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시현은 조급한 손놀림으로 자동문 앞 센서에 손을 연신 흔들어 대며 느리게 열리는 문안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그리고 단번에 눈에 틀어박히는 존재감에 헤매지 않고 태운과 규민이 앉아 있는 테이블을 찾을 수 있었다.
“어….”
괜히 제가 까칠하게 군 것 때문에 축 처져서 있진 않을까 걱정됐다.
그러나 환하게 웃으며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는 장면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언제 저렇게 친해졌지?’
딱히 태운이 제 옆에만 붙어서 있기만 바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빨리 이곳에 적응하고 친구도 만나며 평화롭게 살기를 바랐다.
그래, 그랬는데.
‘기분이 좀….’
순간 급히 움직이려던 발걸음이 조금 느려졌다.
시현은 잠시 주춤하곤 조심스레 카페 안을 가로질러 그들이 있는 테이블로 다가갔다.
“엇! 형님!!”
“규민 씨.”
그러자 열심히 음료를 빨고 있던 규민이 그제야 시현을 발견했는지 조금 과할 정도로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시현은 씩 웃으며 눈인사를 보냈다. 그러나 평소 같았으면 바로 튀어나와야 할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자 흘끔 시선을 돌려 옆얼굴만 보이고 있는 제자를 바라봤다.
‘윽.’
방긋 웃고 있던 얼굴이 무색하도록 조금 우중충해져 있었다.
뭐야. 내가 와서 이러는 거야?
시현은 조금 울적해졌다.
“저 형님 왔으니까 이만 가 보겠습니다!”
“어, 왜요? 나온 김에 밥 먹고 가지.”
“아뇨, 저 방금 밥 먹었어요! 진짜 배불러서 음식이 목까지 찼거든요. 저는 이만 가서 자야 할 것 같아요.”
그러나 시현은 와다다 나오는 규민의 절박한 듯한 대답에 순간 멍하게 서 있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진짜 많이 졸린가 보네.
약간 상기된 얼굴을 한 규민이 걱정이 되긴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겨 버리고는 천천히 의자를 당겨 앉았다.
“그리고 이거….”
“음?”
규민은 조금 정신없어 보이긴 했지만 이내 곧 중요한 게 떠올랐다는 듯 급히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시현에게 건넸다.
“아까 태운 님께도 말씀드렸지만 게이트 부산물입니다. 태운 님께서 처리한 것에서 떨어진 거라 드리려고 가지고 나왔어요.”
“근데 왜 저한테 주시는지….”
“아, 사실 아까 전에…”
“안녕히 가세요. 규민이 형.”
그때, 규민이 무언가를 제대로 말하기도 전에 상상치도 못했던 문장이 옆에서 튀어나왔다.
시현의 목이 아프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홱 돌아갔다. 그리고 눈동자가 지진 나듯 미친 듯이 흔들렸다. 물론 그건 규민도 마찬가지였다.
규민은 입을 떡 벌리고 어버버 말을 잇지 못하다가 급히 태운과 시현을 몇 번 번갈아 쳐다보고는 벌떡 일어났다.
“예예! 저는 그럼 먼저 가 보겠습니다! 수고하십쇼!”
그리고 오른손과 발을 함께 뻗으며 아주 어색하지만 빠르게 카페 안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물론 시현은 그를 배웅할 생각도 못 하고 심각한 얼굴을 한 채 텅텅 비어 버린 유리잔을 노려보고 있느라 보지 못했지만.
‘형? 갑자기?’
시현은 조금 혼란스러웠다. 아니 솔직히 지금 이게 무슨 감정인지 알 수도 없을 정도로 머리가 뱅뱅 도는 것 같았다.
말도 없이 사라져서 사람 걱정하게 만들고는 지는 편하게 놀고 있어서, 그래서 이렇게 기분이 안 좋은 건가?
뭐, 혀엉? 참나.
“저희도 돌아갈까요?”
“어?”
“제가 괜히 심려를 끼쳐 드린 것 같습니다. 이렇게까지 걱정하실 줄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러나 시현이 혼란스럽게 뒤엎어지는 머릿속을 채 수습하기도 전에 조금 잦아든 목소리가 귓속으로 파고들어 왔다.
