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9.
귀중품 2
“한지수 가이드도 이미 알고 있겠지만, 상공에 나타난 게이트는 대부분 강한 토네이도를 발생시키며 게이트화 됩니다.”
“……네. 그런 경우가 많았죠…….”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상공에 나타난 균열은 던전에 입장할 수 있는 입구가 열리는 ‘게이트화’가 될 때 주로 토네이도를 동반했고, 지상에 나타난 균열은 지진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각성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알고 있는 지식이었다. 지수는 정하진이 제게 던전 기초 이론 강의를 하려는 건 아닐 테니, 갑자기 그 이야기는 왜 하냐고 묻는 대신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그의 목을 끌어안고 있어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침을 크게 삼킨 건지 목울대가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무슨 말을 하려고 저렇게 뜸을 들이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 때쯤. 정하진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사뭇 조심스러운 어조로 목적을 말했다.
“강재윤 에스퍼의 집에 가자고 한 이유는……. 한지수 가이드가 중요하게 여기는 물품을 챙기기 위해서입니다.”
“…….”
“제가 알기론 한지수 가이드가 태종대 던전이 소멸한 이후 한 번도 방문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태종대. 던전 소멸. 강재윤의 집. 중요하게 여기는 물품. 분명 제대로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자신이 뭘 들은 건지 제대로 이해가 안 되는 것 같았다.
갑자기 그가 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걸까? 애초에 저가 강재윤의 집에 가지 않은 건 어떻게 알았을까?
머릿속이 혼란해진 지수는 뭐라 반응하지 못하고 입술만 달싹였다. 덕분에 둘 사이에 또 침묵이 찾아왔다. 그대로 묵묵히 비행만 한 정하진은 강재윤의 집이 있는 빌딩 옥상에 내려서서 내내 품에 안고 있던 지수를 바닥에 살포시 내려 주었다.
소복하게 쌓인 눈 위에 두 발로 선 한지수는 꽉 조여든 후드를 조금 잡아당겨 풀며 시야를 확보했다. 드디어 성하진으로 변한 정하진의 얼굴이 자세히 보였는데, 그는 어딘가 괴로워 보이는 얼굴로 입을 벌렸다가 다시 꾹 다물었다.
마치 얼마 전, 식탁에 마주 앉아 제게 사과하던 날의 표정과 비슷했다. 지수는 그가 제게 뭔가 미안해하는 것 같아서 더 의아했다. 그래서 더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 다행스럽게도 정하진이 말을 이었다.
“뭐라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군요. 괜한 걱정일 수도 있고. 제 걱정이 한지수 가이드의 마음을 어지럽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
“만약 저 균열이 게이트화 되면서 강한 징후를 보인다면, 그래서 만에 하나 강재윤 에스퍼의 집까지 피해받는다면……. 그럼 한지수 가이드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힘들어하고, 슬퍼할 것 같았습니다.”
“…….”
“주제넘은 참견이라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만일이라는 게 있으니 부디……. 중요한 물건이 있다면 지금 챙기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도 돕겠습니다.”
“…….”
* * *
“다녀오셨어요? 한지수 님?”
강재윤의 집 현관이 한지수의 홍채를 인식하자마자 반가운 AI의 인사가 들렸다. 지수는 잠시 머뭇거리다 곧 고개를 끄덕이며 현관 안으로 들어섰다. 거의 20일간 아무도 오지 않았던 집이라고 하기엔 내부는 굉장히 깨끗했다. 하지만 사람의 온기는 전혀 없었다.
한지수가 신발을 벗자 신발장 뒤에서 빼꼼 고개를 빼고 바라보던 펭귄 모양 로봇이 슬그머니 다가와 슬리퍼를 내려 주었다.
“고마워, 포포야.”
“오랜만에 오셨네요. 포포는 한지수 님이 보고 싶었어요.”
“쮜잇!”
“토토 님도 돌아오셨군요. 새 쳇바퀴를 꺼내 드릴까요?”
