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급 가이드는 이제 그만 쉬고 싶다-121화 (121/172)

#121.

너의 파편 5

지구의 것과는 확연하게 다른 하늘색과 식생을 보고 여기가 던전이라는 걸 깨달았다. 주변을 더 살피자, 예상대로 머나먼 하늘 중앙에 작은 시스템 창이 떠 있는 게 보였다.

『던전 초기화까지 남은 시간: 2:24 / 던전 입장 인원: 1명』

‘소멸이 얼마 안 남았는데…….’

남은 시간은 고작 2분. 게다가 허허벌판인데도 게이트는 흔적조차 보이지도 않았다. 이 정도로 깊숙한 곳이라면 귀환석 없이 한지수 혼자 2분 만에 던전을 탈출하는 건 어려워 보였다.

지수는 천천히 또 다른 한지수의 곁으로 다가갔다. 이곳에서 지수는 존재하지 않았다. 자기 몸조차 보이지 않는 상황이 이상했지만, 바로 앞에 또 다른 자신이 있는 게 훨씬 더 이상해서 그런지 의외로 금방 적응했다.

“하아…….”

눈앞의 한지수가 한숨을 쉬더니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지수는 한지수에게 다가가 그의 손에 들린 액정을 확인했다.

‘이건…….’

한지수가 보고 있는 화면은 한지수의 형 한지원과 동생 한지율 셋의 가족 대화방이었다. 형과 동생의 공개 사진은 이미 기본 사진으로 바뀐 상태였고, 이름 역시 알 수 없는 사용자 1과 알 수 없는 사용자 2로 바뀌어 있었다.

‘…….’

이 대화방은 지금의 지수 역시 간직하고 있었다. 대격변 이후 1년이 조금 지난 시점이었나, 언제였는지 몰라도 어느 순간부터 저렇게 변해 있긴 했지만. 위에 ‘가족방’이라는 이름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다.

지수는 한지수가 채팅방을 아래로 쭉쭉 내리며 읽는 걸 어깨 너머로 함께 봤다. 스크롤이 내려갈수록 그리움은 짙어지고, 슬픔 역시 짙어진다. 지수는 또 다른 한지수가 혼자 던전에 들어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나도 끝은 이런 방식을 생각했었는데…….’

만약 토토가 없었다면. 그리고 종종 저를 챙겨 주는 김현아가 체크하지 않았더라면. 또 어느 순간부터 한시도 곁에서 떨어지지 않는 정하진이 없었더라면. 지수의 최후는 눈앞의 한지수와 다를 게 없었을 것이다.

던전과 함께 소멸. 한 사람이 제 삶을 끝내는 방법으로 선택하기에 아주 적합했으니까. 누구에게도 피해 주지 않고, 세상에서 가장 깔끔하게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에 지수는 종종 이 방법을 떠올리곤 했었다. 눈앞의 한지수 역시 마찬가지였을 게 분명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 몰라도, 그 역시 ‘자신’일 테니까.

‘……난……, 아니. 넌 후회하지 않을까?’

마음이 어지러웠다. 이 방법을 선택한 또 다른 자신의 끝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부디 후회 없길 바라면서도 안타까워서 제대로 보기가 힘들었다.

그때 한지수가 대화방을 나가더니 액정을 톡톡 두드렸다. 수십 개의 메시지가 쌓인 다른 대화방이 보였다. 고민하는 듯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터치하자, ‘하진 씨’가 보낸 수많은 메시지가 보였다.

‘……!!’

“하…….”

헛웃음을 터뜨린 한지수가 깊은 한숨을 내쉰다. 마음이 흔들렸는지 반질반질한 액정을 바라보며 입술을 꾹 깨물다가 이내 울음을 터뜨린다.

“으흑……, 흐으윽…….”

지수는 정하진이 보낸 메시지를 본 순간.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눈물이 날 것 같은데, 형체 없는 자신이 흘릴 수 있는 거라곤 소리 없는 신음뿐이었다.