여전히 공경을 담은 말투였지만 미묘하게 달라진 듯한 어조에서 평소에는 느낄 수 없었던 거리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아니, 아니야. 너도 성인인데 혼자 다닐 수도 있지…. 그럼.”
“예, 그렇죠.”
젠장, 진짜 사춘기인가?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지? 시현은 아니나 다를까 점점 제 생각과 맞아떨어져 가는 태운의 태도에 혼란스러운 마음을 다잡고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나는 어땠더라…?
다가오는 사람 다 쳐 내고, 세상에 난 혼자라는 듯 굴고, 싹수없는 말투에…. 아 그만 생각하자. 개쪽팔려 하.
생각이 계속 이어질수록 제 흑역사를 후벼파기만 하는 흐름에 시현은 머리통을 움켜잡고 괴로움에 몸을 떨었다. 생각해 보니 태운이 정도면 아주 얌전한 축에 속하는 거였다.
“태운아, 우리 얘기 좀 하자.”
아무래도 더 늦기 전에 미뤄 두었던 이야기를 마무리해야 할 것 같았다.
자신도 그랬지만 그곳에서 태운의 주변에는 더욱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고 지내던 사람이 그런 꼴로 죽어 가는 걸 보았으니 태운이가 이러는 게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렇다면 미튜브에 나온 것처럼 그냥 진득하니 속 이야기를 들어 주고 헷갈려 하는 감정에 대해 잘 설명해 주면 될 것 같았다.
‘그래, 멘토 같은 거지.’
찰칵.
그때 어디선가 카메라 셔터음이 작게 들려왔다. 시현은 말을 꺼내려 입을 벌리려다가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정확히 시선을 돌렸다.
“헉. 야, 맞잖아! 그 정시현!”
“미친. 존잘. 기사 사진이랑 개똑같네. 아직 강원도에 있다더니 찐이었구나.”
“저 남자 왔길래 설마 설마 했더니 진짜 신류하 님도 오시는 거 아니야?”
“야 근데 저 남자는 이름 태운인가 봐. 아직 기사에는 안 나왔지?”
그러나 뒤쪽에서 터져 나온 말소리에 시현은 고개를 휙 돌려 다시 앞을 바라보고 후드를 머리 위로 뒤집어쓸 수밖에 없었다.
그제야 내부에 앉아 있던 사람들 모두가 핸드폰을 쥐어 잡고 무언가를 미친 듯이 쓰고 있거나 이쪽을 힐끔거리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젠장. 태운이 때문에 너무 정신이 없었어.’
“스승님. 하실 말씀이 무엇인지….”
그때 태운이 나지막하게 말을 건네 왔다. 시현은 자꾸 귓속을 파고드는 주변의 목소리에 다시 옆에 앉은 제자의 얼굴을 바라봤다.
“태운아. 불안한 건 괜찮아?”
움찔.
“괜찮습니다. 아니더라도 어쩔 수 없지 않겠습니다. 어리광을 피울 수도 없는데. 스승님께서 워낙 싫어하시니….”
연태운은 아주 찰나간 낭패한 표정을 짓는 듯하다가 다시 뻔뻔하게 상심한 척을 하며 바닥으로 시선을 살긋 내려뜨렸다.
그러자 너무 당연하게도 시현은 그런 태운의 모습을 보며 조금 초조하게 손톱을 틱틱 튕기다가 주변을 의식하며 작게 속삭였다.
“내가 뭘 싫어해… 그런 거 아니야.”
시현은 지금 당장이라도 네 주변에 멀쩡한 이가 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착각하는 거다. 외치고 싶었지만, 사방에서 느껴지는 은근한 시선들에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럼 좋다는 말씀이세요?”
“아니… 당연히 좋지… 기특하고, 착하고 어….”
태운은 아닌 척 제 눈치를 슬슬 봐 가며 계속 소곤대는 시현을 빤히 바라보다 눈을 휘며 빙긋 미소 지었다.
“흐음… 저도 좋아해요.”
드륵.
그 순간 의자가 뒤로 휙 밀려 바닥을 끌고 소음을 만들어 냈다.
