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5.
이해 불가 영역 1
갑자기 뭐? 영혼의 뭐?
당황해 눈을 동그랗게 뜬 김현아가 눈을 몇 번 깜빡였다.
“그…… 영혼의 울림이라는 건 종교적인 이야기인가요?”
무슨 뜻인지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을 본 조슈아가 말을 덧붙였다.
“꼭 그런 건 아닙니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사람은 누구나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보셨습니까?”
“네, 뭐……. 난 무교라 종교적인 해석은 어렵지만, 그래도 영혼이 있다는 건 알죠.”
제아무리 종교나 교리에 무지한 김현아라도 조슈아가 몸담은 종교의 기본적인 교리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육신을 벗어나 천국이나 지옥에 간다는 것 정도였지만 말이다.
‘딱히 천국과 지옥을 믿는 건 아니지만…….’
꽤 많은 인류가 천국에 가고 싶어 하는 것과 달리, 김현아는 죽음 이후 아무것도 없는 세계가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 치열한 삶 이후 죽음을 맞이해 비로소 주어지는 안식은 온전한 무(無)이길 바랐으니까.
하지만 눈앞의 조슈아는 다르게 생각할 게 분명했다. 이들은 신실한 신앙심을 가지고 교리를 따르며 살아간다. 교리에서 말하는 ‘죄’를 짓지 않기 위해 자신을 통제하고, 온갖 유혹을 뿌리치고자 노력하며 매일 기도하고, 신실한 신앙을 고집한다.
죽음 이후 ‘천국’이라 불리는 더 나은 세계로 가기 위해서. 저들이 평생을 믿은 ‘신’이라는 존재의 곁으로 가기 위해서 말이다. 그걸 이들은 죽음 이후에 찾아올 평화라고 표현했던 것 같기도 했는데, 사실 잘 기억나진 않았다.
‘불교는 뭐더라, 등선이었나? 아, 윤회? 환생인가?’
제대로 배운 적도 없는 부분을 떠올리려니 명확하게 기억나지 않았지만, 어쨌든. 조슈아가 말하고자 하는 건 저가 속한 종교의 교리일 터. 고개를 크게 끄덕인 김현아가 어려워도 일단 들어 볼 테니 어서 설명해 보라는 얼굴로 바라보자 그가 말을 이었다.
“굳이 종교적으로 이해하지 않아도 됩니다. 한마디로 한지수 가이드가 영적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으며, 굉장히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네, 그건 맞죠. 걔는 지금…….”
대답하려던 김현아가 입을 다물었다. 잠시 날짜를 헤아려 보니 강재윤이 실종된 지 21일째였다. 아니, 자정이 지났으니 22일째가 되는 날이었다. 아까 본 한지수는 겉보기엔 그럭저럭 버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것치고 말이다.
하지만 어릴 적 큰오빠를 잃고,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제 쌍둥이 형제를 잃었던 김현아는 지금 한지수가 잘 버티는 게 아님을 익히 알고 있었다. 녀석은 아직 채 소화하지 못한 상실과 슬픔을 오롯이 홀로 감당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으음…… 강재윤 에스퍼와 지수 사이는 알고 있죠?”
“매우 각별한 사이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엄청나게 각별했죠. 그러니 쟤가 힘들어하는 게 당연한 일이긴 해요. 겉으로 괜찮아 보인다고 해서 속도 괜찮은 건 아니니까.”
“맞습니다.”
“한데, 그 정도가 심했으니 나선 거겠죠? 조슈아 에스퍼가 축복으로 걔의 심신을 안정시키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던 건가요?”
“그것도 맞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이유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세 번째 이유는 나의 후원자가 한지수 가이드를 축복하고, 그의 영혼을 보듬어 주길 바랐기 때문입니다.”
“……후원자?”
“그렇습니다. 나의 후원자의 이름은 푸른 달입니다.”
“…….”
푸른 달.
김현아가 알기로 바티칸 사제들은 후원자의 이름에 들어가는 ‘신’이란 단어를 생략했다. 즉 그가 말한 후원자는,
“푸른 달의 신…….”
김현아의 눈이 더 가늘어졌다.
<푸른 달의 신> <붉은 달의 신> <안식의 신>
저 셋은 각성자가 아니더라도 문명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들어 볼 수밖에 없을 만큼 유명한 후원자였다.
푸른 달의 신은 한국에선 정하진의 후원자로 알려지며 유명해졌지만, 세계적으로 봤을 때 잘생긴 각성자만 골라 계약하는 거로도 유명했다. 물론 이는 가벼운 우스갯소리였고, 실제 푸른 달의 신이 유명한 이유는 당연하게도 그 후원자가 강하기 때문이었다.
대격변 이후 인류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은 역대 후원자 중, 강하기론 세 손가락 안에 든다는 보고서를 떠올린 김현아가 검지로 테이블을 톡- 톡- 두드리며 물었다.
“푸른 달의 신이 직접 한지수를 축복하라고 시켰다고요?”
“예. 알다시피 푸른 달은 매우 바쁩니다. 내가 아는 다른 후원자들보다 훨씬 바쁩니다. 당연히 그와 대화하는 것은 힘듭니다. 하지만 푸른 달은 내게 말했습니다. 한국으로 가라고.”
어쩐지 너무 쉽게 내한한다 싶더니…….
“그래서 바티칸이 직접 방문한 거였군요.”