“하진 씨……. 미, 미안해요…….”

‘한지수’는 눈물을 펑펑 흘리며 정하진의 이름을 불렀다. 사과하고 울면서, 이 던전을 나갈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미 마음을 굳힌 게 분명했다. 더 버틸 수 없었는지 무너지듯 주저앉아 엉엉 울기 시작하는 한지수의 눈에서 방울방울 떨어져 내리는 눈물이 흙을 적신다.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고 기억이 흐려지며 배경이 바뀌었다.

이번엔 붉은 하늘도, 갈대밭도 아닌 웬 처음 보는 집이었다. 지수가 좋아하는, 야경이 잘 보이는 고층 집. 거실 창밖으로 보이는 도심의 빛을 바라보던 지수는 여기가 한국이 아니라 뉴욕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때 방문이 열리며 한지수가 거실로 나왔다. 한지수는 조금 전 던전에서 본 것보다 조금 더 괜찮은, 편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걱정은 딱히 없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조금 피곤해 보이긴 했지만.

한지수는 몸에 담요를 두르고 아예 창가로 돌려 둔 1인용 소파에 다리를 올리고 앉아 야경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집 안 불은 다 꺼놓은 채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현관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섰다.

지수는 한지수에게 다가오는 사람을 보자마자 눈을 크게 떴다. 꽃다발을 든 정하진이 보였다. 연분홍색 라넌큘러스와 거베라로 만든 작은 꽃다발을 등 뒤에 숨긴 채 다가온 정하진이 허리를 숙여 지수의 이마에 키스한다.

“늦어서 미안해요.”

“……많이 늦었네요.”

지수는 잔뜩 토라진 게 분명한 한지수의 목소리를 듣고 저도 모르게 흠칫했다. 알기 싫어도 알 수밖에 없었다. 지금 저 목소리, 저 말투, 저 표정 모든 것이 나 토라졌다고 대놓고 투정 부리는 모습이라는 것을.

‘으…….’

지금 제 형태가 없었으니 망정이지, 육체가 존재했다면 전신에 소름이 쫙 돋을 광경이었다. 정말 꼴도 보기 싫었다. 그런데 정하진은 뭐 그리 좋은지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꽃다발을 내밀었다.

“……꽃?”

“지수 씨가 좋아하는 꽃만 모아서 만들 걸 보니 안 살 수가 없어서.”

“……만든 게 아니고요?”

“네. 이대로 밖에 진열해 뒀더군요.”

라넌큘러스와 거베라로 만들어진 미니 꽃다발. 흔하다면 흔한 꽃다발일 텐데, 그걸 보고 한지수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사 온 저 남자나, 그걸 받고 또 입꼬리를 주체 못해 씰룩거리다 결국 웃어 버리는 한지수나…….

‘행복해 보이네.’

“그래도 저 아직 화났어요. 저녁도 다 식었다고요.”

“설마 안 먹었어요?”

“같이 먹기로 했잖아요.”

“먼저 먹지……. 미안해요. 지금이라도 같이 먹어요. 내가 새로 해 줄게요.”

“…….”

한지수는 대답 대신 정하진을 흘겨봤다. 그러면서도 꽃다발을 소중히 끌어안았다. 지수의 볼에 쪽- 입 맞춘 정하진은 조금만 기다리라며, 손만 씻고 와서 바로 만들어 주겠다며 욕실로 향했다.

손을 씻으러 들어간 정하진을 바라보던 한지수는 피식 웃더니 꽃다발에 코를 박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향기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지, 오만상 쓴 한지수가 소파에서 주섬주섬 일어나 꽃다발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럼에도 기분 좋아 보이는 발걸음이었다. 지수는 여전히 거실에 남아 한지수가 사라진 빈 소파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토토는 어디에 있지?’

