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급 가이드는 이제 그만 쉬고 싶다-39화 (39/172)

#038.

달콤한 꿈 10

딸꾹질을 동반한 울음을 멈추고 호흡을 고르게 쉴 수 있을 때부터 안식의 신에게 궁금했던 것을 몇 가지 물었지만, 그는 대부분 대답할 수 없는 부분이라며 말을 아꼈다.

특히 가장 궁금했던 등급 측정 불가 던전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지만, 그는 자신이 대답할 수 없는 문제라며 유감을 표했다.

이 과정에서 몹시 화난 지수가 따지고 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역시 어떠한 규칙 때문에 이를 말할 수 없다며 미안하다 사과했다.

겨우 화를 가라앉히고 진정한 지수가 이후에도 이것저것 물었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지수가 10개를 물어보면 그중 2개 정도의 대답만 들을 수 있었다.

처음엔 저 후원자가 자신을 놀리려고 저러는 건가 싶어 중간중간 계속 울컥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안식의 신은 어떠한 강제적인 규칙 같은 게 있어서, 자신도 하고 싶어도 못 하는 말이 많아 답답하다며 몇 번이고 제 사정을 강조했다.

그의 사정이 어떻든 간에 결론적으로 저가 가장 궁금했던 질문의 대답은 하나도 듣지 못한 지수는 이후 떠오르는 것들을 마구잡이로 질문하기 시작했다.

“그럼, 안식 당신은 진짜 신이야?”

[‘후원자’ 안식의 신이 그렇다고 합니다]

“……음, 후원자 엄청 많잖아. 그 후원자가 다 신이라고?”

[‘후원자’ 안식의 신이 후원자는 많지만, 모두가 강한 힘을 가진 신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음…… 그러니까 신들도 각성자처럼 일종의 등급이 있다는 거야?”

[‘후원자’ 안식의 신이 맞다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신은 이지를 가진 존재의 믿음을 받아 개화한다고 합니다. 태초에 신이 될 수 있는 개화의 자질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품은 그릇의 크기가 다 다르므로 어떤 신은 굉장히 위대한 신이 되기도 하고, 또 어떤 신은 더 믿음을 얻지 못해 소멸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믿음을 받아야 한다는 건, 음. 한마디로 신자가 많아야 한다는 뜻인가?”

[‘후원자’ 안식의 신이 정답이라며 끄덕입니다]

“……음, 그럼…… 안식은 신이니까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도 알겠네?”

[‘후원자’ 안식의 신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진짜 천국이 있어?”

[‘후원자’ 안식의 신이 그건 영혼이 받아들이는 방식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거라며 말끝을 흐립니다]

“……반응 보니 천국도 딱히 좋은 곳은 아닌가 보네.”

[‘후원자’ 안식의 신이 꼭 그렇지는 않다고 합니다. 누군가에겐 낙원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아닐 수도 있을 뿐이라고 합니다]

“……그래……? 음…… 그럼, 그 낙원에 가면 나보다 먼저 죽은 사람들도 만날 수 있어?”

나름 즉각 팝업되던 메시지 창이 이번엔 잠잠했다. 잠시간 기다리던 한지수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왜 대답이 없냐고 물으려던 순간, 조금 느릿하게 새로운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후원자’ 안식의 신이 모든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영혼은 언젠가 반드시 다시 만난다고 합니다. 특히 인연이 강할수록 다음 삶에서, 다음 세계에서 다시 만날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 진짜? 그럼 내가 지금 죽으면…….”

[‘후원자’ 안식의 신이 단,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경우엔 해당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후원자’ 안식의 신이 자살이란 스스로 영혼을 포기하는 것으로 간주하여 그 즉시 영혼이 소멸한다고 합니다]

“…….”

먼저 띄운 메시지 창이 다 사라지기도 전에 새 창이 팟! 하고 떴다. 어째서인지 당황한 기색이 느껴질 정도로 와다닥 뜬 답변을 전부 확인한 지수는, 뭔가 깨달았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근데, 안식. 인연이 강할수록 다시 만날 확률이 크다고 했지, 죽는다고 100% 만날 수 있다는 건 아니잖아. 그치?”

이번엔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지수는 오히려 저런 반응에서 확신을 얻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천국이 나한테 좋은 곳이 아닐 수도 있는 거고. 만약 다시 태어난다고 쳐도 지금 삶은 기억 못 하는 거 아냐?”

마찬가지로 새로운 대답은 없었다. 이번에도 제 추측이 맞는 것 같다고 생각한 지수는 그게 뭐냐며 입술을 삐죽거렸다.

“지금 기억이 없는 상태로 만나면 내가 아는 것도 아닌데, 그게 무슨 소용이야? 그럴 바엔 차라리 죽어서 아무것도 없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잖아.”

너무너무 그리운 사람을 다음 생에 만난다 쳐도, 자신이 아무 기억도 못 하는 데다가 그가 누군지 알아보지도 못하면 그게 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럴 바엔 차라리 무의 존재가 되는 게 더 나을 것 같아 괜히 기분만 더 울적해졌다.

한지수의 중얼거림을 들어서 그런 건지 몰라도, 이번엔 메시지 창이 꽤나 성급하게 팝업되더니, 어서 읽으라는 듯이 아예 코앞까지 들이닥쳤다.

[‘후원자’ 안식의 신이 대체 어떻게 해야 그런 해석이 나오는 거냐며 기함합니다! 영혼이 온전해야 그리운 이를 다시 만날 수 있는 법이라며, 우선 착한 일부터 많이 하라고 합니다!]

