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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자 10년 만에 돌아왔더니 헌터란다-27화 (27/146)

#27

“어, 왔냐.”

“그래.”

둘 사이에 딱히 거창한 인사말은 필요 없었다.

시현은 뚜벅뚜벅 걸어오는 하정의 어깨를 툭 치고는 태운이 기다리고 있을 객실의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그러나 문을 열자마자 제 시야를 온통 가리고 있는 커다란 형상에 시현은 문밖에 그대로 서서 저를 내려다보는 태운을 마주 봐야 했다.

얘가 왜 이래?

시현은 조금 의아한 얼굴을 하며 태운을 밀어 내려고 하다가 옆에서 들려오는 하정의 목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 누구셔…?”

“아. 음, 아는 동생?”

하정은 누가 봐도 대충 흘러나온 대답에 앞을 보고 순간 멍해질 뻔한 정신을 애써 다잡으며 시현을 바라봤다.

시선을 미묘하게 돌리며 코끝을 찡긋거리는 게 이 새끼는 나이를 먹어도 변하지 않는 것 같아 그게 참 웃겼다.

‘그나저나 뭐 저렇게 생긴 사람이 있냐.’

문을 열자마자 눈 안에 들어온 사람의 얼굴이 너무 강렬해서 저도 모르게 말을 더듬을 뻔했다.

그러나 무서울 정도로 무기질적인 빨간 눈동자에 금방 제정신이 돌아왔다.

“야. 네가 아는 동생이 어딨어. 내가 모르냐?”

“아, 그러니까 그게.”

시현은 거짓말을 잘 못했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곤경에 처한 적도 많이 있었지만, 하정은 시현의 그런 면을 마음에 들어 했다. 물론 저렇게 티 나게 구는 게 웃기기도 했고.

“맞아요. 아는 동생.”

그때 앞에서 듣기 좋은 목소리가 튀어나오더니 안쪽에 우뚝 서 있던 남자가 제 옆에 있는 시현에게 어깨동무해 끌어당기며 빙긋 웃어 보였다.

“아, 그래요?”

“네 엄청 친하거든요.”

“예에…. 그러시구나….”

하정은 슬쩍 시선을 피하고는 이상하게 찝찝해지는 마음을 내리눌렀다.

잘생긴 얼굴로 계속 웃으면서 얘기하고 있는데도 괜히 이 남자가 불편했다. 느낌뿐이라 말로 설명하긴 힘들었지만, 하정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어설프게 웃고만 있는 시현의 팔을 툭 쳤다.

“어, 맞다 태운아. 인사해. 여기는 친구. 이하정.”

“…아하. 친구.”

“응 우리 잠시 대화 좀 할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알았지?”

“예.”

시현은 순하게 고개를 꾸닥거리는 태운을 슬쩍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고는 빠르게 걸음을 옮겨 안쪽에 자리한 작은 방 안으로 들어섰다.

아무래도 제가 걱정했던 일은 일어날 것 같지 않아 보여서 조금 안심이었다.

“일단, 이거 위험해. 너 이거 어떻게 할 건지부터 말해 봐.”

그러나 하정이 시현을 따라와 문을 쾅 닫고 다짜고짜 본론부터 꺼내며 맞은편에 앉자 시현은 잘 감춰 놨던 아까의 일을 떠올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다시 분노가 천천히 차오르고 있었다.

“조지러 갈 거야.”

“하아…. 그럴 줄 알았다. 안 돼. 위험해.”

하정은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감싸 쥐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연히 거절이었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테이블 위로 작은 종잇조각이 올려지자 입을 다물며 한숨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알잖아. 나, 이건 그냥 못 넘어가.”

저 사진을 시현이 소중히 한다는 걸 하정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하정은 이미 마음을 먹은 듯 단단한 시현의 눈을 바라보곤 어쩔 수 없다는 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디나 그렇듯 사람들이 능력이 있다고 좋은 일에만 쓰는 건 아니었다. 당연히 범죄 같은 데에 능력을 활용하는 이들은 이곳에도 존재했다.

