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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가이드는 이제 그만 쉬고 싶다-7화 (7/172)

#006.

대격변 6

지수가 먼저 세 사람의 이야기를 꺼낸 것이 퍽 놀라웠는지 눈이 살짝 커졌지만, 이내 언제나처럼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다정한 어조로 대답했다.

“맞아. 희원이가 청포도 사탕 엄청 좋아해서 가방에 한 봉지는 꼭 들어 있었잖아.”

“……응. 근데 나 사탕 안 좋아하잖아.”

“응, 지수는 사탕 안 좋아하지.”

“그래도 일단 주는 대로 받았더니, 내가 자주 들고 다니던 가방 있잖아? 그 가방 주머니에서 자꾸 나와서 꺼내 보니까 30개가 넘었어…….”

“하하. 그거 전부 희원이 가방에 몰래 넣어도 몰랐을 거야.”

지수는 그 말에 공감한다는 듯이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안도했다.

혹시나 형들의 이야기를 하다가 슬퍼져서 괜히 분위기만 망치면 어쩌나 했는데, 스몰 토크라 그런지 견딜 만했다.

물론 여전히 가슴 부근이 조금 쿡쿡 쑤시고 아리긴 했지만, 이전처럼 고통스럽게 쥐어짜듯 아프진 않았다. 그래서 지수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말을 이었다.

“안 그래도 나중에 받은 사탕 모았다가 중간에 한 번 희원이 형 가방에 전부 넣은 적 있는데, 진짜 눈치 못 채더라.”

“하하하.”

마치 대단한 유머라도 들은 것처럼 웃음을 터뜨린 재윤이 “사실…….” 하고 운을 뗐다.

“나도 그렇게 넣은 적 많아.”

“……푸흡! 진짜?”

“응. 희원이만 몰랐을걸? 그래서 정진이랑 지오가 매번 청포도 사탕 페이백이냐고 했었어.”

“아하하, 뭐야. 다들 알고 있었구나. 희원이 형만 빼고.”

“어. 희원이만 빼고 다 알았지. 매니저 형도 알았는데, 뭐.”

지수는 청포도 사탕 페이백이라는 말에 웃음이 터져 손등으로 입을 가리고 쿡쿡 어깨를 떨었다.

희원이 형만 빼고 다 알고 있었구나. 매니저 형도 알고 있는걸…… 그 형만 몰랐구나. 맨날 나만 형들에게 놀림만 받았는데, 이번엔 나도 실컷 놀려 주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던 지수는 문득 여기까지라는 것을 느껴 눈을 질끈 감고 입술을 말아 넣었다.

여기서 더 말했다간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애써 꾹 참고 주먹을 꽉 쥐자, 한지수의 한계점을 파악한 강재윤 역시 말을 멈췄다.

눈을 꾹 감고 심호흡하는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강재윤은 억지로 세 사람의 이야기를 이어 가는 대신 손을 뻗어 주먹 쥔 손등을 보듬어 주기 시작했다.

지수는 늘 그랬던 것처럼 저를 달래는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한결같이 다정한 맏형이자 리더 강재윤과 가족 같았던 세 형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어째 마음이 따라 주지 않아 속이 상했다.

한지수는 5년 전에 일어난 대격변의 날, 지금 제 곁을 지키고 있는 강재윤을 제외한 소중한 사람을 전부 잃었다.

기억이 존재하는 나이대부터 함께 자라 온 동네 친구들, 멤버 형들, 매니저 형들, 친한 선배들과 바로 다음 데뷔를 준비하던 연습생 동생들……

그리고 자신의 유이한 가족인 형과 동생까지 전부 다.

* * *

5년 전에 일어났던 대격변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대참사로 기록된 날이었다.

지구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진 대재앙의 날, 한지수뿐만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 오히려 누군가를 잃지 않은 사람을 찾는 게 더 어려울 만큼 많은 인류가 희생됐다.

‘그래도 5년이나 지났는데…….’

대격변 날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은 변화한 세상에 그럭저럭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반면 지수는 자신이 아직도 대격변 시기에 머무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지금도 분명 괜찮을 것 같았는데, 모처럼 소중한 이들에 대해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갑자기 울컥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하, 씨. 진짜…….”

눈을 꾹 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눈꺼풀 사이를 비집고 방울방울 맺히던 것이 무게를 못 이기고 주룩 흐른 순간, 한지수는 수치심을 동반한 짜증을 느꼈다.

제 의지와 상관없이 눈물이 나는 것도 민망했지만, 강재윤이 러비스의 추억을 곱씹을 유일한 상대인 자신이 아직도 이러고 있는 게 너무 한심하고 미안했기에 더 설움이 치솟았다.

“……형, 미안…….”

지수가 잔뜩 메인 목소리로 겨우 사과했다. 분명 기분이 좋았는데, 다 괜찮았는데, 별안간 울컥 치솟는 그리움을 아직도 제어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져서 더 속상했다.

강재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다 안다는 듯이 잔잔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곤 아예 상체를 옆으로 틀어 앉아 손으로 막내의 얼굴을 조심스레 닦아 주며 말했다.

“뭐가 미안해. 다음에 지수가 이야기하고 싶을 때 이야기하면 돼.”

“……응…….”

스스로에 대한 분함에 입술을 꽉 깨문 지수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함과 자괴감, 수치스러움 등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뒤섞여 입이 썼다.

강재윤이 오랜 습관처럼 막내를 달래기 위해 무언가 더 이야기하려는 찰나, 내내 얌전히 창밖을 구경하던 토토가 지수의 어깨에서 허벅지로 뛰어내렸다. 그리곤 두 발로 일어서서 “쮯!” 하고 짧게 울었다.

