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유자 10년 만에 돌아왔더니 헌터란다-39화 (39/146)

#39

‘뭐지?’

그러나 시현은 곧 왜 그들이 그리 행동했는지 알 수 있었다.

버퍼가 갑자기 아이돌이라도 된 마냥 혼자 춤을 추기 시작했다.

비록 짧은 동작이었으나 잠시간 반주도 없이 팔다리를 바쁘게 움직이더니 마치 히어로 랜딩이라도 하듯 마지막으로 화려한 포즈를 취하는 그 모습을 시현은 온전히 바라볼 수가 없었다.

[이동속도가 20% 상승합니다. 특수 지형에서 이동에 받는 방해를 50% 상쇄합니다.}

시현은 제 몸으로 흘러들어 오는 기운을 느끼면서 기존의 길드원들과 같이 모른 척 시선을 돌리고 딴짓을 했다.

“저 친구가 드림 워커라 능력은 좋은데요…. 클래스가 아이돌이라서 스킬들이 죄다 저래요. 그냥 모른 척해 주세요…. 엄청나게 수치스러워하거든요.”

규민이 조금 안타깝다는 듯한 목소리로 작게 설명을 해 왔다.

어쩐지 한두 번 버프를 한 게 아닐 텐데도 왜 주변 길드원들이 모른 척하고 감사 인사조차 건네지 않는지 이해가 됐다.

‘나 아무래도 무협 게임을 한 게 다행일지도….’

시현은 그런 시답지 않은 생각을 하며 슬슬 움직이려고 하는 일행의 뒤쪽으로 따라붙었다.

“이제 가 볼까요?”

시현은 이제 꽤 불어난 일행의 뒤쪽에 서서 출발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제가 뚫어 놓은 곳이 출구로 향하는 가장 일직선인 길이었기에 방향은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정해졌다.

쿠궁.

그러나 몇 걸음 옮기지도 못하고 불길한 기운이 뺨을 훑고 지나갔다.

아주 작은 소음이었지만 시현은 단번에 알아듣고 저도 모르게 시선을 태운이가 있는 쪽으로 옮겼다.

그리고 동시에 마주친 눈동자에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니라고 확신했다.

“잠시만요.”

시현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모든 이들의 발을 멈추게 만들었다. 이제 막 밖으로 나서려고 하던 참에 들려온 말에 멈춰 선 일행들이 우르르 시현에게로 고개를 돌려 바라봤다.

그리고 그 순간.

콰앙!

“고개 숙여요!!”

천장이 부분부분 무너지며 제가 뚫어 둔 입구와 기존에 달려 있던 문까지 가로막기 시작했다.

시현은 아까 떠올랐던 퀘스트를 떠올리며 얼굴을 와그작 구기고 아까 정체불명의 인물들이 나타났던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갑자기 나타난 수십 개의 기운이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아까와 같은 것들이라면 딱히 위험할 것 같진 않았지만 이 또한 변수는 변수였기에 긴장을 풀 수는 없었다.

“다들 전투 준비해. 그리고 제대로 보조한다.”

그때 뒤쪽에서 길드원들이 빠릿하게 움직이며 전투 태세를 갖추는 게 느껴졌다.

시현은 순간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동안 뒤에 아군을 두고 싸워 본 적이 거의 없었기에 괜스레 민망해지는 마음을 숨기며 앞으로 터벅터벅 걸어 나갔다.

“ddllljaqlp!!!!xspw!”

“다시 말하지만, 너희들 말 모른다니까.”

시현은 가시권으로 들어온 놈들을 짧게 훑고는 제 옆에 서 있던 태운의 어깨를 탁탁 치고 지면을 박차며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콰앙!

검붉어진 내기에 물든 검이 위로 치켜올려졌다가 단호하게 내려쳐졌다. 그러자 허리가 반쯤 베어진 몸이 덜렁거리더니 내장을 쏟아 내며 앞으로 꼬꾸라졌다.

