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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가이드는 이만 퇴사합니다-59화 (59/65)

59화

이대로 성요한이 우리 집에 있는 걸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아침이 되자마자 협회로 향했다. 며칠은 어찌어찌 버텼지만, 앞으로도 매일 그와 한집에서 지낼 것을 생각하니 숨이 막혀 왔다.

협회 내부로 들어가자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내게 쏠렸다. 예전과 달리 경계하는 빛이 어려 있었다. 그 모습에 내가 미국 협회로 이동한다는 말이 와전되어 생각보다 많이 퍼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협회장실이 있는 층으로 이동했다. 빨리 협회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여기서 벗어나고 싶었다.

비서실에 들어가자마자 협회장을 찾았다.

“협회장님 뵈러 왔는데요.”

“협회장님 지금 자리 비우셨어요.”

인사도 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하는 비서의 모습에 인상이 써졌다.

“언제 오시는데요?”

“잠시만요.”

비서는 협회장의 위치를 확인하는 거 같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언제 들어올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 모습에 협회장이 나를 피하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 다시 올 건데. 약속 잡아 주실 수 있나요?”

“협회장님 스케줄 확인하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그렇게 결국 허탕을 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틀이 지나도록 비서에게 온 연락은 없었다. 이것으로 협회장이 나와의 만남을 피하는 건 확실해졌다.

협회장의 연락만 기다리며 무기력하게 집에만 있을 수 없어, 오랜만에 센터로 향했다. 이대로 센터에 가지 않으면 미국으로 간다는 의심만 더해질 것을 알기에 어쩔 수 없었다.

센터에 가자, 안면 있는 가이드와 에스퍼들이 미국 스카우트 관련해서 물어 왔다.

“가이드님, 이번에 정말 미국으로 가시는 거예요?”

“아니에요. 잘못된 소문이에요.”

“다들 미국으로 가실까 봐 걱정하고 있어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가이드님이 계속 이곳에 있으셨으면 좋겠어요.”

나도 계속 동료들과 지내고 싶었다. 협회장이 더는 나를 피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다행히 내가 직접 해명하자, 스카우트에 관한 소문은 금세 조용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협회장과는 만날 수 없었다.

***

민성과 지난 미국 게이트 때 친해져서 오후에는 01S팀 전용실에 있었다. 다행히 빈자리가 있어서 그곳에 앉아서 쉬었다. 내가 회귀 전에 쓰던 자리였다.

01S팀에서 지내면서 역시 이곳이 편하단 걸 느꼈다.

이제 슬슬 원재 가이딩 훈련을 도와줘야 해서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가이딩 워치에 호출 알림이 떴다. 성요한과 다시 페어가 된 뒤로 매일 이렇게 호출이 왔다. 그 호출에 나는 단 한 번도 응하지 않았다.

센터 본관에서 훈련동 건물로 이동했다. 원재의 가이딩실에 가기 전 훈련복으로 갈아입기 위해 내 가이딩실에 가는데, 문 앞에 누군가 서 있었다. 가까이 가 보니 태운이었다. 늘 이런 식으로 나타나니 이제는 놀랍지도 않았다.

“정말 미국 협회로 갈 거예요?”

현태운이 나를 찾아온 이유가 미국 스카우트와 연관되어 있을 거라 짐작했는데, 딱 맞았다. 하지만 더는 이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왜요? 현태운 씨도 걱정돼요?”

“미국도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아요. 한국보다 더한 놈들이라고 말했잖아요.”

내가 미국에 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을 사람이 현태운이라는 걸 알기에 그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설사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미국에 갈 생각이 없으니 관심 없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온 뒤로 계속 스트레스가 쌓여 있었기에 나도 모르게 비아냥거리며 현태운에게 스트레스를 풀었다.

“한국보다는 좋던데요?”

“미국으로 가면 더 힘들 거예요.”

“저는 S급 가이드라서 괜찮을 거 같아요. 그리고 제가 미국에 간다면 현태운 씨 때문일 겁니다.”

“왜 저 때문이에요?”

“현태운 씨가 싫어서요.”

“알아요. 저도 제가 싫습니다. 그래도 신의 씨한테 미움받는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아요.”

현태운의 말에 의외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동안 알던 현태운은 자신을 누구보다도 사랑했으니 말이다.

자기 목숨을 위해서라면 하찮게 여기던 내게 자존심까지 굽히며 가이딩해 달라고 애원할 수 있는 사람이 현태운이었다. 이제 와 자기보다 나를 더 생각한다고 말한다 한들, 신뢰할 수 있을 리 없었다.

“현태운 씨는 자기애가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봐요?”

“저는 누구보다도 신의 씨의 행복을 바라고 있어요.”

내 행복을 바란다고? 코웃음이 나왔다. 그때였다. 복도에서 성요한의 파장이 갑자기 느껴졌다. 현태운 또한 성요한이 다가오는 기척을 느꼈는지 뒤를 돌아봤다.

“신의 씨, 역시 여기 있었군요.”

“여기는 어떻게 왔어요?”

성요한은 내 앞에 현태운이 있는 걸 알면서도 무시하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아침에 같이 출근하고 싶었는데 일어나 보니 먼저 가셨더라고요.”

“둘이 아침에 같이 있었어요?”

현태운이 인상을 팍 쓴 채 성요한을 보더니 다시 나를 보며 물었다.

“…….”

현태운에게 성요한이 우리 집에서 지낸다고 말해야 할지 고민하던 중, 성요한에게 선수를 뺏겼다.