“네. 김현아 에스퍼도 알고 있을 겁니다. 바티칸은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 것을.”
레미니센스를 포함한 악마종 몬스터에 대해 더 자세한 지식을 얻고자 바티칸에 만남을 요청하긴 했지만, 처음부터 김현아가 직접 방문할 계획이었다. 평화 길드가 초청해 봤자 바티칸이 움직이지 않을 게 분명했으니까.
한데 바티칸은 직접 한국으로 사제들을 보내겠다고 했다. 그것도 굉장히 신속하게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줄곧 미묘하게 여긴 부분이었는데, 이제야 이해가 됐다.
“그런데, 후원자가 한국으로 보낸 이유는 말하지 않았나요?”
“네. 그래서 처음엔 L급 이상 던전 때문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후원자는 던전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가 다시 접촉한 건 한지수 가이드를 만났을 때였습니다. 그는 한지수 가이드의 영혼이 주어진 운명을 버티지 못할 만큼 슬퍼하고 있으니, 내 몸을 빌려 그를 직접 축복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
“내게도 나쁠 것 없는 지시였으니 따랐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이상합니다. 이런 지시는 처음이었으니까요. 대격변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누구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경험이 있을 겁니다. 나도 그렇고 김현아 에스퍼도 그렇습니다.”
“그렇죠.”
“모두가 똑같은 일을 겪고 사랑하는 이를 잃고 슬퍼하는데, 푸른 달은 한지수 가이드의 슬픔만 돕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나는 그 이유가 알고 싶습니다. 한지수 가이드가 어떤 사람인지. 푸른 달이 왜 한지수 가이드를 신경 쓰는지.”
“거기엔 대답을 안 해 주나 보죠?”
“예. 그는 나의 질문에 대답이 없습니다.”
그렇겠지. 그러니 이리 물어보는 거겠지. 애초에 후원자들은 바쁜 녀석들이었다. 대체 뭐 하는 작자들인지 제멋대로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매사에 변덕스러운 존재가 후원자 아닌가. 축복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해서 그 이유까지 설명해 주리란 법은 없었다.
“한지수가 어떤 사람이냐고요…….”
뭐라 말해야 할까?
나름 오랜 세월 한지수를 알아 온 김현아로서도 이건 어려운 질문이었다. 타인을 두고 어떤 사람인지 말한다는 건, 단순히 보여지는 것만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를 온전하게 파악해야 가능한 거였으니까. 그게 아니고서야 궤변이거나 평면적인 해석이 될 수밖에 없었다.
김현아가 아는 한지수는 인생이 평탄한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푸른 달의 신 같은 상급 후원자가 굳이 찾을 만큼 대단한 구석이 있냐고 묻는다면, 이건 생각 좀 해 봐야 할 문제 같았다.
“우리 지수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성격이나 성향을 두고 말하자면 한지수는 1군 아이돌이라는 경력이 전혀 어울리지 않을 만큼 자존감이 낮고 겁이 많은 녀석이었다. 쉽게 움츠러들고, 제 의견을 내기보단 타인에게 잘 휩쓸리고, 우유부단했다. 하지만, 잔정이 많고 올곧았으며 상냥한 녀석이었다.
“그냥…… 평범하게 착한 녀석인데요?”
“그렇습니까?”
자소서에도 쓰지 못할 가정사로 말해 보자면 술과 도박에 빠진 부친의 학대로 유년을 힘들게 보냈으며, 모친은 한지수가 어렸을 적에 집을 나가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나마 어린 한지수가 쓰레기 같은 아비의 폭력에서 버틸 수 있었던 건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다정한 형과 제 밑으로 한참 어린 동생 덕분이었다고 했었다.
“뭐, 사적인 부분은 내가 말하긴 좀 그러니 패스하고.”
쓰레기 같은 아비는 한지수가 데뷔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실족사했다고 들었다. 인생의 장애물이 사라진 덕분인지 이후 한지수의 삶은 꽤 평탄했다. 지구에 대격변이 일어났던 날, 강재윤을 제외한 다른 멤버들과 친형과 친동생을 한날한시에 잃기 전까지 말이다.
“……으음,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네요.”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했음에도 조슈아의 표정은 담담했다. 오히려 심란해진 건 김현아였다.
‘아 모르겠다.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설마 정하진 오빠도 푸른 달이 시켜서 지수 옆에 붙어 있는 건가?’
정하진이 어느 정도 미래를 대비하도록 도움받았다는 제 가정이 사실이라면, 그 맹약을 맺은 상대는 정하진의 후원자인 푸른 달의 신일 확률이 높았다. 미래 예지란 평범하게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아니니, 예지를 주는 대가만 해도 어마어마할 게 분명했으니까.
‘후원자들도 우릴 도울 때 힘을 소진하고, 그만큼 대가가 필요하다고 했어. 크게 도울수록 후원자가 감수해야 하는 게 많아진다고 했지.’
이는 김현아에게 도울 거면 제대로 도우라는 쌍욕을 매일같이 들었던 ‘붉은 달의 신’과 ‘안식의 신’이 들려주었던 이야기였다. 후원자들이라고 해서 지구라는 별을 돕고 싶지 않아 손 놓고 있는 건 아니라고. 피후견인을 돕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제약이 많아 주어진 한도 내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말이다.
김현아가 답답함에 끙끙대는 동안 조슈아는 김현아의 잔을 적당히 채워 주고, 제 잔도 채웠다. 아무래도 밤이 길어질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