈에 띄네요.”
내 옆에서 실시간 모니터를 함께 보고 있던 민성이 말했다.
“민성 가이드님은 현태운 에스퍼 때문에 지원 온 거죠?”
“네.”
그럴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맞았다. 같은 팀의 에스퍼가 해외로 지원을 나가면 팀원 가이드 한 명은 무조건 동행해야 했다.
“어차피 현태운 에스퍼는 제 가이딩 안 받을 거예요. 매칭률이 낮아서 역가이딩으로 제가 죽을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여기서 다른 에스퍼들 열심히 가이딩하려고요.”
민성의 말대로 현태운과의 가이딩은 역가이딩 위험이 있었기에 조심하는 게 좋았다. 나는 민성의 이야기를 들으며 현태운과 성요한의 모습을 모니터로 봤다. 가이딩 셸터 상황도 확인했다.
가이딩과 치료가 필요한 에스퍼들이 쉴 새 없이 셸터 안으로 들어왔다. 셸터 밖에도 쓰러진 에스퍼들을 치료하는 가이드들의 모습이 보였다. 다행히 보호 배리어로 감싸인 곳에 있어 마물들이 가까이 오지는 못했다. 밖에 있는 가이드들은 B급들이 대부분인지 상황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저 상태로는 절대로 빠르게 가이딩하지 못했다.
“민성 가이드님, 저 밖에서 가이딩하고 오겠습니다.”
“외부는 위험하잖아요. 그리고 신의 가이드님은 S급 에스퍼 담당이에요.”
민성의 말도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순간이 위급했고, 여기까지 왔는데 등급 따지면서 가이딩하고 싶지 않았다.
“빠르게 가이딩하려면 제가 가야 할 거 같아요.”
“그럼 저도 같이 갈게요.”
그렇게 나와 민성은 셸터 관리자를 통해 외부 가이딩 배리어로 이동했다.
외부 가이딩 배리어에는 이미 수백 명의 에스퍼가 쓰러져 있었다. 가이드들이 가이딩을 해도 회복되려면 몇 시간은 걸릴 거 같았다.
한시가 바쁜 상황이기에 나는 내 파장을 최대한 끌어내 방사 가이딩을 했다. 내가 방사 가이딩을 시작하자마자 내 주변과 파장들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방대한 양의 파장을 방출해서 그런 거 같았다. 그 모습에 가이드와 에스퍼들이 놀란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나 또한 처음 겪어 보는 상황에 놀랐지만, 이내 정신 차리며 가이딩에 집중했다. 방사 가이딩을 한 것뿐인데도 위기권에 있었던 가이딩 수치들이 한 번에 평정권이 되었다. 혹시라도 가이딩이 수월하게 되지 않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과거에 방사 가이딩 심화 강의를 들었던 적이 있어서 잘할 수 있었던 거 같다.
“역시 S급은 다르네요. 저도 가이딩하고 오겠습니다.”
“네. 다녀오세요.”
민성이 가이딩하러 간 뒤에도 나는 계속해서 방사 가이딩을 했다. 그런데 위에서 큰 폭발음이 들렸다. 반사적으로 위를 보니, 에스퍼 한 명이 쉴 새 없이 날아다니며 능력을 난발하고 있었다.
“레이너 에스퍼님이 폭주하셨어요!”
이어셋 자동 번역기를 통해서 설명이 전해졌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이런 순간에 폭주라니.
에스퍼가 폭주하는 모습은 현태운 이후로 처음 보았다.
레이너라는 에스퍼는 마물뿐만 아니라 주변의 에스퍼들에게까지 능력을 사용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무의식 상태인 거 같다.
폭주를 시작하면 가이딩 수치가 빠르게 내려갔기에 이대로면 사망할지도 몰랐다. 빨리 폭주를 멈춰야 했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한 것인지 그를 향해 수면 마취를 시도했지만 좀처럼 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레이너는 마취되어 지상으로 떨어졌다. 그런 그를 근처에 있는 에스퍼가 받아 가이딩 셸터 안으로 데리고 가는 모습이 보였다.
머지않아 셸터 관리자가 나오더니 소리치기 시작했다.
“S급 가이드 있습니까!”
이제 방사 가이딩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에스퍼들의 가이딩 수치가 평균을 웃돌았기에 나는 셸터 관리자 쪽으로 뛰어갔다.
“저요.”