그러고 보니 토토가 보이지 않았다. 지수는 집 안을 둘러보고 싶었지만, 파편이 흐려지며 배경이 다시 바뀌었다.

이번엔 지수도 아는 장소였다. 평화 길드 내 의료 시설이었다. 병실 침대에 비스듬히 기대앉은 한지수는 초점 없는 눈으로 TV를 보고 있었다.

<……했으며, 평화 길드 측에선 아직 강재윤 에스퍼의 귀환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캐나다에 발생한 등급 판정 불가 던전에 김현아 에스퍼가 직접 방문을 요청했으나, 캐나다 정부는 아직 확답하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강재윤 에스퍼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는 이들이 광화문 광장으로 몰려들고 있으며, 모두 한 마음으로……>

그때 협탁 위에 올려 둔 한지수의 휴대폰 액정이 켜졌다. 지수는 액정에 미리보기로 보이는 메시지 내용을 보고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이거 한지수 폰이냐?]

[왜 살아있냐?]

[한지수 가이드, 안녕하세요. ○○일보 기자입니……]

[니 때문에 강재윤이 그 던전 들어간 거라며]

[양심 있냐?]

[이 새끼 안 읽네?]

[안녕하세요, 한지수 가이드. 전 너튜버 쑤박이라고……]

[이거 한지수씨 폰 맞나요?]

한두 명이 아니었다. 저런 메시지가 계속해서 오고 있었다. 모두가 한지수를 탓하고 있었다. 지수는 의아했다. 제가 사는 현실에서도 물론 자길 욕하는 이들은 많았다. 지수는 그들이 갈 곳 잃은 분노를 그저 제게 풀어낸다고 생각했지만, 여긴 조금 달랐다. 어째서인지 강재윤의 죽음이 전부 한지수 탓이라고 확정 지어 말하고 있었다. 단순히 화가 나서가 아니라 ‘너 때문에’라는 말이 계속해서 보였다.

침대에 앉아 있던 한지수가 제 휴대폰을 흘긋 보더니 전원을 꺼 두었다. 그리곤 다시 공허한 시선으로 TV를 바라봤다. TV에선 마침 도 넘은 악성 댓글과 한지수 가이드 협박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그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지수는 잠시간 TV 화면을 보며 알게 되었다. 이곳에서도 강재윤은 부산 태종대 던전에 들어갔다가 해당 던전이 소멸하는 바람에 사라지게 되었다는 것을.

그런데 그가 태종대 던전에 들어가게 된 이유가 조금 달랐다. 틀어 뒀던 TV에서 강재윤이 태종대 던전에 들어간 이유는 휴무 날을 바꿨기 때문이었고, 휴무 날을 바꾼 이유는 한지수 가이드 때문이라는 내용이 나왔다.

아나운서들은 이어 한지수 가이드의 비공개 SNS를 해킹해 발췌한 내용이 인터넷상에 떠돌고 있다며 몇 장의 스크린 샷도 화면에 나왔다.

‘또 휴가를 못 냈다. A급 던전인데 형이 들어갈 필요가 있을까ㅠㅠ 둘이 여행 가기 참 힘들다ㅠㅅㅠ’

섭섭하다는 내용이 적힌 여러 스크린 샷이 나왔는데, 전부 강재윤이 너무 바빠서 외롭다는 내용뿐이었다. 지수는 비공개 계정을 만든 적이 없지만, 이 한지수는 만든 걸까 싶어 얼굴을 살폈다.

“허…….”

화면에 나온 스크린 샷들을 본 한지수가 헛웃음 짓더니 TV를 꺼 버렸다. 저 반응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누군가 일부러 한지수를 욕보이기 위해 조작한 게 분명했다. 그런데 저걸 뉴스에서 그대로 내보내다니. 사실 여부는 확인한 건가?

강한 거부감과 불만을 느낀 순간, 침대 위에 앉아 있던 한지수가 그대로 옆으로 쓰러지더니 몸을 들썩이며 울기 시작한다.

