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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자 10년 만에 돌아왔더니 헌터란다-16화 (16/146)

#16

“야. 너도 고아 새끼라며? 아, 동질감 때문에 그런 거였구나~.”

“….”

시현은 제 눈앞에서 벌어지는 어이없는 상황에 한숨을 내쉬고 이마를 감싸 쥐며 고개를 숙였다.

다음 날. 오전 수업을 받기 위해 늘 앉던 구석 자리에 엉덩이를 붙인 시현은 오늘도 빠지지 않고 떠들어 대는 꼴뚜기들의 합창에 스트레스를 받는 중이었다.

그러나 늘 그렇듯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정도의 수준이었는데 방금 터져 나온 선을 넘는 언행은 시현마저 거슬리게 했다. 그러나 작정하고 열받게 하려는 말에 정신을 놓고 맞춰줄 마음 따위는 없었다.

“어젠 말 잘하던데 하루 만에 벙어리가 됐나. 야, 말 좀 해 봐.”

곧 강의가 시작되기 전이라 강의실에는 인원이 이미 가득 차 있었음에도 이 넓은 공간은 짖어 대는 꼴뚜기들의 소음 말고는 무척이나 고요했다.

그들도 그걸 느꼈는지 쪽팔려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으쓱해하고 있었는데 그 꼴조차 같잖아서 오히려 작게 들던 분노마저 차갑게 식어 가는 중이었다.

차별을 받아 왔다고?

작든 크든 차별받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었다. 시현은 그딴 어린애 투정 같은 뒷사정 따위 받아 주고 싶지 않았다.

이런 놈들은 그런 사정이 없다고 하더라도 똑같이 인성이 저따위였을 게 분명했다.

달칵-

그때 ‘게이트의 이해’를 맡고 있던 교수가 망설임 없이 문을 밀며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거기 학생! 제자리에 가서 앉으세요!”

그리고 제 주변에 서서 빈정대던 놈들을 가리키며 미간을 찌푸렸다.

아마 만만한 교수였다면 말대꾸를 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단상 앞에 선 저 차민성 헌터는 꽤 명성이 높은 헌터였기에 상황은 빠르게 마무리가 됐다.

“후우…. 자. 바로 수업을 시작하죠. 저번에는 최초의 게이트, 일명 신의 광산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물론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부분도 많고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게 아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위해 헌터들이 아직도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고요.”

시현은 또랑또랑하게 울리는 목소리에 집중하며 펜을 들어 올렸다. 물론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솔직히 내용 자체도 나름 재미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지루하기만 할 것으로 생각했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듯싶었다.

그러나 시현의 입장으로는 다 처음 듣는 얘기들이라 모든 게 다 신기했고 저 교수의 입담이 좋아서 그런지 내용도 어렵지 않게 이해가 되고 있었다.

“처음에 게이트는 B급까지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엔 A급 게이트가 나타났죠. 이 말은 뭘 뜻할까요? 언젠가는 그 이상의 게이트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책상 위 펼쳐진 노트 위에 의미 없는 낙서를 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시현은 순간 앞에 앉았으면서 은근히 고개를 뒤로 돌려 노려보고 있는 꼴뚜기와 시선이 마주쳤다. 늘 아름다운 것만 보다가 잘 빻아진 얼굴과 맞닥뜨리자 새삼 기분이 더러웠다.

물론 제가 꼴뚜기라고 이름을 지은 데에는 생김새의 영향도 컸다.

그다음부터는 수업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계속해서 입 모양으로 모욕적인 말을 내뱉는데 부모 얘기가 나올 때는 순간 욱해서 벌떡 일어날 뻔했기에 시현은 펜에 금이 가도록 세게 움켜쥐고 시선을 돌려야만 했다.

“자! 수업은 여기까집니다. 곧 실전 교육을 앞두고 있죠? 다들 무사히 귀환하길 바랍니다. 물론 F급이라 위험하진 않겠지만 간혹가다 트라우마 같은 것을 얻어 오는 친구들도 있더군요.”

순간 강의실이 음소거를 한 양 조용해졌다.

“그러니 전투가 본인에게 맞지 않다면 오히려 빨리 포기하고 다른 방향을 알아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잔소리는 이쯤 하죠. 수고했습니다.”

