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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가이드는 이만 퇴사합니다-64화 (64/65)

64화

<129S구역에 A급 게이트 출현. A급 게이트 출현.>

A급 게이트가 열렸다는 알림이 복도에 쉴 새 없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게이트 경고등이 쉴 새 없이 반짝이는 걸 보며 원재와 함께 서둘러 훈련실에서 나왔다.

“S구역이면 바다잖아요.”

바다 구역은 번호 뒤에 S가 붙었다. 원재의 말에 나 또한 서둘러 위치를 확인했다. 바다 중앙에 핀이 꽂혀 있었다.

“우선 가이딩 셸터에 가자.”

“네.”

가이딩 셸터에 도착한 원재와 나는 각자의 팀으로 이동했다. 현태운의 전담이 된 원재는 01S팀 쪽으로, 나는 05R팀으로 이동했다.

나는 팀 전용실에 들어가자마자 팀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게이트 상황을 살폈다. 모두 바다 중앙에 뜬 게이트에 걱정인 거 같았다.

게이트가 천공에 떴으면 괜찮았을 텐데, 물 안에서 생성되면서 문 윗부분만 보였다. 그나마 다행히 날씨가 쌀쌀했기에 바다 근처에 사람이 없었다.

“현태운 에스퍼님한테는 불리하겠네요.”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그제야 현태운의 화염 능력이 떠올랐다. 현태운에게는 힘든 전투가 될 것이다.

머지않아 가이딩 셸터가 129S 구역으로 이동했다. 셸터 이동 완료 표시가 뜨고 게이트가 열리는 모습을 불안하게 보고 있을 때였다.

팀 전용 가이딩실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팀원 중 한 명이 문을 열자, 현태운이 앞에 있었다.

“이신의 가이드님과 잠깐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요?”

둘 다 과거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첫 대면이었다. 당장 꺼지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가십거리를 만들어 주고 싶지 않아 결국 밖으로 나왔다.

“같이 과거로 돌아왔다고 이제 막 나가는 거야?”

“게이트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말하려고 왔어.”

“네가 뭔데 날 걱정해.”

내 말에 현태운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너나 잘해. 저번처럼 가이딩 수치 떨어져서 귀찮게 만들지 말고.”

“알겠어.”

현태운은 이내 게이트 복귀 요청을 받고 셸터 밖으로 나갔다. 나가기 전에 내게 나오지 말라는 말을 재차 했다. 나는 그런 그를 무시하고 전용실 안으로 들어갔다.

게이트 실시간 모니터에 어느새 현태운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점점 열리기 시작한 게이트를 향해 화염 능력을 사용했다. 물이 빠르게 증발하며 게이트가 보였지만, 이렇게 계속 능력을 사용할 순 없을 것이다.

다행히 성요한의 능력으로 모세의 기적처럼 물이 갈라지며 바다 바닥과 게이트 전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성 팀장님 능력이 뭘까요? 몇 년을 봐 왔어도 전혀 모르겠어요.”

“저도 몰라요.”

“물리계인 거 같은데, 아닌 거 같기도 하고.”

S급 에스퍼의 능력은 기밀이었고, 페어인 나에게도 성요한은 능력을 알려 주지 않았다.

이내 게이트 문이 완전히 열리며 마물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바다에서 열린 돌발형 게이트인 만큼 해양생물의 외양을 띤 마물들이 많았다.

다행히 성요한의 능력 덕분에 마물과의 대치 상황은 평소와 비슷했다. 하지만 현태운은 고전 중이었다. 그는 능력을 쉴 새 없이 사용했지만, 평소와 달리 마물들에게 대미지를 적게 주었다.

저렇게 에너지를 쓰다 보면 분명 가이딩 수치가 빠르게 떨어질 것이다.

나는 결국 전용실에서 나와 셸터 담당자에게 다가가 물었다.

“현태운 에스퍼 가이딩 수치 지금 몇 퍼센트예요?”

“59%예요.”

아직까지는 괜찮았다. 하지만 게이트가 장기전이 된다면 위기권 아래로 내려갈지도 몰랐다.