“응? 토토야, 왜?”

“쮯.”

“음? 구경 다 했어? 주머니에 들어갈래?”

“쮜이잇.”

토토는 그게 아니라는 듯이 앞발로 자신의 토실토실한 볼 주머니를 뒤적였다. 작은 입을 쩍 벌리고 꺼내 든 것은 토토가 가장 좋아하는 던전산 마카다미아 반쪽이었다.

“……? 음?”

“쮜잇-!”

위풍당당하게 까치발로 선 토토가 마카다미아를 내밀었다.

“……혹시 아빠 주는 거야?”

“쮜잇!”

바로 그거라는 듯이 힘차게 운 토토가 마카다미아를 더 높이 치켜들었다. 지수는 쿡쿡 웃으며 마카다미아를 받아 다시 토토에게 내밀었다.

“고마워, 토토야. 근데 아빠는 지금 배 안 고프니까 토토가 먹어.”

“쮜이…….”

마카다미아와 지수를 번갈아 가며 바라본 토토가 받아도 된다는 듯이,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지수는 자신이 걱정되어서 하는 행동이라는 것을 알기에, 마카다미아를 재킷 주머니에 챙겨 넣으며 웃었다.

“음~ 그럼, 이건 아껴 뒀다가 나중에 먹을게.”

물론 이 마카다미아는 당연히 토토의 간식 주머니에 섞일 예정이었다. 집사의 계획을 모르는 토토는 귀를 쫑긋 세우고 “쮜잇-!” 힘차게 울더니, 다시 어깨로 올라와 창밖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불과 30초 전만 해도 부정적인 기분에 사로잡힐 뻔했는데, 한결 기분이 나아진 지수가 강재윤을 향해 고개를 돌리다 멈칫했다.

언제나처럼 부드럽게 웃고 있을 거라 예상한 것과 달리, 저를 보는 강재윤의 표정엔 웃음기가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그는 짐짓 심각한 얼굴로 제 재킷 주머니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왜. 뭐. 뭔데.”

“으음~ 아니. 아무것도 아냐.”

“아니긴 뭐가 아냐. 빨리 말해. 뭔데.”

서로 알고 지낸 세월이 자그마치 10년이 넘은 사이였다. 지수는 재윤의 저 얼굴이 정말 심각해서가 아니라, 뭔가 놀리기 직전의 표정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그렇기에 오래된 습관대로 재윤의 옆구리를 꼬집으며 말했다.

“뭐야. 뭔데.”

“하하, 아니. 그냥. 우리 지수가 마카다미아를 아껴 뒀다 먹을 정도로 좋아하는지 몰랐네.”

“아니! 그야 당연…… 큽…….”

명백하게 놀리는 반응을 보고 울컥한 지수가 입술을 달싹이다 급히 다물었다. 어깨 위에 토토가 아닌 척하면서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게 느껴져 더 말하지 못하고, 그저 부리부리한 눈으로 재윤을 바라봤다.

“하하. 왜?”

“…….”

차마 토토가 듣는 데서 내가 먹을 게 아니라는 해명을 할 수 없던 지수는, 늘 그랬듯이 자신을 놀리는 리더를 옆구리 꼬집기로 응징했다. 이젠 S급이라 아프지도 않겠지만.

* * *

-현장 화면에 보이는 것은 옛 부산 태종대 전망대 자리에 나타난 신규 던전 게이트입니다. 등급은 측정 불가로, 게이트 인근은 모두 대피를 마친 상태입니다. 해당 던전은 측정 불가 게이트 관리법에 따라 최소 3개 기관으로 구성된 공략팀이 확정되었습니다.

아나운서의 설명과 함께 TV 화면에 공략팀 목록이 떴다.

『각성자 협회 소속』

연서준 에스퍼(A) 성준 힐러(A) 지석민 에스퍼(B) 김승희 에스퍼(B) 이정균 가이드(A)

『플레임 길드 소속』

박호연 에스퍼(A) 유원석 에스퍼(B) 이민재 에스퍼(B) 진소민 힐러(A) 임은하 가이드(S)

『평화 길드 소속』

강재윤 에스퍼(S) 진보라 에스퍼(A) 이수빈 힐러(A) 박민아 가이드(A)

-공략팀은 모레 오전 중에 진입 예정이며,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부산시는 각성자 협회와…….

딸깍- 문 열리는 소리에 지수의 시선이 욕실로 향했다. 얼마나 뜨거운 물로 씻은 건지,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김이 확 퍼져 나왔다. 모락모락 피어난 수증기 사이로 나온 강재윤은 호텔 가운을 대충 여며 가슴과 복근을 훤히 드러낸 채 다가왔다.

“왜 재미없는 뉴스나 보고 있어.”

“……등급 외는 오랜만이니까.”

“하하. 걱정돼?”

“아무래도 그렇지…….”

걱정 섞인 대답을 들은 강재윤이 침대에 올라앉아 제멋대로 리모컨을 가져가 TV를 끄더니, 머리를 괴고 옆으로 누웠다.

지수는 침실이 두 개 있는 스위트룸인데도 굳이 제 침대에 눕는 그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지만, 딱히 거부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이 스위트룸도 재윤이 준비했으니까.

하지만 토토는 생각이 달랐는지, 잘 먹던 새우를 팽개치고 침대 위로 점프해 두 사람 사이에 섰다. 위풍당당한 자태에 재윤이 쿡쿡 웃으며 토토에게 손가락을 내밀었다.

“토토야. 오늘은 나도 같이 자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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