“괜찮아. 금방 나갈 거야. 그 전에 집에 불 좀 다 켜 줄래?”
“네.”
순식간에 집 안의 모든 조명이 켜졌다. 포포라는 이름의 AI 로봇은 정하진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쭉 스캔하더니 새로운 슬리퍼를 가져와 내려 두며 말했다.
“주인님께서 부재중이셔서 모든 결정권은 한지수 님에게 위임됩니다. 함께 오신 분은 손님으로 등록해 드리면 될까요?”
“응, 고마워. 포포야. 쉬고 있어. 물건 몇 개만 챙기면 되니까…….”
“네.”
정하진은 포포가 다시 원래 위치로 돌아가 눈을 깜빡이는 모습을 보며 말했다.
“평화 그룹에서 만든 AI군요.”
“맞아요. 발표하기도 전에 대격변이 일어나서 묻혀 버렸지만요…….”
지수가 그렇게 대답하며 안으로 들어서자 정하진 역시 따라 들어섰다. 넓은 거실을 가로질러 복도를 지나자 침실이 나왔다. 큰 침대는 정돈이 잘 되어 있었고, 깨끗한 전면 창 밖으로 민간인 피난을 돕기 위해 날아드는 각 길드 소속 헬기들이 보였다.
창밖에서 시선을 돌린 지수는 먼저 침실 서랍장 위에 액자들을 인벤토리에 넣기 시작했다. 뭘 챙겨야 할지 몰라 눈에 들어온 사진부터 챙기기 시작한 지수를 본 정하진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운을 뗐다.
“괜찮다면 저도 도와도 될까요?”
“아, 음……, 네. 그렇게 해 주세요.”
“그럼 전 다른 방에서 중요해 보이는 물건을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네.”
지수는 정하진의 기준으로 중요한 물건이 뭔지 몰라도 일단 알겠다고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여기는 평화 길드에서 고작 한 블록 떨어진 거리였다. 건물 자체 보호막 스킬이 가동 중이긴 하겠지만, 막을 수 있는 건 A급 충격까지였다.
물론 그럴 확률이 적긴 하겠지만, 더 큰 충격을 받으면 보호막이 깨질 수 있어 중요한 물품을 미리 챙겨서 나쁠 건 없었다.
‘어차피 곧 오려고 했으니까…….’
하지만 뭘 챙겨야 할지 모를 정도로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사실은 아직 강재윤의 집에 들어올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정하진이 드물게 강하게 나온 바람에 얼떨결에 들어온 거나 마찬가지였다.
서랍장 위에 장식해 둔 액자를 전부 인벤토리에 넣은 지수가 빈 침대를 바라봤다. 곱게 정리된 이불 위에 누운 강재윤이 어서 누우라며 옆자리를 두드릴 것 같았다. 그러다 토토가 달려와 뒷발 차기를 날리면 아이고 우리 토토 무섭다. 무서워. 우는소리 하면서도 눈을 곱게 접어 웃을 것 같았다.
“…….”
침대로 다가간 지수는 강재윤이 눕던 왼쪽 자리에 놓인 베개를 집어 들고 고개를 박았다. 새로 세탁한 건지 희미한 섬유 유연제 냄새만 날 뿐, 그리운 이의 체향은 전혀 나지 않았다.
허무한 기분에 베개를 내려 둔 지수는 침실에서 더 챙길 게 있을까 싶어 침대 옆 협탁 서랍을 열어 봤다가 토토가 볼까 봐 급하게 닫았다. 아무래도 서랍엔 챙길 만한 물건이 없는 것 같았다.
“찌이?”
“……큼. 토토야.”
“쮸?”
“음……, 중요한 게 뭐가 있을까?”
그 물음에 잠시 고개를 갸웃하던 토토가 어깨에서 침대로 뛰어내리더니, 시트를 타고 내려가 와다닥 침실을 나섰다. 토토를 따라 방 건너편 서재에 들어선 지수는 마침 책장에서 무언가 꺼내든 정하진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
“아, 벌써 침실은 다 끝났습니까?”