시현은 교수의 마지막 인사말을 들으며 그제야 의미 없이 흘러 버린 시간을 깨닫고 탄식했다.

그렇게 조금씩 쌓이던 분노가 잔잔하게 끓어오를 때, 순간 주머니에 넣어 둔 핸드폰이 울리며 생존 신고를 해 오는 게 느껴졌다.

흘러넘칠 뻔한 짜증을 막아 준 진동에 시현은 말없이 핸드폰을 꺼내 들고는 화면에 떠오른 문자를 확인했다. 그리고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쓰여 있는 내용에 그제야 작게 미소를 지었다.

[안녕하세요! 저 서유준입니다. 그…. 흰머리요. 어제는 경황이 없어 제대로 말씀을 못 드렸는데 먼저 너무 감사드립니다.]

“허…. 문자로는 말 잘하네.”

시현은 또 저를 조롱하려고 드릉드릉하는 놈들을 개무시하고 발을 옮기며 재빨리 서유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 여보세요…?

“밥 먹었어요?”

-아직이요….

“그쪽도 수업 끝났죠? 7층 카페로 올래요? 밥 같이 먹어요.”

-지, 지금요?

전화를 걸자마자 또 짧아진 말투와 작아진 목소리에 시현이 피식 웃으면서 망설이는 유준을 밖으로 끌어냈다.

그리고는 제 뒤를 쫓아오는 꼴뚜기들을 흘끗 쳐다봤다가 앞에 보이는 모퉁이를 돌며 천둔형을 썼다.

무공이 기척을 숨겨 주긴 했으나 모습을 완전히 없애 주는 건 아니었기에 시현은 그림자가 져 있는 벽 쪽에 붙어 섰다. 그러자 곧바로 다섯 명의 남자들이 나타나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 어디 갔어!”

‘네 앞에 있다, 등신아.’

맘 같아선 저 멍청한 놈들의 뒤통수를 하나하나 때려 버리고 싶었지만, 시현은 작게 혀를 차며 그들을 한심하게 쳐다보다 식식대며 자리를 뜨는 놈들을 등지고 편하게 발을 옮겼다.

“아, 안녕하세요.”

“오? 오늘은 흰머리네?”

시현은 카페 구석에 앉아 있다가 작게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어제와는 달리 또 하얘진 머리카락을 보며 저도 모르게 인사 대신 질문부터 내던졌다.

“아…. 사실 흰머리가 너, 너무 튀어서 검은색으로 염색을 한 거였거든요…. 비록 이렇게 됐지만요….”

“아아…. 능력 때문에 바뀐 머리였구나.”

저 얘기를 들으니 이해가 갔다. 그렇게 빨간색을 싫어하던 하정이 계속 시뻘건 머리를 유지하는 이유도 각성으로 바뀌어 버린 머리카락 색을 물리적인 방법으론 제대로 바꿀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시현은 아직도 서서 쭈뼛거리는 유준을 앞자리에 앉히고 미리 사 둔 샌드위치 세 개를 건넸다.

팔다리가 앙상한 게 피죽도 못 먹은 꼴이라 괜히 신경이 쓰여 두고 볼 수가 없었다. 맘 같아선 식당에 가서 고기라도 먹었으면 싶었지만 분명 식당으로 직진했을 시끄러운 놈들 때문에 괜히 꺼림칙했다.

“다 먹어요.”

“너, 너무 많은데요….”

“아이들은 원래 많이 먹어야 해요.”

“…저 그래도 중학생인데요.”

멈칫.

빠르게 껍질을 까서 샌드위치 한쪽을 입 안으로 밀어 넣던 시현이 제대로 베어 물지도 못한 샌드위치를 그대로 빼내고는 무겁게 내려앉은 침묵에 속으로 욕설을 읊조렸다.

“초등학생인 줄… 아니, 미안합니다….”

“아, 아니에요…. 사실 다들 그렇게 봐서 괜찮아요.”

조금 얘기를 들어 보니 서유준은 15살이긴 했지만, 형편상 잘 먹지 못해 성장이 더딘 듯했다.

솔직히 그냥 조금 철이 든 초등학생이라고만 생각했지 이 아이가 그 무서운 중2이라는 건 전혀 예상 못 한 시현이었다.

“그러니까…. 혀, 형도 편하게 말씀하세요.”