“일단 얘네들. 아무래도 우리가 쫓던 놈들 같아.”

“뭐. 미등록 헌터 같은 거?”

“어 맞아. 그런 애들도 포함. 우리는 빌런연합이라고 하는데….”

“와 작명 센스 봐. 누가 지었냐.”

“…토 달지 말고 그냥 쳐들어라.”

빌런연합. 흔히 말해 능력을 범죄에 활용하는 이들을 통틀어 지칭하는 것이었는데 원래는 이들은 뒷골목 깡패처럼 큰 위협까진 아니었다고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구심점이 생긴 듯 중구난방으로 흩어져 활동하던 이들이 빠르게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범죄들은 더욱 교묘해졌고 각 나라에서도 위험등급 1급으로 지정해 추적하고 있지만 예전과는 다르게 훨씬 잡아내기 힘들어졌다.

“하여튼 그놈들이 연관된 건 맞는 것 같아.”

“빌런연합이라고….”

“그래. 그런데 아무리 봐도 너희 집에 있는 흔적들은 두 무리가 싸운 것들이었거든. 근데 왜 같은 단체 안에서 싸웠는지 왜 하필 너희 집인지는 전혀 알 수가 없었어. 그리고 문제는 얘네가 이유 없이 너희 집에 들어간 게 아닌 것 같아. 너 진짜로 뭐 없었어?”

하정이 하는 말은 원한 같은 게 없냐 물어보는 것일 테지만 무림이 아니고서야 이곳에서 그런 게 있을 리 없었다.

시현은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 채 진지하게 생각에 잠겨 들었다.

그들이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제집을 박살 냈는지 아직은 알 수 없었지만, 어차피 꼬리를 잡는 대로 차근차근 쥐어짜면 하나씩 드러나기 마련이었다.

게다가 마교에는 심문으로 탁월한 효과를 가진 무공도 많지 않은가.

물론 목숨과 제정신은 장담할 수 없었지만.

이제 마지막 남은 것은 그 꼬리의 시작을 어디서부터 잡냐가 문제였다.

“그래도 마침 나라에서도 집중적으로 알아보는 중이니까 뭐라도 하나 나오긴 할 거야. 그때 몰래 알려 줄게.”

“후우… 고맙다. 진짜.”

“근데, 시현아. 이거 진짜 위험해. 절대 포기할 생각 없어 보이지만 한 번 더 물어볼게. 괜찮겠어?

시현은 하정의 걱정 어린 목소리에 멋쩍게 턱을 긁적였다. 그리고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안심하라는 듯 미소 지었다.

“나 생각보다 강해. 태운이도 있으니까 절대 안 죽어. 걱정하지 마.”

“그래. 물론 자세한 얘기는 귀찮을 거고. 맞지?”

하정은 여전히 탐탁지 않아 보였지만 결국 한숨을 쉬며 긍정의 대답을 해 왔다. 시현은 그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번 목표를 조정했다.

도시 외곽에 이층집을 짓고 살겠다는 꿈은 취소였다.

‘일단 잡으면 내 정신적 피해 보상, 태운이랑 하정이 정신적 피해 보상, 그리고 집 파손 보상 등등 전부 다 세 배로 불려서 끝까지 받아 낸다.’

그리고 서울 한가운데에 10층짜리 건물을 짓고 한 층은 내가, 한 층은 태운이 집으로 쓰고 나머지는 임대로 돌려 아무것도 안 하고 편하게 살 것이다.

시현은 갑자기 미친 듯이 솟아오르는 의욕과 그들을 향한 분노를 적절히 뒤섞으며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리고 씩 웃어 보였다.

그러나 하정은 평소답지 않게 의욕이 과하게 넘쳐 보이는 시현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거뭇한 사진을 흘긋 봤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슬슬 돌아 버리려고 하는 제 친구를 위해 제대로 된 희망을 던져 줄 차례였다.