나는 성요한의 가이딩 수치도 확인했다. 68%.

성요한과는 겁탈당할 뻔한 날 이후로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오늘은 어쩔 수 없이 만날 텐데 걱정이 앞섰다.

이 상태라면 둘 다 잘 넘길 수 있을 거 같았지만, A급 돌발형 게이트인 만큼 가이딩을 해 줘야 하는 상황이 올 것이다.

“형, 여기서 뭐 하세요?”

뒤에서 들리는 원재의 목소리에 가이딩 워치에서 시선을 떼며 그를 바라봤다.

“잠깐 게이트 상황 보고 있었어. 넌 왜 나왔어?”

“답답해서요. 이번 게이트는 A급 중에서도 중상위급이라서 1시간 넘게 진행될지도 모른대요.”

“그런 거 같더라.”

원재의 말에 게이트 상황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에스퍼들이 서로 이어셋으로 대화하며 협동하고 있었지만, 바다라는 열악한 환경이었기에 꽤 애를 먹는 거 같았다.

“오늘 가이딩할지도 모르는데 괜찮겠어?”

“아니요. 하기 싫어요.”

원재는 딱 잘라 하기 싫다고 말했다. 이번에 평균 이상의 가이딩 파장 수치를 보인 원재는 원치 않게 현태운의 전담이 되어 고생하는 중이었다.

에스퍼들은 가이딩할 때 강한 파장 에너지를 가져가기 위해 가이드와 농밀한 접촉을 원했다. 그러나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과 신체 접촉을 해야 하니, 가이드로서는 껄끄러울 때가 많았다. 에스퍼를 싫어하는 원재도 가이딩할 생각만 하면 불편하다고 토로했다.

그래도 원재와 나는 다른 가이드들에 비해서 신장이 컸기에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겁탈당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제가 가이드가 아니었으면 좋았을 텐데.”

원재는 아쉽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며칠 전에는 가이드인 자기가 잘못된 거라고 자책까지 했던 터라, 걱정이 컸다.

“에스퍼였으면 좋았을 거 같아요. 그럼 형이랑 페어 할 수 있었을 텐데.”

원재는 종종 지금처럼 나와 페어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그때마다 굳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싶지 않아 말한 적은 없지만, 솔직한 심적으로는 원재가 에스퍼라 해도 그와 페어가 되고 싶지 않았다.

페어가 되면 신체 접촉도 거리낌 없이 해야 했고, 각인을 하는 상황도 생긴다.

동생 같은 원재와는 깊은 신체 접촉은 못 할 거 같았다. 비단 원재가 가족 같아서만은 아니라, 누구와도 그런 스킨십을 하고 싶지 않았다.

긴 시간 끝에 보스 마물이 소멸하면서 게이트가 닫히는 모습이 보였다. 이번에는 성요한의 공이 컸다.

게이트가 닫히자마자 성요한이 제일 먼저 셸터 쪽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모니터로 보였다. 나도 모르게 몸이 긴장하는 걸 느꼈다. 일단 나와 원재는 각자의 팀 전용실로 이동했다.

이내 팀 전용실 문이 열리며 성요한이 모습을 드러냈다.

“신의 씨, 가이딩해 주세요.”

그날 사건은 잊은 것처럼 뻔뻔한 모습이었다. 성요한이 여기 오기 전에 확인한 그의 가이딩 수치는 48%였다.

“오늘은 제가 해 드릴게요.”

내 옆에 있었던 A급 가이드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녀는 성요한에게 마음이 있는 거 같았다. 팀 전용실에서 늘 성요한 이야기뿐이었다.

생각해 보면 성요한의 외모는 다른 사람들이 좋아할 법한 잘생긴 외모였다.

A급 가이드가 성요한에게 다가가자, 성요한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다. 마치 하등 생물을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는 가이드를 그대로 무시하고 내 쪽으로 다가왔다.

“집에서 가이딩할까요?”

“성요한 씨가 있는 집에는 갈 생각 없습니다.”