“어엉? 그, 그럴까?”

“형은 몇 살이세요?”

“어, 서른세…. 아니. 스물여섯…?”

“아. 그렇구나.”

시현은 약간 휘말리듯 말을 놓고는 머리를 작게 긁적였다. 그리고는 문득 떠오른 궁금증에 다시 입을 열었다.

“참 근데 왜 그동안 안 보였던 거야?”

“아…. 그게요.”

서유준의 입에서 흘러나온 사정은 이랬다.

첫날 아무것도 몰랐던 유준은 자신이 드림워크로 각성한 자라는 걸 설문지에 적어 냈고 그 사실을 알게 된 협회 관계자들에 의해 뒤늦게 다른 곳을 옮겨졌다.

그러나 드림워크 각성자치고 꿈의 길이도 매우 짧았고 그러다 보니 스킬도 딱히 별 볼 일 없었으며 그마저도 능숙하지 못했다.

결정적으로 등급이 생각보다 낮게 나왔다고 했다. 그 후 몇 번의 검사가 이어졌지만, 유준은 결국 일반 교육 건물로 옮겨졌다.

한마디로 볼일 없어졌단 뜻이었다. 유준이 아직 어린 학생이라고 해도 이런 쪽으로는 어른 못지않게 눈치가 빨랐다. 평생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헤헤…. 사실 조금 기대했는데. 제가 뭐 그렇죠….”

시현은 불만 어린 얼굴로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먹던 샌드위치를 내려놓고 다리를 꼬며 몸을 등받이에 기대 유준을 빤히 바라봤다.

“헌터가 유일한 직업도 아니고 그렇게 생각하지 마.”

“그렇지만…. 저는 꼭 헌터가 되어야 해요….”

“왜?”

“부, 부모님이…. 게이트 브레이크 때문에 돌아가셨거든요…. 그런 사고를 조금이라도 막고 싶어요.”

더 이상 이어지는 말은 없었지만, 시현은 유준의 마음을 알 것 같아 더 캐묻지 않았다.

최초의 게이트가 생기고 나선 부모를 잃은, 또는 자식을 잃은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고 들었다. 유준도 아마 그 사람 중 하나였겠지.

“미안하다.”

“네? 아니에요! 트, 특별한 일도 아닌 데요. 뭐!”

유준은 조금 얼굴을 붉히고는 들고 있던 샌드위치를 어찌할 바 모르고 허둥대다가 급하게 손을 내저었다. 그러자 샌드위치 채소가 톡톡 떨어졌고 그거에도 당황한 유준이 벌떡 일어섰다.

시현은 조금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결국 크게 웃으며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으니까 빨리 먹어. 그거 다 먹을 때까지 못 가.”

“아…. 배부른데….”

“겨우 두 개도 못 먹고? 쯧…. 그럼 싸 가서 배고플 때 몰래 먹어.”

지금 억지로 먹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라는 듯 열심히 고개를 꾸닥거리는 유준을 보던 시현이 시간을 확인하곤 천천히 일어섰다.

예나 지금이나 점심시간은 고작 1시간뿐이었고 희한하게도 이 시간은 누가 빨리 감기라도 한 듯 늘 빠르게 지나갔다.

“뭔 일 있으면 꼭 전화하고. 나간다.”

“예…. 형….”

시현은 피식 미소를 짓고는 제 가슴팍을 조금 넘는 유준의 머리를 슥 쓰다듬고는 발을 옮겼다.

***

“자! 오늘이 무기술 마지막이다. 알고 있지?”

시현은 수십 명의 학생과 나란히 서서 교수의 설명을 듣는 중이었다.

이론이면 몰라도 이런 간단한 무기술 정도는 시현에게 너무나 쉬워서 사실 집중이 잘되진 않았다.

그렇지만 수업 태도도 평가에 들어갔기에 적당히 신경을 써야만 했다.

“그동안은 각자 혼자 연마했지만, 오늘은 두 명씩 짝지어서 대련하려고 한다. 자, 궁금한 점 있는 사람?”

“제가 직접 지정해서 대련할 수 있습니까?”

그때 장명훈이 씩 웃으며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순간 시현은 팔뚝을 타고 오르는 소름에 눈을 가늘게 뜨고 꼴뚜기 대장 놈의 면상을 지긋이 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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