“……음, 네. 뭘 챙겨야 할지 모르겠어서요…….”
“책장에 앨범이 있어서 우선 책상 위에 꺼내 두었습니다.”
“……네, 감사해요. 그런데, 그거…….”
“아, 이것도 한지수 가이드에게 중요한 물건일 것 같아서 꺼냈습니다.”
“…….”
정하진이 책장에서 막 꺼내 책상에 내려 둔 유리병을 인지한 지수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손을 뻗어 병을 집었다. 온갖 예쁜 색의 돌멩이와 하늘색 모래, 그리고 말린 꽃장식 등이 안에서 미세한 소음을 내며 움직였다.
-희원이는 흰색, 정진이는 연두색, 지오는? 아, 지오는 검은색 할래? 그럼 나랑 지수가 고르면 되겠다. 지수는 무슨 색으로 할래? 분홍색이랑 하늘색 남았어.-
“…….”
각자 담을 모래색을 고르며 묻던 강재윤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전에 울렸다. 너무 추워서 뭐든 상관없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카메라가 돌고 있었기에 지수는 패딩에 몸을 최대한 구겨 넣은 상태로 발발 떨며 분홍색을 골랐었다.
덕분에 마지막 남은 하늘색 모래는 강재윤의 유리병에 담았는데, 모래를 너무 많이 넣어서 상대적으로 지수의 유리병보다 돌멩이가 적었다. 돌멩이는 이날 러비스 멤버들과 유목민의 안내를 따라 별이 떨어졌다는 자리에서 각자 주운 거였다.
별똥별이 떨어졌던 자리로 분류된 구역엔 온갖 예쁜 색의 돌멩이가 널려 있었다. 지수는 카메라가 있어서 말하지 않았지만, 이 돌멩이들은 분명히 관광지를 위해 마을 주민들이 가져다 놓은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똑같은 생각을 강재윤이 몰래 속삭였을 땐 속절없이 웃어 버렸지만…….
-흰색은 건강, 보라색 꽃은 순산 기원, 주황색 꽃은 장수, 분홍색 꽃은 사랑이라고요? 지수는 흰색이랑 주황색 넣자. 빨리 감기 나아야지. 희원이 너는 보라색 어때? 구름이 곧 새끼 낳는다며?-
“…….”
멤버들 상황에 맞춰 색을 추천해 줬던 강재윤의 유리병엔 주황색 꽃과 분홍색 꽃이 가득했다. 오래오래 러비스 팬들의 사랑을 받으며 장수하는 그룹이 되고 싶다는 아이돌다운 멘트를 하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온갖 장식을 골라 넣은 후엔 마개를 밀봉하기 전, 소원을 담아 각자 짧은 기도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소원을 담기 위해 병에 각자 숨을 불어 넣었다. 이날 강재윤은 숨을 어찌나 크게 불어 넣었는지, 꽃잎이 몇 장 밖으로 빠져나오기도 했었다.
‘내가 어떻게 이걸 생각하지 못했을까…….’
이건 평범한 물건도 아니고, 강재윤의 숨이 깃든 물건이었다. 강재윤의 집에서 무언가 챙기라고 한다면 당연히 이 유리병부터 떠올렸어야 하는데, 이미 제 인벤토리에도 많은 사진부터 챙긴 게 바보처럼 느껴졌다.
위치도 하필 평화 길드가 보이는 창가에서 가까운 책꽂이 위 칸에 장식해 두었기 때문에, 던전이 게이트화 되는 여파에 피해를 받았다면 깨졌을 확률이 높았다.
정하진의 말대로 오길 잘했다고 생각한 지수는 유리병을 조심스럽게 품에 안았다. 시간을 두고 찾아보면 중요한 물건이 많이 있겠지만, 그 무엇도 강재윤의 숨이 담긴 이 병만큼 중요하진 않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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