사실 아까도 쉽게 베어 낸 것처럼 말하긴 했지만, 이놈들의 몸뚱이는 혈 강시만큼 단단해서 검기를 두르지 않으면 잘 베어지지 않았다.

시현은 아직 넉넉한 내공을 확인하고는 태운이 검을 횡으로 그을 때 맞춰 허공으로 뛰어올랐다가 바닥으로 내려섰다.

그러자 마치 수수깡을 절단 내듯 앞쪽에 위치해 있던 놈들이 볼링핀처럼 우르르 쓰러졌다. 물론 팔이고 뭐고 검로에 위치한 것들이 모두 조각난 상태로 말이다.

촤악!

사방이 쏟아진 피로 척척하게 젖어 들었다. 그럼에도 시현과 태운이 뛰어다닐 땐 물방울이 튀는 듯한 작은 소리마저 나지 않았다.

다른 이의 눈에는 똑같아 보일 붉은 기운이 번갈아 가며 허공을 수놓고 사라졌다. 그것은 마치 작은 번개가 치는 것과 같은 광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붉은 번개가 칠 때마다 기괴한 생김새의 괴물들이 두셋씩 픽픽 쓰러져 살덩이들로 산을, 피로 강을 이뤘다.

“허어…. 이거 저희는 아무것도 안 해도 될 것 같은데요….”

“그, 그러게요…. 와….”

“으으. 근데 너무 잔인해요….”

잔뜩 긴장해서 전투 태세를 갖추고 있던 길드원들이 단단히 잡고 있던 본인들의 무기를 슬금슬금 내리면서 한마디씩 내뱉었다.

규민과 유준 또한 이렇게 날뛰는 둘을 처음 본지라 입을 떡 벌리고 멍하니 저 광경을 바라볼 뿐이었다.

말도 안 될 정도로 적들이 쉽게 쓰러지고 이리저리 팔다리가 튀는 게 너무나 현실성이 떨어져 아까와 같은 구역감이 들지도 않았다.

그저 조금 잔인한 영화 한 편을 보는 듯한 거리감만이 느껴지고 있었다.

유준은 사실 뚜렷하게 보이지도 않는 움직임을 얼핏얼핏 보면서 더욱더 비교되는 제 능력을 실감하곤 조금 기분이 처졌다.

사실 이번 게이트행에서 나름 시현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 기대했던 유준이었다.

그러나 그 역할은 자신이 아니더라도 어느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일이었고 움직이는 와중에도 계속 시현의 배려를 받아야 했기에 마음속에 자괴감이 차곡차곡 들어차고 있는 중이었다.

‘드림워커는 다 강하다며…. 왜 나만 이럴까…. 그들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아서 그런 걸까?’

유준은 제가 꿈에서 겪었던 것들을 떠올리며 작게 울상을 짓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때 온통 알아들을 수 없는 말소리들 가운데에서 작게 한국어가 들려왔다.

“씨발! 이것들은 대체 뭐야! 이런 얘긴 없었는데!”

무언가에 쫓기기라도 하듯 무척이나 초조하고 급한 말투였다.

시현은 주변을 채우고 있는 살덩이들을 성의 없이 퍽퍽 차서 날리며 길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발을 옮겨 파고들었다.

“으억! [블링크]!”

그러나 순간 손에 잡힐 듯했던 회색 로브의 남자가 신기루처럼 사라져 자신의 검이 닿지 않을 정도로 떨어진 공간에 나타났다.

시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는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검을 어깨에 턱 하니 올려놓고 입을 열었다.

“너희 대체 뭐 하는 놈들이냐? 헌터 맞지?”

“씨발, 나야말로 묻고 싶은 말이다! 도대체 너희 뭐야!”