“참, 그리고 그 부서진 집은 다 책임지지 않아도 될 거야. 다행인 게 네가 헌터증을 발급받기 바로 전에 터진 일이잖아. 어쨌든, 능력자이긴 해서 네가 발현한 날과 진짜로 습격자들과 원한 관계가 없는지 등등 더 조사하겠지만 그래도 많이 정상 참작이 될 거다.”

“하아….”

시현은 진지하게 하정의 이야기를 들으며 앞이 깜깜할 정도로 말도 안 되는 금액을 다 물어 주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얼굴이 밝아졌다.

아까는 그냥 아무런 정신이 없어서 그냥 알겠다 하고 넘어갔지만, 솔직히 너무 절망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곧 그 말 뒤로 정말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이 더해지자 그전에 하던 모든 생각이 순식간에 휘발됐다.

“그리고…. 사진도 복원할 방법이 있어. 돈은 꽤 들겠지만, 국내에도 복원사가 하나 있거든.”

“잠깐, 잠깐만…. 복원사? 사진을 복원할 수 있다고?”

조금 바삭해진 사진 쪼가리를 조심스럽게 갈무리하던 시현은 멍하니 하정을 바라보다가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완전히?”

“그렇게 작고 단순한 건 거의 100 퍼센트. 뭐… 또라이 새끼 밑에 있긴 하지만 개인 의뢰도 받으니까….”

시현은 오로지 100 퍼센트라는 말밖에 들리지 않았다.

애써 숨기고 있던 감정이 변화했다. 흐릿하게 뒤집혀 있던 머릿속이 제자리를 찾고 쿵쾅대던 심장이 가라앉으면 더욱 냉정하게 벼려졌다.

물론 그렇다고 분노와 복수심이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무인은 당한 건 몇 배로 되갚아 주어야만 했다.

“너 근데 언제까지 여기 있을 건데?”

“뭐, 호텔?”

입술을 작게 뜯으며 어떻게 움직일지부터 빠르게 가늠하던 시현은 하정의 말에 퍼뜩 고개를 들고 이곳에 오게 된 원인을 떠올렸다.

아, 맞다. 태운이.

사실 그동안 태운에게 맛보여 주고 싶은 음식이 얼마나 많았던가. 자신도 비록 다양한 음식을 경험해 본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게이트에서 나온 날 밤새 열심히 계획을 짜 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그걸 해 보기도 전에 일이 터졌고 지금까지도 태운이를 신경 써 주지 못하고 있던 사실을 깨닫자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직 생각은 안 해 봤어. 그래도 당분간은 밖에서 지내야겠지.”

시현은 대충 대답하며 하정이 가자마자 빨리 연태운에게 뭐라도 먹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제가 먹어 본 것 중 어떤 걸 제일 먼저 먹일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생각 또한 하정의 말도 안 되는 대답이 끼어드는 바람에 사라졌다.

“흐음…. 밖에 저 사람 때문에?”

“어어?? 아, 뭐. 응.”

“근데 진짜 ‘아는 동생’ 맞아? 애인 아니고?”

“무슨 개소리야?”

시현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강력하게 부인하기 시작했다. 무척 당황스러웠다. 태운과 자신의 어딜 보고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누가 봐도 나이 차이 많이 나는 형 동생 아니면 조카랑 삼촌 느낌 아니야?

시현은 세상에서 제일 황당한 말을 듣는다는 표정을 하며 하정을 식은 눈으로 노려봤다.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고 다 안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는 하정을 보자 오히려 더 속만 터지는 것 같았다.

“왜, 천하의 정시현이 돈을 펑펑 써 가며 이런 호텔에 다른 사람을 데려와 앉혀~ 또 그 사람 볼 때마다 얼굴은 풀어져서 등신같이 실실대고. 이상하잖아.”

그리고 그 사람 눈빛도 이상하고.

하정은 전혀 숨기려고도 하지 않고 저를 적대시하듯 소름 끼치게 바라보던 핏물 같은 눈을 떠올렸다.

그리고 시현에게 향할 땐 그걸 귀신같이 숨기고 순식간에 녹아내리던 걸 생각하며 얕게 돋는 소름에 작게 진저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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