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가이드는 이만 퇴사합니다-63화 (63/65)

63화

“형, 무슨 생각 해요?”

소파에 앉아 있는 내 옆으로 다가온 원재가 물었다. 오늘 아침에 현태운과 대화한 이후로 내내 머릿속이 복잡했다.

어떻게 현태운이 과거로 돌아왔는지, 정말 돌아온 것이 맞는지 여전히 믿어지지 않았다.

현태운의 울던 모습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바늘로 찔러도 꿈쩍하지 않을 거 같은 남자가 현태운이었다. 그런 그가 어린아이같이 우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그깟 우는 모습에 마음이 약해지다니…. 나는 지난날의 현태운을 떠올리며 다시금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웃으며 원재의 말에 답했다.

“내일 어떻게 강의할지 생각하고 있었어.”

내일 에스퍼들을 위한 가이드 강의가 있었다.

“아쉽다. 나도 에스퍼였으면 형한테 강의받을 수 있었는데.”

“매일 같이 훈련받잖아.”

“그래도요!”

“어제 검사는 잘 받았어?”

“생각보다 괜찮은 거 같아요.”

원재는 그렇게 말하더니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오랜만에 형이랑 단둘이 있으니까 너무 좋아요. 이대로 여기서 지내면 안 돼요?”

성요한에게 겁탈당할 뻔한 어제의 일로 더는 그와 한집에서 지내는 건 무리라는 걸 느꼈다. 그렇다고 원재를 세현의 집에 데리고 갈 수도 없었기에 협회 호텔에서 머물게 되었다.

“며칠 지내 보고.”

S, A급은 협회 호텔에서 기간 제한 없이 머물 수 있어, 호텔에서 지내는 각성자도 있었다. 그렇기에 원재의 말대로 이곳에서 살아도 되었다.

“알겠어요. 성요한이 없는 것만으로 너무 좋아요, 형.”

“나도.”

그동안 성요한 때문에 잠을 설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오늘은 푹 잘 수 있을 거 같았다.

“어제 무슨 일 있었던 건 아니죠?”

“응. 아무 일도 없었어.”

눈치 빠른 원재는 내가 호텔에서 지내자는 말을 꺼내자마자 어제 성요한과 무슨 일이 있다는 걸 눈치챈 거 같았다. 겁탈당할 뻔한 걸 말해 봤자, 원재에게 걱정만 안겨 줄 것을 알기에 말하지 않았다.

내 말에도 원재는 여전히 의심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자러 가겠다고 말하며 자리를 피할 수밖에 없었다.

***

다음 날이 되면 어느 정도 마음이 추슬러지리라 생각했는데 센터로 향하는 내 마음은 여전히 복잡했다.

차를 타는 내내 인상을 쓰고 있자, 원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형, 오늘도 컨디션 안 좋아 보여요.”

“그래?”

겉으로 드러날 정도로 내 상태가 좋지 않았나 보다. 나는 곧장 인상을 풀고 웃었지만, 원재는 여전히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네. 혹시 오늘 가이딩 실전 강의 때문에 걱정되세요?”

“조금.”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것도 맞았지만, 오늘 강의 또한 걱정되었다.

오늘은 에스퍼들에게 가이딩 실전 강의를 해 주는 날이었다. 어떻게 해야 가이드에게 원활하게 가이딩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강의였다.

“1시간짜리 강의니까 빨리 끝날 거예요.”

“그랬으면 좋겠다.”

센터에 도착하자, 원재는 훈련실로 이동했고 나는 진석의 안내를 받아 강의실로 이동했다. 이미 내부는 에스퍼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번 강의는 에스퍼 3명을 뽑아서 내가 그들에게 가이딩하는 모습을 직접 보여 주는 방식이었다. 미리 추첨했는지, 진행자가 추첨 번호를 말했다.

“22번, 57번, 12번.”

당첨된 에스퍼들이 한 명씩 단상으로 올라왔다.

올라온 에스퍼들은 모두 제복이 달랐다. 등급을 따지지 않고 뽑은 거 같았다.

단상에 올라온 에스퍼 중에서 C급 에스퍼가 제일 기가 죽어 있었다. 옛날의 내 모습을 보는 거 같아, 그가 있는 쪽으로 다가가 작게 말했다.

“긴장하지 말아요.”

내 말에 C급 에스퍼는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긴장하지 말라고 말을 걸었는데 의도와 달리 에스퍼가 바짝 긴장하니 괜히 다가갔나 싶었다.

이내 나는 마이크를 들고 효율적인 가이딩 방법에 관해 설명했다.

“제일 먼저 가이딩 수치를 확인하고 수치에 맞춰서 가이딩 방법을 선택해야 해요. 그리고 가이드의 파장을 찾는 게 중요합니다. 무작정 연결하면 안 돼요. 생각보다 파장은 예민해서 한번 거부하면 연결되기 어려워요.”

에스퍼들 모두 내 말에 집중하며 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 또한 열심히 강의했다.

“파장은 우는 아이라고 생각하고 다루면 편해요. 어르고 달래야 잠잠해지거든요.”

내 옆에 설치된 모니터에 에스퍼들의 수치가 떠 있었다. 훈련을 받고 와서 그런지 모두 가이딩 수치가 낮았다. A급 에스퍼는 52%였다.

나는 A급 에스퍼부터 방사 가이딩을 해 주기 시작했다.

내가 가이딩을 시작하자 1분에 1%꼴로 수치가 올라갔다. 내 등급이 더 높아서 방사 가이딩만으로도 쉽게 파장을 잠재울 수 있었다.

평정권인 60%까지만 가이딩을 해 주면 되었다. 나는 나만의 가이딩 노하우를 말하며 A급 가이드의 가이딩을 마쳤다. 그리고 B급 에스퍼에게로 이동했다.