“S급 에스퍼가 현재 폭주하고 쓰러졌어요. 폭주 가이딩 경험이 있습니까?”
이어셋의 자동 번역 덕분에 셸터 관리자와 수월하게 소통할 수 있었다.
“한 번이지만 있어요.”
내 말에 셸터 관리자는 서둘러 나와 함께 셸터 안으로 들어갔다. 한 가이딩실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비켜 달라고 소리치는 셸터 관리자를 따라 인파를 비집고 간신히 안으로 들어가자, 아까 폭주했던 레이너가 철제 침대에 누워 있었다. 가이드 5명이 그의 곁에서 가이딩하고 있었지만, 폭주 파장은 여전히 날뛰고 있었다.
가이드들은 역가이딩을 당할 걸 우려해 몸을 사리면서 가이딩하고 있었다. 이러니 인원수가 많아도 폭주 파장이 진정되지 않는 것이다.
“S급 가이드님 오셨습니다.”
셸터 관리자의 말에 가이드들이 살았다는 얼굴로 비켜섰다. 나는 곧장 레이너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현태운 때와 같이 방사 가이딩부터 시도했다. 하지만 폭주 파장이 다가오는 내 파장을 쉴 새 없이 쳐 냈다.
나는 최대한 집중해 내 파장으로 폭주 파장을 감싸며 남자의 모습을 전체적으로 훑어봤다. 온몸이 핏줄과 울혈반으로 가득했고 여전히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파장은 현태운이 폭주를 일으켰을 때보다도 상태가 심각했다.
너무 빨리 날뛰어서 파장을 잡을 수가 없었다. 나는 남자의 손을 양손으로 잡고 파장을 잡기 위해 노력했다.
다행히 몸을 접촉하자마자 파장을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날뛰는 건 그대로였던지라 피부접촉이 더 필요한 상태였다. 나는 곧장 특수 전투복을 벗으며 말했다.
“에스퍼님 옷 좀 벗겨 주세요.”
내 말에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레이너의 옷을 벗겼다. 나는 레이너의 옷이 벗겨지자마자 반팔 티만 입은 상태로 그의 몸을 껴안았다.
폭주를 멈추는 방법은 이론상으로는 쉬웠다. 가이딩하면서 폭주 에너지의 파장을 멈추게 하면 되었다.
하지만 실전은 생각 이상으로 어려웠고 현태운 때보다도 상황이 심각했다. 아무래도 장기간 능력 사용으로 인한 부작용도 함께 있을 것이다.
나는 파장을 달래며 셸터 관리자에게 물었다.
“전담 가이드님은 어디 계시죠?”
“레이너 님은 따로 전담이 없어요. 며칠 전에 전담 가이드님이 역가이딩으로 사망하셨거든요.”
“그럼 매칭률 높은 가이드는요?”
“매칭률이 높은 가이드도 없어요. 제일 높은 매칭률이 29%예요.”
“그럼 그 가이드님이라도 데려와 주세요.”
폭주 파장은 내가 어떡해서든 잠재울 수 있었다. 하지만 폭주 파장이 멈춘 후부터는 매칭률 높은 가이드가 가이딩해 주는 것이 훨씬 안정적이었다.
나는 최대한 파장을 컨트롤하며 조금씩 레이너의 파장을 잠재웠다. 그리고 더욱더 몸을 밀착했다. 쉴 새 없이 뛰는 레이너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그의 등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레이너의 뺨에 내 얼굴을 맞대고 있는데 마취를 한 레이너의 눈이 살짝 떠지더니 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는 이내 다시 눈을 감았다. 조금씩 안정을 느끼기 시작한 거 같았다.
그렇게 기나긴 노력 끝에 파장이 아주 조금씩 안정되기 시작했다. 나와 레이너는 상성이 잘 맞는지 가이딩 수치가 올라가는 속도가 꽤 빨랐다.
듣자 하니 레이너는 S급 에스퍼였고 거의 일주일 가까이 현장에 투입되었다고 한다. 전담 가이드도 없는 상태로 계속 능력을 사용하니 폭주할 수밖에.
파장을 잠재웠음에도 레이너의 얼굴은 여전히 멍과 핏줄이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얼마나 괴롭고 고통스러웠을까. 나는 레이너의 거친 뺨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평정권에 들어가자마자 다른 가이드에게 그를 넘겨주었다.
모두 내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그 모습에 레이너가 미국 협회에서 중요한 에스퍼란 걸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나 또한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레이너의 파장이 나를 쫓아왔다. 마치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거 같았다.
