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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자 10년 만에 돌아왔더니 헌터란다-8화 (8/146)

#8

“폭발 게이트래!!! 빨리 뛰어!”

곧이어 터져 나온 고함 중 시현 본인도 아는 단어가 들려왔다.

얼떨결에 사람들의 사이에 끼어 휩쓸리듯 걸음을 옮겼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하정에 입술을 깨물었다.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카페 밖으로 나가자 온갖 건물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게이트와 멀어지기 위해 뛰기 시작했다.

“아, 비켜요!”

“밀지 마세요!”

차도고 인도고 길의 구분이 사라졌고 운전자들마저도 차를 버리고 거대한 흐름에 동참해 긴박하게 뛰고 있었다.

사락.

그때 길 가장자리에 서 있던 시현의 머리 위로 작은 눈송이 하나가 떨어졌다.

“이게 무슨…. 눈?”

지금이 따뜻하다곤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4월로 들어서 있었고 그건 눈이 내릴 만한 날씨는 아니란 뜻이었다.

체열에 금방 녹아내려 흔적이라곤 조금 젖은 머리카락 몇 가닥이 다였지만 시현은 잠시 제 손끝에 남은 물기를 문질러 보다가 사람들이 피하는 방향 반대편으로 시선을 돌렸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기감을 펼치자 저 앞으로 무척이나 불길한 기운이 폭풍같이 휘몰아치고 있는 게 느껴졌다.

시현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모자와 후드가 잘 씌워져 있는지 확인하고 아비규환의 현장 한가운데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가 움직인 방향은 눈송이가 날아온 곳이었다.

***

“미친….”

게이트를 직접 보는 것은 시현도 처음이었기에 저 압도적인 광경에 몸이 조금 굳어 버리고 말았다.

노란색의 거대한 에너지가 높은 회색빛 건물 사이에 똬리를 틀며 동그란 모양을 만들고 있었고 그 안쪽은 불투명한 호수처럼 얕게 울렁였다.

그것은 마치 허공을 찢어 내서 만든 거울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침식 지역 경계에 있는 건물 위. 옥상 난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던 시현은 한참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다 계속해서 날리는 눈에 미간을 찌푸렸다.

저 거울 같은 게이트를 중심으로 반경 500m 안의 공간은 두꺼운 눈발이 쉼 없이 날리고 있었고, 빠르게 떨어지는 온도가 경계 밖까지 조금씩 영향을 주고 있었다.

이게 글로 보던 침식 지형인 것 같았는데 대체 어떤 원리로 이렇게 되는 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이게 해결을 못 해서 브레이크 되면 마력이 사방으로 터지고 저 안의 것들이 튀어나온단 얘기지….”

안 그래도 처음 이 공간을 봤을 땐 군데군데가 희끗희끗하게 보여 CG처럼 느껴졌는데 그 짧은 사이에 점점 또렷해지고 있어 새삼 저 지역의 위험함을 체감하는 중이었다.

띠롱-

그때 마침 시현의 핸드폰이 침묵을 끝내고 드디어 하정의 연락을 알려 왔다.

-야, 나 좀 늦는다.

허.

“이게 다냐 설마?”

시현이 허탈하게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댔다. 자신에게 매번 제대로 말을 안 한다며 투덜대던 하정이였지만 자신도 똑같다는 걸 모르는 것 같았다.

“하긴 끼리끼리지 뭐.”

난간에 기대어 서 있던 시현이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곤 이내 주섬주섬 옷을 정리하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마침 하정으로 보이는 새빨간 인영과 몇 사람이 급하게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시현은 급하게 달려온 게 무색하게도 난간에 턱을 괴고 그 광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걱정은 되지 않았다. 지금의 제가 확인한 상태라면 80퍼센트 이상 하정 쪽의 승리가 확실했으니까.

[C급 게이트-85%]

“100퍼센트가 차면 브레이크 된다는 뜻인가…?”

아직 낮은 등급의 스킬이라 제대로 된 설명은 나오지 않았지만, 상황을 대충 대입하자 결과는 쉽게 도출됐다.

조금 불안했던 마음이 결괏값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자 조금 가라앉았다. 시현은 잠시간 게이트를 유심히 보다가 한숨 돌리며 다시 카페 쪽으로 가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그때 건물의 아래쪽.

침식 지역을 빠져나온 인물들과 이제 막 현장에 도착한 사람들이, 주변을 통제하고 있던 헌터 협회 인물들을 잡고 늘어지며 크게 소리를 치고 있었다.

“안에 저희 엄마가 있어요!! 헌터님들 제발 저희 엄마 좀 살려 주세요! 으흑….”

“저도! 안에 제 딸이!!! 제발요….”

한 명이 말을 꺼내자 생존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눈물을 흘리며 애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협회 직원들은 그들의 아우성을 안 된다는 말로 단호하게 잘라 내고 있었다.

이해는 갔다.

아무리 저들이 헌터들이라고 해도 게이트 주변을 지키는 정도면 겨우 말단들일 테고 별다른 지시 없인 슬슬 일어나고 있는 마력 폭풍 안으로 함부로 들어가긴 무서울 테니까.

“하아…. 괜히 봤어.”

시현은 잠시 이마를 짚으며 깊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는 이내 눈에 내력을 모으며 눈발과 마력으로 흐리게 보이는 침식 지역을 빠르게 훑었다.

그러자 급격한 변화에 미처 피하지 못했는지 아직도 안쪽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 탈출하기 위해서 얼어붙은 몸을 힘껏 움직여 기어 나오는 중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경계에 가까이 있던 사람들에게나 해당하는 말이었고 깊은 곳에 있던 작은 기운들은 그 자리 그대로인 상태였다.