‘…….’

울음은 점점 커졌다. 그렇게 홀로 누워 딸꾹질하며 숨도 제대로 못 쉴 만큼 흐느끼는 것도 모자라 이내 너무 속상했는지 제 가슴을 퍽퍽 때리며 엉엉 울기 시작한다. 그럴 때마다 팔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수정 장치가 차랑- 차랑- 맑은 소리를 냈다.

한지수는 그 맑은 소리가 듣기 싫은 것처럼 수정 장치와 주삿바늘을 전부 거칠게 잡아 뜯었다. 그리곤 다시 엎드려 울다가, 그대로 벌떡 일어나 병원 창문으로 다가갔다. 이대로 창문을 열고 뛰어내리려는 것처럼 안간힘을 다해 장치를 풀어 열었지만, 창문은 한 뼘 정도만 열리고 그 이상 열리지 않았다.

한지수는 창문에 이마를 박은 채 서 있다 거칠게 제 머리를 쿵- 쿵- 박아 댔다. 강화 유리는 그 어떤 흔적도 남지 않았지만, 한지수의 이마는 터져서 피가 났다. 지수는 착잡한 마음으로 소리 없이 울부짖는 한지수에게서 줄기를 이루고 흘러내리는 피로 시선을 돌렸다.

새빨간 핏줄기가 점점 옅어지며 또 배경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번엔 모르는 곳이었지만 이곳이 병원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한지수는 앞에 앉은 최성훈 교수에게 기억 삭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한지수의 곁엔 정하진이 앉아 있었다. 그는 내내 한지수와 손을 맞잡은 채 걱정스러운 얼굴로 이야기를 경청하고, 부작용이나 그 외 주의할 점을 열심히 물었다. 그가 묻는 동안 한지수는 지친 얼굴로 초점 없이 정면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기억을 삭제한다고 하더라도, 주변에서 이야기를 꺼내면 어떻게 됩니까? 그럼 기억이 나거나 하진 않는 겁니까?”

정하진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최성훈 교수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기억 삭제는 아예 모든 기억을 지우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다시 설명해 보자면. 한지수 가이드의 기억 속에 강재윤 에스퍼와 나눈 정서적 교감을 삭제한다고 보면 되는 겁니다. 한지수 가이드는 강재윤 에스퍼를 기억할 겁니다.”

“…….”

“하지만 강재윤 에스퍼와 나눈 교류를 잊는 거죠. 그러니까 이름은 아는, 잘 모르는 유명 연예인을 보는 기분으로 그를 대하게 될 겁니다. 이러면 설명이 좀 될까요?”

한지수는 지친 얼굴로 최성훈 교수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재윤이 형……. 잊지도 않고……. 이렇게 슬프지도 않은 건가요……?”

“예. 기억할 겁니다. 하지만 설명해 드린 것처럼. 한지수 가이드의 마음속에서 강재윤 에스퍼는 더는 소중한 대상으로 남지 않을 겁니다. 두 사람이 나눴던 추억도 어디선가 간접 체험한 것처럼 느껴질 겁니다. 그냥 책에서 읽고 영화로 본 것처럼 말이죠.”

“…….”

정하진은 잠시 망설이더니 한지수의 어깨를 다정하게 감싸 안으며 말했다.

“한지수 가이드. 이건 큰 결정입니다. 그러니 천천히 생각해도 됩니다. 조금 더 고민해 보고 싶으면 그렇게 해요. 한지수 가이드가 하고 싶은 대로 합시다.”

“…….”

‘……이땐 한지수 가이드라고 불렀네.’

아까 봤던 뉴욕 야경이 있는 집보다 훨씬 더 전의 시점인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그 뉴욕에서 둘이 지내던 평온해 보이는 시간은 기억 삭제 후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과정일까?