“그럼 가이딩실에서 하죠.”

“싫습니다.”

“그럼 주원재에게 가야겠네요.”

갑작스레 그의 입에서 나온 주원재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미간이 구겨졌다.

“왜 여기서 원재 이야기가 나와요? 같은 팀원도 아니잖아요.”

“주원재는 A급 가이드예요. 충분히 가이딩을 바랄 수 있죠. 그리고 제가 지금 당장 주원재에게 각인해도 뭐라고 할 사람은 없어요.”

각인이라는 말에 저절로 주먹이 쥐어졌다.

“원재한테 각인하겠다고 말하는 거예요?”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팀원들도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우리에게서 멀어졌다. 모두들 자리를 피해 주어서, 팀 전용실에는 나와 성요한만 남았다.

“신의 씨가 가이딩해 준다면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더는 시선이 없어지자 성요한은 더욱 거리낄 것 없다는 듯 굴었다. 이건 더 이상 가이딩 요청이 아니었다. 협박이었다. 생각해 보면 성요한과 협회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늘 나를 협박해 왔다.

“그럼 저한테도 언제든지 억지로 각인할 수 있다는 말처럼 들리네요.”

“그건 아니에요. 저도 신사적인 사람인지라.”

“지금 전혀 신사적이지 않아요.”

“신의 씨와 단둘이 있으면 계속 본성이 나오는 거 같아요. 그럼 지금 주원재한테 갈까요?”

또 원재를 들먹이는 성요한의 모습에 결국 가이딩을 해 주겠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가이딩할게요. 대신 원재는 절대로 건들지 마세요.”

“알겠어요.”

그렇게 나와 성요한은 센터 가이딩실로 이동했다. 그런데 현태운의 가이딩실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이 보였다. 아마 기계 가이딩을 받고 있을 것이다.

S급만 고집하지 않고 자기와 맞는 가이드를 구한다면 힘들게 기계 가이딩을 받지 않아도 될 텐데. 그저 현태운이 미련스럽게 느껴졌다.

“태운이는 기계 가이딩 중인 거 같아요. 가엽네요.”

“성요한 씨도 이제 슬슬 기계 가이딩에 정착해 보는 건 어때요?”

“저는 기계는 안 맞더라고요. 이렇게 살이 닿아야 가이딩하는 거 같고요.”

성요한은 그렇게 말하며 내 손을 깍지 껴 잡았다. 나는 그런 그의 손을 쳐 내며 말했다.

“말도 없이 접촉하지 마세요.”

“신의 씨, 까칠하네요. 계속 이러니까 풀어진 모습도 보고 싶어져요.”

나는 답하지 않은 채 가이딩실로 들어가 침대에 앉았다. 그리고 성요한이 옆에 앉자마자 손을 잡았다. 빨리 가이딩을 끝내고 호텔로 돌아가고 싶었다.

“신의 씨, 이러다가는 1시간은 넘게 걸릴 것 같은데. 2차 접촉 가이딩 하죠?”

“싫어요.”

“왜요?”

원재를 걸고넘어지며 협박한 주제에 모르는 척하며 묻는 모습을 보니 헛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성요한을 노려보며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더는 성요한 씨 가이딩하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도 원재 때문에 하는 거예요.”

“왜 저랑 하기 싫은데요?”

“정말 몰라서 물어요? 매번 너무 과하잖아요.”

“신의 씨가 가이딩에 대해서 잘 모르는 거 같네요. 이게 정상이고 보통이에요.”

성요한은 그대로 내 몸에 자신의 몸을 밀착했다. 그러자 그의 물건이 선 것이 느껴졌다.

“아까도 말했지만, 제가 이대로 신의 씨에게 각인해도 타박할 사람은 없습니다.”

성요한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 몸을 침대에 밀어트리고 키스하려 했다. 나는 얼굴을 돌리며 발버둥 쳤지만, 여전히 그의 힘을 이기기란 어려웠다.

나를 내려다보는 성요한의 모습은 마치 누가 위에 있는지 알려 주려는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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