게다가 몇 개는 벌써 꽤 줄어들어 있었는데 특히 선천지기조차 줄어들려고 하는 두 명은 진짜 위기였다.

“쯧….”

결국 시현은 작게 혀를 차며 난간을 박차고 활강하듯 침식 지형으로 쏘아져 내려갔다.

안으로 들어서며 확인한 내공의 양은 비록 연공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많지는 않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사용하긴 충분했다.

침식 지역의 경계에서 조금 더 안쪽, 얕게 쌓인 눈 위에 발을 디딘 시현은 주위로 좁게 기막을 펼쳤고 눈 폭풍에 어느 정도 자유로워진 몸을 움직여 푼 뒤 잠시 주변 환경을 체크했다.

일단 외부 요인은 추위뿐, 그 외에는 딱히 위험한 장애물은 없어 보였다.

시현은 짧게 숨을 들이마시고 저 밖에서 위험하다고 느꼈던, 가장 기운이 줄어 있는 사람의 상태를 다시 한번 체크했다.

“기절했나.”

시현이 작게 혀를 차며 무릎을 굽히고 상체를 기울였다.

슈욱!

그 순간 시현의 모습이 늘어지는 듯하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평범한 이들에겐 순간이동을 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그리고 잠시 후, 몸 위로 눈이 쌓여 얼어붙은 중년 여성의 앞에 도착한 시현은 몸 위에 쌓인 눈을 손짓 한 번으로 확 털어 내고 손을 단전 위에 내려놨다.

‘내공을 막 주입하면 안 되지만…. 이번 건 괜찮겠지.’

어차피 이대로 두면 죽을 사람이었다. 그래도 이번에 쌓은 내공은 예전과는 달리 정순했고 뭐라도 해 봐야 한다는 마음에 시현은 망설임 없이 움직였다.

무서울 정도로 순식간에 집중한 시현은 예민한 혈맥을 피해 내공을 세밀하게 밀어 넣었다. 그러자 순간 시퍼렇게 얼어 있던 얼굴이 제 색을 찾으며 돌아오기 시작했다.

“후우… 다행이네.”

시현은 잠시 피식 웃으며 어느 정도 따듯해진 중년 여성을 한 손으로 들쳐 메고 다음 기운이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그렇게 십여 분간의 시간이 지나가고, 시현은 인적 없는 골목길에 추위에 기절한 인간들 30여 명을 나란히 눕혀 놓고 작게 숨을 몰아쉬었다. 안타깝지만 이제 저 안에 살아 있는 사람은 없었다.

‘대충 언질만 주고 카페 쪽으로 돌아가야겠다.’

나란히 누워 있는 사람들의 상태를 슬쩍 훑어본 시현은 민망한 듯 목덜미를 문지르다가 미련 없이 등을 돌려 발을 뗐다.

“잠. 잠시, 헌…터님.”

그때, 바로 돌아가려던 시현의 몸이 움찔 떨렸다. 지금이 무림이었으면 단숨에 목이 베었을 수도 있었을 위기였다.

미친, 왜 기척을 못 느꼈지?

시현이 불신을 담은 얼굴로 시선을 돌려 목소리가 터져 나온 곳을 바라봤다. 그러자 여자는 가물가물하게 반쯤 뜬 눈으로 눈물을 흘리며 힘겹게 말을 이었다.

“저희…. 오빠가. 흐으, 게이트 안으로…. 휩쓸려. 구해 주….”

“하아….”

자신은 딱히 과한 오지랖을 부리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그저 그런 상황이 제 눈에 들어왔고 제가 처리하기에 너무도 손쉬운 일이었는 데다가 듣고도 모른 척하면 찝찝하니까, 움직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분명 방금까지 개운했던 마음이 다시금 찝찝해지기 시작했다. 입 안쪽으로 계속해서 험한 말이 굴러다녔다.

“알겠으니까 그만 좀 울어요.”

“흐으, 흑 감사. 합….”

결국 시현은 후드 모자를 다시 한번 잘 덮여 있는지 확인하고는 이제는 완연하게 눈으로 뒤덮여 온통 하얗게만 보이는 곳으로 발을 옮겼다.

***

“와…. 가까이서 보니까 더 미쳤네.”

시현은 게이트 앞에 멀뚱히 서서 모양을 만들고 있는 에너지 자체를 유심히 뜯어보는 중이었다.

그냥 대충 넘어가도 될 법한 일이었으나 갑자기 시현이 멈추어 선 것은 낯선 이 게이트에서 익숙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왜 여기서 그게 느껴지는 거지?’

현대로 돌아와서 느낀 기운과 미묘하게 다른 이 기운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적은 양이라 헷갈렸지만 게임 속에서 느낀 자연지기가 맞는 것 같았다.

이 게이트 모양을 유지하는 힘의 중심에 그것이 아주 은밀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쯧… 됐다.”

그러나 시현은 문득 든 의문에도 이내 머리를 털며 발을 뗐다.

어차피 크게 파헤치고 싶은 것도 아니었고 더 귀찮아지기 전에 빨리 남자를 구출하고 이 자리를 떠나고 싶었다.

곧 시현의 왼쪽 발이 거울같이 반들반들한 게이트의 표면을 통과하자 게이트는 작게 일렁이며 의외로 쉽게 흐트러졌다.

딱히 긴장한 것은 아니었지만 진짜로 한쪽 발이 게이트 안쪽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자 복잡한 눈으로 제 남은 발을 흘긋 바라본 시현은 다시 한번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잠시 후 망설임 없이 안쪽으로 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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