“태운이 너는 모르겠구나.”

“뭘 몰라?”

“나 며칠 전부터 신의 씨랑 같이 살아.”

성요한을 향해 있던 현태운의 시선이 다시 내게로 돌려졌다.

“정말 같이 사는 거예요?”

태운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그 모습에 나 또한 입이 꾹 다물어졌지만, 이내 짧게 답했다.

“네.”

이 상황에서 숨기는 것도 이상했다. 그래서 사실대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왜? 왜 둘이 같이 사는 거예요? 신의 씨도 허락한 거예요?”

“당연하지. 신의 씨가 허락 안 했으면 어떻게 같이 살겠어.”

이번에도 성요한이 먼저 말했다. 그는 현태운이 충격받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것처럼 웃으며 말했다.

“신의 씨, 정말이에요?”

태운은 성요한의 말이 여전히 믿어지지 않는지 다시 물었다. 내 입에서 나온 말만 믿겠다는 얼굴이었다. 그 모습이 내 안의 가학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렇다면 어쩔 건데요.”

“아니잖아요. 신의 씨가 허락했을 리 없어요. 혹시 둘이 각인한 건 아니죠?”

“이제 슬슬 각인하려고.”

성요한은 여전히 현태운을 놀리는 것처럼 말했다. 그 모습에 성요한을 흘낏 노려본 뒤, 이번에는 솔직하게 말했다.

“협회에서 미국과 접촉했다는 이유만으로 성요한 에스퍼를 감시 역할로 옆에 놓았어요. 그리고 둘이 사는 거 아닙니다. 원재도 같이 살아요.”

내 말에 그제야 현태운은 안심한 듯했지만, 그의 찌푸려진 이맛살은 여전히 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감시라니요. 협회장한테 제가 다시 말해 볼게요.”

“괜찮습니다.”

“걱정돼서 그래요.”

“현태운 씨, 도움 필요 없어요.”

“제가 싫어서 그래요. 저 신의 씨가 성요한이랑 같이 사는 거 못 봐요.”

과거로 돌아오기 전의 현태운은 나 같은 건 길거리에서 죽어도 모른 척하던 인간이었는데. S급 가이드라는 것이 에스퍼들에게 어지간히 필요한 존재인 것을 재차 확인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마음대로 해요.”

이대로 현태운이 협회장과 이야기를 잘 끝내 성요한이 집에서 나가 준다면 나야 좋았다.

“태운이 네가 협회장한테 말해도 바뀌는 건 없어. 이미 결정된 사항이야.”

“닥쳐.”

성요한은 피식 웃더니 내 손목을 잡으며 말했다.

“신의 씨, 가이딩해 줘요.”

“싫어요.”

나는 성요한의 손목을 쳐 내며 말했다. 한순간 성요한의 눈이 날카로워졌지만, 원래대로 돌아왔다.

“저는 이만 가이딩 훈련하러 가겠습니다. 할 말 더 남았으면 두 분 따로 이야기하세요.”

이대로면 대화가 끝나지 않았기에 누군가 멈춰야 했다. 나는 자리를 뜨겠다고 말하며 그들에게서 한 걸음 멀어졌다.

“알겠습니다. 신의 씨, 다시 연락할게요.”

현태운이 내가 피곤해하는 모습을 보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성요한은 마음에 들지 않는 눈으로 여전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 시선을 피하듯 가이딩실로 들어와 문을 잠가 버렸다.

***

원재와 가이딩 훈련을 끝내고 나오자, 성요한이 기다리고 있었는지 내 등을 껴안았다.

그에게 그만하라고 말했지만, 여전히 붙어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뒤이어 나온 원재가 보았다.

“형!”

원재는 성요한의 모습에 팍 인상을 쓰며 내게서 떼어 내려고 했지만, 에스퍼의 힘을 이기기에는 어려웠다. 이곳에서 웃고 있는 사람은 성요한뿐이었다.

과거와는 너무나도 다른 상황에 머리에 두통이 일었다. 원래는 현태운과 성요한 둘 다 원재의 에스퍼가 되어야 했는데….

“형한테 떨어져요!”

다행히 나와 원재의 끈질긴 저항으로 성요한이 떨어졌다. 그는 우리의 모습을 보고 웃더니 집에서 보자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갑자기 나타나 속을 긁고 사라지는 성요한의 모습이 황당하기만 했다.

성요한의 사라진 자리를 보며 원재가 말했다

“에스퍼들은 하나같이 무례하고 몰상식한 거 같아요.”

“그러니까. 더는 보고 싶지도 않다.”

내 말에 원재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형, 같이 도망갈래요?”

원재의 말에 한순간 혹했지만, 내가 어디에 있고 누구를 만나는지 협회는 다 알고 있었기에 아마 도망을 간다고 해도 금방 잡히고 말 것이다.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원재 또한 감시의 대상이 될까 걱정이 되었다. 그렇기에 협회와 확실히 마무리를 짓고 이 생활을 끝내고 싶었다.

“아니야. 성요한 건은 형이 협회랑 이야기해 볼게.”

“계속 못 끝내고 있잖아요.”

원재의 말이 맞았기에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원재 또한 한숨을 쉬더니 작게 성요한을 욕했다. 그런 원재를 타이르며 일찍 퇴근하자고 말했다.

집으로 가는 내내 어떻게 협회에서 나올지 생각했다. 그리고 떠오른 사람이 세현이었다.

세현이라면 협회에서 나를 빼내 줄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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