“……착한 일?”

다소 생뚱맞은 메시지라고 생각한 한지수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미간을 찌푸린 채 되물었다.

“착한 일 많이 하면 천국에 마일리지라도 쌓여?”

반은 농담으로 생각 없이 던진 말이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의외로 확고했다.

[‘후원자’ 안식의 신이 대충 비슷하다며 끄덕입니다. 선행이 많을수록 다음 삶을 더 유리하게 시작할 수 있다고 합니다]

“아, 진짜? 재윤이 형 말이 진짜였네…….”

한지수는 강재윤이 늘 버릇처럼 말하던 ‘천국 마일리지’를 떠올리며 쓰게 웃었다. 강재윤은 대격변 전부터 늘 농담처럼 착한 일을 많이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야 나중에 죽어서 신에게 심판받을 때, 협상에 도움이 되지 않겠냐며 말이다.

‘……그런 개념이라면, 형 덕분에 나도 조금은 쌓이지 않았을까……?’

아이돌이라는 직업이 시간적 여유가 있는 직업은 아니다 보니, 강재윤은 자신의 선행을 대부분 돈으로 표현했다. 한마디로 여기저기 기부를 많이 했다는 의미였다.

그는 특히 지금 태어나기 시작한 세대의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하다며, 구체적인 환경 보호를 실천하는 기관과 동물, 사회적 약자를 돕는 기관이 있으면 기부를 아끼지 않았다.

가끔 길에서 사는 동물을 위해 몰래 새벽에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나가 산책을 핑계로 밥을 주고 다니기도 했다. 또 개를 너무 좋아해서 휴식기에는 유기견 산책 자원봉사도 종종 했는데, 이 모든 행위엔 다른 러비스 형들과 지수도 함께였다.

너희도 내 사람이 된 이상, 함께 천국 마일리지를 좀 쌓아야 한다며 밤마다 함께 산책을 나가 고양이 밥을 주던 강재윤을 떠올린 지수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가 사라졌다.

지금까지 강재윤과 했던 소소한 선행을 앞으로는 저 혼자 해야 한다는 사실이 못내 슬퍼 잠시간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러고 보면 형들은 지금 같이 있을지도 모르겠네…….’

지금쯤 멤버 형들과 친형과 친동생까지 저만 빼고 다 함께 모여 있을 것 같았다. 모두 좋은 사람들이니까 분명 천국에서 잘 살고 있겠지.

그리운 이들을 생각하던 지수는 불현듯 깨닫는다. 이젠 정말로 혼자가 되었다는 것을.

가슴이 쿡쿡 쑤시고 눈가가 또 시큰거리며 아파 왔지만, 꾹 참고 울지 않으려 애썼다. 여기서 더 울면 정말 탈진할 것 같았다. 괜히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은 지수가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다.

“안식. 힌트 좀 더 줘 봐. 신들이 높게 쳐 주는 선행은 뭐야?”

[‘후원자’ 안식의 신이 불경하다는 듯이 혀를 찹니다. 하지만 선행은 좋은 것이니 알려 주겠다며 어깨를 으쓱입니다. 신들이 주로 높이 사는 선행은 약자를 보호하고 지키려는 마음, 그리고 이타심이라고 합니다]

“……이타심…….”

지수가 중얼거리자, 바로 메시지가 다시 팝업됐다.

[‘후원자’ 안식의 신이 이타심의 사전적 의미를 모른다면 알려 주겠다고 합니다]

“알거든!”

[‘후원자’ 안식의 신이 알면 아는 거지, 왜 소리를 빽 지르냐며 핀잔합니다]

지수는 입술을 삐죽이며 그 정도는 안다고 투덜댔다.

윤리적인 삶과 이타심.

저 두 가지는 평화 길드의 길드장이나 부길드장이 연설할 때 늘 언급하고 강조하는 내용이라 당연히 알고 있었다.

이는 평화 길드가 대격변 전, 기업이었을 때부터 내세운 기업 이념이었으며, 대격변으로 세상이 바뀐 후 평화 그룹에서 평화 길드로 바뀌었을 때도 똑같이 유지됐다.

‘약자를 보호하며 지키고, 착하게 살다 보면 죽어서도 좋은 영향을 준다 이거구나.’

잠시간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던 지수가 스르르 눈을 감았다.

저 말이 사실이라면 강재윤은 아마 마일리지를 아주 많이 쌓았을 것이 분명했다. 천국에서 호화롭게 지내고 있을 거란 생각을 한 순간, 뜬금없이 멋진 해변에 앉아 선글라스를 끼고 하와이안 셔츠를 입은 채 칵테일을 들고 있는 모습이 연상됐다.

“…….”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아직은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낙원에서 잘 지낼 강재윤을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하면서도 조금은 괜찮아졌다.

[‘후원자’ 안식의 신이 무슨 생각을 하냐며 궁금해합니다]

“……천국에서 잘 지내는 재윤이 형 생각.”

또 목이 메어 왔지만, 이번엔 마른침을 삼켜 가며 울음을 참았다. 체력이 한계까지 떨어진 상태라 여기서 더 울면 정말 기절할지도 몰랐다. 가빠지려는 호흡을 차분하게 진정시킨 지수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운을 뗐다.

“있잖아, 안식. 이렇게 보고 싶은 마음은 언제쯤 사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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