시현은 전혀 조심성 없이 터져 나온 태운의 큰 목소리에 벌떡 일어나서 티 나지 않게 주변을 한번 훑어보고는 여전히 앉아서 빙긋 웃고 있는 태운을 일으켜 세웠다.
“가자, 일단 밥부터 먹자.”
“예. 따르겠습니다.”
미치겠네.
시현은 바로 다른 얘기로 급선회하며 카페를 벗어나기 위해 거침없이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태운은 여 보란 듯이 제 스승에게 바짝 붙어서 꾹 쥐고 있던 시현의 주먹을 풀어내고 자연스럽게 손을 겹쳐 잡았다.
그리고 주변에서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촬영 소리에 다시 한번 미소 지었다.
비록 밖을 나서자마자 시현이 은근슬쩍 손을 풀어내고 한 발짝 떨어져서 어색하게 모른 척을 하고 있었지만, 오늘은 이 정도면 충분했다.
더 궁지에 몰면 또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었으니.
***
강원도에 신의 광산이 생긴 후 그것을 중심으로 일정 범위 안쪽엔 인스턴트 게이트가 자주 나타나기 시작했다.
등급도 D등급에서 A등급까지 다양하게도 나타났고 당연하게도 이곳은 국내 헌터들에게는 성지나 마찬가지인 장소가 되어 버렸다.
그 이후 주변에 상권이 생기기 시작했고 상권이 생기니 헌터가 아닌 사람들도 몰리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시현과 태운이 걷는 거리에도 사람들이 꽤 많이 걸어 다니고 있다는 뜻이었다.
태운이는 제 옷이라 살짝 루즈한 듯한 셔츠와 단이 조금 모자란 바지를 입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길쭉하고 탄탄한 몸과 비율을 자랑하고 있었다. 물론 오늘따라 반짝대는 얼굴은 말할 것도 없었고 말이다.
그렇기에 시현은 카페를 나서자마자 사방에서 쏟아지는 태운을 향한 수많은 시선에 조금 곤란해지고 있었다.
“으음…. 그냥 호텔로 돌아갈까?”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그리고 여전히 퉁명스러운 듯한 태도에 슬슬 열이 받고 있었다. 자신은 그래도 걱정이 돼서 분주하게 태운을 찾으러 다니지 않았나.
게다가 지금도 시선 때문에 힘들까 봐 배려해 주려 한 건데 그 마음도 몰라주고 남이랑은 신나게 놀다가 제게만 자꾸 데면데면하게 구는 태운이 서운했다.
‘정시현, 참자….’
시현은 미간을 좁히며 심각한 얼굴을 한 채 일정한 보폭으로 정처 없이 걸으며 저 자신을 타이르고 있었다.
아까만 해도 꼭 해 달라는 거 다 해 줘야지 생각하고 있던 자신이었다. 그래 놓고 조금 서운하다고 홀랑 마음을 바꾸기엔 자존심이 상했다.
“그럼 간단히 군것질거리라도 사서 들어가자.”
“예.”
“…하. 하. 당과 같은 게 있으려나.”
시현은 단답하곤 고개를 슬쩍 돌리는 태운의 태도에 속으로 참을 인을 새기며 길거리 노점상들을 둘러봤다.
찌릿.
그때 이런 평화로운 거리에서 느낄 거라 생각지 못한 뚜렷한 살기가 시현 본인에게 쏟아져 들어왔다.
물론 그것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지만 그걸 알아채지 못할 시현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은 태운도 마찬가지였다.
전전긍긍하는 시현의 반 발자국 뒤에 붙어 따라 걷던 태운은 기분 좋게 빙글빙글 미소를 짓고 있다가 순식간에 눈빛을 바꾸고 바닥에 떨어져 있던 돌멩이를 발끝으로 차올렸다.
그리고 제 가슴팍까지 정확히 떠오른 돌멩이를 저 멀리 보이는 어두운 골목으로 망설임 없이 내던졌다.
그것은 주변에 헌터가 있다고 하더라도 단번에 알아챌 수 없을 법한 신묘하고 신속한 움직임이었다.