이번에는 1차 접촉 가이딩을 시도했다. 나는 에스퍼에게 양해를 구하고 손을 잡았다.

역시 접촉 가이딩을 하니까 더욱 빠르게 가이딩 수치가 올라갔다.

나는 접촉 가이딩을 할 때 에스퍼들이 어떤 식으로 도와주면 좋은지 설명을 해 줬다. 3년간 까다로운 현태운 때문에 얻은 나만의 노하우들이었다.

C급 에스퍼는 여전히 긴장하고 있었다. 마지막 순서인 그에겐 2차 접촉 가이딩을 했다.

“2차 접촉 가이딩 시도하겠습니다. 접촉에 놀라지 마세요.”

남자와 나는 키가 비슷했다. 그래서 안기가 편했다. 내가 안자 남자의 몸이 쉴 새 없이 떨렸다. 나는 혹시 몸이 안 좋은 건가 싶어 몸을 떼어 내고 남자에게 물었다.

“혹시 어디 아프신가요?”

“기. 기, 긴장해서… 요.”

“긴장 푸세요. 그냥 실습이에요.”

“네, 네.”

내 말에도 남자의 이마는 긴장으로 인해 땀범벅이었다.

나는 방사 가이딩으로 그가 내 파장에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린 뒤, 2차 가이딩을 했다. 다행히 긴장했던 남자의 몸이 조금씩 완화되었다.

“이런 느낌 처음이에요….”

“아마 제가 컨트롤 능력이 높아서 그렇게 느껴지신 걸 거예요.”

“아니에요!”

남자가 난데없이 고함을 쳤다. 어쩐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어, 파장을 크게 발산해 빠르게 그의 가이딩 수치를 높였다. 역시 다른 사람과 접촉하는 건 껄끄러웠다.

수치가 60%에 도달하자마자 남자를 떼어 내려고 했지만, 그는 내 허리를 잡은 채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가이딩 끝났습니다.”

내 말에 그제야 남자가 내게서 몸을 떨어트렸다.

“아, 아! 죄송해요.”

C급 에스퍼를 마지막으로 1시간에 걸친 실전 강의를 끝내고 밖으로 나오는데,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신의 가이드님!”

뒤를 돌아보니, 조금 전 가이딩해 줬던 C급 에스퍼였다.

“무슨 일이시죠?”

“혹시 가이딩하실 때 신의 가이드님도 저랑 똑같은 걸 느끼셨나 궁금해서요.”

“네? 어떤 느낌이요?”

오늘 한 가이딩은 다 똑같았다. 평범했다.

“…운명…. 느낌….”

남자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작아 잘 들리지 않아 다시 물었지만, 얼굴이 붉게 상기된 남자는 내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저는 신의 가이드님과 매칭 테스트 못 하나요?”

오늘 나와 한 가이딩이 좋았던 거 같았지만, C급인 그와 내가 매칭 테스트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선 등급 차이가 심했다. 나는 회귀 전에 현태운과 매칭 테스트를 했지만, 그때는 내 등급이 나오지 않을 때라 가능한 일이었다.

“매칭 테스트 관련해서는 협회에 문의해 보세요.”

“아, 협회에…!”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네, 가이드님. 조심히 가세요.”

몸을 거의 접어 내게 인사한 남자가 후다닥 어딘가로 달려갔다. 안 그래도 가이딩을 연달아 해 피곤한 느낌이 있는데, 여러모로 회귀 전 일이 생각나게 하는 남자라 더욱 지치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대로 일찍 퇴근할까도 싶었지만, 1시간 정도 자다 일어나면 괜찮을 거 같아, 휴식실로 이동했다.

***

한숨 자고 나자 점심때가 되어 있었다. 원재는 검사 때문에 따로 먹게 되어 오늘은 지훤과 단둘이었다. 함께 식당으로 향하는 우리 둘 다 피곤한 얼굴이었다.

지훤과 식판을 들고 자리에 앉았는데, 지훤이 수저를 못 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수전증을 앓고 있는 사람처럼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지훤아, 괜찮아?”

“괜찮아요.”

내 말에 그제야 지훤이 수저를 꽉 쥐더니 국을 떠먹었다. 그 모습에 나 또한 도로 밥을 먹으려 하는데, 지훤의 코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지훤아, 너 코피 나.”

“네?”

나는 서둘러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지훤에게 건넸다. 지훤은 건네받은 손수건을 곧장 코에 대었다.

“사실 요즘… 코피가 자주 나요.”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A급이 돼야 형이랑 원재랑 나란히 선 느낌이 들 거 같아서요.”

본의 아니게 내 등급이 지훤이에게 부담을 준 거 같았다. 생각해 보면 나 또한 늘 현태운의 등급을 의식해 더욱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등급 같은 거 따지는 사람 아니야. 지훤이 네 자체가 좋은 거라고.”

나는 조금이라도 지훤의 마음의 짐을 덜어 주기 위해 말했지만,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알아요. 그래도 제 욕심이에요.”

그만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예전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하지만 건강을 깎으면서까지 등급을 올리는 건 위험했기에 나중에 지훤과 따로 이야기를 나눠 봐야 할 거 같았다.

“오늘은 의무실에서 쉬어. 계속 이러면 센터에서 건강검진 받고.”

“네.”

지훤은 애써 웃었지만, 나는 여전히 그가 걱정되었다. 나 또한 윤 박사님의 프로젝트로 몸 상태가 악화되었던 적이 있으니 말이다.

“내가 필요한 일이 있으면 꼭 말해. 걱정거리도.”

“네. 고마워요, 형.”

결국 지훤과 나는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의무실로 향했다. 지훤의 상태는 괜찮아졌지만, 여전히 안색이 좋지 않아 걱정되었다.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