지수는 한지수의 지친 얼굴을 살폈다. 살아 숨 쉬는 게 신기할 정도로 아무 감정의 동요도 보이지 않는, 영혼 없는 인형 같은 얼굴이었다. 한지수는 퀭한 눈으로 제 손을 잡은 정하진의 큰 손을 내려다보다가 고개 들어 그와 눈을 맞췄다.

정하진은 진지한 얼굴로, 다정한 목소리로 재차 강조했다. 모든 선택은 한지수 가이드에게 맡기겠다고. 그러니 조금 더 고민하고 싶으면 그래도 된다고. 한지수는 그런 다정한 남자를 바라보다 곧 고개를 떨구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지기 시작한다. 정하진의 손등으로 떨어진 눈물이 모이고 고여 주르륵 흐른다. 한지수는 고요하게 울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울먹이며 말한다.

잊고 싶지 않은데, 너무 괴롭다고. 이겨 내고 싶은데, 너무 힘들다고.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내내 한지수는 울음을 터뜨리지도 않았고, 아까처럼 발작하듯 울지도 않았다.

그저 고개 숙인 채 고요하게 눈물을 흘렸다. 지수는 그 모습을 지켜보기가 힘들어 정하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정하진도 굉장히 괴로워 보였다. 한지수의 어깨를 잡고 있던 손을 떼고 그대로 안으려는 듯이 팔을 두르려다가 멈칫하고 천천히 등을 두드려 주기 시작한다.

장면이 흐려지며 또 배경이 바뀐다.

이번엔 또 어떤 기억의 조각을 보여 주려는 걸까? 주변을 둘러보던 지수는 일순 육체가 없음에도 숨을 멈추고 말았다.

‘재윤이 형…….’

이번 기억의 파편엔 강재윤이 있었다. 그는 옆으로 턱을 괴고 누운 채 이제 막 깨기 시작한 한지수의 얼굴을 애정 넘치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장난스레 손가락 끝으로 코를 톡 건드려 보기도 하고, 볼을 꾹 눌러 보기도 한다.

‘저 버릇은…… 여기서도 같았구나.’

지수는 강재윤이 저럴 때마다 더 자고 싶다고 투덜거리며 이불 속으로 들어가곤 했었다. 눈앞에 보이는 한지수 역시 똑같이 반응했다. 하지 말라고 대충 손을 휘젓더니 이불 안으로 쏙 들어간다.

강재윤은 슬슬 일어나라고 말하며 이불째로 한지수를 끌어안았다. 그리곤 토닥토닥 두드리며 “오늘 우리 어디 가기로 했는지 잊지 않았지?” 하고 묻는다. 이불 굼벵이를 끌어안고 바라보는 얼굴이 너무도 다정해서, 둘의 모습을 지켜보던 지수는 가슴이 욱신거려 시선을 옆으로 옮겼다.

그리웠다. 그가 미치게 그리웠다. 강재윤이 너무나도 그립고 보고 싶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마냥 슬프지 않다는 거였다.

‘살아 있으면 됐어…….’

지수는 그렇게 안도하면서도 가슴이 아파 울고 싶었다. 이 한지수는 몰랐겠지. 강재윤이 살아 있다는 것을. 그래서 홀로 세상을 견디다 못해 아까 처음 봤던 던전에서 그렇게 사라진 걸까?

만약, 아주 만약에 한지수가 그런 선택을 하지 않고 기다렸다면…….

강재윤을 만날 수 있었을까?

‘……나는…… 만날 수 있을까?’

강재윤이 살아 있다는 건 들었지만, 어떻게 해야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지수는 다시 침대에 누운 강재윤과 이불 굼벵이로 시선을 돌렸다. 행복해 보였다. 행복한 나날이었다. 저런 나날을 많이도 보냈었다. 그리웠다. 다시 저런 나날을 보낼 수만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텐데…….’

그렇게 생각한 순간 다시 시야가 뒤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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