회색 로브의 남자는 자신이 데리고 온 몬스터들이 수십이 슬슬 거의 다 쓰러져 가자 바쁘게 시선을 돌려 가며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시현은 그에 맞춰 한 걸음씩 따라가며 안 그래도 불안정해 보이는 놈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네가 어차피 말 안 해도 알아낼 방법 많으니까 쉽게 좀 가자. 글로리 길드원들 왜 잡아갔어. 대체 뭔데 아무도 모르게 게이트 안에 들어와 있을 수 있던 거지?”

“크흑…!”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럼에도 시현은 계속해서 질문을 하고 있었다. 어차피 저 모든 대답을 입 밖으로 발설할 거라 기대조차 하지 않았기에 다른 방법을 쓰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시현이 하려는 것은 사술의 일종으로 죽기 전에 떠올린 기억들을 시체에서 뽑아내는 것이었다.

물론 혼백이 크게 상하겠지만 그건 시현이 알 바가 아니었다.

그러나 남자는 시현이 쏟아 내는 살기와 압박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다. 무림과는 달리 현대인들의 정신력이 강하지 못하단 것을 간과한 결과였다.

남자는 빠르게 무언가를 중얼거리더니 환의에 찬 얼굴로 하나의 주문을 외웠다.

“[익스플로젼]”

콰앙!!

시현이 손을 뻗어 입을 막으려고 했지만 아주 찰나의 간격으로 남자의 머리가 터져 나가며 사방으로 피를 뿌려 댔다.

그리고 머리 없이 남은 몸뚱이는 화골산이라도 뿌린 듯 순식간에 녹아내리더니 땅으로 흡수되어 사라졌다.

“씨발, 뭐야!”

시현은 처음 보는 기괴한 광경에 멈칫하곤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그 남자가 스며든 땅에선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분명 무언가 기운이 땅으로 스며드는 걸 느꼈는데 아무런 변화가 없자 급격히 끌어 올렸던 긴장감이 조금 풀어지려고 했다.

“으악!! 형! 시현이 형! 여기요!”

그때 뒤쪽에서 찢어질 듯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시현은 어느 때보다 강렬한 불안감을 느끼며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분명 여기저기 기워 놓은 듯한 모양새였던 놈이 플라스틱 같은 것으로 코팅이라도 한 듯 매끄럽고 까만 표피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그 상태로 연태운에게 달려들고 있는 모습이 망막 가득 들어왔다.

“태, 태운아. 태운아! 피해!”

최악!!

“형!!”

“형님!!”

눈앞이 가물가물하고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그러나 곧 제가 본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자신들이 여태 베어 넘긴 몸뚱이가 다시 재조립되어 천천히 일어나고 있었고 태운이는 공격을 받고 있음에도 멍하니 선 채 검마저 놓친 상태로 제 손을 바라보고 있던 모습이었다.

“왜… 그랬….”

시현은 반쯤 베어져 피가 콸콸 쏟아지고 있는 복부를 움켜쥐며 힘겹게 말을 뱉어 냈다.

“스, 승님…?”

지금 제 눈앞에서 펼쳐지는 장면이 꿈만 같았다. 정말 지독히도 좆같은 꿈 말이다.

태운은 덜덜 떨리는 손을 천천히 들어 올려 제 얼굴에 튄 뜨거운 피를 슥 문질렀다. 그러자 이미 검붉은 핏물 위로 새빨간 피가 다시 한번 덧입혀질 뿐이었다.

털썩.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검 한 자루 들 수도 없는 비루한 몸뚱이를 끌어와 제 스승을 부여잡고 텅 빈 눈을 한 채 멍하니 있을 뿐이었다.

[혼돈의 힘과 연결됩니다.]

시현은 흐린 눈앞에 떠오른 낯익은 알림창을 끝으로 힘겹게 한마디를 남겼다.

“태운아…. 도망쳐.”

시현의 말과 함께 태운의 눈가로 튄 핏물이 눈알을 적시더니 눈물과 섞여 하얀 볼을 타고 흘러나왔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