그렇게 나는 다시 방사 가이딩을 하며 주변을 도왔다. 그리고 틈이 날 때마다 게이트에서 싸우고 있는 현태운의 모습을 봤다.
현태운은 S급 중에서도 월등한 능력을 갖고 있었기에 확실히 그가 지원군으로 오자 상황이 훨씬 나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게이트가 닫힐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다른 나라에서도 지원군이 오고 있으니 부디 빨리 게이트가 닫히기를 바랐다.
***
미국 게이트에서의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현태운과 성요한도 가이딩을 받기 위해 가이딩 셸터로 왔다.
“신의 씨, 보고 싶었어요.”
성요한은 나를 보자마자 달려들었다. 강간 미수로 나와 페어가 끊겼음에도 뻔뻔한 모습에 기가 찼다.
“성요한 에스퍼, 가까이 오지 마세요.”
가까이 오지 말라는 내 말에도 성요한은 기어코 옆으로 다가와 내 손을 잡았다.
“저 가이딩해 주실 거죠?”
사실 가이딩하고 싶지 않았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사적인 감정을 배제해야 했다. 결국 성요한에게 가이딩을 해 줄 수밖에 없었다.
“이번만입니다.”
이번만이라는 내 말에 성요한은 아쉬워했지만, 가이딩 수치가 많이 떨어진 상태라 내 옆에서 조용히 1차 접촉 가이딩을 받았다.
현태운은 나와 성요한의 모습을 보더니 근처에 있는 기계로 가 가이딩을 받았다. 기계 가이딩을 하면 1시간 동안 10%밖에 수치가 안 올라갈 것이다.
내 생각을 읽었는지 현태운은 가이딩 약물 또한 셸터 관리자에게 받았다.
민성은 그런 현태운의 모습을 보고 자신이 가이딩을 해 주겠다고 했지만, 현태운은 역가이딩 당하고 싶지 않으면 떨어지라고 말했다. 결국 민성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태운의 곁에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데 성요한이 내 귓가에 속삭였다.
“오늘 가이딩 많이 해 줬나 봐요?”
“네. 그러려고 여기 온 거니까요.”
“다른 새끼 파장이 들러붙어 있으니까 기분 더러워요.”
순간 섬뜩한 살기가 느껴져서 말문이 막혔다. 나는 고개를 들어 성요한의 얼굴을 봤다. 그의 얼굴은 평소와 달리 표정이 없었다.
“신의 씨는 내 가이드잖아요.”
이미 페어가 끊어졌는데, 성요한은 잊어버린 것처럼 내가 자신의 가이드라고 말했다. 지금은 성요한과 입씨름할 때가 아니었기에 그를 타일렀다.
“제가 다른 에스퍼들한테 가이딩하는 거 싫으면 빨리 게이트 닫아요.”
“그렇네요. 그렇게 할게요.”
내 말에 성요한은 그제야 웃었다. 그리고 평정권이 되자마자 게이트로 이동했다. 현태운은 여전히 위험권이었기에 가이딩실에 있었다.
우리 둘만 남은 가이딩실은 고요했다. 이 상태라면 하루가 지나서 안정권에 들어갈 것을 알기에 나는 현태운에게 다가갔다.
여기서는 사사로운 감정을 버리기로 했다. 사람의 목숨이 달려 있으니 말이다.
“가이딩해 줄 테니까, 게이트 빨리 닫아요.”
“정말 해 줄 거예요?”
“네. 대신 1차 가이딩이에요.”
내 말에 현태운이 손을 내밀었다. 나는 바로 그의 손을 잡고 가이딩했다. 수치는 기다렸다는 듯 빠르게 올라갔다.
성요한이 매칭률이 더 높은데, 현태운이 더 빠르게 수치가 올라갔다.
태운은 가만히 내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파장이 따뜻하게 내 파장을 감쌌다. 현태운의 파장은 늘 차갑다고 느꼈는데 이상했다.
그렇게 태운의 가이딩 수치 또한 평정권에 들어가고 그 또한 다시 게이트로 이동했다.
현태운과 성요한은 이틀이라는 시간 동안 가이딩실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폭주했던 레이너와 수많은 지원군이 다시 게이트로 투입되면서 보스 마물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마침내 현태운의 일격으로 보스 마물이 소멸했다.
게이트가 열리고 보름 만의 일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